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년 2월, 의자왕은 주와 군을 두루 살피며 백성들을 위로하고 사형수를 제한 죄수들을 사면시킨다.
아마도 부실한 지지세력의 기반을 깔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이 이후 642년 7월에는 직접 병사들을 거느리고 신라를 침공하여 40여 성을 빼았았다.
(꺼무 말로는 이게 최소 41~최대 49성을 함락시켰다는 소리라고 함)
한달이 지난 642년 8월, 의자왕은 윤충에게 1만 병력을 쥐어주며 신라의 대야성을 치게 한다.
윤충의 대야성 공격 전에, 대야성의 도독 김품석이 자신의 막료사지 검일의 아내의 미모에 홀려 그녀를 NTR했다(......)
검일은 이를 분하게 여기고, 나중에 윤충이 대야성을 공격해 오자, 백제군과 내응하여 창고를 불살라버렸다.
이때 김품석의 보좌관 서천이 항복 의사를 밝히자, 윤충은 성 안 사람을 살려주겠다는 조건으로 항복을 권한다.
이에 김품석과 서천 등이 성 안 사람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려 하자 죽죽은 이렇게 말하며 말린다.
“백제는 자주 말을 뒤집는 나라이므로 믿을 수 없다. 윤충의 말이 달콤한 것은 필시 우리를 꾀려는 수작이다.
만약 성을 나가면 틀림없이 적의 포로가 될 것이다. 쥐새끼처럼 엎드려 삶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싸우다가 죽는 게 낫다.”
하지만 김품석은 이 말을 안듣고 성 밖으로 나갔다가 백제가 복병으로 기습해 죄 죽여버렸다.
죽죽은 남은 군졸을 수습하여 성문을 닫아 걸고 버티는데 용석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전세가 이러하니 틀림없이 성을 보전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항복하고 살아서 뒷날의 공적을 도모하는 편이 낫겠다.”
그러자 죽죽은 이런 말을 하며 거절한다.
"그대의 말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가 나를 죽죽이라고 이름지은 것은, 차가운 날씨에도 시들지 말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는 뜻이다.
어찌 죽음이 두려워 살아 항복하겠는가?”
대야성은 남은 힘을 쥐어짜 최대한 저항하였으나 결국 함락되었고, 죽죽과 용석은 전사했다.
윤충은 이 일로 말 20필과 곡식 천여 섬을 하사받았다.
대야성의 주민 천여 명은 백제로 이송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그때가 지금보다 더 쥐에 치를 떨었을껄. 사람 먹고 살 곡식도 부족한데 그걸 훔쳐먹잖아 ㅋ
삼국기 드라마는 너무 모자라 이런 정보가 필요해
저때도 사람들이 쥐새키라는 말을 지금하고 같은 용도로 썼었군
북뉴게 억만장자
그때가 지금보다 더 쥐에 치를 떨었을껄. 사람 먹고 살 곡식도 부족한데 그걸 훔쳐먹잖아 ㅋ
의자왕으로 사극한번 쓰는것도 좋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