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3556086
명과 후금간의 강화 협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명나라는 누르하치에게 공격을 멈추라고 했으나,
누르하치는 자신의 명분 대의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막대한 사례품을 준다면 생각해 볼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전쟁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밖에 없게 되자 명나라는 예허, 조선과 연대하여 후금 포위망을 작동시켰다.
누르하치는 명이 그렇게 행동하건 말건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그것은 후금에서 가장 가까운 명나라 요충지인 청하에 대한 공격이었다.
청하는 훌륭한 지형을 끼고 있는 전략방위요새였다. 그리고 그 곳을 지키고 있는 곳은 청하 유격(혹은 참장) 추저현 이었다.
추저현은 뛰어난 정신과 우국충정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무순이 함락되자마자 명 조정으로부터 3천여명의 증파병력을 받은 뒤
곧 자신에게 이어질 후금군의 대규모 공세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음력 7월 20일, 누르하치는 허투 알아에서 팔기 대군을 이끌고 청하를 함락하기 위해 출병했다.
누르하치의 군대는 지난 무순 전역과 산차라 전역에서 노획한 총과 포 역시 가용했고, 덕분에 공성전 능력이 지난 무순 전역때보다 월등했다.
그런 누르하치의 대군(최소 6만 5천 이상)에 맞써서 추저현의 8천명의 군대는 성문을 걸어잠그고 농성을 준비했다.
누르하치는 청하를 포위하고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다. 추저현은 휘하 병사들과 함께 있는 힘껏 그들을 막아 1차 공세를 막아냈다.
누르하치는 군대를 몰린 뒤 곧장 2차 공세를 준비하여 성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청하를 지키는데에 추저현과 함께 하고 있던 원료유격 장패가 전사했다.
상황이 그쯤 되었으나 추저현은 포기할 줄 몰랐다. 누르하치는 추저현의 용맹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피해를 줄이고 싶었는지
자신에게 항복하여 손녀사위가 된 전 무순유격이자 현 후금 부장 이영방을 시켜 추저현에게 항복을 종용했다.
그러나 추저현은 활로 그를 죽이려 하며 "배신자"라고 다그쳤다.
추저현이 항복치 않자, 누르하치는 재차 공세를 가했다. 결국 청하는 22일에 함락당했다. 추저현은 자신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후금군에 저항하다 죽었다.
그와 함께 했던 명군 8천명의 용사도 마찬가지였다. 포로는 없었다.
그가 이렇게 용맹히 싸우는 동안, 명의 추가 지원군은 없었다.
시간이 없었기도 했고, 또한 청하가 위험에 처했음에도 후금군과 맞딱뜨리는 것이 두려워 다들 망설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참장 하세현이 휘하 군대를 이끌고 후금군과 교전을 벌여 국지적 승리를 거두고 물러났을 뿐이었다.
명나라말기의 충신들은 대부분 명나라에 의해서 죽었지
명나라말기의 충신들은 대부분 명나라에 의해서 죽었지
후금 때문에 명나라가 망한거라기 보다 ...이미 명나라는 망해있는 상태임... 각지에서 민란이 속출하고 후금보다 먼저 민란에 의해서 황궁이 털렸으니... 예전에 대청명운 이라는 중국 사극 본적이 있는데...홍콩인지 중국인지 모르지만 삼국지 빼고는 이게 유일한 중국 드라마 본걸로 기억... 동서고금 가리지 않고 말기 왕조의 아스트랄한 분위기를 잘 표현했더라... 역적인가 영웅인가 오삼궤...또 청해관 이런게 기억에 남는다...중립적으로 잘 만든 드라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