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 아미 사건
1932년 세계 대공황 시대 미국 후버 대통령 집권 시기에 일어난 사건임
미국은 참전 용사들에게 전역 후 추가 수당 그러니까 연금을 지불해왔는데 넉넉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하루 한끼 겨우 먹을 정도의 연금이 나왔음
개미 똥만큼 나오지만 당시 군인들은 집안이 좋은 장교들이 아닌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보상이라도 받아 겨우 살고 있었음
근데 대공황이 터지고 후버 대통령이 모든 예산을 칼질 할 때 퇴역 군인들 연금을 전부 짤라 버림
집은 없어도 당장 먹을 빵 한덩이는 살 수 있게 해줄 연금이 없어지자 퇴역 군인들이 가족들과 손잡고 워싱턴으로 상경하여
포토맥 강을 중심으로 거대한 판자촌을 지어 그곳에서 퇴역 군인 연금을 당장 달라고 대규모 시위를 함
이를 인지한 미 국회에서 추가수당 즉시 지급에 관한 안건이 올라오긴 했는데 예산 칼춤을 추고 있던 때라 바로 전부 기각됨
그나마 정부에서 이들에게 가족들과 고향이나 가라고 기차표를 쥐어주면서
그것이라도 받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시위대의 수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시위는 계속해서 이어짐
시위가 시작된지 한달 즈음 되었을 때 정부의 무리한 진압 요구를 받은 경찰과 필사적인 시위대가 대치하게 되었음
결국 긴 신경전 끝에 싸움이 일어났고 일이 커지면서 시위대 일부가 경찰 2명을 잡아 판자촌 내로 끌고가자
다른 경찰들이 총을 발포하여 시위대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사태는 가면 갈수록 심각해짐
그래서 후버 대통령은 이 사태를 계기로 시위대를 무력으로 빠르게 진압을 위해 연방군을 불렀고
당시 육군 참모 총장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가 직접나섬
맥아더는 시위대의 10%만 진짜 참전 용사고 나머지는 소련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 폭도들의 공산 혁명 작전이라 주장함
이 소리에 기겁한 당시 맥아더의 부관인 아이젠하워가 급하게 맥아더를 막으려 했지만
맥아더는 가볍게 다 씹고 패튼과 제 3 기병대를 불러옴
패튼의 3 기병대와 6대의 탱크, 1개 보병 연대를 동원하여 '공산당 빨갱이 폭도'들을 진압하는 작전을 짰고
패튼의 기병대를 선두로 소총에 착검을 명령한뒤 시위대를 공격하여 판자촌 중앙으로 몰아넣는 작전을 실행하며 비극이 시작됨
후버 대통령이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작전 중지 명령을 내렸는데 멕아더가 다 씹어 잡수고 시위대 전부가 항복할 때 까지 공격함
결국 100여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은 끔찍한 참사로 막을 내림
사망자 중에는 영유아들 또한 포함되어 있으며 현장의 임산부 한명이 유산했다고 함
그리고 맥아더가 주장했던 시위대 90% 쁘락치 설과 달리 조사 결과 무고한 시민이 절대 다수였다는 결과가 나옴
이 사건과 여러가지 정치적 사건을 이유로 후버 대통령은 다음 대선 때 대 참패하고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됨
맥아더는 육군 참모총장에서 필리핀의 군사 고문으로 발령나며 좌천되었는데 사실 아버지가 한때 필리핀 총독이었던지라
필리핀은 맥아더의 나와바리여서 원래는 커리어 끝장났기에 그만둬야겠지만 여기서 잘 추스른 덕분에 다시 뜰 계기를 마련함
맥아더를 말렸던 아이젠하워 또한 책임자 중 한명으로 지목되었는데
당시엔 힘도 빽도 없는 처지였던지라 항변 한번 제대로 못하고 유일한 빽인 맥아더 따라 필리핀으로 같이 가게 됨
시위대 중엔 과거 생명의 은인도 있어서 다친 은인을 직접 구하는 일도 했지만
착검 돌격, 진압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패튼은 이후 별 언급 없이 2차 대전 전까지 한직에 있다가 전쟁이 터지고 나서 중히 쓰이게됨
석탄 전쟁같은거 보면 노동자 탄압한다고 주방위군이 와서 총질하는거 보면 당시 미국은 여러므로 광기의 나라였음;
군인 쓰레기 대우의 원조 국가 답다
오죽하면 장애인인 루즈벨트가 선거에서 이겼냐고했던 선생도 있었다
돈없으면 죽어야지 어딜 국가에 기생하냐는게 정론이던 시절이라 군인도 나라지켰다고 세금 타먹는게 말이되냐는 소리가 나오던시절
제가 후버를 대신해서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