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술이고 자시고 없어. 머리가 새하얘서 빠른 말로 뭐 떠들었는지 알지도 못해.
메모의 글자가 흐릿하게 보여서 읽는 걸 포기한 부분까지밖에 기억이 없다고."
"그래서 내하고 짠 초안은 싹 무시한 기구나. 협의한 거캉 전혀 다른 야기 시작하니께 옆에서 내가 얼매나 가슴 졸였는지......."
"으극...... 그건 미안하다고! 하지만 대강은 메모와 같지 않았어? 너무 망쳤으면 그건 그거대로 아나스타시아 씨가 스톱했을 거잖아?"
중대 국면에서 존재가 잊힌 메모에는 도시 사람들의 불안을 불식하기 위한 아나스타시아의 교섭술과
스바루가 아는 멋들어지고 위트 있는 조크가 수북하게 담겨 있다.
설령 낭독에 실패했어도 이 내용을 제대로 따랐다면 괜찮았을텐데-.
"이리 말하믄 뭐한디, 나츠키의 아까 야기, 그 원고의 내용을 전혀 안 건드렸거든. 진짜 스치지도 않았다카이."
(중략)
네 사람 중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선 율리우스가 엄숙하게 주억거리고 말했다.
"너는 협의하지 않은 내용을 방송에서 말했어. 특히 이내 밝힐 예정이었던 '나태' 토벌의 실적을 후반까지 숨긴 의도.
그건 무슨 작정이냐고 따져 묻고 싶을 정도였지."
"진짜냐! 그거 말 안 했으면 난 완전 어디 누구인지 영문도 모를 놈이잖아!
그 지경이었으면 도중에 말려라 좀! 이상한 상황이 되어도 재정비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으면
그건 그냥 다시 하는 편이 나을 때라고!"
"재정비한다?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얘기고 말고."
방송의 의의 그 자체가 의심스러워질 실태,
여태까지 들은 이야기로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판단한 스바루에게 율리우스가 성실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표정은 스바루에게 일종의 경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훌륭한, 연설이었다."
(중략)
"오히려 사기가 너무 올라서 다들 무모하게 굴지 않을까 그쪽이 더 걱정일 정도데이.
여기에 있는 우리도 '분노' 영향을 받았는지 기합 팍 들어갔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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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아가 대본을 써줬는데, 그거 싹 무시하고 그냥 즉석에서 연설한 내용.
특히 원래 대본에서는 맨 처음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힌다는 전개였음.
다들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게, 스바루가 연설하게 된 건 이렇게 암울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연설하면 믿음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란 생각이었음.
근데 스바루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훌륭한 연설을 하면서 사기를 끌어올렸음.
즉 다른 사람들의 당연한 상식을 그냥 말빨 하나로 넘어선 그런 연설이었다는 거.
애니에서는 별로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