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우리는 시작부터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콤비였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황금세대의 일원 킹 헤일로. 반면에 이제 막 첫 담당을 구하러 나온 신출내기 트레이너였던 나는, 냉정히 말하면 ‘격이 맞지 않는’ 상대였겠지.
탄탄한 다리에서 뿜어져나오는 박력에 압도되어 경솔히 스카우트를 걸었던 내게 킹이 정색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를 어떻게 할지’가 아니라, ‘너’에 대해 물었어.
···너희 트레이너는, 안되면 다음 아이를 맡아서 일류 트레이너라고 평가받을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마무스메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반드시 공적을 남겨야만 해.
옳으신 말씀이지. 중앙 트레센은 선택받은 자들의 전장. 본격화를 맞이한 그녀들은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에 희망을 걸고 잔디 위에 발을 내딛은 것이다.
타고난 재능은 발에 채일 만큼 많고, 천재니 우등생이니 따위의 격찬을 들어보지 못한 선수가 없었다.
그 틈바구니를 헤쳐나가려면 각오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우마무스메를 지도해 트윙클 시리즈를 제패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이, 처음 만났을 당시의 내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 제정신이야?”
“킹 헤일로를 스카우트 하겠다고?”
“제정신입니다! 그녀가 맞습니다! 일류 트레이너로서, 일류 우마무스메를 스카우트한다! 킹 헤일로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그래서 믿기로 했다. 나는 분명, 그녀가 찾는 ‘일류 트레이너’가 될 수 있다고.
선발 레이스에서 2착에 그쳤음에도 개의치 않고 일류를 자처하는 킹을 향해 동료 트레이너들은 헛웃음을 지으며 야유를 보냈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하며 나아가려는 그 모습이 너무도 눈부셨기 때문이다.
오기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동에 천하의 킹도 당황했던 모양이지만, 내게서 각오를 읽은 뒤의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정해졌네. 여기 있는 모두, 잘 들어!
지금 ‘일류 킹 헤일로’는, 여기 ‘일류 트레이너’와 함께하기로 했어!
우리는 트윙클 시리즈의 모든 레이스에 우승할 거야. 너희는 그 영광의 여정을 멍하니 보고 있으라고!”
엎친 데 덮친 격도 모자라 짚더미에 불똥을 퍼부어버린 킹의 선언.
기대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유망주와 새파란 하룻강아지 트레이너라는, 어떤 의미로 더없이 잘 어울리는 조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누구도 진심이라 믿지 않았고,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그러했을지 모를, 트윙클 시리즈 제패라는 영광의 첫걸음이.
그리고 이어지는 클래식 시리즈에서, 영광은 빛을 잃고 추락해, 진흙탕에 쳐박혔다.
야요이상 인기순위 1위, 3착, 우승은 스페셜 위크.
사츠키상 인기순위 3위, 2착. 우승은 세이운 스카이.
그해 연말의 아리마 기념은 인기순위가 10위로 곤두박질쳤고, 선두 경쟁은 커녕 순위권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2년 동안의 출주에서 우승이라곤 G3와 G2에서의 1승씩 뿐, 다른 황금 세대들이 착실히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킹은 거리적성조차 찾지 못한 채 방황했던 것이다.
결과로 보여주지 못한 자신은 자만에 불과하다. 호기롭게 나서지도 오기로 버티지도 못한 커리어는 흑색으로 얼룩졌고, 킹 헤일로의 지명도 또한 나날이 떨어져 갔다.
전부 내 탓이다.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말장난이나 지껄이며 끼어드는 게 아니었는데.
어떤 트레이너에게 가든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재능을 마치 나만이 알아볼 수 있었던 원석이었던 것 마냥 흥분해서는, 누구보다 절박했던 킹의 앞길을 내 손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트레이너.”
시니어 첫 레이스, 페브러리 스테이크스.
혹시나 싶어 도전해본 더트였지만, 결과는 충격의 13착. 지속된 부진에도 변함없이 응원을 보내준 팬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당연한 귀론이다.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녀야 할 백조를 오물뻘에 내던진 격이었으니까.
이렇게 되기를 바란 게 아니었는데.
승부복에 뒤덮인 진흙을 터는 킹을 보며 씁쓸히 자조했다.
“트레이너?”
“······아, 응. 고생 많았어, 킹. 아쉬웠네.”
뻔뻔하기 짝이없는 공허한 위로다. 아쉽기는 무슨, 명백한 참패인데.
이번만큼은 킹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2년간의 숱한 패배에도 의지를 잃지 않았던 킹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금씩 달싹이지만 떨어지지 않는 입술. 자신을 더트에 밀어넣은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마 그거겠지. 트레이너 계약 해지 통보.
“······다음은 어디로 출전하면 될까?”
마지막 시험인가, 혹은 이별을 준비하라는 나름의 배려일까.
통상 2년씩이나 손발을 맞춰온 팀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제 와서 3년을 목표로 세운 장기 플랜을 백지화하고 다른 팀에 들어간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둘째치고 애물단지 취급이나 면하면 다행이다. 사실상 은퇴 수순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더군다나 신입 트레이너인 내게는 내세울 만한 경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킹 헤일로야 유망주이니 눈칫밥 좀 먹더라도 어찌저찌 새 팀을 구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재능있는 아이를 데리고도 죽이나 쑨 쭉정이를 어디에서 써 줄까. 중상경주의 문턱 한 번 넘지 못하고 은퇴하는 우마무스메는 많다. 하지만 G1 우승 한 번 거두지 못한 채 커리어를 끝마치기에, ‘황금세대’라는 이름값은 너무도 무거웠다.
무엇보다도, 시니어 첫 대회가 끝난 직후, 하물며 그런 참패를 당해놓고 갈라서는 건 모양새가 나쁘다.
즉 이 제안은 마지막 기회, 그래도 2년간 한배를 탔던 정으로, 트레이너가 마지막 체면을 살릴 무대를 마련해주려는 것이겠지.
고마움과 함께 죄책감이 치솟았지만, 지금은 사과를 할 때가 아니다.
킹에게 걸림돌밖에 되지 않는 건 알고 있어. 그렇다면 하다못해, 우리들의 마지막 협업만큼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이번에도 지면 깔끔하게 포기하리라, 나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타카마츠노미야 기념은 어때?”
잔디 1200m, 단거리 레이스.
킹은 어떤 거리에서도 중간 이상의 저력을 보여주었지만, 심리전과 위치선정에는 항상 불안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기기 전에 매듭을 지어버리면 그만이다.
게다가,
“그래, 거기로 하자.”
나는 아직, 킹과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그 힘찬 스퍼트를 믿고 있었다.
“킹 헤일로가 모조리 완파했습니다! 무서운 뒷심! 드디어 G1에 손이 닿았습니다!”
해냈다.
킹이 해냈다.
나의 소중한 여왕이, 비로소 앉아야 할 옥좌로 돌아왔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단상 위에서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영광을 독점한 킹 헤일로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트레이너!”
왕의 말은 지엄하다. 그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안 기자들은 군말없이 길을 내주었다. 물론 진짜 목적은 이제부터 이어질 우승자 인터뷰였겠지만, 당시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만큼 멀게만 느껴지는 레드카펫을 한달음에 달려간다. 엎어질 듯 단상에 오르자, 킹은 전매특허인 여왕님 포즈를 취한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불요불굴의 투지가 타오르던 눈동자를, 태양과도 같은 환희로 가득 채우며.
“해냈어, 1착이야! 자, 얼른 이리 와서 킹을 띄워줄 준비를······, 트레이너?”
그 빛이 너무도 눈부셨기에.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우와아아아아아! 키이잉!!!”
“꺄악!”
흥분한 나머지 킹 헤일로를 껴안고 말았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당황한 킹은 발버둥쳤지만, 개의치 않고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더욱 높이, 허리를 받친 손에 힘을 주며, 어지러워질 때까지 몇 바퀴고 제자리를 돈다.
모두가 킹을 볼 수 있도록, 앞으로는 절대 떨어뜨리지 않도록.
“바, 바보야! 뭐하는 거야! 여기가 어떤 자리, ···아니 그보다 떨어져! 레이스 직후니까···, 나 아직 씻지도······.”
“축하해애애애애! 알고 있었어! 나는 줄곧 믿고 있었어! 킹 헤일로는 일류란걸! 누구보다 재능있고 누구보다 강한! 최강의 우마무스메는 킹이라는 걸 말야!”
그리고 바보같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감격에 젖어 눈물이 새어나온 정도가 아니다. 숫제 더비 이야기를 할 때의 위닝 티켓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꼴사납게 엉엉 울었다.
나는 일류 트레이너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애마는 틀림없는 일류 우마무스메다.
패배를 쌓아올리면서도 꺾이지 않던 의지가 바로 오늘, 트윙클 시리즈의 정점인 G1 경기장에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증명했다.
부족한 트레이너 탓에 2년이나 헛돌고도 다시 일어선 킹 헤일로.
미안함과 고마움이 넘쳐, 그치지 않았다.
“······바보네.”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부드러운 감촉이 눈썹 위를 드리운다.
“이런 꼴이면 설득력이 없잖아. 이겼으면 웃어야지, 왜 우는 건데? 정말로 너는 풋내기라니까.”
이마에 맞닿는 열기.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땀도 한데 뒤섞여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서로가 토해낸 숨결이 어우러지기를 수 차례, 상기된 피부 위로 킹 헤일로의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당신이 내 트레이너인 거겠지. 포기할 줄 모르는 내 트레이너······. 왜 이렇게나 풋내기인 걸까, 우리는. 앞으로 계속 우승 무대에 오를 텐데······.”
—⏰—
다음 날 아침 이사장님께 호출이 들어왔다.
내용은 실로 간단. 출근 즉시 담당 우마무스메와 함께 이사장실로 오라는 짧은 메일 한 통이다.
따로 설명은 없었지만 내막이야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도 그럴 게 그만한 대형사고를 쳐버렸으니.
지금은 다소 진정됐지만, 어젯밤엔 손이 덜덜 떨려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고.
눈을 감아도 플래시백 되는 그 때의 기억. 거리감이 무너진 탓에 오감에 새겨져버린 킹의 감촉이 떠오를 때면 애꿎은 이불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료 트레이너들의 반응도 절호조였다. 그야말로 작정을 했는지 밤새도록 메신저가 울려댔으니.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사고친다는 둥 내 너희들 그런 사이인줄 알았다는 둥, 아주 소설을 쓰더니 기어코 청첩장 언제 나오냐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출근이고 뭐고 틀어박히고 싶지만,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겠지.
내려질 징계도 두렵지만, 그보다는 먼저 킹에게 사과해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내가 멋대로 벌인 일에 휘말렸을 뿐인 피해자니까.
문자로 간략한 내용을 전달한 나는 등교 시간에 맞춰 킹의 반을 방문했다.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더 떠들썩해 보이는 복도를 지나 교실 앞에 도착하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킹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주위를 둘러싼 소음이 멎는다. 그리고는 명백히 부자연스러운 웅성임이 퍼져나갔다.
“킹, 아까 얘기했던 것 말인데······.”
“그래. 호출은 나도 받았어.”
아침 댓바람부터 상사에게 불려간다는 것은 열에 아홉은 큰일이 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역학구도는 학생과 교사 간에도 유효했다.
중등부라 할지라도 레이스에 출주하는 이상,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해서는 자각할 나이.
술렁임은 삽시간에 사위를 메웠고, 심지어 대놓고 웃어대는 학생도 보였다.
유력한 경쟁자가 스스로 고꾸라진 게 그리도 우스웠던 것일까.
수치심 때문인지, 답지않게도 킹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서두르자.”
“······응.”
이런 취급을 당해야 마땅한 건 나 뿐인데. 나는 끝까지 네게 방해만 되는구나.
치밀어오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앞장선 킹의 뒤꿈치만 바라보며 교실을 나섰다.
역시 화났을까? 그렇대도 어쩔 수 없다. 여타 프로 선수들처럼 우마무스메 또한 대중의 인기에 부응하는 존재. 아무리 담당 트레이너라 해도, 어제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거리감이 아니었다. 하물며 공식 석상에서 저질러 버렸으니 구설수에 휘말릴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 스캔들은 필시 킹의 커리어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겠지.
슈퍼 크릭과 그 트레이너처럼 대놓고 시상식에서 애정행위를 과시하는 콤비도 있지만 그거야 그 양반들이 워낙 주책바가지인 거고, 뭣보다 세간의 인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똑같은 미성년자라도 킹은 중등부다. 앞날이 창창한 아이니만큼 내쪽에서 주의했어야 했는데, G1 우승이라는 기쁨에 실수를 해 버리다니.
······아니, 변명은 그만두자. 실수면 어쩌라는 말인가? 그것이 면죄부가 되어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사고’를 오해가 생기지 않게끔 잘 봉합하여 킹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도 G1 우승은 땄으니 이적은 수월할 것이다. 중상우승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팀의 자극이 되니까, 어느 정도는 킹의 의사를 반영해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인수인계 작업이 끝날때까지만 곁에 있자. 그러고 나면 깔끔하게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거야.
지난 2년 동안 가장 컸던 걸림돌을 치우는 일, 그것이 킹의 ‘전’ 트레이너로서의 마지막 업무다.
몇 개의 모퉁이를 꺾어 이사장실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타즈나 씨가 목례를 한 뒤 문을 두드렸다.
“이사장님, 킹 헤일로 양과 담당 트레이너 분이 도착했습니다.”
“허가! 그들을 안으로 들이게!”
고급 목재로 짜여진 문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무간지옥으로 통하는 아가리처럼 비춰진다.
고풍스러운 트레센 건물에서도 한층 엄숙함을 느끼게 하는 실내에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언뜻 보면 잘못 들어온 미아인가 싶을 정도로 작달막한 체구에, 머리 위에 얹은 고양이 외에는 특별한 요소가 없는 태평한 소녀이지만, 저래봬도 이쪽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중앙 트레센 학원의 이사장이다.
드넓은 책상 위에 어지러져있던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넣고, 아키카와 이사장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환영! 어서 자리에 앉게나!”
들고있던 부채를 쫙 펼치며 치켜든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모자 위에 앉아있던 고양이가 몸을 뒤틀며 냐옹거렸다. 그 추임새가 내게는 바른대로 이실직고하라는 최후통첩처럼 느껴졌다.
무거운 다리를 억지로 놀려 소파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이사장님이 서글서글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연다.
“설명! 이렇게 일찍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이사장님. 어제 일 때문이겠지요.”
“오오, 그런가!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다!”
다행히 준비는 만전이다. 이 순간을 위해 새볔녘부터 일어나 사직서를 썼으니까.
긴 한숨을 뽑아내며 결심을 굳힌 뒤, 트레센에서의 마지막 업무를 위해 재킷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사장님, 저는······!”
“그럼 신속히 일정 조율에 들어가도록 하지.”
만면에 미소를 띄운 이사장님이 말을 자른다. 찰칵, 부채를 접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렸다.
“······네에?”
“타즈나! 오늘 중으로 두 사람이 처리해야할 안건이 어떻게 되지?”
“주요 내신들로부터 기자회견 3건, 잡지 인터뷰 1건이 들어와 있습니다. 각각의 소요시간은 미지수이지만 어떻게든 오전 중으로는 끝내는게 좋겠네요. 오후 1시부터는 이번 우승을 기념하는 특집 토크쇼도 편성되어 있으니까요.”
“다망! 교문이 개방되는 대로 신속히 착수하는 게 좋겠군! 자네들은 지금부터 예정되어있던 모든 스케쥴을 정지하고 인터뷰 준비에 돌입해 주게. 우리측에서도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첫 회견은 10시로 예정되어 있으니 아직은 시간이 있네요. 그때까지는 두 분 모두 충분한 휴식을 취해주세요. 그리고 킹 헤일로 양은 승부복으로 갈아입······.”
““자, 잠깐만요! 이야기를 따라가질 못 하겠는데요?! 대체 무슨······.””
동시에 일어선 킹과 나를 보며, 이사장님은 들고있던 부채를 말아쥐며 대답했다.
“경사! 지금 자네들의 인기는 절호조! 이 이상 이를 데 없는 슈퍼스타인 것이다!”
······왜요?
—⏰—
뜻밖의 충격에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굳어버린 우리들을 보며, 이사장님은 어라?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다 알고 온 거 아니었나?’ 마치 그렇게 묻는듯한 표정도 잠시, 겨우 상황을 이해하셨는지 쓴웃음을 흘린다.
“불통! 아무래도 오해가 있었던 모양일세!”
그러고는 손목시계를 흘끔 들여다본 뒤, 옆자리에 앉은 비서에게 지시했다.
“마침 아침 뉴스를 할 시간이군. 타즈나! TV를 켜 주게!”
“알겠습니다, 이사장님.”
벽걸이 텔레비전을 향해 리모콘을 내미는 타즈나 씨. 그러자 마치 지휘봉을 따라가듯 전원의 시선이 그 끄트머리를 향해 움직인다.
잠깐의 딜레이 끝에 액정 화면 속에 송출된 것은,
“우와아아아아아! 키이잉!!!”
힘차게 안아든 담당 우마무스메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그토록 잊고 싶었던 어제의 자신이었다.
“······읏?!”
순식간에 킹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반면, 이사장님과 타즈나 씨의 얼굴은 평온했다. 아니, 조금 다르다. 마치 눈 앞에 펼쳐진 영상이 힐링용 다큐멘터리라도 되는 것처럼 흐뭇히 관망하고 있었다.
어째서? 당사자들에겐 최악의 흑역사가 성대하게 팔려나가고 있는데요?!
“정말 아름다운 한 쌍이에요!”
“동감! 몇 번을 봐도 끓어오르는 감동이 식지를 않는 훌륭한 영상일세!”
혹시 새로운 타입의 권고사직인가 싶었지만 두 사람은 진심인 것 같았다. 이쪽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칭찬이 끊이지 않고, 급기야 손수건을 펼쳐 눈물까지 훔치는 타즈나 씨. 완벽하게 소외된 나와 킹은 그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로의 얼굴을 돌아볼 뿐이었다.
“실은 말이죠.”
아직도 감격에 잠겨있는 타즈나 씨, 그녀로부터 듣게 된 전말은 이러했다.
“이 영상이 어제부터 화제가 되었거든요.”
내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킹을 껴안은 당시,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모여있던 기자들은 이 사건이 일으킬 파란을 직감했던 모양이었다.
트레센 관계자는 매체와 접촉하는 동안엔 어지간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배지를 다는 그 순간부터 매사에 철두철미한 품위유지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그런 찰나에 이전부터 자존심이 드높기로 소문난 킹과 그 트레이너가 얼싸안고 우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다니,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월척이었을 테지.
경기장에 있던 모든 기자가 하던 일도 팽개치고 달려들었다 한다. 공신력 있는 스포츠 언론에서부터, 조회수를 위해선 곡해도 서슴지 않는 삼류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공인의 자기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대에, 사회초년생이라 한들 성인과 미성년자의 스캔들은 그 자체만으로 자극적이다. 어떤 식으로 양념을 치느냐에 따라선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상상할 수 있었다.
구설수는 곧 언론의 주식主食.
제각각의 욕망이 깃든 렌즈는 최선의 구도로써 나와 킹의 포옹을 담아냈다.
그리고 목격해버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남자의 추태를.
“축하해애애애애! 알고 있었어! 나는 줄곧 믿고 있었어! 킹 헤일로는 일류란걸! 누구보다 재능있고 누구보다 강한! 최강의 우마무스메는 킹이라는 걸 말야!”
기쁨에 겨워 횡설수설,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목놓아 우는 트레이너와,
“바보네. 이런 꼴이면 설득력이 없잖아. 이겼으면 웃어야지, 왜 우는 건데? 정말로 너는 풋내기라니까.”
핀잔을 내뱉으면서도,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우마무스메 킹 헤일로.
이마를 맞대고 온기를 나누며,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우리의 모습을 말이다.
항상 사무적인 태도로 인터뷰를 진행해온 나와, 넘치는 자신감에 반비례하는 성적 탓에 실속없는 허영이라는 비아냥까지 받았던 킹의 너무나도 진솔한 모습.
그것은 특종 사냥에 이골이 난 기자들조차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날 내내 각 언론사 헤드라인은 킹 헤일로의 우승 인터뷰의 완전독주였다.
어디든 킹의 소식을 다뤘고, 이 우승에 이르기까지 감내해야만 했던 지난 2년간의 특집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수렁 속에서 허우적댔던 숱한 패배들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킹의 ‘불굴’을 상징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왕의 귀환」
「진흙탕을 딛고 일어선 승리자」
「일류 우마무스메, 킹 헤일로」
“팬분들의 반응도 뜨거웠어요. 이대로라면 연말의 아리마 기념도 따놓은 당상이에요!”
“아, 아리마라니, 아직 3월인데요?!”
“응보! 이 또한 자네들이 빚어낸 결실일세. 삼여신은 공정하게 레이스를 지켜보시지만,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는 자를 총애하시는 법이지. 오랜 침체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성과를 거둔 그대들을 치하하며, 앞으로 펼쳐질 길 위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도하는 바이네!”
—⏰—
이사장실을 나온 뒤로는 그다지 기억이 없다. 정말로, 정말로 눈코뜰새없이 바빴기 때문에.
릴레이로 이어지는 기자회견은 대난투. 과장을 좀 보태자면 3관 우마무스메에 필적할 만큼의 관심이었다. 기관총처럼 쏟아지는 질문은 어느 하나 쉬이 대답할 수 없었고, 개중에는 민감한 영역에 발을 걸치려는 시도도 적지 않았다.
어제의 실수는 다행스럽게도 꿈을 쫓는 스포츠 팀의 감동 스토리로 받아들여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 시점의 이야기다.
짜릿한 역전은 감미롭다. 그러나 대중은 언더독의 비상 만큼이나 추락하는 새의 날갯짓 소리를 사랑한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킹의 자산이 되어줄 테지만, 역치가 높아진 관객들이 언제까지 박수를 쳐 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때일수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껏 꺼뜨린 불씨가 또다시 타오르지 않도록, 나는 신중을 기해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해 나갔다.
하룻밤을 꼬박 새운 탓에 지쳐버린 뇌가 비명을 질렀지만, 어떻게든 꾹 참고 버텨냈다.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사장님도 흡족해 하신데다 황송하게도 조기 퇴근까지 허가받은 고로, 원래라면 그대로 트레이너 숙소의 침대로 직행해야 했지만······,
‘잠깐 동행해 줄래, 트레이너? 두고 온 짐을 가져오고 싶어.’
교실에 들르기를 원한 킹의 부탁에 아주 잠깐 근무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원래부터 기숙사까지는 데려다 줄 계획이었던 데다, 확실히 전하고, 또 들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짐이라고 해봐야 가방 뿐이니 처음에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교실로 들어선 직후, 기다리고 있던 인물들에 의해 꼬이고 말았다.
“나의 이름은?”
"킹!"
“누구보다도 강한?”
"승자!"
“그 미래는?”
"눈부시고! 모두가 동경하는 우마무스메!!"
“그래! 일류의 우마무스메라고 하면, 바로 나!”
"킹 헤일로의 G1 우승을 축하합니다~!!!"
저 두 사람은 면식이 있다. 자주 합동 구호에 어울려 주곤 하는, 이른바 킹의 추종자들이다.
그나저나 여고생은 대단하네. 방금 전까지 격무를 소화하고도 아직도 힘이 남아있다니 말이야.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지만.
멀찍이 서서 기다리고 있자, 작별인사를 마친 킹의 친구들이 이쪽을 돌아본다.
“트레이너 선생님! 저희 킹을 잘 부탁드려요!”
“자, 잠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괜한 오해를 살 행동은 그만둬!”
안절부절 발을 구르며 친구들을 나무라는 킹. 화끈 달아오른 뺨을 식히려는 듯이 부채질을 하며, 이따금씩 이쪽을 흘끔거렸다.
고약한 장난이지만,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애매했다.
나는 앞으로도, 킹과 함께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복도를 걷는 내내 침묵했다. 킹은 시선을 피한 채 입을 다물었고, 나 또한 묵묵히 걸음을 재촉했다. 현관을 나서자 정면으로 쭉 뻗은 대로 너머로 기숙사가 보였다.
그 때, 자그마한 손이 옷소매를 움켜쥐었다.
“잠깐 시간 돼? ······할 말이 있어.”
마음 한구석에서,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어제까지의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결국 때가 온 모양이었다.
“······그래.”
나는 지나온 길을 되짚어 교정 한켠에 마련된 트레이너실로 킹을 데려갔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둘만의 공간.
2년 전 세상물정 모르는 두 풋내기가 왕도王道 제패를 목표로 의기투합했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끝맺기에 적절한 장소로.
“할 말이 뭐야, 킹?”
매무새를 가다듬는 척 앞섶을 쓸며 물어보았다. 손끝에는 안주머니에 넣어둔 종이봉투의 감촉이 닿아 있다. 이 사직서를 내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고, 트레이너로서든 어른으로서든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굳이 부질없는 질문으로 이 순간을 늘리는 것은, 마지막까지도 나는 어느 쪽 역할도 제대로 못한 반푼어치란 반증일 테지.
근거없는 자신감에 취해 일류를 입에 담았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런 한심한 풋내기를 묵묵히 올려다보던 킹이 한 걸음 내딛는가 싶더니,
“······킹?”
단숨에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팀원 간에는 물론 사적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 거리까지 들어와, 그대로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옷깃에 얹어두었던 손은 희고 고운 두 손에 포개졌다. 마치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대체······.”
거기까지 말한 순간, 킹과 시선이 마주쳤다. 물기에 잠긴 눈동자는 그럼에도 빛을 잃지 않고 물끄러미 이쪽을 올려다본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킹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설마······.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유혹에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내 가슴팍에 닿아있는 킹 헤일로의 손이, 마치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듯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킹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어.
“킹!”
소중한 애마를 힘껏 끌어안았다. 가녀린 피부 감촉에 순간적으로 너무 힘을 주었나 겁이 났지만, 기쁜듯이 몸을 맡겨오는 킹의 얼굴을 보자 망설임은 눈녹듯이 사라졌다.
보드라운 꼬리가 허리에 감겼다. 쉴새없이 쫑긋거리는 귀는 숨길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더욱 힘차게 머리를 비벼왔다. 그럴 때마다 향수에 가려져있던 킹의 체취가 코끝을 찔렀다.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찔한 고양감이, 등줄기를 타고 솟구쳐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껴안고 있었을까.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있던 내게, 킹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트레이너, 부탁이 있는데.”
“뭔데?”
“나, 합동 구호를 하고 싶어. 지금 여기서, 단둘이서만.”
합동 구호라니, 항상 하던 일이잖아?
이제와서 새삼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강한 우마무스메는?”
“킹 헤일로.”
“가장 재능이 높은 우마무스메는?”
“킹 헤일로.”
어쩐지 이거, 구호라기보다 문답에 가깝지 않나?
의구심을 표하는 내게 킹은 침묵하더니, 평소보다 더욱 길게 심호흡을 하고 덧붙였다.
“······당신에게 있어 최고의 우마무스메는 누구야?”
······아아, 그런 거였구나. 제아무리 일류인 킹이라도 망설일 만 했다.
하지만 말이야 킹, 그건 얼버무림이 되지 못 한다고.
그도 그럴게, 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단 말이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쭉, 킹이었어.”
“그래······.”
만족스러운 대답에 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긴장이 풀린 나머지 새어나오는 한숨을 몰래 내뱉을 셈이었겠지만, 이만큼이나 거리가 가까워서는 모를 수도 없는 법이다.
뭐,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불처럼 뜨거운 숨결을 모조리 토해내고 나서야 킹은 살며시 내게서 떨어졌다.
가슴팍에 불룩 튀어나온 주머니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는 것을 잊지 않고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나의 트레이너’.”
여부가 있겠습니까. 평생 뒤따라갈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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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눈팅만 하다 소재가 떠올라서 끄적여보았습니다. 부끄러운 글입니다만 일단 투고해 봅니다.
말딸 입문한지 얼마 안 되서 설정에 관해선 아직 미숙한 고로, 그 부분에 한해선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말딸x트레이너 팬픽이니까 일단 괴문서 맞겠지?
맛있어요
맛있어.. 너무 맛있다...
"감동" 이 있다
하지만 토레나는 이미 킹 헤일로의 어머니와...
이저 카와카미 프린세스가..
맛있어요
"감동" 이 있다
하지만 토레나는 이미 킹 헤일로의 어머니와...
좋네요
맛있어.. 너무 맛있다...
이저 카와카미 프린세스가..
순애 최고!
크흐 달다달아
미식이네요오오오
맛있다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