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예송논쟁이라고 하면 단순히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가로 터진 사건으로 기억하겠지만,
과거 왕조에서 군주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는 말그대로 '나라가 엎어질 수 있는' 수준의 중대사항이었음.
이 글에서는 예송논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통성에 관한 예시를 이야기하려고 함.
1차: 1833년 ~ 1840년
2차: 1846년 ~ 1849년
3차: 1872년 ~ 1876년
당연히 카를로스는 분노했고 당시 스페인인조차도 왕이 미쳐서 왕위계승법까지 무시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임.
민심이 흉흉해지자 페르난도는 '자유주의자'(...)에게 자기 딸을 맡긴다고 하고 1833년에 사망함.
이사벨 2세가 3살에 즉위하자 스페인은 바로 분열됨.
삼촌 돈 카를로스는 바로 세력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많은 스페인 지역에서 카를로스를 지지했음.
보수적인 카스티야, 레온은 당연하지만 나바라, 바스크, 카탈루냐도 동참한 이유는 자유주의자들은 자신의 자치권을 빼았어갈 것이라고 봤기에 반란에 참가하개 됨.
카를로스파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으로 어찌어찌 지원을 받은 자유주의자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 정통성이 부족한 여왕에 대한 도전은 끊이지 않았고
여왕 이사벨 치세 35년 동안 42개의 내각과 12번의 봉기가 일어났을 정도로 불안했고
결국 1868년 후안 프림 장군의 프로눈시아멘토(스페인식 쿠데타. 무려 쿠테타를 한다고 선언하고 쿠데타를 한다.)로 이사벨 여왕이 폐위됨.
스페인 학자들은 스페인 내전의 뿌리는 페르난도 7세부터라고 할 정도로 왕위계승에 관련된 정통성 문제는 스페인을 크게 흔들었음.
예송내전이나 예송전쟁이 아니라 논쟁으로 끝난게 다행
조선은 왕자의 난이나 계유정난 이후 왕족이 주도로 한 정쟁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대형 내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점이 크지요. 비유하면 소현세자가 살아있는데 인조가 효종을 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예송논쟁 둘째치고 송시열은 진짜 현종이 성인군자라 숙종이 죽인 수준이긴 함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