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 조약의 스토리는 5번째 화두와 함께 시작한다.
"낙원에 도착한 사람의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 문장의 의미나 해석은 많은 유게이들이 이미 찾아봤을 테니 생략하도록 하자.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화두가 스토리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느냐?" 니까.
세이아의 캐릭터 성을 보여주는 장치나
아즈사와 세이아의 관계를 의미하는 복선으로써도 사용되지만
이번엔 '스토리를 보다 세련되게 만들어 주는 장치' 로써 작동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화두는 에덴 조약 3장의 포스트모템, 2장의 미카 이야기 마무리에 사용된다.
2~3장의 미카는 세이아 습격 사건, 쿠데타 모의 때문에 이미 자신을 놓고 소통을 거부한다.
나기사나 하나코가 진심을 물어봐도 날 선 비꼼으로 대응할 뿐.
하나코는 이러한 미카의 태도에 대해 선생과 상의하고,
선생은 화두를 통해 이야기를 정리한다.
돌아왔다면 낙원이 아니고,
돌아오지 않았다면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이해한다면 타인이 아니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심이 아니라는 것.
낙원에 도달한 자의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타인의 진심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는 것.
만약 화두가 없었다면 이야기가 늘어졌거나 가벼웠을 것이다.
"미카의 진심을 알 수 있을까요?" 라는 말은 너무 알기 쉬워서 금방 지나가니까.
그 말에 무게를 더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빌드업을 쌓으려 한다면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까.
이어지는 선생의 답을 통해 화두가 다시 사용된다.
"거기에 낙원이 있을 거라고 믿을 뿐이야."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다.
"너희를 믿을 뿐이야." "학생을 믿을 뿐이야."
이런 말은 너무 가볍고, 단편적이니까 금방 넘긴다.
이제 와서 빌드업을 하려고 해봤자 늘어질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낙원이 있을 거라고 믿을 뿐이야." 라는 말을 보여준다면?
플레이어는 그게 무슨 뜻인지 한번 더 되묻는 과정을 통해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말에 담긴 뜻을 설명해 주는 시간 동안 자기가 낸 답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되묻고, 정답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그 말에 무게가 실리고, 2장의 스토리는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5번째 화두: "낙원에 도착한 사람의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 한 문장을 통해 이야기의 템포와 무게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2가지 요소를 동시에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3줄 요약,
1) 화두를 계속 제시하여 이야기의 빌드업을 미리 준비한다.
2) 이야기의 빌드업이 필요할 때 그냥 화두를 보여줘서 넘긴다.
3) 스토리가 늘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깨달은것
과몰입 방지턱
카타르시스 오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이다 같은 그런거 아니야
아리스토텔레스적 카타르시스의 경우 비극을 통해 인간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걸 통해 치유하는 과정을 말함 니체적 카타르시스는 또 조금 다르긴 한데 사이다같은 그런 의미 아님
나는 뭔가 '툭 풀리면서 이해되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거든. 그럼 거기에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없어도 되는 문장이니까 삭제했음.
그리고 마지막에 깨달은것
과몰입 방지턱
아타호-_-
카타르시스 오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이다 같은 그런거 아니야
그런가.. 나는 또 틀린건가...
없어도 되는 문장이니까 삭제했음.
자기전에 양치질
아리스토텔레스적 카타르시스의 경우 비극을 통해 인간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그걸 통해 치유하는 과정을 말함 니체적 카타르시스는 또 조금 다르긴 한데 사이다같은 그런 의미 아님
나는 뭔가 '툭 풀리면서 이해되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거든. 그럼 거기에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사이다말고 딱히 어울리는 말도 없을거 같고 굳이 어울리지도 않는 말 끼워넣을 필요는 없을듯
엥? 아무생각없이 봤는데
맞다 아니다도 아니지 그저 믿음만이 남을뿐 어릴때는 종교를 왜믿나 싶었는데 나이 먹으니까 바뀌더라고 기독교를 믿는건 아닌데 천국같은곳이 실제로 있다고 믿게되더라 이 거지같은 세상을 힘들게 살아간 사람들이 도착하는곳이 아무것도 없는 무라면 너무 슬프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