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4.1을 앞둔 시점인데,
그 전에 4.0을 정리해두면
서사 진행에 도움될 테니까
대략적인 개념 정리를 하고자 함.
일단, 나는 위 게시글을 비롯해
철학 개념들을 가져다가
원신 스토리를 즐기는 중임.
큰 틀에서 보자면 티바트는
'둘'의 조화, 융합, 그리고
공존 등이 핵심 주제가 됨.
물론 폰타인도 예외는 아니고.
그럼 4.0에서 등장한
'둘'의 개념을 살펴볼까?
아르케의 힘, 일명
프뉴무시아가 바로 그것임.
아르케, 프뉴마, 그리고 우시아는
고대 그리스의 형이상학 용어임.
아르케(Ἄρκη)는 본질,
프뉴마(πνεύμα)는 영혼,
그리고 우시아(οὐσία)는 실체를 뜻함.
재미있게도 위 단어들은
모두 번역명이 있음에도
고유어 그대로 쓰이는데,
시대에 따라 저런 개념들이
약간씩 뜻이 달라졌기 때문임.
단순히 게임용어라서
그대로 쓰는 게 아니고,
철학용어로서도 그대로 쓰이거든.
시초나 처음을 의미하는데,
번역명인 '본질'은 좀 다름.
이는 시대나 인물에 따라서
이데아, 본유관념, 혹은
물자체(대상 그 자체) 등으로
이름을 바꿔 등장하거든.
서구철학의 본질이라 함은
세상만물과 온갖 현상, 사건의
보편적인 작동 원리를 말함.
도교에서 말하는 '도(道)'랑 비슷함.
안 그래도 영지주의를 비롯해
이원론 극복이 이 게임에서
핵심 주제가 되는데,
'본질'이 그 주제 중 하나임.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핵심은
바로 '본질'과 '실존'이며,
서구의 철학은 줄곧
실존은 내던져 놓고,
본질에만 몰두했는데
현대철학에서는 분위기가
확 뒤바뀌기도 했음.
오늘 다 얘기하긴 어려우니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고..
근데 아르케의 힘의
게임 속 구조가 어때?
그 하위에 프뉴마랑
우시아로 나뉘었잖아?
그럼 구체적으로
뭐가 다르길래 나뉘었을까?
영혼인 프뉴마는 '고정',
실체인 우시아는 '변화'가
각각의 특징이 되기 때문임.
(*정정내용 : 역시 내 기억이 맞았고,
서양철학에서의 '실체' 개념 자체는
변화가 아니라 불변성을 가짐.
실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체의 겉모습, 즉 표상은 변화하긴 함.)
프뉴마인 영혼은
영지주의 교리를 생각하면
비교가 꽤 쉬울 것임.
신성함을 내재한 경우가 있어서
그 영혼을 지닌 자만 하늘의 부름을 받고
육신을 벗어던져 승천한다고 믿음.
여기서의 영혼은 그렇기에
아무리 더럽혀져도 깨우침,
즉 영지(靈知)만 획득한다면
하늘에 다다르도록 정해졌음.
그렇기에 프뉴마라 함은
단순한 영혼인 게 아니라,
'신성함이 내재된 채
고정된 상태인 영혼' 정도임.
누구도 그 고결함에
손상을 입히지 못함.
참고로 프뉴마는
지금도 기독교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이기도 함.
무려 그 삼위일체설의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 중
성령(Holy spirit)이 프뉴마임.
그럼 우시아는?
우시아는 실체라고는 하나,
프뉴마와는 반대로
'변화'가 그 핵심 특징임.
온갖 변화무쌍한 존재의
근저에 놓여, 부동하는 기본 틀..
정도로 기억하는데..
아마 호요버스는 굳이 '변화'에
보다 중점을 둔 것 같음.
(나만의 착각일 수도?)
근데 실체가 변화한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정정내용)
실체 자체는 변화하지 않지만
실체로부터 현상된 겉모습,
즉 표상하는 요소들은 변화함.
우린 사실 계속 변화하는 중임.
몸 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매 순간마다 분열과 생성,
그리고 소멸을 반복하잖음?
우시아도 똑같은 개념임.
정신적인 예시로 볼까?
인간은 정보 하나 바뀌는 걸로
그 존재가 확 뒤바뀌게 됨.
가령, 드라마에서 그놈의
'탄생의 비밀'이 자주 쓰이잖아?
아니면,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비위 소식을 접하는 건 어떰?
이런 정보도 듣고 나면
내 기분을 확 뒤바꿔놓지.
혹은 어렵게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달성해내면
그 기쁨이 말로 형언할 수 없지.
본인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믿음이 뒤바뀌어 드러나면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정신적 충격은 상당하다고.
그래서, 우시아가 뜻하는 실체는
생각 이상으로 연약한 존재임.
엄청 쉽게 변화하는 개념이라고.
존재하지만 동시에 미완성인 것임.
그래서 게임 내 시스템으로는
프뉴마와 우시아가 만나
서로 충돌했을 때에는
균형잡힌 상태로 변하기도 함.
이런 둘의 조화 상태가
우리에게 보상이 주어지거나
퍼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구현된 것도 의미가 있는 셈이지.
왜 굳이 프뉴무시아가
둘씩이나 한번에 등장했는지,
굳이 합쳐야 하는 식인지는
대략적인 이해가 됐지?
..혹시 이해가 안 됐을 사람을 위해
굳이 설명을 좀더 덧붙이자면,
폰타인을 비롯해 티바트에서
우리가 겪은 모든 서사에는
항상 '둘'의 구도가 등장했음.
..머릿말에서 한 말인데
다시 설명하자니 좀 귀찮지만,
그런 '둘의 구도'를 대립에서
조화나 화합으로 이끄는 게
일반적인 서사의 결론이었잖아?
몬드에서는 자유와 구속이,
리월에서는 불변과 마모가,
이나즈마는 영원과 찰나가,
그리고 수메르에서는
지혜와 무지, 환상과 현실이
충돌이나 배척을 등지고
화합하거나 공존하는 게
서사의 핵심주제였다고.
합쳐지는 것도 마찬가지임.
숭고한 영혼만 있는 것도,
영혼 없는 채로 육신만 가진 것도
결국 불완전한 존재일 뿐임.
양측 모두가 공존해야 하는 게
게임에서는 상호 소멸로
불균형적인 상태를 제거함으로써
전투와 퍼즐에 쓰인 것이라고.
아쉬운 김에 덧붙이자면
보통 프뉴마의 영혼이 빛,
우시아의 육신(실체)가 어둠에
대입되는 게 형이상학의
오래된 흐름이었기에
프뉴마가 밝은 황금색으로,
우시아는 검보라색으로 나온 듯함.
..진짜 끝!
p.s. 혹시 내가 써놓은
다른 글들 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이용하면 됨.
https://m.ruliweb.com/game/85342/read/23474
요건 각종 유래, 모티브 관련 글,
https://m.ruliweb.com/game/85342/read/27930
요건 이번 게시글 같은
각종 서사해설 글 모은 거임.
폰타인 애들만 아르케 힘쓸수 있는지 인게임에서 나올려나
'원시 모태 바다'의 정체랑 같이 밝혀지지 않을까 싶음.
원시 모태 바다의 물에 용해되는 것도 그렇고, 아르케 힘도 그렇고 폰타인 사람들은 그냥 티바트 사람과는 다른 먼가먼가라는 암시를 줘서 좀 오싹함 이번 마신 임무도 내용이니 연출이니 꽤 무섭게 만들더라니...
마신임무랑 수선화 월드임무 보니까 진짜 어떻게 이렇게 스토리 짠건지 -스타레일 유기할만한듯 ㅋㅋㅋㅋ- 레무리아 제국에서 감행했던 원시바다에 녹지 않기 위해서 골렘 만들었던 것과 그걸 역이용해서 원시바다에 녹아 살았지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은 르네 프뉴마 우시아까지 소름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