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에서
사라티본 평야에서 일어났던 일과 똑같은 일이 발케네 군 배후에서 일어났다. 차이점은 두 가지였다. 발케네 군에는 아홉 부위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제국군은 훨씬 조직적인 살해를 했다는 것이다.
제국군은 무작정 인간들 틈에 뛰어들어 흥분하여 펄쩍펄쩍 뛰던 사라티본 부대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별로 쓰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정연하게 열을 맞춰 서서 발케네 군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이 뛰어오르는 것은 발케네 병사를 붙잡았을 때 뿐이었다. 그들은 발케네 병사를 붙잡아 위로 뛰어올라서는 그것을 집어던졌다. 그렇게 병사들이 쓰러지면 제국군 레콘들은 그들을 짓밟으며 걸어갔다. 화려함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살상 속도는 훨씬 높았다. 그리고 거병을 휘두르느라 아까운 힘을 낭비하지도 않으니 효율적이었다. 투석전 이라는 말 대신 투인전이라는 말이 만들어져야 할 것 같았다. 다가오는 우악스러운 손과 주위를 휙휙 날아다니는 병사들의 모습, 그리고 앞뒤에서 일어나는 혼란에 발케네 병사들은 미쳐버리고 말았다.
병사가 날아온다. 골통이 부딪힌다. 깨진 두개골이 흩어진다. 받아 주려는 시도는 포기한지 오래고 이제는 옆으로 피하기 바쁘다. 그러다가 서로 엉킨다. 넘어지면 안되지만, 기어코 넘어진다. 일어서려는 몸부림은 주위의 더 많은 병사들을 쓰러뜨린다. 넘어진 그들의 몸을 짓밟는 레콘의 피에 젖은 발.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레콘의 몸은 그 크기 이상으로 무겁다. 하지만 제국군 레콘들은 확실한 것을 선호했다. 그들의 다리는 평소보다 훨씬 높이 올라갔다가 거세게 떨어진다. 우지끈 우지끈 뼈가 부러진다. 복부가 터져 내장이 흘러나온다. 심장이나 간이 짓밟혀 터질 땐 어마어마한 피가 주위로 팍 튄다. 속이 뒤 집히는 피냄새. 짓밟혀 터진 병사들을 그 뒤의 레콘이 짓밟고, 다시 그 뒤의 레콘이 짓밟는다. 시체는 잘 다져진다. 그들의 부모는 그렇게 죽을 자식을 키울 생각이 없었겠지만, 어차피 자식들은 부모의 바람대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결손 가정이 경이적인 속도로 생산된다.
사람이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 너의 아들이 죽었다. 다시는 웃지 마라. 너의 아버지가 죽었다.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너의 어머니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왜 죽었냐고? 네가 누워서 빈둥거리며 씹을 것과 네가 친구들에게 보여주려고 입을 것을 공급하기 위해 싸우다가 레콘에게 밟혀죽었다. 사람이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 울어라. 숨이 막혀 기절할 정도로 울어라. 이럴 때는 우는 법이다.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하나. 산 사람이라도 잘 살아야지. 잊어버리자. 언젠가는 다 죽는 법이다.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저 무덤덤하게 묘사한것임에도, 죽는건 이름조차 없는 그냥 병사들임에도 전쟁의 슬픈 분위기가 확 풍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