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전하, 소격서* 폐지하시죠"
※ 소격서)
국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기관.
도교적 색체가 강하고, 하늘의 제사는
중국의 천자만 지낼 수 있다는 논리로
중종 이후 끝없는 논쟁의 대상이 됨.
중종 (조선 11대 왕)
"뜬금없이 소격서는 왜?"
그야 우리는 유교의 나라인데
도교의 제사를 지낼 수 없으니까요
(엄.근.진)
'내 저 말 나올줄 알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일개 제후국인데,
오직 천자만 지낼 수 있는 하늘의 제사를
감히 우리가 지낼수야 있겠습니까?
'이 새X들이 은근히 자존심 건드리네?
그러면 선대왕들에게 O조, O종이라고
묘호를 붙인건 어캐 설명할려고?'
'그냥 가불기나 써서 입 닥치게 해야겠다'
세종대왕과 성종대왕께서는
태평성대를 이룩하셨는데,
그분들께서도 소격서에
제사를 올리셨소.
그런 분들도 올리셨던 제사이니
그냥 놔 두는게 이치에 맞지 않겠소?
(=너네처럼 유교 중시하는 놈들이
유교적 태평성대를 열었던 성군들을
차마 깔 수 있겠냐? ㅋㅋㅋ)
전하...
'오 먹혔나?'
세종대왕과 성종대왕이 큰 뜻을 이루셨으나,
소격서를 폐지하지 않은건 큰 잘못(大失)입니다
(=응 성군 그딴거 모르겠고
그냥 들이 받을꺼야~)
?????
저것들 진짜 미친새X들인가?
죽창... 죽창이 필요하다...
다른 왕들의 신하들은
"제발 세종ㆍ성종의 예를 본받으소서"라고
치켜세우기 바쁜데,
오직 조광조만이 세종ㆍ성종을 향해
노빠구로 비난을 갈겨버림...
유교국가 이전에 왕조국가란걸 잊어버린 광기.
주초위왕 맥이고도 남지 저러고 살았으면 그게 더 놀랄일ㅋㅋ
기존 훈구파 대신들 겐시이 하라고 키웠더니 주인을 문 희대의 병크캐릭..
그래서 옛날엔 중종 나빠 하던 시선이 많았는데 나중엔 조광조가 융통성 없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한 거라는 시선이 많아짐
쿠데타 논리까지 가긴 좀?? 오히려 소격서 논쟁때는 훈구 대신들도 조광조가 말이 좀 심하긴 했는데 맞말인데? 하고 인정했고 중종 혼자 반대했음
유게 올라오는 역사글 특) 날조가 붙거나 날조가 없으면 과장이 심하다
맞는건 맞다 틀린건 틀리다 하는게 맞긴 한데... 딱 보면 모르나? 눈치가 없는거야 아니면 신경을 안쓰는거야 죽을만 해서 죽었구만
주초위왕 맥이고도 남지 저러고 살았으면 그게 더 놀랄일ㅋㅋ
뭐 전근대에서 내란죄 걸릴만했네
그래서 옛날엔 중종 나빠 하던 시선이 많았는데 나중엔 조광조가 융통성 없어서 스스로 화를 자초한 거라는 시선이 많아짐
이렇게 보니까 생각나는게 만약 저게 통했으면 니네들 왕한테 '선왕은 어쩌고저쩌고' 카드 어떻게 쓰려고 그랬냐 싶기도 함 ㅋㅋㅋㅋ
현대도 선넘으면 나가린데 저걸 저시대에 왕한테 선을 박살냈으니...
기존 훈구파 대신들 겐시이 하라고 키웠더니 주인을 문 희대의 병크캐릭..
유교국가 이전에 왕조국가란걸 잊어버린 광기.
맞는건 맞다 틀린건 틀리다 하는게 맞긴 한데... 딱 보면 모르나? 눈치가 없는거야 아니면 신경을 안쓰는거야 죽을만 해서 죽었구만
내 대학 교수 중 꼰대새끼가 조광조 옹호하더라. 근데 실상은 쿠데타 하고 싶은 병ㆍ신을 옹호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샷건을 칠까?
돌아온 감염충
쿠데타 논리까지 가긴 좀?? 오히려 소격서 논쟁때는 훈구 대신들도 조광조가 말이 좀 심하긴 했는데 맞말인데? 하고 인정했고 중종 혼자 반대했음
대시련
유게 올라오는 역사글 특) 날조가 붙거나 날조가 없으면 과장이 심하다
지금 따지면 거의 대통령에게 계급장 떼고 삿대질하면서 대들거잖아. 근데 그걸 다르게 생각하면 쿠데타를 저지르지만 않았지 쿠데타 한거지
ㄹㅇ
ㄴㄴ 글 쓴 유게이가 과장을 해서 그렇지 대들지 않았음 이미 형식상으로는 연산군때 폐지되었고 성종때부터 소격서 저거 좀 근거가 없는데 걍 없애던가 하죠? 하고 논의 올라오던 기관이었음 무엇보다 저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절대 중요한 기관 아니었고 걍 중종 혼자 급발진한거임
내가 좀 과장한거라고 하는데, 앞서 님이 말햇던거처럼 소격서는 정말 아무런 기관도 아니였음. 고려 팔관회처럼 국고를 탕진하던 제사도 아니고 그냥 있으면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황이였음. 근데 왜 그런 유명무실한 소격서를 사림들이 폐지할려고 했나? 그것도 선왕의 예를 부정하면서까지? 그 이유가 본인들이 밀어붙일려던 개혁을 실행하기에 앞서 '이런 유명무실한 것도 철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밥숟가락 놔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였음. 눈치 100단인 중종이 그 사실을 모를리 없었고, 사림을 단지 왕권강화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중종 입장에서는 그런 사림이 눈엣가시처럼 보이기에 충분했음.
근데 중종의 시기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이 필요한 시기기는 했음 공납 개정, 일천즉천 폐지(종모법만 인정) 같이 조선 후기에나 나올 개혁안을 그 시대에 냈다는 것만 봐도 조광조의 개혁은 어느정도 필요했던 시기임 문제는 좋은 아이디어 뱅크로 활용할 수 있는 조광조 일파한테 무지성으로 권력을 실어주려고 군사문제라던가 현량과같이 무리수가 많은 정책까지 무조건 오냐오냐한건 중종이었고 그래놓고서 왜이렇게 권력이 크냐며 쳐낸것도 중종 본인임
차라리 정광필이나 남곤에게도 힘을 실어줘서 개혁안을 조정한 다음에 시행하는 식으로 속도를 조절했어야지 지가 풀악셀 밟아놓고서 차가 왜이렇게 불안하냐면서 폐차시키는 중종이 ㅁㅊㄴ이긴 함...
근데 중종은 왕임. 왕 입장에서는 권력 균형의 추를 맞추는게 무엇보다 중요함. 조광조를 등용한 이유도 당시 적폐였던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한거고, 조광조를 주초위왕 시키면서까지 견제를 했던것도 조광조가 왕권을 무시하면서까지 본인 뜻대로 개혁을 밀어 붙일려던게 탈이였음. 이 정치적 숙청을 대단히 잘했던게 태종과 선조임. 중종은 저 둘에 비해선 능력이 확실히 딸리긴 했지만, 조광조의 숙청은 거의 필연적이였음. 나중에 님이 말하는 정광필이나 남곤을 중용하는건 나도 동의하는 바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