때는 18세기
이 때는 삼각 무역이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삼각 무역 이라는 것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돌아가는 항로를 뜻함
유럽에서 무기나 공산품을 아프리카에 팔고 아프리카에선 흑인 노예를 사서 아메리카로 가 판 뒤
아메리카에선 은,담배, 설탕 등을 사서 다시 유럽 각지에 파는 삼각형태의 무역 항로임
이 무역 항로는 최고의 이윤과 구매, 판매 효율 그리고 최적의 항로를 제공했기에 누구나 돈과 배만 있으면 하고 싶어하는 방식이었음
그리고 이 무역에 뛰어든 네덜란드의 무역 상사 소속이지만 영국 리버풀 노예 무역 신디게이트가 대신 관리하는 종 Zong 호도 있었음
종 호는 전형적인 노예 무역선으로 50여 항해를 무사히 마친 역사 깊은 노예 무역선이었는데
1781년 11월 이 때도 종 호는 평균 노예수를 한참 과적해 총 422명의 노예들을 아메리카로 끌고가던 중이었음
당시 종 호의 선장은 항해와 선장 경험 모두 부족했던 콜링우드가 맡았는데 문제는 자메이카로 향하던 중 콜링우드가 병에 걸려
지휘를 못하게 되자 임시로 노예선 선장 경력이 있던 선원이 임시 선장이 되었는데 실수로 보급항에 정박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림
게다가 항로를 잘못 정해 정상 항로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아예 자메이카를 지나쳐버렸음
결국 괴질과 식량난으로 62명의 노예들과 선원 일부가 사망하며 절박한 상황이 됨
그래도 중간에 큰 비가 내려 식수 문제는 해결되고도 남았음
이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돈(?) 이었음
왜 돈이 문제냐면 당시 종 호 보험 조건상 노예가 자연사하면 선주 책임이어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지만
화물인 노예가 사고로 손망실 될 경우 선주와 보험사가 같이 부담하는 공동 해손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임
이 때문에 육지에 도착해도 노예들이 자연사로 처리되기 때문에 선주가 책임을 저야했음
해서 선원과 선장이 모여 회의한 결과
노예들을 바다에 버려 손망실 처리해버리기로 함
그것도 만장일치로
그렇게 시작된 학살의 결과 442명 중 208명의 노예들만이 살아서 자메이카에 도착할 수 있었음
바다에 버려진 노예들 중엔 남여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영유아 아동도 포함되어 있었음
긴 학살 끝에 자메이카에 도착하였고 남은 노예들은 1명당 36파운드에 팔려나감
그리고 선장 콜링우드는 자메이카 입항 후 4일만에 병사함
여기서 끝났다면 솔직히 그냥 무역선 사고로 이름도 남기지 않고 파묻혔겠지만..
선주인 리버풀 노예 무역 신디게이트가 보험사에 손실 배상을 요청하고 보험사에서 손배를 거절을 하면서 일이 커짐
재판에서 항해 일지가 사라지고 선장이 자메이카에 도착 후 사망해 증언을 들을 수도 없고 선원들 서로의 증언이 엇갈리는 일이 벌어지며
주목을 받았고 해방 노예 올라우다흐 에퀴아노와 노예 폐지 운동가 그랜빌 샤프에 의해 세상에 참상이 폭로됨
그랜빌 샤프는 이 사건의 중심인 종 호의 선원들을 살인죄로 고발함
결국 이 사건은 국왕 입회 재판으로 까지 번졌음
긴긴 재판 끝에 결론만 말하자면
사건은 살인이 아닌 식수 부족으로 불가항력에 의한 고의적 화물 파손으로 결론 지어짐
중간에 큰 비가 와 식수 문제가 해결 되었음에도 학살이 지속 된 사실이 폭로되었지만 딱히 재판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함
결국 고의적 화물 파손으로 보험사의 손배 지급 거부가 정당하다고 결과가 뜨면서 사건은 끝남
이로 인해 노예 무역법이 개정 되어 기타 모든 불법적 위험, 손실 또는 예기지 못한 사태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이 추가됨
물론 이 사건이 인권사에 아무 의미 없이 끝난 사건이 아니었음
이 일로 큰 분노를 느낀 그랜빌 샤프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섰고 노예 무역에서 일어나는 범죄와 대한 증거를 수집
곧 퀘이커 교도들와 런던 종교 친우회를 중심으로 노예 무역 반대 열풍이 시작됨
곧 성공회 교도들과 성직자들과 뜻을 모으기 시작했고 노예 폐지론자로 전향한 노예 무역선 선장들과 연계해
노예 무역 중 생기는 일들 참상에 대해 사회에 폭로하면서 영국의 노예 무역 폐지의 발판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됨
이와 비슷한 사건들 중 유명한 것으로는 영화로도 나온 아미스타드 호 사건이 있음
히틀러에게 절하시오 항상
킬몽거가 빡친게 이해 간다. 이 와중에 아무리 옆나라 일이라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존재한다." 가 메인 교훈인 세계관에서 나몰라라 숨은 와칸다한테 빡친것도 이해 가고
문제는 노예를 개같이 대우한 백인들도 개색기지만, 애초에 저 노예를 잡아온 애들은 같은 흑인이었다는 게 더 골때림. 흑인이라고 다 같은 흑인이 아니라 수많은 민족들이 엮여있음.
유럽.... 그야말로 광기의 지대..
당시 영국이면 백인 하층민 영국인들도 노예와 별다를거 없는 대우를 받던데
'고의적 화물 파손' 와 진짜 광기 그 자체네
이런 ㅅㅂ 맙소사
유럽.... 그야말로 광기의 지대..
히틀러에게 절하시오 항상
히틀러는 사실 당시 유럽인 평균 이었지. 히틀러가 히틀러인 이유는 유럽인들이 늘 하던 짓을 같은 유럽인 상대로 했다는 것 뿐.
유럽인 : 그래서 유색인종한테나 하는 짓을 우리한테 할꺼야? ㅋㅋ 히틀러 : 피식 유럽인 : 정말 할거야;;
이런 ㅅㅂ 맙소사
아재개그 못참는부장님
킬몽거가 빡친게 이해 간다. 이 와중에 아무리 옆나라 일이라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존재한다." 가 메인 교훈인 세계관에서 나몰라라 숨은 와칸다한테 빡친것도 이해 가고
아재개그 못참는부장님
문제는 노예를 개같이 대우한 백인들도 개색기지만, 애초에 저 노예를 잡아온 애들은 같은 흑인이었다는 게 더 골때림. 흑인이라고 다 같은 흑인이 아니라 수많은 민족들이 엮여있음.
일본애들이 노예로 잡혀간다고 조선이 나설일이 있나?
솔직히 아프리카 대륙의 규모와 인구를 생각하면 그들을 모조리 흑인으로 묶는게 오히려 인종차별 아닌가?
아시아에서도 대동아공영권 이런거 나온거 생각하면 킬몽거 생각도 안나오리란 법은 없지
이건 좀 시선이 서양 시선이 강해서.... 우리가 동북아시아인 보고 우리같은 아시아인 하지 않듯이 아프리카도 부족별로 갈려서 우리 한국 중국 일본 관계보다 험악한 관계도 많았음. 실제 상대 부족 잡아서 노예로 팔기도 했고.
킬몽거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미국인이고, 미국인은 정서적으로 그냥 인종끼리 묶어서 부르잖아
근데 생각해보면 킬몽거는 피부색만 같지 저 노예무역과 아무런 관련이 없잖아요?
와칸다가 아프리카 공영권 외치면서 전 아프리카를 무력으로 점거하면 참 잘 따라줬겠다
초반에 킬몽거 아빠가 와칸다 역사 설명할때 왜 안도왔냐 묻는 장면 있음
당연히 같은민족이 아니고 남의민족이니까 그렇지. 병자호란때 조선인들 노비로 잡아간게 무슨 후금인이랑 피부색달라서 잡아간거도 아니고
그러니까 아시아에서도 "아시아인끼리 뭉치자!" 얘기 나온 마당에 빌런이 그런생각 안할리가 있겠냐고
"일본인이 노예로 끌려가는데 조선이 왜 돕지 않았냐?" "우리나라가 왜?" 사실 그 표현이 미국인이 가질 수 있는 국가와 민족성과 차별에 대한 한계라고 생각함. 피부색 같다고 다 같은 뿌리가 아님
근데 이게 인종 문제로만 비춰지니깐 문제인거지
근데 흑인들은 그럴 생각조차 할 수 없는게 노예로 끌려와서 자기 뿌리가 어딘지 유전자검사같은 거 안하면 아예 알 수가 없어
실제로 님 같은 의견이 공감받고 영화 서사에 중요 장치였음. 비판도 많이 받아서 대첩 많이 나는 주제임. 처음에는 같은 흑인끼리 ㅇㅈㅇㅈ 인데 지식인층이 해석하면서 여론이 좀 바뀜. 이 영화조차도 서양인들이 품은 뿌리깊은 멸시가 담겨졌다고.
쿨리 노예무역도 같은 중국인들이 중국인들 납치해서 영국애들한테 팔았지.
블랙 팬서가 흑인들이 가진 공통된 고향 문화를 충족시켰던 영화여서 이러한 빌런 서사가 몰입되고 비판 받았음. 미국 흑인은 다른 이민세대랑 달리 고향에 대한 문화 자체가 없어. 기껏해야 노예시절 치킨 튀기는거에 대한 자부심 정도임. 이민자들은 자기네 고향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때로는 자랑스러워 하는데 흑인들은 그런게 아에 없음. 다 노예였고 아프리카의 강대국도 없어서 덕질하게 없었음. 숨은 강대국 와칸다는 흑인들이 원했던 고향 이미지를 충족시켜줬고 그런 국가가 있었다면 아프리카를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까지 가게 됨. 그래서 빌런 서사가 강해졌음. 반대로 지식인층은 앞서 말한 개념. 중국인이 팔려가는데 한국인이 가만있냐 같은 문답이 가능했음
???:아 그건 스파이더맨 캐치프레이즈라 우린 못쓴다구요 ㅎㅎ
옛 흑인 노예 문제에서도 미국 흑인들이 가진 심정은 너무 복잡해서 우리가 예를 찾아도 이해하기 힘듬. 아프리카 흑인이라고 뭉터기로 해버리면 미국 흑인들이 사분오열됨. 부족끼리 나눠 흑인이 흑인을 파는 사태가 비일비재했고 흑인이 흑인 노예를 관리하는 일은 일상다반사였음. 실제 노예 흑인들을 다시 해방시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줬는데 이 해방된 흑인들이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해서 플렌테이션 농장을 지음. 오히려 백인보다 악독하다는 평까지 받아가면서. 흑인 지식인층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서 죄를 짓지 않은 흑인층을 나누고자 시도했었고 실용을 못냄. 흑인들에게 니거라는 말이 큰 모욕인게 속뜻이 니 조상 노예라는 뜻이고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어서...
이런 생각을 충분히 할법한데 우리 시각으로만 편중되어 후두려까는거 같아 길게좀 써봤음. 흑인을 흑인이 판다는 걸 우리식으로 친일파 아니냐 하기엔 그들이 잃어버린 역사의 부재가 너무 큼. 고향 나라 자체가 없어. 이것이 흑인들에 대한 부채로 작용해서 다른 이민자들과 다른 대우를 받는 요인임. 다른 이민자들은 그들의 고향 나라, 문화가 있지만 미국 흑인들은 나라 자체를 상실함. 현대화 진행중인 마사이족조차 마사이족 전체가 참여하는 자기네 성인식이나 리더 뽑는 자리는 외부인의 접근을 엄중히 가리고 무게감을 가짐.
더 쉽게 말하면 다른 이민자들은 한인타운 차이나타운 하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데 흑인 커뮤니티는 다르게 형성이 됨....
일본인이 노예로 끌려갔는데 조선이 안 도운 게 아님. 오히려 조선에서 일본을 공격해서 노예를 잡아다 외부 백인 상인에 판 것과 가까움.
거 그런 헛소리는 레퍼를 가져오셔야 되고요 당장 쓰시마도 몇번 건드려보고 안된 나라가 노예무역을 주도했다고요 퍄 ㅋㅋ
당시 영국이면 백인 하층민 영국인들도 노예와 별다를거 없는 대우를 받던데
노예보다도 못했지.. 노예는 자산이지만 하층민은 소모품이니
진짜 인권이란게 얼마나 중요한건지 알게해주네...
노예 폐지론자로 전향한 노예 무역선 선장들 수송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고의적 화물 파손' 와 진짜 광기 그 자체네
전반적으로 인권이란 개념 자체가 희박하다 끔찍하구만
이거보다 조금 더 옛날 유럽에선 인디오는 인간인가? 하는 바야돌리드 논쟁이 있었었지 결국 인디오는 인간으로 결정나 노예 삼는것을 금지했지만 더 싼값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이 들어오고 얘넨 그런 기회도 없었었지
여성에게도 영혼이 있냐는 종교재판도 그리 오랜 옛날읕 아님
흑인들 피해의식이 이해는 감 조상들 뿌리의 역사가 저래버려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산 사람을 바다로 수십명을 던져댔다라... 이해할 수 없는 광기의 시대였구만
같은 사람이라고 안 봤던거지. 애초에 재판 자체가 '화물 파손' 이었잖아
어메이징 그레이스 작사가인 존 뉴턴도 노예선 선장 출신이었음. 폭풍우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노예들을 보고 인간과 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게 되었고, 이후 노예 처우 개선과 노예제 폐지를 위해 힘썼다고 하지.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사 내용도 존 뉴턴이 자기 과거를 돌아보며 지은거고.
본문 내용중에 노예선 선장하다가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런일도 있었구나
노예를 인간으로조차 생각안하는 말종들과 그 시대에 노예제 폐지와 인권을 주장했던사람 인간은 항상 똑똑하고 멍청하며 항상 선하고 악하다
근데 지금 아프리카인은 팔린사람의 후손이 아니라 팔아먹은 사람의 후손인거... 삼각무역이란거 보이지? 노예상이라는게 상인임, 즉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인데 누구한테 흑인 노예를 삿을까? 같은 흑인임, 아프리카는 계속 부족끼리 전쟁중이었고, 진 부족을 노예로 팔아먹은거임. 삼각'무역'임, 총들고 노예들 사냥한게 아니란거지, 나중에 식민지배시절은 좀 달라지지만...
일제시대 전후로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이건 반만보는거임. 결국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넘긴사람도 대다수는 속여서 넘김. 일자리를 준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 그렇게 꼬셔서 전쟁도구로 써먹고, 광산노예로 굴리고, 성노예로 부렸음. 물론, 그 사이에 '같은 조선사람'이 끼어있었지. 일제 부역자들이 있어. 그러나 직접적 식민지배 이전이라고 해도 완벽한 정보격차 사이에 일어난 삼각무역에서 생각보다 더 많은 수의 일방적 피해자들이 있다고 봐야 맞음.
당시 흑인 노예는 전쟁, 약탈 등으로 잡아다 판 게 맞음...
영국이고 포르투갈이고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내륙까지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건 거진 근세에 가까워서야나 가능했음.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게 1850년대나 되서고, 그 이전엔 그냥 아프리카 다른 부족들이 잡아온 걸 사는 게 다였음.
15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대충 1000만에 가까운 흑인 노예들이 거래됐는데 아프리카 흑인들도 바보가 아닌 바에야 잡혀는 갔는데 돌아오는 사람은 없으니 어떤 대우를 받는지 뻔히 알았음
아미스타드라는 영화보면 천하의 개쌍늠인 영국애들도 치를 떨면서 증언함. 얘네들은 훨씬전에 노예 금지시켰거든.
또 영국이야?
글보고 쎄해서 처음으로 돌아가봤더니 또 영국놈들이네 아놔
시발거 사람을 화물로 취급하는거 봐라
광기......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노예가 안생긴게 정말 다행이다.
태글은 아니고 첨언하자면 리버풀 신문은 1810년대까지 노예무역에서 인권운운하는것들은 뭘모르는자라며 까내리기 바빴다. 근데 3년사이 노예무역의 단가가 극단적으로 떨어지자 리버풀언론은 노예무역은 퍼킹레이시스트나하는거라고 까대기 바빠진다.
바다에 던질꺼면 손발이라도 풀어주지..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