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시대 환관들이 성격을 보면
(전략)
황후가 위세를 타고 질투하고 방자하여 많은 이가 짐독(鴆毒)으로 살해당했으므로 상하가 입을 다물고 〔一〕 간언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가 핍박받고 두려워한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항상 평안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말이 새어나갈까 두려워하여 모의하지 못했다.
(전략)이에 황제가 측간에서 홀로 당형을 불러 묻기를,
(중략)
“양 장군 형제가 국가의 전권을 쥐고 내외를 협박해 공경 이하가 그 지시를 따랐다. 지금 그를 주살하고자 하는데, 상시(常侍)의 뜻은 어떠한가?”
선초 등이 대답해 말하기를,
“(양씨는) 진실로 국가의 간사한 역적으로, 마땅히 주살되어야 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신 등은 미약하고 용렬하여 폐하의 뜻을 꿰뚫어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라 했다.
황제가 말했다. “일이 이렇게 명백하니[審然=明白], 상시는 은밀히 그를 도모하라.”
(중략)
“간신이 국가를 위협하는데 마땅히 복주되어야 하거늘, 어찌 의심하는가!”
이에 다시 서황과 구원 등 다섯 명을 불러 모의를 결단했고, 황제는 선초의 팔뚝을 깨물어 피를 내 맹세로 삼았다. 이에 조서를 내려 양기와 그의 종친 및 파당을 잡아들여 모두 주살했다.(중략)이로부터 권세가 환관에게 돌아가 조정이 날로 혼란해졌다.
-환제기
황제의 믿을 만한 측근으로 다들 입을 다물고 간언을 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황제가 믿을만한 사람으로 환관을 불러서 양기를 척살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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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제가 환령이라고 영제와 동급취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따지고 보면 환제 시절은 영제와 비교하면 폭주하지 않았음
완현(宛)에 장범(張汎)이라는 부유한 상인이 있었는데, 환제의 미인(美人 : 후궁의 품계)의 여자 쪽 친척이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사치품들을 만드는 데 재능이 있어 자못 환관들에게 뇌물로 건네니 미인과 장범 모두 높은 지위를 얻었다. 그 기교를 믿고 권세를 휘두르며 방종하게 다녔다. 잠질과 장목이 성진에게 권해 장범 등을 체포했는데, 사면령이 내려진 뒤였지만 결국 주살했다. 아울러 그 친족과 빈객을 잡아들여 이백 여 명을 죽인 후 나중에야 상주했다. 중상시 후람이 장범의 아내에게 억울하다고 호소하게 했고, 황제가 크게 진노해 성진을 잡아들여 하옥시켜 죽였다. 잠질과 장목은 제(齊)와 노(魯)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사면령을 만나 풀려났다. -잠질열전
좋게 포장해도 사면령 무시하고 멋대로 죽였는데 일부만 죽이고 사면령 내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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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내군의 장성(張成)이란 사람은 풍각점을 잘 쳤는데 곧 사면령이 있을 것이란 점괘가 나오자 자식을 시켜 사람을 죽였다. 이때 하남윤이었던 이응이 범인을 체포하라 독촉했고, 사면령이 내려왔는데도 더욱 화를 내며 결국 처형했다. 장성은 전부터 자신의 재주를 이용해 환관들과 교류했고 황제도 그에게 점을 쳐보라 묻곤 했다. 장성의 제자 뇌수(牢脩)가 상소를 올려 무고하기를, 이응을 비롯한 이들이 태학에 공부하러 올라온 사대부들을 양성하며 군국의 유생들과 교류하고 결탁했고, 당파를 이루어 서로 도우며 조정을 비방하고 풍속을 어지럽힌다고 했다. [一] 천자가 진노해 군국에 조서를 내려 당인을 체포하고 동조자들도 미워하며 다스리라고 포고했다. 마침내 이응 등을 잡아들였다. 진식(陳寔) 등 이백 여 명까지 연좌되었다. 도망쳐 잡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현상금을 걸어 수배했으며 사방으로 파견한 관리들이 길에서 서로 마주칠 지경이었다. 다음 해 상서 곽서(霍諝)와 성문교위 두무(竇武)가 표를 올려 용서를 요청하자 황제의 마음이 점점 풀어졌고, 모두 사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생 관직에 나서지 못하게 했다. 당인의 이름은 조정의 장부(王府)에 적혔다.
이때부터 곧고 올바른 기풍이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정도(正道)를 굽혀 사사로이 결탁하는 풍습이 퍼졌다. 해내에서 명망을 우러러보는 문화가 성행해 서로 칭송하면서(摽搒) [一] 천하의 명사들에게 칭호를 붙여주었다. 차례대로 「삼군三君」,「팔준八俊」, 「팔고八顧」, 「팔급八及」, 「팔주八廚」라 했다. 옛날의 「팔원八元」, 「팔개八凱」와 같았다. 두무(竇武), 유숙(劉淑), 진번(陳蕃)을 「삼군」이라고 했다. ‘군君’은 당대에 조종(祖宗)이 될 만하다는 의미다. 이응(李膺), 순익(荀翌), 두밀(杜密), 왕창(王暢), 유우(劉祐), 위랑(魏朗), 조전(趙典), 주우(朱宇)를 「팔준」이라고 했다. ‘준俊’은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후략)
-당고열전
6월 경신일(庚申)에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당고(黨錮) 사건으로 (갇힌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고 연호를 영강(永康)으로 고쳤다. [一]
-환제기
1차 당고의 금 원인을 보면
장성이 사람을 죽이기는 했지만 사면령을 내려왔는데도 무시하고 멋대로 죽여서 발생한 사건
그래도 얼마 안가고 풀어줌
환제때는 영제와 비교해서 폭주하지 않았고 사면령 내려온 걸 무시하고 죽인 걸 풀어주었음
환제가 죽고 영제 시기가 되서 정치적 균형이 박살나는데
그게 두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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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환제가 죽고난 후 상황을 보면
그 해 겨울 황제가 붕어했는데 후사가 없었다. 두무가 시어사였던 하간(河閒) 출신 사람 유숙(劉儵)을 불러 국가의 종실 중 현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유숙이 해독정후(解瀆亭侯) 유굉(劉宏)을 추천했다. 두무가 입조해 태후에게 아뢰었고 결국 그를 불러 황제로 세웠으니, 이 사람이 영제다. 두무를 대장군에 배수하고 항상 금중에 머물도록 했다. 황제가 즉위한 후 천자를 세우는 데 공이 있었다는 이유로 문희후(聞喜侯)에 옮겨 책봉했다. 아들 두기(竇機)를 위양후(渭陽侯)에 책봉하고 시중에 배수했다. 형의 아들 두소는 호후(鄠侯)로 보병교위(步兵校尉)가 되었고, 두소의 동생 두정(竇靖)은 서향후(西鄉侯)로 시중 겸 우림좌기(羽林左騎)를 감독하는 일을 맡겼다.
-두무열전
일가친척들을 관직에 넣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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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록에 따르면 황문과 상시는 다만 궁내의 일을 처리하고, 문호를 지키며, 황제와 가까운 부서(近署)의 재물을 관리할 뿐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정치에 참여하게 하고 과도한 권력을 맡겼으니, 그 자제들이 관직에 분포한 채 전횡하며 탐욕을 부리고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천하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모두 주살하여 조정을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태후가 말했다.
“한나라의 옛 기록을 보면 대대로 환관을 기용했거늘, 다만 죄가 있는 자들만 주살할 뿐이지 어떻게 모두 죽일 수 있겠습니까?”
-두무열전
두태후(竇太后)가 조정에 나와 섭정했다. 궁중에서 정책을 정한 후 해독정후(解犢亭侯) 유굉(劉宏)을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영제(靈帝)이다.
-환사두황후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환관은 황제의 믿을 만한 측근인데 그걸 모조리 죽이자고 함
그러니 같은 일족인 두태후도 놀라서 죄있는 사람만 죽이지 왜 모두를 죽일 수 있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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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두무가 숙위를 그만두고 막부로 돌아갔다. 중서(中書)의 관원이 먼저 장락궁의 오관사(五官史) 주우(朱瑀)에게 보고했다.
주우가 두무의 상주문을 훔쳐보고는 화를 냈다.
“방종한 환관이야 본인이 죽일 수 있겠지만, 우리들은 무슨 죄가 있어 모두 멸족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에 크게 소리치기를
“진번과 두무가 태후에게 황제를 폐위시켜야 한다고 아뢰었으니, 대역죄다!”
(중략)
두무와 두소는 도주했고, 군이 추격하여 포위하자 모두 자살했다.
-두무열전
-영제기
두무가 환관을 모조리 죽일려고 하다가 실패한 악영향은
첫번째로는 견제세력이 사라져서 정치적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서 영제가 폭주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거
두번째로는 나쁜선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악영향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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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하진이 장락궁에 들어가 태후에게 아뢰어 모든 상시 이하를 모조리 죽이고, 삼서(三署)의 낭(郎) 중에서 가려 뽑아 환관의 거처를 지키기를 청하였다. 모든 환관들이 서로 말하기를
“대장군이 병이 났다 칭하고 상례(喪禮)에 임하지도 않고 장지(葬地)에 전송하지도 않더니 이제 돌연 궁으로 들어온 것은 무슨 뜻인가? 두씨(竇氏)의 일[두무가 환관들을 죽이려던 것]이 다시 일어나려는 것인가?”-하진열전
건석은 의심스럽고 불안하여 중상시 조충 등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대장군 형제는 나라를 휘어잡고 조정을 오로지하는데다 이제 천하의 당인들과 더불어 선제(先帝-영제)의 좌우 신하를 주살하려 모의하니 우리들은 멸문 당할 것이오. 다만 나 건석이 금군(禁軍)을 맡고 있으므로 잠시 머뭇거리는 것이오. 이제 응당 함께 궁문(宮門)을 닫아걸고 급히 사로잡아 주살합시다.” 하였다. 중상시(中常侍) 곽승(郭勝)은 하진과 같은 군(郡) 사람이었고, 태후와 하진이 존귀(尊貴)하게 것은 조승이 힘썼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조승은 하씨들과 친하였고 신임을 얻었는데 드디어 조충 등과 함께 의논하여 건석의 계책을 따르지 않기로 하고, 그 편지를 하진에게 보여주었다. 하진이 이에 황문령(黃門令)으로 하여금 건석을 잡아들이게 하여 주살하였고 그 군사를 거두었다.
-하진 열전
건석은 금군을 맡고 있는데 그런 건석을 처리하는데 중상시인 곽승이 협력한 걸 생각하면 환관과의 공존을 택했어도 괜찮았음
그런데 하진,원소는 그러지 않고 흑산적을 위장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환관들을 없앨려고 하다가
오히려 환관의 반격을 받고 하진이 죽고 동탁의 집권이 불러왔음
따지고 보면 두무도 죄있는 환관들만 죽였으면 반격을 당할 여지가 없었을텐데
하진,원소는 같은 실수를 반복했음
두무가 적당히 타협해서 죄있는 환관만 죽였으면 될일을 모조리 죽일려다가 반격을 당해서 영제가 폭주할 토대를 마련했음에도
환관을 없앨려고+ 일가친척들 관직에 박았지만 깨끗하다고(?) 삼군이라고 칭찬한
뒤틀린 후한시대 가치관이 동탁의 집권을 부르는데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