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여기는 원래 구릿빛 색깔이 감도는 고개가 있었다고 해서
구리개라고 불리던 곳이었음
이걸 한자로 옮겨서 동현(銅峴)이라고 했는데
일제가 이걸 황금정(黃金町)으로 바꾸었던 것을
해방 이후에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따서 을지로로 바꿈
을지로가 된 것은 그쪽에 화교들이 많이 살아서 그 기를 누르기 위해서라고 함
충정로
원래 충정로가 있던 곳은 한성부(한양) 서쪽의 반송방이라는 권역에 해당하는데
경기도청에 해당하는 경기감영이 이곳에 있었음
그런데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였던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란 사람이
일본 공사관이 불탄 틈을 타 잠깐 이 충정로 지역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이 사람을 기린다는 이유로
도로 이름을 다케조에에서 따서 죽첨정(竹添町)으로 지었음
해방 이후에 일본식 지명을 우리 이름으로 바꾸면서
구한말 충신 민영환의 호에서 따서
도로 이름을 충정로(忠正路)로 바꾸게 됨
충무로
말이 필요없다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에서 따 온 지명이다
원래 이곳은 비만 왔다 하면 땅이 질퍽질퍽해진다 해서
진고개라고 불렸는데
일제가 이곳을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혼마찌(本町)로 바꿔버림
야인시대에서 하야시의 본거지가 혼마찌라고 하는데
바로 저 충무로를 말한다
이름답게 여기는 일본인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해방 이후에 일본놈들의 기를 누른다고 충무로로 바꿔버림
참고로 오늘날 큰 대로 충무로가 아니라 골목길 쪽이다
근데 정작 웃긴 건 충무로랑 충무공 이순신은 별 관계가 없음
진짜 충무공이랑 연고가 있는 곳을 찾자면
서울 필동 쪽이 더 그럴 듯하다고 한다
왜냐면 거기서 이순신이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
퇴계로
1937년에 일제가 이곳 도로를 뚫으면서
쇼와 일왕의 연호를 따서 소화통(昭和通)이라고 명명했는데
해방 이후에 퇴계 이황 선생의 호를 따서 퇴계로로 바꿈
이곳도 딱히 퇴계 선생이랑 연관이 있는 곳이 아님
그냥 일본식 지명을 한국 위인의 이름을 따 고치면서
'아 천원 선생님도 위인은 위인이지' 하면서 붙인 것으로 보임
오랑캐들이 싸지른 흔적을 그냥 둘 수는 없지
한국이 유독 풍수지리의 영향이 크다보니 그런거 같음
테헤란로 한국 이란 수교 기념으로 지은 이름 이란에 서울로 있음
부산에 하마정 있음. 정씨는 말애서 내리라는 뜻임.
율곡로도 있다귯
중국은 있음 반역일어나면 땅 이름 뜻을 반대로 바꿔버리거나 함
야인시대 하야시 혼마찌 혼마찌하던게 충무로구나
부산에 하마정 있음. 정씨는 말애서 내리라는 뜻임.
동래 정씨 시조 묘소가 있으니 조상님 앞에서 말에서 내리긴하겠군;
율곡로도 있다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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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체험단
한국이 유독 풍수지리의 영향이 크다보니 그런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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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체험단
중국은 있음 반역일어나면 땅 이름 뜻을 반대로 바꿔버리거나 함
풍수지리는 일본이 훨씬심하지 쟤넨 풍수보는 점쟁이가 국가 최중요직 자리 꿰찼었는데 ㅋㅋ
요새는 모르지만 막상 강점기 시기 일본은 서구쪽을 많이 추종했던지라 풍수에 대해 비과학적이라고 거부했다고 함 대표적으로 일본 말뚝설 박살난 이유중 하나가 걔넨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고
오랑캐들이 싸지른 흔적을 그냥 둘 수는 없지
그 필동쪽 동국대 후문으로 가는 길에 주유소 하나 있는데 거기에 류성룡 생가 터가 있음 ㅋㅋ
해방 이후 억눌러야 할 외세가 많았군..
그냥 막 갖다 붙였네..
테헤란로 한국 이란 수교 기념으로 지은 이름 이란에 서울로 있음
한국과 달리 이란 서울로는 좀 후미진 곳이라 함
으악 이란에게 눌렸다
을지문덕장군 성남 출신이라고함. 근대 생애자체가 미스터리한 인물이어서 틀릴수도 있음.
야인시대 하야시 혼마찌 혼마찌하던게 충무로구나
민영환?
한자만 해도 너 여(汝)에 어조사 의(矣)니까 충분히 그럴 듯함(...)
이래서 국장이 맨날 외국인들 돈 너나 가지라고 주는건가
참고로 일제시대때 명동 왼쪽(남대문시장)을 아사히마찌 라고 불렀다함
아 야인시대에서 박용직(의사양반 닮은 인물)이 김두한한테 진고개에 있는 술집에 가자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지금의 명동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