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3년(정조 17년)에 박소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 여종(여자 노비)이 한 명 있었음
그런데 여종의 남편은 방춘대라는 사람으로
아무래도 아내가 박소완의 노비이다보니 박소완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긴 하지만
방춘대는 노비가 아닌 분명한 양인으로 신분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건 아니었음
[이렇게 여자 노비의 남편으로 주인집에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살아가는 양인은 비부(婢夫)라고 함]
그런데 하루는 방춘대가 술에 취해 박소완에게 욕설을 하는 등 소란을 피우자
박소완이 방춘대의 상투를 잡아당겨 끌고 밖으로 내보내 제압하려 했는데
방춘대가 넘어졌고 다음날 자정쯤 죽었음
그래서 방춘대의 형 방연득이 박소완을 고발하였는데
형조에서는 '방춘대가 죽긴 했지만 그게 박소완의 행위로 죽은 게 아니라
평소 과식 과음에서 죽은 듯?' 이라는 박소완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긴 했지만
어쨌든 사망사건이기에 일단 정조에게 보고했음
그러자 정조가 크게 분노하였음
아니 여종의 남편이란 놈이 자기 마누라 주인한테 건방지게 구는 걸
주인이 혼내주다가 죽은 것 뿐인데
그 형이란 놈은 뻔뻔하게 고발이나 하네?
아이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
노비 주인 박소완의 살인 관련 여부는 논할 필요조차 없고 무혐의 석방
그리고 방연득은 감히 고발을 했으니 장 100대 때리고 유배 3천리 땅땅
조선시대에 꼭 양인과 양인 노비와 노비만이 결혼하는 것은 아니라
양천간에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비부들은 어찌되었건 노비가 아닌 자유 양인이었다보니 아내의 주인에게 그렇게까지 굽신거리지는 않았음
그리고 윗사람들은 그런 걸 싫어해서 위와 같은 판결이 나온 거임
특히 정조는 성리학적으로는 꽤 교조적인 인물이기도 해서 그런지
조선 후기 예조에서 편찬한 각양수고등록(各樣受敎謄錄)을 보면
원래 남편이 아내와 불륜남을 죽였다면 그게 간통 현장에서 바로 죽인 것 말고는 남편을 사형시켰지만
내 할아버지 영조께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현실에 개탄해서
아내가 다른 남자하고 밥 먹거나 희롱당하는 현장에서 남편이 그 남자를 죽여도 가볍게 처벌토록 하셨음!
안그래도 요즘 비부들이 건방져서 나라의 법도가 흔들리고 있는 판에
여자 노비의 주인이라면 당연히 건방진 비부를 혼내주다가 죽게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걸 살인으로 처벌한다는 게 말이 됨?
라고 말함
신하들도 이에 동조해서
암 그럼요 비부 혼내주다 '우연히' 죽었으면 그걸 살인죄로 보면 안되죠~ 라고 함
물론 일부 사람들이 악용되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을 냈지만
정조는 일언지하에
이미 노비 주인이 노비의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고
다만 잘못없는데 죽이면 주인도 곤장을 맞을 수 있는데
억울하게 죽는 폐단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이제부터는 여종 남편이 건방지게 구는 걸 주인이 혼내주다 '우연히' 죽은 건 살인이 아님
그 외 혹시 그렇게까지 건방진 게 아닌데 혼내주다 '우연히' 죽으면 가볍게 처벌하고
건방지게 굴다 맞거나 죽은 놈들이 감히 고발한다면 곤장 때리고 귀양보내라ㅇㅋ?
라고 결론내림
물론 이전의 법률로도
노비가 주인을 직접 고발할 경우 고발을 무효로 보고 사형에 처했고
노비의 양인 배우자가 (자기 배우자의)주인을 고발해도
마찬가지로 고발은 무효로 보고 장 100대 유배 3천리로 규정하는 등
노비가 반역죄 외 주인을 고발하는 것 자체를 나쁜 것을 보았음
이런 고발시 무조건 사형 이런 제도는 대명률에서 정한 것보다 훨씬 엄한 것이었음
(대명률에서 노비가 주인을 고발할 경우 장형+유배형이고 무고인 경우만 사형)
조선의 법도로는 주인-노비 관계는 임금-신하 부모-자식과 같은 천륜으로 여겼으므로 이런 법이 나왔다고 보면 됨
신분제의 한계가 이런거지
ㄷㄷㄷㄷㄷㄷㄷ 미친
신분제의 한계가 이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