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소리임? 무패삼관에 기수보다 경마 잘아는 애가 최강이지 다른 애가 있음?
...란 말이 나올 제목이긴 한데, 사실 야요이상 전까지만 해도 루돌프는 최강이란 소린 안들었다. 경기를 별로 안나갔거든(야요이상 이전까지 3전 3승)
그럼 누가 최강소리를 들었을까?
비젠 니시키. 야요이상 이전까지 7전 전승이란 파죽의 연승을 달리며 최강으로 평가받던 신예였다.(실제 야요이상 1번 인기가 비젠 니시키였다. 2번 인기가 루돌프.)
그러나 그 연승이 야요이상에서 루돌프에게 깨지고, 사츠키상에서 복수를 위해 스프링 스테이크스에서 우승해 설욕을 시도했다
물론 깨졌다. 하필 루돌프의 주전기수인 오카베가 그전까지 비젠 니시키의 기수라 말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던게 컸다.
이렇게되자 비젠 니시키의 진영에서는 더비에서 설욕을 노렸고, NHK배에서 우승해 더비 출주권을 얻는다
...하지만 14착으로 깨졌고, 이후 스완 스테이크스 12착 이후 부상으로 은퇴 수순을 밟는다.
NHK배랑 스프링 스테이크스를 이겼단거 보면 원래 거리적성이 마일러였던건가? 근데 아무리 거리적성이 안맞는다고 해도 마일러가 2000~2400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단건 야마닌 제퍼, 오구리 캡, 이쿠노 딕터스, 다이타쿠 헬리오스등이 증명했을텐데? 야요이, 사츠키상 2착마치곤 너무 초라하게 끝난거 아닌가?
정상적으로 뛰었음 그렇게 깨지진 않았겠지...
(당시 비젠 니시키의 출주일정)
세상에 ㅈ간이여...무슨 짓을 했길래 2달 사이 4번이나 레이스를 보낸겁니까...
야요이 나가고 스프링 나가고 사츠키 나간다니 게임에서도 피부트러블 생긴다고
근성론에 빠져있어서 오구리도 그렇게 굴리던 시절...
음... 사실 저건 시대의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 거라. 저땐 조교를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하고 조교 대신으로 출주를 굴리던 시기인 것도 있고, 비젠니시키는 야요이 전까진 무패였다가 루돌프한테 첫 패배를 당했거든. 그만큼 말이 심리적인 충격을 좀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음. 지고나서 마방에서 엄청 울었다고 하더라. 모처럼 클래식을 노릴 대형재능을 뽑았는데 루돌프와 싸우고 말이 자신감을 잃고 달리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보이자 자신감 회복을 위해 사츠키 전에 다른 경기서 이기게 해서 자신감 뽑고 사츠키->또 지니까 더비는 보내야 하니 다시 자신감 회복 용도로 경기 하나 더!->더비 박살->추후 다른 경기서 부상 은퇴 이렇게 꼬인 거라. 믈론 3세마한테 심한 로테인건 맞는데 진영에서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는 거.
굳이 이런 변을 하는 이유라면 그때 마주나 진영이 비젠니시키를 고생시킨 건 맞지만 별개로 굉장히 얘를 아낀 것 같기도 해서임. 비젠은 혈통도 대단찮고, 성적도 중상은 있지만 루돌프에게 덤볐도르 말곤 결국 애매한 편이고, 시대는 국산 종마를 냉대하던 시절에, 남은 국산 종마 자리도 시비나 루돌프 같은 최상급 국산 종마가 있어서 진짜 설 자리가 없었음. 종마로 돈을 버는게 아니라 종마로 놔두는게 더 돈 들어갈 정도. 근데 마주가 종부료 엄청 싸게 굴리고 자기 인맥 털어가며 어찌어찌 매해 조금씩 종마일 하게 했거든. 보통 이런 경우는 자기 애마 혈통을 어떻게든 남겨보려고 발버둥치는게 원인이라. 다향히 비젠 자체도 가격대비 자마 성적이 좋아서 많진 않아도 나름 꾸준히 자마 만들긴 했음. 수명이 아주 길진 않았어도 노후도 끝까지 책임진 거 보면 마주가 정말 아끼던 모양새라 마냥 욕만 들어먹게 하긴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