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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의 계략과, 심양 방위를 책임진 하세현과 우세공의 어이 없는 실책으로 인하여
웅정필이 온 힘을 쏟아부어 철옹성으로 구축해놓은 전략거점 심양은 단 이틀여, 실질 전투 시간으로는 몇 시간만에 함락되었다. (1621년 음력 3월 13일)
그것은 그야말로 대승이라고 할 만한 승리였다.
사실, 이 공성전 자체는 하세현과 우세공이 정석적으로 버티기만 하면 누르하치에게 몹시 불리한 전투였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계책을 쓰며 순식간에 심양의 두 우두머리를 죽이고, 그로 말미암아 심양의 지휘체계를 붕괴시킴과
동시에 명나라에 진심으로 충성치 않던 몽골군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여 심양의 방위력을 본래보다 현저하게 떨어트렸다.
그 결과, 누르하치는 2시간여의 공성전만으로 심양을 간단히 함락한 것이다.
하지만 심양을 함락했음에도 누르하치에게는 쉴 틈이 없었다.
심양을 함락하자마자, 이번에는 심양으로부터의 지원 요청을 듣고 심양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명나라 야전군과 맞붙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심양 인근에 다다른 명군 지휘관은 천절 총병 진책과, 여장부 진양옥의 동생으로 유명한 부총병 진방병, 부장 척금, 비장 주돈길의 군대였다.
그들의 군대는 1만에서 2만정도의 규모였는데, 그 정예함은 후금군 최정예 부대, 바야라와 상응할 정도로 뛰어났으나
누르하치가 심양에 끌고 온 대군을 야전에서 상대하기에는 무척 적은 병력이었다.
진책이 염두에 두고 있던 전략은 심양의 아군과 연대하여 앞 뒤로 후금군을 포위, 적이 어느 한쪽에 전력을 집중치 못하도록 하여 포위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진책이 심양 인근에 다다랐을 때에는 심양이 함락당했고, 그로 인해 진책의 전략은 시작부터 무너졌다.
진책은 심양이 함락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회군을 결심했으나, 우수한 기동성의 후금군을 상대로 보병 위주의 군대가 후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때 주돈길이 머잖아 다른 지역에 주둔중이던 이병성, 주만량, 강필등이 올 것이니 후퇴치 말고 일단 군대 일부를 도하시켜 (후금군과의 사이에 혼하가 있었다.)
교두보를 확보해 두자고 하였다.
진책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주돈길의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다른 지원군들이 곧 본인들의 후방에 다다를 터였으니,
그들과 함께라면 후금군을 상대로 충분히 야전이 가능하다는판단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