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3555014
1618년 음력 5월, 누르하치의 후금군은 4월에 무순을 함락한 지 한 달여만에 명나라의 변경 17개성을 함락하고 수십개의 부락을 다시 한 번 대거 공격했다.
둔중한 명나라 조정조차도 이제 누르하치의 목표가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즉시 추가 조치를 취했으나, 암군들의 발흥과 만력 3대정으로 쇠약해진 명나라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당장 누르하치가 공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청하에 3천명의 병력을 증파하고 국고에서 돈을 털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협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뒤라서야 이런 준비를 하는 것은 그리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명나라는 외교적인 측면에서 특히 힘을 기울였다.
그들은 우선 누르하치가 석방한 명나라 사람들과 그 밖의 추가 수행원들로 구성된 사절단을 누르하치에게 보내어, 누르하치에게 강화 협상을 제의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이제는 거진 유일한 여진 독립세력이 되어버린 예허의 긴타이시, 부양구와 연락해 그들과의 연합을 확실히 했고
조선에도 연락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명나라가 도움을 주었던 것을 상기시키며 누르하치를 압박하는데에 힘을 보태라고 종용했다.
명나라의 외교 행보의 결과는 간단했다.
우선 강화 협상의 경우, 당연히 파토났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명분의 정당함을 명나라 조정이 인정할 것, 금은비단 등의 사례품을 자신에게 내릴 것 등의 조건을 내걸었고 명나라는 당연히 그것을 거부했다.
동맹의 경우, 명나라의 의도는 성공했다. 후금에게 짓눌려 있던 예허는 당연히 명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조선 역시 명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명- 조선 -예허의 대 후금 삼각 포위망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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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반을 위한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