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년, 백제는 신라의 대야성을 침공했음
지도에서도 보다시피 대야성은 신라의 대백제 관문 같은 곳이었고, 이러다보니 대야성은 백제한테 항상 눈엣가시같은 곳일 수 밖에 없었음
당시 대야성의 병력은 1만이었지만 백제가 그 이상의 병력을 끌고온 것과 검일과 모척 두 신하의 배신으로 대야성은 뚫렸고
결국 성이 함락 직전에 오자 성주 김품석은 아내 고타소와 함께 자결하고 휘하 장수인 죽죽이 남은 병력과 함께 저항했지만 결국 전사함
그리고 당시 백제군 총사령관이었던 윤충은 김품석과 고타소의 목을 베서 의자왕에게 바침
뭐 이것만 보면 평범한 삼국전쟁기의 일 같은데
문제는 저때 죽은 고타소가 바로 김춘추의 딸이었다는 거임
실제로 김춘추는 저 소식을 듣고 하루종일 미친 사람 마냥 넋 나간채로 지냈고
(대야성이 패배하였을 때 도독 품석의 아내도 죽었는데, 그녀는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는 딸의 죽음을 듣고 하루
종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 삼국사기 제 5권 신라본기)
저 사건 뒤로 본격적으로 고구려와 당나라를 돌아다니 대백제전선 형성에 몸을 바침
심지어 처음 고구려로 떠났을 때 친우 김유신하고 같이 내가 못 돌아오면 네가 백제를 멸망시켜달라는 맹세까지 했을 정도
(유신이 말하기를, “공이 만일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나의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와 백제 두 왕의 조정(朝庭)을 짓밟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장차 무슨 면목으로 나라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춘추는 감격하고
기뻐하여, 공〔유신〕과 함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며 맹세하였다. -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그리고 20년 뒤 백제가 멸망했을 때 김춘추는 대야성의 배신자였던 검일과 모척을 잡아다 손수 목을 쳤고
김춘추의 아들이자 고타소의 오빠인 김법민 무열왕은 백제 태자 부여융을 잡아다 드디어 동생의 원수를 갚았음을 천명하며 이 부자의 복수극은 막을 내림
(법민이 융을 말 앞에 꿇어앉히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었다. "예전에 너의 아비가 나의 누이를 억울하게 죽여 옥중에 묻은 적이 있다. 그 일이 나로 하여금 20년 동안 마음이 아프고 골치를 앓게 하였는데, 오늘날 너의 목숨이 내 손 안에 있구나!" 융은 땅에 엎드려 말이 없었다. - 삼국사기 본기)
물론 김춘추가 딸이 백제한테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삼국통일에 나섰다는 건 비약이겠지만
적어도 김춘추 부자가 백제 멸망때까지 이 일을 잊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음
ps. 근데 정작 윤충이 어찌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음. 살아있었다면 김춘추 살생부 1위에 올랐을텐데 멸망때까지 기록이 안 나옴
김품석이 워낙 븅신이라 죽어도 싼놈이긴한데 고타소는 레알 억울하긴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