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림이 우스겟거리로 많이 소개되었었는데
무라야마 지쥰의 '조선의 풍수'에 나왔던
명당의 그림
'朝鮮の風水' (1931)
山局之図
무라야마 지쥰이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20여년간 조선을 조사해 펴낸 책이 10권이 넘음
저서 『조선의 귀신』에는 “조선의 풍수설에서 자손의 운명은 조상 묘지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받는다”
『조선의 풍수』 (1931)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조선 산맥에 쇠못을 박아 왕기를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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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구조의 명당의 그림을 책으로 낸 것이
무라야마 지쥰의 '조선의 풍수' (1931)였음
이 '조선의 풍수' 책은 이후에 한국의 풍수사에게도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됨
흔히 명당이라고 돌아다니는 그림도 무라야마 지쥰의 영향을 받은 그림이 아닌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봄
일본 한 논문
(朝鮮時代の地誌・地理書にあらわれる 風水用語とその概念
渋谷鎮明) 을 보면 저 무라야마 지쥰의 그림이 여성의 성기 모양을 했다고 분석함
'1931년 조선 총독부의 촉탁 "조선의 풍수"를 기록한 무라야마의 '산국지도'이다.
이 그림 자체는 여성의 성기에 비추어 조선 풍수에 이상적 그림을 보여 주었지만....'
1931年に朝鮮総督府の嘱託と して『朝鮮の風水』を記した村山の「山局之 図」である(図 4右)。
この図自体は女性の 性器になぞらえて朝鮮の風水における理想の 図を示したものである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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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국의 풍수가 저열하다는 의식을 심기 위한 무라야마 지쥰의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봄
풍기문란을 매우 엄격히 통제하였던 조선시대에
여성의 성기를 닮은 그림을 풍수서에 담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듬
풍수산형묘지(風水山形墓地), 풍수제강선생지묘(風樹齊姜先生之墓)
탁옥부(琢玉斧), 명릉산형도(明陵山形圖), 명산론(明山論), 풍수서(風水書), 손감묘결(巽坎妙訣),
이중환의 택리지를 찾아보았는데
무라야마 지쥰의 풍수도와 비슷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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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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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수가들은
조선시대 왕들은 용진처라는 맥이 끝나는 곳에 거의 묘를 썼는데
순종의 묘는 과룡처의 위치라고 함
풍수에서 가장 꺼리는 자리는 과룡처
지나가는 능선 위에 묘를 쓰면 삼대를 못가서 망한다는 뜻
도시혈:
시신을 매장한 이후 땅속이 움직여 시신이 묘 봉분 밑에 있지 않고 이동해 다른 곳에 있게 됨
https://www.youtube.com/watch?v=2BN91h6VbKE&t=32s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4010503691
대한제국의 기를 꺽기 위해
기맥을 달리 조성한 것으로 추정
홍릉의 석릉은 다리가 막아져 있음
이렇게 동물들의 다리가 막아져있는 것이
하지만 유릉은 특이하게 다리가 노출되어 있다고 함
조선의 석릉이 다리를 통으로 붙인 이유는 더 오래가게 하기 떄문
야스쿠니 신사 신문, 메이지 신궁 등을 만든
이토 주타에 의해 조선총독부 부지로 선정되고 지어지게 되고
가장 어려운점 기록도 지워졌고 남은 기록이라곤 일본쪽에서 만든 기록이 많으니 저게 작성자의 의도가 있는가 없는가 구별히고 힘듬
금계포란, 금빛의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이라고 했던가 노골적으로 여성기 모양으로 그려진건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저게 처음이라면 그런 의도일 가능성이 있을듯
조선 당대에도 풍수는 괴력난신 취급하면서 정작 묫자리는 풍수따라 짓는 양반들이 한가득. 사실 제대로된 유학자였다면 풍수는 미신이라고 해야하는게 맞음. 어디까지나 도가철학에서 넘어온 괴상한 미신이거든
무슨 지맥이 어쩌고 하는 것도 조선 유학자들 관점에서는 진짜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잇군...
지식이 늘었군
한줄요약: 건축쓰면 매국노
가장 어려운점 기록도 지워졌고 남은 기록이라곤 일본쪽에서 만든 기록이 많으니 저게 작성자의 의도가 있는가 없는가 구별히고 힘듬
지식이 늘었군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잇군...
금계포란, 금빛의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이라고 했던가 노골적으로 여성기 모양으로 그려진건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저게 처음이라면 그런 의도일 가능성이 있을듯
조선 당대에도 풍수는 괴력난신 취급하면서 정작 묫자리는 풍수따라 짓는 양반들이 한가득. 사실 제대로된 유학자였다면 풍수는 미신이라고 해야하는게 맞음. 어디까지나 도가철학에서 넘어온 괴상한 미신이거든
루리웹-5570802028
무슨 지맥이 어쩌고 하는 것도 조선 유학자들 관점에서는 진짜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
논문 하나 쓰시면 되겠군요.
ㅇㅇ
한줄요약: 건축쓰면 매국노
여성의 음부를 닮은곳은 보통 음기가 모이는 자리라고 부정적으로 쓰지 않나
근데 풍수 자체는 고려 이전부터 있던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