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절대왕권에 가까운 권력 확립
조선 제일의 천재 박호 생존
(원 역사에서는 전쟁 초기 경상도 상주로 내려갔다가 사망. 모두가 이런데서 죽을 분이 아니라고 후퇴하라고 말렸지만 나라에 진 빛을 갚아야 한다고 남음)
이순신과 이억기등은 다시 북방으로
권율은 관직 구색만 잡고 다시 한량 생활
물론 이래도 자식농사 개망해서 아들 새끼중 3명이 조선 희대의 사이코라는 건 걸림
ㅁㅁ마, 살인마, 사이코패스가 아빠 권력 믿고 날뛰는 꼴 봐야함.
의인왕후 박씨가 인품이 좋기로 유명해서 자식이 없는 게 더 안타깝지.
후계자는 아마 영창 대군이 될텐데… 진짜 지린내나는 궁중 암투 나왔을지도 모름.
조선 바깥으로는 만력제도 여전히 방구석 폐인 생활을 계속 했을 것이고 명나라도 국력을 조선에 쏟아붓지 않았을테고 오랑캐들한테 자리 뺏겨서 청나라가 생길 확률도 확 줄었겠지 아마도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는 이유중 하나는 너무 머리아파서 덮어두는 것도 있는듯 나비효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어..
이순신은 육군 장군으로 만주족의 학살자 이면이 붙었다칸다
일본은 도요토미파 vs 도쿠가와파로 갈라져서 내전 터지는건가
우마차를 개조하여 만든 거북전차는 근현대 탱크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광해군이 임진왜란에 고생 안하고, 경복궁 복원에 돈 안날리는거 생각하면 또 모르겠네.
근데 이것도 하나의 상상일 뿐 어떻게 굴러 갔을 런지 진짜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참 다행이야
이순신은 육군 장군으로 만주족의 학살자 이면이 붙었다칸다
지나가던 대파
우마차를 개조하여 만든 거북전차는 근현대 탱크의 시초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목우유마가 아니라 목구유귀가 만들어 졌겠군
거북차는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긴 함. 만들고보니 못써먹을 물건 소리 들어서 그렇지...
효종실록 8권, 효종 3년 1월 3일 병자 4번째기사 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비변사가 귀거가 전투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일찍이 전 주부(主簿) 박산남(朴山男)의 상소를 인하여 전남 병사(全南兵使)로 하여금 먼저 귀거(龜車) 1, 2량(輛)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도록 하였습니다. 금방 병사 구인기(具仁墍)의 치보(馳報)를 접하건대 ‘산남에게 귀거를 감조(監造)케 하였더니 공사를 시작한 지 3개월만에야 겨우 1량을 만들었다. 그런데 70명이 있어야 운용(運用)할 수 있을 뿐더러 언덕에 구애받고 진창에 빠지고 하여 하루 종일 10리도 가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귀거가 전투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이로써 알 수 있으니, 속히 중지하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 여기 나오다시피 귀거(거북차) 한두대를 굴리는데 70명이나 붙어도 느려터진 물건이라 포기됨.
그건 아마 신립장군이 겠지.. 만약은 없다지만 아마 선조가 이순신장군의 녹둔도 활약을 좋게 본거 같으니 어떻게 해도 이순신장군으로 올라갔을수도 있음.
근데 이것도 하나의 상상일 뿐 어떻게 굴러 갔을 런지 진짜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참 다행이야
조선 바깥으로는 만력제도 여전히 방구석 폐인 생활을 계속 했을 것이고 명나라도 국력을 조선에 쏟아붓지 않았을테고 오랑캐들한테 자리 뺏겨서 청나라가 생길 확률도 확 줄었겠지 아마도
ㅇㅇ 절대로 청나라는 안생겼을듯
만력제가 아무리 폐인생활해도 그당시 명나라는 세계최강국수준이라서 청나라가 생길 확률은 줄어들것같긴함 게다가 조선도 주기적으로 북방애들 밟아주는게 일이라서...
지구 15에서는 저런 역사겠지?
명나라는 이자성의 반란이 성공하고 천하를 장악했을수도
일본이 만약 류쿠 쪽에서 명나라 침공 했으면 조선은 강건너 불구경 이였을텐데
임진왜란이 없었으면... 정유왜란이 있었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는 이유중 하나는 너무 머리아파서 덮어두는 것도 있는듯 나비효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어..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와 일본의 역사도 완전히 뒤바뀔테니 전혀 예측이 안돼.
광해군이 임진왜란에 고생 안하고, 경복궁 복원에 돈 안날리는거 생각하면 또 모르겠네.
일본은 도요토미파 vs 도쿠가와파로 갈라져서 내전 터지는건가
이미 임란 전에 한번 터졌다가 도쿠가와가 쭈그러졌던거 생각하면 아예 진압됐을거 같음
도요토미파 vs 도쿠가와파는 불가능함. 도쿠가와가 권력을 쥐게 된 결정적인 계기인 세키가하라조차도 공식적으로는 도요토미 신하들의 내분이었거든. 이시다 미츠나리가 도쿠가와에게 검은 속내가 있고 도요토미 가문을 위해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건 것과 똑같이, 도쿠가와 또한 미츠나리에게 같은 속내가 있고 자신을 제거한 뒤에 도요토미 가문을 집어 삼킬거라고 주장했음. 즉, 동군과 서군 양 쪽 다 내가 진정한 도요토미의 충신이고 상대방은 사마의 같은 놈이라고 주장했다는 거임.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서 그 ㅈㄹ을 하고도 도쿠가와가 이런 식으로 밖에 내전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는데, 임란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도요토미파 vs 도쿠가와파는 택도 없지.
그건 안됐을거임 히데요시 생전에는 도쿠가와가 세력은 있어도 감히 대들생각은 못했다고 할 정도라서..
진짜 잼나겠다 ㅎㅎ
고등학교 역사샘이 말씀 하신 것중에 왜란이 없었다면 선조가 그렇게 욕을 먹는 왕이 되었지 않았을거라고...
영조가 되지 않았을까 싶음. 둘이 했던 짓 보면 전쟁유무 빼고는 거의 판박이임.
손제리처럼 자기 임기는 잘 보냈는데 후계구도 조져놓고 갈지도 몰라.
40년 치세중에 임란6년 빼면 선조는 유능한 왕이였으니까 선조가 욕 먹는걸 비유해 보자면 잘생기고 공부 잘하고 서울대 수석합격한 학생회장이 있는데 그놈이 고3때 교실에서 설사를 지린거임 그럼 나중에 동창회에서 학생회장 이야기가 나올때 뭐가 먼저 떠오를거 같음? ㅋㅋ
박호는 누군데 조선 최고의 천재임?
최고의 천재인지는 모르겠는데 18세에 장원 급제했다니까 천재이긴 했을 듯
구도장원공인 이이보다 대단한건가?
나도 첨 듣는 이름이긴 한데... 사실 장원급제라는 건 시험쳐서 가장 높은 점수 받았다가 아니라 30명쯤 뽑는 급제자들 중에서 임금 마음에 가장 드는 답을 내었다니까 선조같은 정치적 인간이면 '아 얘가 천재야' 가 아니라 '이번 장원은 아주 새롭고 참신한 젊은 애를 뽑을 필요가 있겠군'이라는 취지로 뽑았을 가능성이 더 높을걸
근데 그렇다면 일본은 조총을 가진채로 이후 정권이 이어지고, 조선은 조총을 안가지고 계속 역사가 이어질텐데 그래도 여전히 조일교류는 소규모로 계속될 거니까 선조 이후 후세에 일본애들이 자기들이 군사력에서 조선보다 월등하다는 생각을 가질거 같은데... 그러면 이후 50년 100년 후에 도요토미의 후예든 도쿠가와의 후예든 야심있는 막부가, 문약한 조선을 침략하겠다 하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품지 않으려나
원균이 조선 수군 한방에 날려먹어서 그렇지 조선군이 마냥 약한건 아니었을걸...? 함대에 배치했을 대포랑 화약이 육군에 있었으면 저렇게 무력하게 뚫렸을까 싶은....
그 균은 어떻게 됬을까
고추가 한반도로 안 들어와서 김치가 안 만들어 질 수도 있는 거 아님?
루리웹-9147429896
광해군은 아무것도 아님. 인조 애비되는 놈도 포함인데 저 세놈이 유부녀 겁탈하고 날마다 사람 죽이고 다님
고추가 안들어와서 김치가 밍밍해짐 있어서는 안되는 미래
아시아 역사가 바뀌었겠군
고추. 조총은 명나라 통해서 오겟지. 과거와 달리 조총은 명나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엇지만 역시 활 있는데 비싸도 화약 들어가고 이걸 왜 씀? 이라면 중요시 안햇다는 게 요즘 중론이고 고추도 임진왜란 전에 이미 명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들음.
이글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저 박호 라는 인물이 대체 누군지를 모르겠음 조선 최고의 천재 라는데 정작 딴글엔 나오지도 않고 오직 이 글에서만 천재라고 추켜세워줌 내가 이런 글 안좋아하는 이유가 작성자 개인의견 100%라 그럼. 박호가 누군데 한자라도 적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