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3554421
1618년 음력 4월, 후금의 명나라에 대한 첫 공격은 성공적이었다. 무순을 포함하여 두 곳의 성이 함락되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소규모 요새와 마을들이 박살났다.
수십만의 포로들이 붙잡혀 후금으로 호송되었고 식량과 가축들이 줄줄이 허투 알아로 들어왔다.
누르하치는 쉬지 않고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 대상은 화표충, 범하(퍼나하), 삼차아(산차라)등의 성이었는데,
거기에는 누르하치가 명나라로부터 강탈당한(것으로 여기고 있던) 후금 영토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누르하치는 예전부터 그 영토들을 탈환코자 했고, 그렇게 무순을 함락한 뒤 그 곳들을 공격 대상으로 꼽은 것이었다.
그런 작업을 하는 한편으로 누르하치는 기만책을 썼다. 그는 조선과 명에 외교적으로 접촉을 하면서
"내가 군대를 일으켜 무순을 공격한 것은 변경 지역 명나라 군대의 핍박이 너무 심하여 어쩔 수 없이 행한 조치에 불과하다. 천자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신다면 나는 다시 조용히 지낼 것이다."
는 뉘앙스의 말을 흘렸다.
이 탓에 명 조정에서는 혼란이 일어났다.
누르하치가 정말로 명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단순 지방을 약탈한 것에 그칠 것이라는 추측에서부터,
당장 누르하치를 토벌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우후죽순으로 들고 일어났다.
조정이 그렇게 혼란스러워 졌지만, 명나라는 일단 조치 자체는 취했다. 무순의 싸움과 이어진 장승음의 패전으로 인해 지휘관이 비게 된 요동에 신임 지휘관들을 보냈고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노장들을 재기용했다. (양호가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요충지들에 병력을 증강배치했다. 그러나 누르하치를 확실히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정론은 정해지지가 않았다.
명 조정이 아직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때에 누르하치는 다시 한 번 군대를 일으켰다.
위에서 언급했던 명나라 성들이 공격 대상이었다. 5월 17일날 출병한 후금군은 19일부터 공세에 나서서 당일에 11개의 요새를 함락했다.
다음날 20일에는 송산돈과 그외 네 개의 요새 또한 포위하여 항복을 종용했다. 하지만 명군은 항복을 거부하고 죽기로 싸웠고, 그 결과 전멸당했다.
23일까지 이어진 전역으로 후금은 총 17개의 성을 손에 넣고, 양식을 두둑히 챙겨 허투 알아로 복귀했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정체된 조정 하에 놓여 있던 명나라 또한 누르하치가 고작 국경 약탈에서 멈추지 않을 것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