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동안이나 가게를 하다보면 참 재밌는 일도 많고 어이 없는 일도 많았지.
블아빵을 40개정도 주문하면서 옛날 생각 나서 썰이나 몇개 풀어봄.
1) 허니버터칩과 스탑럴커
과대 포장 논란을 단숨에 조용히 만들었던 허니버터칩
대체 이것이 왜그렇게 대인기를 펼쳤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10년 전, 처음 가게를 연지 얼마 안되서 허니버터칩은 등장 했고
당시에 집안이 힘들어서, 삼각김밥이 좋아서 라는 이유로 가게를 차렸던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편의점의 이미지 그대로 생각하면서 운영하고 있었음.
그런데 허니버터칩이 나오고 나서부터 편의점의 느낌이 달라졌었지.
구하기 힘든 과자가 꾸준히 공급되는 곳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과자 물류가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 없이 수많은 스탑럴커들과 대치했어야 했음.
과자가 들어오는 때에 가게에 나가서 과자 정리하는걸 도와주곤 했는데 가는 길목에 인도, 가게 앞 창고 옆, 심지어 풀숲 등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음.
그렇다고 막 움직이거나 사람을 위협하는건 아니고 말 그대로 요지부동으로 서 있었음.
처음에는 저건 대체 뭐하는 사람들일까 하면서 무서워서 호다닥 왔었는데
과자를 실은 트럭이 가게에 오자마자 그 석상 같던 사람들이 막 달려들어와서 허니버터칩을 달라고 했었지.
당시에 수요가 높은데 공급이 너무 적어서 1인당 1개로 제안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한테 하나씩만 팔았었음.
그렇게 팔고 나니 그 사람들이 막 달려서 어딜 향하는데
봤더니 과자 실은 트럭을 쫓아서 다음 가게로 이동하는거였음.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 가게가 아파트 초입에 있어서 그나마 사람이 적었던거지, 아파트 안쪽 가게는 우리 가게에서부터 달려간 사람들, 그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 과자 실은 트럭을 우연히 보자 달려온 사람들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함.
결국 최종적으로는 예약제까지 갔었지만 한 두달 정도 지나니까 조용해졌음.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대로 순하리 헌터들로 바뀌었었지.
2) 포켓몬 빵과 리셀러, 그리고 아이들
이제는 너무나도 구하기 쉬워진 포켓몬 빵
예전에는 좋은 부모 되기,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 되기, 반 애들한테 자랑하기 경시대회였음.
얼마 전이니 그때의 분위기를 알겠지만 다들 포켓몬 빵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지.
그런데 허니버터칩과는 좀 상황이 달라졌던게 당근마켓의 활성화였음.
당시에 빵을 사면 당근마켓에 고가에 올리는 리셀러들이 생겼었지.
그때는 가게를 네개 운영할 때 였는데 세개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나머지 하나는 솔직히 많이 힘든 상황이었음.
그래서 그 가게를 중심으로 신경 썼었는데 거기는 애들이 정말 많은 동네였음.
애들은 정말 포켓몬 빵과 띠부씰 하나라도 갖고 싶어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걸 리셀하겠다고 와서 싹쓸이 해가려는 사람들이 있었지.
그 꼴은 보고도 못참겠어서 결국 가게에 아예 붙혀 놨었음.
'포켓몬 빵은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오시는 부모, 조부모님들께 우선적으로 판매합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물론 성인들 중에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래도 애들한테 우선적으로 팔고 싶었음.
주인 맘대로지 뭐...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마음이 좋아서 다들 이해해주고 애들한테 양보하고 해주더라고.
지금은 거긴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두개만 관리하지만 장사는 잘 안됐어도 참 좋은 사람 많은 가게라 그리움이 있음.
3) 헤어지자 말해요 n시간동안 썰 듣기와 얼어 붙은 마운틴듀
나는 가게에 술에 많이 취해서 들어오신 분들한테 몇마디 붙히는걸 좋아함.
"얼큰하게 드셨나보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같은 말 하면 이 말 한마디로 서브 스토리 하나 완성되는 썰들이 튀어나옴.
한번은 직원들이 고생하는건 보고 싶지 않아서 다 내보내고 혼자 야근하고 들어가는 길에 얼큰하게 한잔 한 회사 대표,
한번은 실내 족구 하는데 그 날 헤트트릭 했다고 즐거워 한 남자,
그리고 이 썰의 주인공은 이별을 통보 받은 남자였음.
거하게 취해서 비틀거리길래 많이 취하신거 같은데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말 한번 했다가 그의 연애사를 털어 놓기 시작함.
뭐 야간 대타 뛰는거라 심심하기도 했겠다, 더 좋은 이연 만나시려고 지나가는 과정이고 그렇지 않다면 잠시 거리를 두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거라고 위로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엉엉 울더니 그때 1+1 하던 마운틴듀를 가지고 와선 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병은 자기가 먹고 한병은 나 줬음.
그때 엄청 더운 날이었어서 난 시원하게 먹을라고 얼음냉장고 안에 넣어 놨었고 이렇게 말하는거보니 이제 이야기는 끝나겠다... 싶었는데
30분간 이야기 한건 대략 3개월 정도의 연애 이야기였음.
그 뒤로 거진 3시간동안 5년간의 연애사를 털어놓기 시작함.
손님이 오면 잠시 옆으로 치워 놓고 계산하고 이 정도면 이제 가겠지? 했는데 여전히 연애사를 쏟아 냄.
너무 길어진다 싶어서 이제 들어가시는게 좋겠다고 얘기 했지만 그래서는 오늘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연애사를 쏟아내기 시작함.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았지만 슬슬 질린다 싶을때 다 털어놨다고 덕분에 너무 후련하다면서 떠나더라고.
그제서야 한숨 돌리면서 아까 시원하게 먹으려고 냅뒀던 마운틴듀를 꺼냈는데
꽝꽝 얼어 있더라고...
목은 마르고 마운틴듀는 너무 시원한데 마실 수 없고
결국 어떻게든 먹어보겠다고 온갖 난리를 치고 나니 야간 근무가 끝나가고 있었음.
그 긴 야간 근무를 남의 5년간의 연애담과 얼어 붙은 마운틴듀로 넘겨 버렸지만 기억에 꽤 많이 남는 야간 근무였음.
당장 생각나는 썰은 이 정도네
빌런썰은 많이 들어봤을테니 흥미로운 이야기 중심으로 생각나는 썰 몇개 적어봤음
다들 좋은 밤 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허니버터칩은 나도 왜 그렇게 유행이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뭐 유행이 원래 그런건가보다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