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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의 안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둘 중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철컹대는 소리만이 이리저리 울려댈 뿐이었다. 사령관은 이 어색한 침묵이 싫어 무슨 이야기라도 꺼내볼까 하다가도, 어쩐지 그것을 허락치 않는 듯한 오메가의 태도에 말없이 고개를 젓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여기인 것 같네.”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메가 쪽이었다. 그녀는 텅 빈 벽으로 다가가서는 케스토스 히마스를 바삐 조작하는 한편 벽의 이곳저곳을 눌렀다. 일견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이었지만, 잠시 후 놀랍게도 벽이 열리며 그 안에서 콘솔 터미널 하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와, 굉장한데? 이제 이걸로 시설을 정지시키면 되는거야?”
순수한 놀라움에 사령관이 감탄하며 물었다.
“....”
“오메가?”
하지만 오메가는 대답하지 않는다. 사령관이 걱정스레 그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른 그 순간.
-철컥
오메가는 갑자기 어디서 났는지 모를 권총을 꺼내 사령관에게 겨누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령관은 그대로 덜컥 굳고 만다.
“...저기, 무슨 상황이야? 설명해줄래?”
양손바닥을 펼쳐보이며 적의가 없음을 어필하는 사령관. 오메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사령관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 읽어내기 위해 사령관은 부단히 애를 썼다.
“만약…”
오메가가 천천히 입을 연다.
“내가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전부 기절시키고, 인간님을 억지 부려가며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 사실은 인간님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할거야?”
“...뭐?”
이어지는 물음에 멍하니 되묻는 사령관.
“관문을 통과하고 쓸모없어진 인간님을 죽인 다음, 그 시체조차도 찾지 못하게 구인류의 유산 아래 묻으면 지금 이 세상에 내 위에 설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나는 이 시설을 원래 목적대로 가동해 압도적인 무력을 손에 넣을 수 있지. 그 누구도 감히 대항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지배자가 될 수 있다고.
지금까지의 모든 촌극이 바로 이것을 위함이었다고 하면….”
오메가는 한 번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말을 멈춘 뒤, 숨을 크게 고르고….
“인간님은 어떻게 할거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네 말이 정말이라면….”
사령관은 한동안 오메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아메리카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할래. 그리고 세상의 지배자로서 더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구조하고 거두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신경써 달라고도 부탁할거야. 구인류들이 저지른 비극이 다시 한 번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령관이 어깨를 으쓱하며 담담하게 말한다. 오메가의 눈동자와 총구가 파르르 떨려왔다.
“이 정도면 네가 원하는 대답이야? 부탁이니까 어설픈 연기는 그만두지 그래.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그나마 덜 혼난다고.”
“이런, 티 났나?”
사령관의 말에 오메가가 총구를 즉각 거둔다. 조금 연기를 곁들여 사령관의 마음을 떠보려는 시도였지만 아무래도 대차게 실패한 모양이다.
“언제부터 연기인 걸 알았어?”
“언제긴, 네가 입 연 순간부터 알았어. 너 연기에 소질 없구나.”
“하여간 재미없는 남자라니까.”
오메가가 입을 댓발 내밀고 툴툴대며 콘솔 터미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복잡한 콘솔이네. 레모네이드 시리즈가 아니면 뭘 어떻게 할 엄두도 못 내겠어.
그건 그렇고, 인간님. 지금 가지고 있는 오메가 산업 회장 자격 때문에 나에 대한 명령권도 있는거 알지? 조금 전에도 총 내리라고 명령했으면 끝나는 거였는데.”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로, 오메가가 지나가듯 말했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명령따위 없어도 네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래? ”
오메가는 알듯 말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옆 얼굴에 어렴풋이 보이는 미소인지 찡그림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 사령관의 시선을 잡아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지만, 물어도 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 궁금함은 마음 속으로 삼킨다.
오메가 역시 사령관의 시선과 그 안에 담긴 질문을 눈치챘지만, 구태여 아는 체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가. 총구가 겨누어지고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당신은 스스로의 안위보다 바이오로이드들을 우선하는 거구나.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말했지만, 내가 정말로 쏠 작정이었다 해도 당신은 똑같이 말했을테지.
나조차도 내 안에 한조각 선함이 있으리라고 믿지 못하는데, 당신은 나 자신보다도 나를 믿어주는구나. 명령조차 내리지 않다니, 한 방 먹었는걸.’
오메가는 콘솔을 조작하며 조금 전의 문답을 떠올렸다. 총구가 똑바로 겨누어졌음에도 흔들림 없었던 사령관의 눈동자와 신념을 떠올렸다. 빗방울 하나 들이치지 않는 옥좌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두려워했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그 찬란하리만치 당당한 태도를 떠올렸다.
‘당신 앞에 서있으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아니, 그저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녹아 없어질 것만 같아.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독선과 아집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와, 빈손으로 일어서서 자애와 선의로 모든 것을 품은 당신.
그 대비가 너무 싫었어. 당신이 이제껏 새겨온 모든 발자국 하나하나가,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고 나무라는 것만 같아서.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손의 상처가 아려온다. 사령관이 손수건을 감아준 바로 그 상처. 끝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곪아 울부짖게 만들고, 무너지게 만들고, 제 손으로 난도질해버렸던 그 상처 말이다.
한때는 상처의 고통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고민하기까지 했다. 헌데 종국에는 이 상처 덕에 오르카와 공동전선을 펼치고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해결하게 되다니.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일 투성이다.
‘왜일까. 이제 와서는 어찌되어도 상관 없을 것 같아. 지금까지 내가 한 선택이 모두 잘못되었더라도, 씻을 수 없는 죄가 일평생 나를 내리누르더라도, 과거의 그림자가 날 질식시키려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
내가 원하는 한, 당신은 언제나 내 곁에 머물러 줄 테니까. 내가 무너지려 하면 어깨를 받쳐주고, 쓰러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괴로워 울면 위로해 줄테니까. 내가 홀로 당당히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말야. 그렇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도, 완전히 붕괴하고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치기 시작한 것도, 과거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받아들이겠다 마음 먹은 것도, 모두 사령관과 연관되어 있었다. 카라카스에서 매어준 별 볼 일 없는 손수건, 그 손수건으로부터 이어진 참회의 나날, 오르카에 감화되어 선의로 자신을 보살핀 유미, 죽음 문턱에서 되살아나 전장으로 향해 바쁘게 뛰어다닌 나날들에 이르기까지. 사령관이 없었다면 그 중 무엇 하나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있잖아. 억지를 부려가며 당신과 단둘이 온 이유… 단지 시간낭비가 싫어서였다고 말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어.
그냥 당신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 다른 누구의 눈도, 귀도 없는 곳에서 그저 함께 있고 싶었어. 말로 설득했다면 당신의 부관들 등쌀에 영상장비니 녹음장비니 이것저것 달고 와야만 했을테니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나 유능하다는 것도 조금은 보여주고 싶었어. 이미 당신 곁에 수많은 여자들이 있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해. 이를테면, 이 시설을 돌파해서 정지시킨다던가… 응?’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다. 명령어를 몇 개만 더 입력하면 시설은 그대로 작동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숨겨져 있던 코드 몇 줄이 돌연 나타나 오메가의 눈에 들어왔다.
“...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당혹스러운 감정을 무심코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척 봐도 안색이 눈에 띄게 달라진 탓에, 사령관은 그 이유를 물었다.
“...아니, 아니야. 아무 일 없어.”
오메가는 아무렇지 않은 체를 하며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손을 한 번 꽉 쥐었다가 다시 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쉬었다. 사령관이 더 캐묻지 않기를 바라며.
‘하하… 이것 봐라. 시설을 정지시키면 무조건적으로 자폭 프로토콜이 개시되도록 짜여있네. ’
그 숨겨진 코드의 정체는 바로 자폭 프로토콜의 트리거. 오메가 산업 회장이 직접 이곳에 들어와 스스로 자폭 코드를 발동하리라고는 오메가조차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작업 자체를 초기화시킬 방법은…? 없어.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진행해야 해.
그럼 프로토콜을 멈출 방법은… 당연히 없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지연시킬 방법은…?
...있긴 하네. 내가 내내 이곳에 붙어있어야 하고 멈추는 순간 터지긴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나는 확실히 죽겠군.’
없던 일로 되돌릴 수도 없고, 무력화시킬 수도 없다. 오메가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겨우 늦출 수만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그녀가 멈추는 순간 터져버릴 것이고.
‘하지만, 왜지? 회장이 나를 대동하고 북아메리카에서 직접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누굴 상대하고 있든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뜻일텐데. 어째서 이런 프로토콜을 숨겨둔거야?
심지어 복구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해서야 나타나게 한 이유는 뭐지? 어떻게 봐도 날 죽이려고 파둔 함정이잖아?
아냐, 날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은 필요없지. 명령권을 이용해 손수 목졸라 죽이면 그만인데.’
오메가는 이 시설 자체가 자신을 죽이기 위한 함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회장이 자신을 죽이고자 한다면 더 쉬운 방법이 훨씬 많았으니까.
‘생각해보자. 열세일 경우를 대비한 시설이 작동했어. 하지만 직접 멈춰세우러 오려면 우세한 상황이어야만 해…. 언뜻 보면 모순이야.
그렇다고 불가능한건 아니야. 오작동을 했거나, 열세가 해소되어 다시 우위에 선 상황이라면 가능하지.
직접 방문해야만 이 콘솔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이유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도 멈춰세울 수 없게 하려고.
레모네이드만이 조작할 수 있는 콘솔을 만들어 둔 이유는? 침입자가 어떻게든 외부의 보안을 뚫더라도 시설은 정지시킬 수 없도록.’
현재 주어진 조건을 토대로, 설명 가능한 가설을 떠올리는 오메가.
‘여기까지는 좋아. 그렇다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도록 자폭 프로토콜을 숨겨둔 이유는?’
하지만 구태여 자신이 죽는 형태로 함정을 파 둔 이유만은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프로토콜을 조금만 손보면 둘 다 여유롭게 탈출할 수 있고, 만일 죽여야만 한다면 탈출한 이후 언제든 손쉽게 죽일 수 있는데, 어째서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썼을까?
‘직접 만든 시설이 오작동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숨기려고? 아니면 설마… 자신이 패배를 대비했다는 사실을 묻고 싶어서?’
다양한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이 두가지였다. 오작동을 했든, 한때 열세였다가 극복하고 우세를 점했든, 회장의 입장에서는 이 시설의 존재 자체가 과오일 터이다. 완벽한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것도, 패배를 대비해 준비했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기에 그 과오를 지하 깊은 곳에 묻어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만든다. 줄곧 곁을 지켜온 충직한 비서마저도 예외는 아니다.
스스로 추론하고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광기어린 사고방식. 하지만 그녀의 주인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을 알기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마지막까지 날 실망시키지 않네요. 당신은.’
오메가는 이 긴 시간이 지나서도 존재감이 흐려지지 않는, 증오스러운 옛 주인의 얼굴을 또 한 번 떠올리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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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오메가가 추론하는 부분이 좀 장황한 것 같아서 다시 설명하자면
시설의 목적:
1) 자기가 죽었을 때 혹은 패배가 거의 확실할 때 활성화시켜서 자기 이긴 놈 엿먹이기
2) 자신 외의 펙스 회장이 와서 정지시키려고 시도하면 잔혹하게 죽여서 복수하기
입장 조건과 시설 정지 난이도가 빡센 이유:
-어중이 떠중이가 정지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어찌어찌 입구 보안 뚫어도 내부 콘솔은 못 뚫게 하려고
이 시설이 활성화된 후 회장이 직접 왔다:
-북아메리카가 본거지인데 여기까지 오메가를 동행하고 왔다는 것 자체가 여유가 철철 넘친다는 뜻
-패배 혹은 열세를 대비한 시설의 본래 목적과 모순됨 > 가능한 상황은 1)시설이 오작동했음 2)질 것 같았는데 어찌어찌 다시 이김
1)시설이 오작동했다: 완벽한 내가 실수하다니 분하다
2)질 것 같았는데 다시 우세를 점했다: 완벽한 내가 패배를 대비했다는 사실이 창피해
> 창피하니까 시설 묻어버리고 아무도 모르게 해야겠다.
>> 내 과오를 알아버린 오메가도 여기서 시설이랑 터져죽게 해야지. 명령을 내려서 내가 나갈 시간만 벌고 죽게하자.
대충 이런흐름
Q. 뭐 그런 이유로 저 난리를 쳐 오메가 회장 미친1놈임?
> A. 미친1놈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