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사들이 이미 정예화됨.
2. 지형상 화약무기 쓰기 좋음.
3. 권율 본인 지위가 올라가서 병사들 통제하기가 좋았음.
그래서 오히려 전투가 쉬웠다고 평가하고
반면 이치 전투는 오히려 개빡셌는데
1. 용인전투에서 개털린지 얼마 안되서 사기가 개판.
2. 직전에 있던 웅치전투도 분전했지만 개털림.
3. 화약무기도 부족한데
4. 권율 본인 지위도 낮아 통제가 안됨.
이 상황이라 개 빡셌다고.
1. 병사들이 이미 정예화됨.
2. 지형상 화약무기 쓰기 좋음.
3. 권율 본인 지위가 올라가서 병사들 통제하기가 좋았음.
그래서 오히려 전투가 쉬웠다고 평가하고
반면 이치 전투는 오히려 개빡셌는데
1. 용인전투에서 개털린지 얼마 안되서 사기가 개판.
2. 직전에 있던 웅치전투도 분전했지만 개털림.
3. 화약무기도 부족한데
4. 권율 본인 지위도 낮아 통제가 안됨.
이 상황이라 개 빡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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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sha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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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 장군의 하드캐리
웅치 전투는 기록이 확실한데 이치 전투는 정확한 시기도 불분명하고 권율이 참여했는지 어떤지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지
전라도 관찰사 이광. 이순신 친척 형이고 본문에 언급된 용인 전투에서 삼도근왕군 지휘관이었는데, 애초에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데다 선조 명령으로 억지로 한양 공격에 끌려가는 바람에 대략 5만에서 8만명이 와키자카의 500명한테 패배하고 와해되서 후방 지원으로 물러남.
특별한 차단은여기있네요
대단하신 분 이었다고 하더라구
웅치 전투에 참전하고 전주에서 승전한 기록이 있긴 한데, 저게 너무 커서 탄핵맞고 백의종군, 평안도 유배 맞았다가 1594년에야 풀려났음......
행주산성 당시 일본군 지휘를 맡은이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대표였던 이시다 미츠나리 ..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이 권율에게 천자총통(*조선군 화기중 가장 큰 대포) 를 보내주기까지했고 거기에 변이중이란 분이 만든 화차 일명 변이중 화차 (네모난 박스같은 방패안에 승자총통 여럿을 설치한 화차) 에 승자총통 등 다양한 화기등으로 무장하고 토성이지만 작은 언덕 같은 행주산성에서 싸우게되었지 이 전투로 지휘관 급 들이 중상을 당했는데 우키다 히데이에 킷카와 히로이에 안코쿠지 에케이 등이 부상당했음 참고로 이 양반들은 모두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여 했지 황진 장군은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에 통신사 일행으로서 일본에 갔는데 당시 히데요시는 호조 가문 을 공략중이여서 못봤는데 이후 호조가 의 공략이 끝나고 통신사를 맞이 했는데 당시 기록에 히데요시가 무례한 행동 (* 아들인 츠루마츠를 데리고 나와서 무례하게 통신사를 대하다 츠루마츠가 오줌을 지려 옷을 갈아입는다고 획하고 나가버림 ) 이에 격분한 황진은 무기점에 들러 일본도 2자루를 샀는데 이칼로 일본인들을 베어죽이겠다고 다짐까지했다고 하지 (이 이야기는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선조편에 나와있 어) 황진에게는 황대중 이란 동생이 있었는데 이분도 만만치 않은게 어머니가 병으로 힘들어 할때 자신의 허벅지살을 잘라 약재로 썼다고 하지 그래서 허벅지를 자른 다리 때문에 다리를 절게되었다고 하지 .. 황씨형제 모두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싸웠는데 안타깝게도 황진 장군은 성벽을 돌며 순찰도중 숨어있던 일본군에 의해 총탄에 맞 아 전사했고 동생인 황대중은 진주성이 일본군에의해 함락되었을때 간신히 살아남아 삼도수군통제사 였던 이순신 휘하에서 싸웠는데 싸우던 도중 멀쩡한 다리에 총을 맞아 양쪽 모두 다리를 절게되셨지 .. 이후 남원성 전투에 참전해서 싸우다 전사했는데 일본군이 황대중이 전사했다는걸 알고 "너희 절름발이 대장이 전사했으니 이제 어찌 싸우 겠느냐 !! " 라며 심리전을 펼쳤고 남원성은 크게 위축되었다고하지
황진 장군의 하드캐리
숫총각
대단하신 분 이었다고 하더라구
신들의 수호를 받았다고 생각됩니다
2차진주성 전투때 전사만 안하셨더라도 ㅠㅠ
웅치 전투는 기록이 확실한데 이치 전투는 정확한 시기도 불분명하고 권율이 참여했는지 어떤지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지
명문가는 좀더 사람들을 솔선수범과 보범의식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루리웹-5938018471
선조?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루리웹-5938018471
전라도 관찰사 이광. 이순신 친척 형이고 본문에 언급된 용인 전투에서 삼도근왕군 지휘관이었는데, 애초에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데다 선조 명령으로 억지로 한양 공격에 끌려가는 바람에 대략 5만에서 8만명이 와키자카의 500명한테 패배하고 와해되서 후방 지원으로 물러남.
루리웹-5938018471
이치전투에 권율은 목사. 오늘날 치면 시장임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루리웹-5938018471
웅치 전투에 참전하고 전주에서 승전한 기록이 있긴 한데, 저게 너무 커서 탄핵맞고 백의종군, 평안도 유배 맞았다가 1594년에야 풀려났음......
ArmoredLawyer
정확히 말하면 예비군임... 직업군인이라 하면 당시 갑사들이고, 현대로 말하면 부사관들... 현역 복무 중인 애들도 아니고 군역에 편제는 되어 있지만 농한기 때 잠깐 훈련 받는 애들이라 예비군에 가까움. 권율이 삼도근왕군에 합류했을 때 애들 자태 딱 보고, 와, 답 안 나온다. 해서 산성 가서 수비하면서 기본적인 편제, 훈련 좀 하고 한양가자 했는데, 당시 종친이었던 걔가 닥치고 진격 진격 하다 와키자카 1500~2000기병한테 박살남. 권율은 그때 산성 가자 주장한 것을 근거로 처벌 피함.
ArmoredLawyer
현대 편제로 보면 무관 = 장교 갑사 = 부사관 정군 = 현역병 보군 = 예비역 현대와 다른 것은 정군(현역)과 보군(예비군)이 로테이션으로 돌아갈 때가 많았다는 것 정도??? 쉽게 말해서 당시 부산성, 동래성, 수원성 등에 배치된 애들이 완편된 현역들이고, 삼도근왕군은 군역에 등재는 되어 있지만 실제 편제도 뭣도 없는 예비군들임. 그래서 일단 숫자는 채웠는데 소대장 중대장도 없이 그냥 병사들만 모아놓은 이상한 부대인 격.... 권율이 괜히 이대로 싸우면 필패라고 제발 산성 가자 조른 게 아님...
검색해보니 보군이 아니라 보인이라 하네. 본래는 정군은 계속 정군이고 보인은 계속 보인이어야 하는데, 이게 조선 중기 때 무너지는데 하필 그때가 왜란 가까울 때... 아무튼 당시 조선으로는 5만 이상 군대를 동원할 일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역에 숫자는 올라가 있지만 실제 그 군대를 운영할 기본적인 편제조차 갖춰놓지 않았기 때문에, 기실 농민병이라 봐도 됨. 군대는 완편이 되어야 군대지 장부에 이름 올라가 있다고 군대가 아니니까. 걔네로 싸우면 지는 것은 사실 필연이었음. 신립이 한양, 경기의 수많은 병사를 놔두고 갑사들만 모집해서 8천으로 내려온 것도 그런 이유. 그런 잡병들은 있어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으니까. 권율이랑 비슷한 이유.
명문가에 신들의 가호가 깃들기 쉬운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권력욕에 취할경우 가식과, 나라가 문란해지고, 국가는 썩어들어갈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인재는 있겠지요
雪ノ下 雪乃
특별한 차단은여기있네요
삭제된 댓글입니다.
ArmoredLawyer
밑에 띄여서 올림 읽기 힘들게 써서 미안 ;;
행주산성 당시 일본군 지휘를 맡은이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의 대표였던 이시다 미츠나리 ..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이 권율에게 천자총통(*조선군 화기중 가장 큰 대포) 를 보내주기까지했고 거기에 변이중이란 분이 만든 화차 일명 변이중 화차 (네모난 박스같은 방패안에 승자총통 여럿을 설치한 화차) 에 승자총통 등 다양한 화기등으로 무장하고 토성이지만 작은 언덕 같은 행주산성에서 싸우게되었지 이 전투로 지휘관 급 들이 중상을 당했는데 우키다 히데이에 킷카와 히로이에 안코쿠지 에케이 등이 부상당했음 참고로 이 양반들은 모두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여 했지 황진 장군은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에 통신사 일행으로서 일본에 갔는데 당시 히데요시는 호조 가문 을 공략중이여서 못봤는데 이후 호조가 의 공략이 끝나고 통신사를 맞이 했는데 당시 기록에 히데요시가 무례한 행동 (* 아들인 츠루마츠를 데리고 나와서 무례하게 통신사를 대하다 츠루마츠가 오줌을 지려 옷을 갈아입는다고 획하고 나가버림 ) 이에 격분한 황진은 무기점에 들러 일본도 2자루를 샀는데 이칼로 일본인들을 베어죽이겠다고 다짐까지했다고 하지 (이 이야기는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선조편에 나와있 어) 황진에게는 황대중 이란 동생이 있었는데 이분도 만만치 않은게 어머니가 병으로 힘들어 할때 자신의 허벅지살을 잘라 약재로 썼다고 하지 그래서 허벅지를 자른 다리 때문에 다리를 절게되었다고 하지 .. 황씨형제 모두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싸웠는데 안타깝게도 황진 장군은 성벽을 돌며 순찰도중 숨어있던 일본군에 의해 총탄에 맞 아 전사했고 동생인 황대중은 진주성이 일본군에의해 함락되었을때 간신히 살아남아 삼도수군통제사 였던 이순신 휘하에서 싸웠는데 싸우던 도중 멀쩡한 다리에 총을 맞아 양쪽 모두 다리를 절게되셨지 .. 이후 남원성 전투에 참전해서 싸우다 전사했는데 일본군이 황대중이 전사했다는걸 알고 "너희 절름발이 대장이 전사했으니 이제 어찌 싸우 겠느냐 !! " 라며 심리전을 펼쳤고 남원성은 크게 위축되었다고하지
참고로 황대중 장군은 의병장이셨고 덧붙여쓰자면 어머니가 병으로 위중할때 자신의 왼쪽 다리 허벅지 살 을 도려내 약재로 썼다고함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싸울때 적탄에 맞아서 모두 절게 되셨다고하지
성이 있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그냥 산이어서 진지구축하는데는 겁내 빡셌을것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