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총기제작
승정원 일기 인조 1년 4월 13일 (1623년)
적과 맞붙어 싸울 때에는 조총(鳥銃)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데
지난번에 병기도감(兵器都監)에서 만든 것은 물력(物力)만 다 허비했을 뿐 모두 쓰임에는 맞지 않습니다.
병기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제대로 된 군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들으니, 상왜(商倭)가 조총을 많이 싸가지고 와 교역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신은 청컨대, 각 관에서 매달 정해 놓고 만드는 군기를 4, 5년 동안만 정파(停罷)해서
매달 정해 놓고 군기를 마련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왜의 조총을 사면 일이 매우 편리할 것입니다.
1623년 요약 : 저희 총 존나구린데 이거 만들 돈으로 걍 일본에서 사다 쓰죠
승정원일기 인조 17년 7월 19일 (1639년)
신익량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기를
..(중략)..
신들의 생각에는 조총의 자루마다 장인의 성명과 제조 일월 및 근량(斤兩)의 무게와 척도(尺度)의 길이를 새겨
똑같이 도감의 규례와 조총의 규례대로 하고, 각 고을이 또 따로 성책을 하여 조총에 새겨진 글 및 감관과 색리의 성명을 모두 기록하고,
해당 수령이 서명하고 도장을 찍은 뒤에 병사(兵使)의 사심(査審)을 기다린다면
방납과 투환 등은 문서를 한번 찾아보기만 해도 자연히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1639년 요약 : 아니 총 만드는데 뭔 규격도 없어 규격좀 만듭시다
규격이 있는데 만드는놈들이 똑바로 안지킨건가 하면 또 아닌게
조선의 다양한 화기중 조총만 유독 명확한 규격이 없고 모호함
현재까지 발굴된 사료에서 찾은거라곤 '조총 무게는 대략 5~6근 탄약은 대충 2전 5푼~3전 정도로 만들자' 뿐임
그래서 규격좀 기록해서 통일하자는 말이 나온것
비변사등록 숙종 1년 10월 12일(1675년)
이달 11 일 윤대(輪對) 입시 때에 행부호군 이집(李鏶)이 아뢰기를
"조총은 우리나라의 장기(長技)입니다.
각 읍의 월 과총(月課銃) 가운데 총구는 작으나 철환(鐵丸)이 큰 것이 있고 철환은 작으나 총구가 큰 것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것이 서로 맞지 않아 정밀하게 발사할 수 없으므로 급한 일이 있을 경우 사용하기 어려우니..(하략)
1675년 요약 : 총좀 똑바로 만들어라!!
비변사등록 숙종 18년 10월 24일(1692년)
총융사 장희재(張希載)가 아뢰기를
"근래 각 군문에서 조총(鳥銃)을 만들 때에 공장(工匠)들이 물력을 적게 쓰고
공역을 쉽게 마칠 것만을 생각하여 만든 조총이 너무 엷습니다.
그래서 시험발사 때에 부서지고 찢어지는 것이 많은데 막중한 군기를 이같이 허술하게 하니 매우 한심스런..(하략)
1692년 요약 : 총좀 똑바로 만들어라!!
승정원일기 영조 즉위년 11월 19일(1724년)
그런데 조총이라는 것은 겉만 그럴듯하고 실제로 사용하기에 편리하지 않습니다.
뚫어 놓은 총구멍이 좁아서 탄환이 쉽게 걸리고 막혀서 통하지 않으며,
철환(鐵丸)을 넣을 때마다 막혀서 밀어 넣기가 어렵습니다. 각 읍의 월과 조총(月課鳥銃)이 대부분 이와 같으니,
도감에 있는 조총도 어찌 이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아니라고 장담..(하략)
1724년 요약 : 총좀 똑바로 만들어라!!
승정원일기 영조 4년 8월 21일(1728년)
이삼이 아뢴 내용에
이번 변란(變亂) 후에 더욱 변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조총(鳥銃)을 쓰려면 반드시 철환(鐵丸)이 총구(銃口)에 맞아야지만 대적했을 때 쓸모없게 되는 폐단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지난번 출정 때에는 연환(鉛丸)이 총구 보다 커서 하나하나 깎아 내는 데 시일이 많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데 어찌 전쟁에 임하여서 낭패하게 되는..(하략)
1728년 요약 : 총좀 똑바로 만들어라!!
비변사등록 영조 36년 8월9일(1760년)
이번 8월 8일 친림시사(親臨試射)에 입시하였을 때에 훈련대장 구선행(具善行)이 아뢰기를,
“근래에는 조총(鳥銃)을 두들겨 만드는 법이 옛날과 많이 달라서 이것만 해도 개연(慨然)한데
그중에서도 더욱 한심한 것은 총 구멍과 탄환의 제도가 대소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혹은 총구멍은 크고 탄환은 작은 것도 있고,
혹은 탄환은 크고 총구멍은 작은 것도 있으니 이 어찌 위급할 때를 당하여 윤방(輪放)의 소용이..(하략)
1760년 요약 : 총좀 똑바로 만들어라!!
...
...
...
...
조총이 도입된지가 언젠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백년간 총과 탄의 규격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었음
이 이후에는 아예 조총 관리도 못해서 녹슬었다느니 구멍이 막혀서 탄이 안들어간다느니 하는 기막힌 이야기가 나오다가
19세기에 이르면 본격적인 소총의 시대가 열려 조총 자체가 퇴물이 되어버리고 맘
그럼 조총이란게 옛날 물건이라 어쩔수 없이 원래 이랬는가?
물론 조총 자체에 한계가 크긴 하지만 조선은 그중에서도 심각했음
오죽하면
비변사등록 효종 8년 3월 14일 (1657년)
"조총의 일에 관한 회자(回咨)에 '지금 보낼 본국 조총은 본래 거칠고 나쁘며,
일본에서 만들어 온 조총이 가장 좋습니다. 대통관도 어찌 이런 조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일본 사람들의 금지가 점차 엄밀해진 때문에 이제 교환해 구입해서도 이에 응하기 어렵습니다."
청 : 니네 총 진짜 좃구린데 그거 말고 일본총 사다 납품하셈
조선 : 나도 알아 근데 걔네가 안판다는데 어캄ㅡㅡ
하는 기록도 나옴 ㅋㅋㅋㅋㅋ
조선은 국가 차원에서 민간 제작자에게 독점권을 주고 전적으로 생산을 맡기는 형태였는데
조총의 총신 타조와 총강 가공은 의외로 고정밀 기술보다도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음
관이 생산시스템을 독점하고 할당량을 줘서 생산하다보니
1692년 기록처럼 빠르고 쉽게 할당량만 채우려고 하려고 하다가 그만...
게다가 조총 생산을 관리하는 감조관(監造官)은 평생 과거시험 공부하다가 소과만 통과한 채 일하는 말단 공무원이었음
그리고 이들이 정말 관리를 잘했는지 이게 똑바로 돌아가는 체계였는지는
위 기록들을 통해 잘 알수있음
반면 기록에서 자꾸 비교용으로 끌려오는 일본은 무사 또는 철포 장인 출신의 실무직을 두어
총기 품질 관리에 종사하게 했고 총기 제조 역시 독점이 아니었음
각 번마다 개별적으로 생산처에 의뢰해 총기를 구매했는데
판매자와 구매자가 여럿이 있다 보니 맘에 안들게 만들면 다른데서 사면 그만이고
잘 만들어 팔면 다른 고객(번)까지 확보할수 있을 가능성이 있어
총 팔아 돈벌어먹고 살려면 경쟁력을 확보할수밖에 없었음
또한 국가 전체가 다같이 통일 규격을 사용하지 않았다뿐 각 번은 각자 규격이 있었고
이를 매우 중시해서 규격을 군사기밀로 삼았음
유럽은 일본과 유사한 형태지만 각 번 대신 각 지휘관이 총을 구매하는 차이가 있었는데
18세기 초에 이르면 군 전체가 동일한 규격의 총기를 사용하고
각 부품이 지정된 공장에서 생산되며 최종적으로 품질 검수 후 조립되는
현대적인 규격 생산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하였음
근데 저런 총 들고 남들이 감탄할정도로 진짜 존나게 잘쏘고 다님
뭣
요약)
1. 수백년간 총 개못만듬
2. 근데 이걸 들고 실전에서 빠요엔하고다님
3. 좃고수
민간에 위탁 맡겼대잖아 민영화 랍시고 독점권만 줬을때 발생하는 최악의 사례인데 문제는 이거 군납이건 통신사건 현재진행형아니냐
근데 저게 저렇게 된게 조선 후기 세수구조 문제로 개선 사업 할 예산이 안나옴 얘네들도 뭐가 문제고 햬결방안 뭔지는 아는데, 사업 진행할 돈이 없느니깐 나중으로 계속 미뤄대는거임
총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군납이 저랬음. 저세율 작은 정부를 추구한 덕분에 만년적인 예산부족에 시달렸던 탓에 어떻게든 세금을 아끼고자 많은 부분을 민간에 위탁했고 심지어 관리감독조차 제대로 못했던것.
대우정밀 : 아니 싯팔 총기 소모품 좀 교환 하라고!!!
가내수공업아니냐
남한산성에서도 총구 비뚤어진거로 청기병 맞추는 장면 나왓을거임. 나중에 고수가 그거 알아채고 다시 고침.
그건 니가
민영화의 장점..?
포말
가내수공업아니냐
수급처 다변화의 장점이지 조선도 민간에 위탁했다잖아
독점 민영화의 단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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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아으아오우어
대우정밀 : 아니 싯팔 총기 소모품 좀 교환 하라고!!!
으어아으아오우어
K-3는 원래 원본 총에 있던 총기 불량을 개선도 안하고 들여놔서 저런거니까 못만든게 아니라 성의가 없는 총이지
으어아으아오우어
이건 단발식 기관총이 아닌가!
볼트액션(?) 기관총
으어아으아오우어
이건 원본이 되는 총도 이모냥이라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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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7610835853
그건 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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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7610835853
근데 저게 저렇게 된게 조선 후기 세수구조 문제로 개선 사업 할 예산이 안나옴 얘네들도 뭐가 문제고 햬결방안 뭔지는 아는데, 사업 진행할 돈이 없느니깐 나중으로 계속 미뤄대는거임
루리웹-7610835853
부끄러운 조선 같은것 좋아하는 애들 나올줄 알았다
루리웹-7610835853
이렇게 등신이 튀어나오는걸 보면 과학이다
루리웹-7610835853
그래 그래 제발 집 밖에만 나가지마.
루리웹-7610835853
사실인데 이건 ㅎㅎ
루리웹-7610835853
그게 고려말기를 겪어본 사대부집단이 얻은 교훈과 반성에서 나온게 조선의 운영방식임.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쪼잔하고 스케일 작고 ㅂㅅ같아 보이지만 그땐 그때의 시대적인 배경과 요구가 있었음.
루리웹-7610835853
파도 파도 괴담밖에 안나오는 조선이 만든 한글을 도대체 왜 씀?
루리웹-7610835853
그건 어느나라 역사든 다 똑같음 ㅋㅋㅋㅋㅋ 기록 제대로 되어 있는 나라 하나만 잡아놓고 역사 겁나 파보셈 그러면 진짜 별의별 이상한 개연성으로 이상한 일들 엄청 일어남 ㅋㅋㅋㅋㅋㅋ
아니 중앙통제인데 결과물이 쐣이라니... ㄹㅇ 민영화가 긍정적인 경우도 잇구나
루리웹-034626775
민간에 위탁 맡겼대잖아 민영화 랍시고 독점권만 줬을때 발생하는 최악의 사례인데 문제는 이거 군납이건 통신사건 현재진행형아니냐
그러고보니 독점을 왜줬지? 수백년동안 카르텔인가
저걸 만들어서 사는게 아니라 세금대신 또는 세금 외 바치는 납품 있었음 인근 지역에서 철 등 재료가 산지라던지 대대로 대장간 집안이였다던지 도자기가 예 그러니 만드는 사람도 시큰둥 받는 사람도 시큰둥 보는 사람도 시큰둥
남한산성에서도 총구 비뚤어진거로 청기병 맞추는 장면 나왓을거임. 나중에 고수가 그거 알아채고 다시 고침.
S급은 호랑이 잡으러갔겠지 ㅋㅋ
총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군납이 저랬음. 저세율 작은 정부를 추구한 덕분에 만년적인 예산부족에 시달렸던 탓에 어떻게든 세금을 아끼고자 많은 부분을 민간에 위탁했고 심지어 관리감독조차 제대로 못했던것.
결론: 작은정부는 잘못되었다
조선때부터 화력에 진심이었네
병인양요였나? 프랑스 애들이 당대 최신 총기로 싸울때 우린 구식 화승총썼다고 굽시 만화에서 봤었음.
저거 총만 그런게 아니라 말도 그럼 관료주의가 심해지니 질로 따지기 싫어서 양으로 따지니 말이 군마가 아니라 잡말이 되버려서 여진 몽골에서 수입함
지금이랑 다르게 일본이 총 잘만들었나보네 지금은 일본총 개판이라던데
지금은 일본이 조선과 비슷한 시스템이라 ㅋㅋㅋ
사실 총 자체는 나쁘지 않게 만듬 문제는 군용 총인데 일본 내부 문제로 가성비가 똥망이라는게 문제임 조선은 당시에 총자체 성능이 문제였다면 일본은 가격이 터무니 없다는거겠지
저렇게된 근본적인 이유 임진왜란 이후 망했어야 할 나라를 억지로 기워붙여 운영함
저 이야기 조만간 조선까 소위 부끄러운 조선 같은류 좋아하는 애들이 왜곡해서 유튜브에 떠돌각 보인다
차라리 복제품이라도 만들지
공장(工匠)들이 물력을 적게 쓰고 공역을 쉽게 마칠 것만을 생각하여 만든 조총이 너무 엷습니다. 이 부분 보면 복제품 만들라고 줘도 제대로 안됐을듯 싶음. 일단 관리 감독을 잘 해야 하는데 그거부터 안됐으니.....
설계가 문제가 아니라 생산품질관리가 엉망진창이라서 복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듯 프랜차이즈가 본점이 끝내준다고 관리 부실하면 분점들 엉망진창되는거 마냥
작은정부를 굴리다보니 생기는 일이지...
청나라 "시1발 이새1끼들 총 쏴제끼는거보면 존나 개쩔어서 총이 좋은가 싶으니 총 갖다 바치라 해봤건만..." ?? "아 대충 처만들어도 대충 다 처맞는데 어쩌라고ㅋㅋㅋ"
그래서 나중엔 총병을 직접 올려보내라고 해서 용병으로 쓰잖아
사농공상 하고 공 천대해서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총 잘쏜것도 십년 넘게 야산에서 구르던 사냥꾼 출신들 포수로 징집해가서 그런거지 농민 출신으로 끌려온 일반병들은 조준은 커녕 열도 제대로 못맞추는 경우가 대다수였음.
조선말기 호랑이 포수들 저런 화승총 으로 그 무서운 호랑이 들을 사냥 하고 다녔다. 신미양요때 광성보 방어전에 자원 투입된 호랑이 포수 들은 윈체스터 소총으로 무장한 미해병대 와 전투를 벌렸는데 단 한명도 도망치지 않고 광성보 수비대와 함께 전원 옥쇄 전사 하셨다. 이후 광성보 상황을 보고 받은 미함대 사령관은 한강을 따라 북상해서 영등포 까지 진출예정 이였는데 우리가 통상교섭을 하러왔지 전쟁을 하러 온건 아니다 하여 회군을 하게됨
저할배들 개쩌는게 조총은 한발 쏘면 재장전이 1분이라 죄다 원샷원킬 헤드샷만 하는 빠요엔들만 남았다. 호랑이 잡을떄도 호랑이가 5미터인가 5보 내로 접근할떄가지 기다리다가 쐇다고함. 근데 조총이 격발타이밍 조정이 되나? 그걸 해낸것도 대단
장희재?? 저 놈 여동생 빽으로 걍 놀고먹은 탐관오린 줄 알았더니 그래도 일을 하긴 했네?
반대로 생각하면 좃고수 아니면 총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을만큼 엉망이었다는거네
아 그래서 똥총들고 에임 깎는게 국룰이었구나
작은 정부를 항상 지향해서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선 엉망진창 = 어느 정도 직책 있는 사람은 3-4가지 업무를 겸직시켜버림 사농공상 때문에 공업은 항상 뒤로 쳐짐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
조선이 다른건 모르는데 공업기술은 심각하게 떨어지긴 했음 일본가서 미개한 왜구놈들 비웃다가도 수차나 바퀴 농업기구들 보고 우리 기술이 왜구만도 못하네 ㅠㅠ 이런 기술들 꽤 나옴
17세기부터 시작된 구린 품질의 화기성능 때문에 지금까지도 화력에 집중했던거로군!!!
결국 다 돈이 문제였네
저딴 총으로 금나라 기병이 지평선에 보이면 쏴맞췄단 소리야?
명도 청이랑 싸울때 총쏘는 애들만 좀 보내달라햇고 나선정벌때도 이상하게 졸라 잘쏘고 기묘함
돈이 없는 거도 맞고 잘 만들면 옆나라한테 제공도 해야 해서 걍 손 놓는 거도 있었음. 이런 부분에서 중국이 조선 기술 발전이나 활용 억제기 역할을 제법 함.
짐작하건데 수차를 이용한 밀링기술같은게 개발/도입되지 않아서 일정한 구경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모양임. 주조로 만드는 화포류는 잘 써먹었던걸로 봐선 금속가공기술이 부족한건 아니였던거 아닐까 싶음
조선이 수백년간 시달린 고질병 // 총기제작 민영화 결과 처참 ㄷㄷ
그것도 하필 독점 민영화...
철광석 없어서 사철 모아다 겨우 철기 만들어 쓰던 일본보다 못했다니...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
군납 비리는 종특이네.
2024년 대한민국 : 총 좀 똑바로 만들어라
TMI)1692년 기록에 나오는 장희재는 그 유명한 장희빈의 오빠다
왠지 포수들이 전부 커스텀하고 솔질하고 하면서 썼을듯;;;
위에선 숫자만 맞추는데 급급했고.. 아래는 품질보단 양이라고 했는거니...어??? 이거 저기 위쪽조선도 비슷한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