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한 독사신론 에서 삼국유사의 단군 관련 기사에 나오는 태백산은 묘향산이 아니라 백
두산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근거가 확실
한 것은 아니었다. 1909년 나철은 단군교(1년 뒤의 대종교)를 세우고 신채호의 설을 이어받아
*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2-2012S1A5B8A03034081).
** 한양대 사학과
10 동아시아문화연구 제55집
‘백두산=단군탄강지’론을 강력히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은 1910년대 대종교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고, 1920,30년대에는 동아일보와 조
선일보가 이를 더욱 확산시켰다. 두 신문사는 백두산 탐험단을 조직하고, 강연회,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백두산=단군탄강지’론을 대중들 사이에 크게 확산시켰다. 그리고
이를 권덕규, 최남선 등이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려 노력했다. 그런 가운데 동아일보는 ‘백두산
은 조선의 영산’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富士山은 일본의 영산’이라는 담론으
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백두산은 이제 지리적 표상보다는 역사
적 표상으로서의 의미를 더 갖게 되었다.
의외로 조선시대에는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 성지 취급도 안했다
시진핑 ㄱㄱㄲ해봐
백두혈통 타령하면서 중요시한건 북한새끼들 영향인가 싶기도...
시진핑 개새2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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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개새2끼
6KG우유통
오악이라고 제사지냈던 산 중에도 백두산은 없었지 구한말 되어서야 오악에 들어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