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020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장군은 묘역 1기당 8평, 사병부터 영관까지는 1평의 묘역에 안치되었다.
2020년 말이 되어서야 현충원에 장군 묘역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장군도 사병과 같이 1평 묘역에 안치하기로 했는데
이러한 결정이 있기전에
생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장군임에도
사병묘역에 묻힌 장군이 단 두명 존재한다.
한명은 파월 한국군 사령관이자 옛부터 사병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故채명신 장군으로
"파월 장병이 묻힌 묘역에 묻어달라" 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
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두번째가 바로 故황규만 장군이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인천상륙작전으로 기세가 반전될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열세 속에 부대가 몰살위기에 빠지자
김 소위의 부대가 급히 증편되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전장에선 15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故황규만 소위를 지원하려고 합류한 김 소위도 현장에서 전사했다.
당시 故황규만 소위는 제 손으로 김 소위를 소나무 아래 묻고
작전을 위해 이동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그를 찾겠다며 다짐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1964년에서야
김 소위의 가묘를 찾아 유해를 발굴하고
김 소위는 국립현충원에 안치된다.
하지만 김 소위의 묘에는 이름조차 붙지 못했다.
故황규만 소위와 합류했던 김 소위는
자신을 "김 소위" 라고만 소개했고 그 뒤 본명을 물어볼 새도 없이
전투가 이어져 끝내 전사했기 때문이다.
그 뒤 예비역 장군으로 전역하고 난 뒤
1990년. 정말 우연한 기회에 김 소위와 동기였던
육군보병학교 1기 출신자를 만나 동기명부를 보게 되었고
1950년 사망한 김 소위의 본명이 "김수영 소위"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2020년 6월 21일
故황규만 장군도 노환으로 별세했고
생전 본인의 의사에 따라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이 아닌
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故김수영 소위의 묘역과 같이 안장되었다.
故김수영 소위의 묘는 전쟁의 비극을 전하기 위해
유가족들과 협의 하에 본명을 적지 않은 묘비를 그대로 둔 채
사연과 본명을 적은 비석을 따로 설치했다.
추가
저거 인터뷰가 전멸 직전에서 갑자기 증원 부대 출현 고마워서 이름이 뭡니까 하니 말해줄려다가 갑자기 전사해서 이름 조차 알수없었단가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인사만 하고 바로 전투에 돌입해서 방어전을 하다가 기관총에 전사하셨데요
저거 인터뷰가 전멸 직전에서 갑자기 증원 부대 출현 고마워서 이름이 뭡니까 하니 말해줄려다가 갑자기 전사해서 이름 조차 알수없었단가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인사만 하고 바로 전투에 돌입해서 방어전을 하다가 기관총에 전사하셨데요
비극속에서 피어나는 인류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