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은 즐거운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으레 트레이너와 함께 신사를 가거나, 공원을 걷거나, 가끔은 노래방을 가서 사랑 노래를 부르거나, 그런 한때를 보낸다.
그런 외출의 시간을, 에이신 플래시는 정말로 좋아한다.
단순히 중앙 트레센 외부로 나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외출에는 거의 항상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씨가 동행하며, 그렇기에 차를 타거나 하는 것보단 걷는 것을 에이신 플래시는 선호한다.
트레이너 씨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살그머니 손도 잡아보려 시도하고, 트레이너 씨 모르게 꼬리를 그의 허리에 살짝 휘감는 대담한 짓도 해 보고…에이신 플래시에게 도보 산책이란 그런 것이다.
여름의 타카라즈카 기념을 며칠 앞둔 오늘도, 그런 즐거운 산책 중의 하루였다.
화창한 햇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살짝 습하지만 그래도 여름치곤 선선한 날씨, 그리고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씨.
평소라면 밖에서만큼은 손을 잡지 말라고 못 박았을 트레이너였지만, 오늘은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을까, 에이신 플래시가 살며시 끼워 넣은 손을,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감싸오는 따스하고 투박한 남성의 손에, 에이신 플래시는 꼬리가 바짝 설 것만 같은 짜릿함을 티 내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한 걸음, 트레이너 씨가 이렇게 허락해 줄 때, 약간의 욕심을 더 부려보았다. 헤헤, 실없이 웃으며 트레이너 씨의 팔에 살짝 기댄다. 평소라면 안 돼, 라고 말하며 조심스레 밀어냈겠지만…역시나 오늘은 어쩐 일인가 그냥 웃어준다.
그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인데, 이 트레이너 씨는 한술 더 떠서 파닥거리는 에이신 플래시의 귀를 살살 쓰다듬는다. 아, 참을 수 없다. 여기가 바깥만 아니었더라면 당장에 우마뾰이 스키닷치 너의 애마가 즈큥도큥 하며 노래를 불렀으리라.
심지어 트레이너 씨는 묘하게 기분 좋은 포인트만 딱딱 짚어서, 그러면서도 절묘한 힘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비단 에이신 플래시뿐만 아니라, 어느 우마무스메를 데려와도 분명 기분 좋아요~ 라고 얼빠진 소리를 해버릴 정도다.
원래 이렇게 기분 좋을 정도로 잘 쓰다듬으셨나? 라고 생각해 본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에이신 플래시가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씨에게 쓰다듬을 받은 것이 한두 번, 하루 이틀도 아니고…몇 년간 함께 하면서, 그리고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가 조금 더 깊은 관계가 된 이후로 제법 많은 쓰다듬을 받는 에이신 플래시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분명 포근하게 기분 좋다는 느낌이었는데…최근 들어서 묘할 정도로, 육감적으로 기분이 좋다. 골드 십이 듣는다면 드디어 고루고루 파동을 깨달은 거냐고 할 정도로 말이다.
사랑이 깊어진 걸까, 그렇게 얼굴이 붉어질 생각도 해 보았지만…뭐,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건 아닐 것이다. 더 깊어질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이미 갈 데까지 다 간 사이 아닌가. 여기서 더 깊어질 사랑이라면, 오냥코퐁 생산밖에 없을 것이다.
“으응…트레이너 씨이…♪”
“너무 기대진 말아줘. 조금…그, 버티기 힘드니…우왓! 아파…!”
무겁다는 식으로 말하는 나쁜 트레이너 씨에겐, 꼬리로 등을 찰싹찰싹 당하는 벌이에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로 작게 투덜거렸다.
혹시, 혹시나 하는 마음이지만, 다른 여자를 쓰다듬으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랑스러운 말 대신, 이렇게 눈치 없고 둔감한 척하는 나쁜 말을 사용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 오늘도 있구나.”
“……?”
그러던 차, 트레이너는 에이신 플래시의 팔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눈앞에 있는 수풀로 걸어갔다. 무슨 일이길래 이 에이신 플래시의 보드라운 팔과 슬쩍슬쩍 닿게 하는 대독일의 자주포만큼이나 커다란 가슴을 그냥 포기할 정도란 말인가.
트레이너 씨가 빠르게 걸어간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 끝에는 한 마리의 작은, 갈색과 흰색 줄무늬의 고양이가 한 말이 야옹, 울고 있었다.
“옳~지, 옳지옳지, 오오옳~치, 착하지?”
“……고양이, 에요?”
“여기 공원의 명물 같은 고양이야. 여기 정착한 지 일 년 조금 안 됐을걸? 한 번도 못 봤어?”
“예에…저는 아무래도, 공원으로 외출한 때가 그리 많지 않기도 해서요.”
“그렇구나. 나는 요새 공원으로 산책 오면 이 녀석 먹이 주는 게 낙이라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너 씨는 그의 주머니에서 O르라고 적힌 스틱 하나를 꺼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 야옹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고양이 또한 트레이너 씨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트레이너 씨가 한쪽 무릎을 꿇고, 츄O 스틱을 반쯤 열어 고양이 앞에 내밀고 살살 흔들었다. 고양이 또한 그 동작이 익숙한 듯, 도도도 달려와 트레이너 씨가 주는 O르를 할짝거렸다.
그런 고양이에게 한 손으로는 츄O를 먹여주고, 다른 손으로는 고양이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는 것이 보였다.
“…….”
진실이, 숨겨져 있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 같았다. 공원의 길고양이를 쓰다듬는 방식이, 에이신 플래시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 동작과 거의 같은 패턴 및 움직임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고양이 쓰다듬으면서 쓰다듬기 실력이 늘었다…?
뭔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에이신 플래시는 그런 기분이었다.
“저어, 트레이너 씨.”
“응? 왜? 지금 바쁜데.”
바쁘다고? 청순하고 어여쁜 여자친구(아니다)인 에이신 플래시마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고양이를 쓰다듬는 일이 그렇게나 바쁜 일이란 말인가.
그래도 상대는 짐승. 한낱 미물 따위에게 질투할 정도로 에이신 플래시의 마음은 좁지 않다. 길고양이는 한낱 길고양이일 뿐. 설령 트레이너 씨가 애완동물을 기른다고 해도, 애완동물일 뿐이다. 정실부인(아니다)인 에이신 플래시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기분을 무릅쓰고 헤헤, 웃으며 트레이너 씨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저기…저도, 쓰다듬어 주시면 어떨까요?”
고양이 만졌던 손이라는 것 정도는 정상 참작해 드릴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며 이미 트레이너 씨의 쓰다듬을 받을 권리를 따낸 양, 머리를 살며시 그에게 들이밀었다.
“어, 조금 있다가.”
“엣……?”
이 에이신 플래시가, 고양이보다 후순위라고요?
그럴 리가요. 믿을 수 없어요. 물론 고양이는 귀엽지만, 아무리 그래도 트레이너 씨가 저보다…저보다 고양이 쓰다듬기를 더 좋아하시다니요.
충격과 함께 몰려오는 배신감에, 에이신 플래시의 청색 눈동자가 점점 짙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그녀의 트레이너는 츄O를 날름거리는 고양이를 쓰다듬느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트레이너 씨.”
아주 조금, 으르렁거리듯 낮은음으로 말했다. 평소의 트레이너라면 여기에서 에이신 플래시의 기분 변화를 눈치채고 머리를 박던, 다른 것을 박던, 어떻게든 해결을 했겠지만…안타깝게도 고양이의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듣느라 전혀, 아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쪼그려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는 트레이너 씨 뒤로, 에이신 플래시가 천천히 다가갔다.
“…….”
이렇게 대놓고 분노의 오오라를 만개하며 다가가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고양이가 좋냐는 말인가. 에이신 플래시보다, 이 예쁘고 귀엽고 참한 신부(아니다)보다 더 좋단 말인가!
어느새 손에 들려 있는 둔기―뿅망치―를 트레이너의 목덜미를 향해 조준하고, ‘―사요나라.’라고 짧게 중얼거리며, 있는 힘껏 내리쳤다. 이 광경을 골드 십이 보았더라면, 보트 한 대 준비해줄까? 하고 말할 법한 광경이었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트레이너의 의식은 암전된 것처럼 뚝 끊겼다.
야옹, 하고 후다닥 도망가는 고양이의 소리만이 공원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 * * * * * * * * *
―야옹.
―야아오옹.
―냐양♪
“……?”
어두컴컴한 세계에서, 소리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다. 공원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갑작스레 충격을 받고, 그대로 필름이 끊긴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캄캄하던 시야가 회색빛으로, 흐릿한 실루엣, 그리고 몇 번 더 눈을 깜박이자…색채가 보였다. 익숙한 천장이다. 그래, 트레이너 기숙사의 천장이다.
내 방이다.
“으으…….”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몸을 뒤척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공원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갑작스레 쓰러진 나를, 담당 우마무스메인 에이신 플래시가 사람을 불렀건, 혹은 스스로 했건, 어떻게 여기까지 옮겨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요새 많이 피곤했던 것일까, 일하다 기절한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산책하다 기절까지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어둑어둑한 창밖을 보니 오늘은 병원에 가긴 어렵겠고, 날이 밝는 대로 검사라도 받아봐야겠다.
아니, 그 전에, 에이신 플래시에게 감사 인사부터 해야겠다. 내 방까지 데려와 준 그녀의 상냥함에 어떤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으…휴대폰, 휴대폰이…어디 있…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의자에 걸려있는 외투로 다가갔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에이신 플래시에게 전화를 하자.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고, 그리고 데려와 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 전화의 버튼을 삑삑삑 누른다. 에이신 플래시의 번호를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르, 하는 신호음이 들렸고, 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댄 채로 책상으로 걸어갔다.
“……?”
책상 위에 못 보던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에이신이 남겨둔 쪽지일까, 하고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일어나셨나요? 고양이를 귀여워해 주셨던 건 즐거우셨나요?]
어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뉘앙스가 이상하다.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간다. 애써 무시하며, 쪽지를 계속 읽어나갔다.
[트레이너 씨가 그렇게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줄 몰랐어요. 그래서, 저도 고양이가 되기로 했답니다.]
“……?”
이게…이게 무슨 말이지?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도 모른 채, 쪽지를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그러니까 트레이너 씨, 지금부터 저도 귀여워해 주시지 않으면…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쪽지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속에, 에이신 플래시 옆으로 털썩, 떨어지는 뿅망치가 보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휴대 전화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고 있는 거지? 아니, 지금부터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던 차에,
―부우우웅.
“……?!”
등 뒤에서 들린 진동 소리에, 나도 모르게 얼어붙고 말았다.
그야 당연하다. 내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릴 리가 없으니까. 설령 울린다고 해도, 귀에 가져다 대고 있는 상황인데…뒤에서 들릴 리가 없잖은가.
그러니까, 휴대폰의 주인이, 뒤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마…아니, 확실히 그 휴대폰의 주인은, 지금 내가 통화를 건 상대.
에이신 플래시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린다. 툭, 하고 떨어지는 휴대폰, 그리고 그에 맞춰 사라지는 진동 소리.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역시나,
“에이신…플래시.”
담당 우마무스메가, 소름 끼칠 정도로 행복한 미소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에이신 플래시를 보고 나서야, 그녀가 쪽지에 적어둔 ‘고양이가 되기로 했다’라는 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잡티 하나 없는 맑은 피부에, 가슴께에 고양이 모양의 홈이 파여 있는 검은 브래지어, 그리고 고양이 무늬의 속옷. 우마무스메 특유의 귀에 고양이 귀를 덧쓴 모습, 그리고 꼬리마저 말아 올리고, 고양이 꼬리를 늘어뜨려 놓았다. 게다가 손과 발에도 고양이 손발을 착용한 모습.
그런 모습으로, 세상 행복한 듯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죽어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둔탁한 뿅망치의 소리, 후두부를 강타하는 충격, 흔들리는 시야, 그리고 멀어지는 의식 속 에이신 플래시의 목소리로 들리던 고양이 소리.
하지만 그런 기억도, 이제는 아무 소용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잊고 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한 걸음, 에이신 플래시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본능은 도망치라고 경고하지만,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어차피 도망쳐도 수 초 내로 잡힐 것이 뻔하다.
에이신 플래시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유리처럼 깨끗한 얼굴이 코앞까지 왔다. 하아…후우, 그녀의 거친 숨결이 가감 없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에이신 플래시는 예쁘다.
귀여워해 주시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쪽지의 내용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에이신 플래시가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요염하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에이신 플래시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거리는 제로다. 그녀의 숨결이 귀를 간질였다. 후훗, 고양이답지 않은 요망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귀에 속삭인다.
……야옹♡
붙잡혔다.
구원은…없는 것이다.
이후, 밤을 꼬박 새워 고양이를 쓰다듬어서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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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신 후랏슈냥
인 따끈따끈한 '괴문서'
오으야유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