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의 인터뷰 1차 기자회견 전문을 보고 구글을 통해 사실확인을 해봤음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바람
http://615hana.org/xe/index.php?mid=story_1&document_srl=608282&listStyle=viewer&page=1
2016
제1412차 수요시위(2019.11.6.)
이옥선 할머니의 생신 축하 진행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10억 엔, 윤미향만 알고 있었다”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문제 해결하기 전에 윤미향은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저를 보고 고맙게도 ‘여성운동가’가 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고, 고마운 일이지요. 하지만 윤미향이라는 사람은 저한테 “할머니는 살아 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왜 뭐 때문에 그 할머니만 챙기냐”고 물었더니요. 죽은 할머니가 그 뿐인가? 살아 있을 때 해주는 게 인간이지, 죽었을 때 뭘 해줘, 그 따위 소리 하지 말라고 했어요.
노동력과 성착취 다른데도 혼용한 문제
1992. 11. 4. 한겨레
윤미향 간사와 여대협 이경주 사무국장
"최근 일본 정부가 원호기금을 창설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원호기금을 창설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생활기금을 마련하려는 것을 보고 수치심과 분노가 일어 정신대 진상규명 기금 및
정신대 생존자 생활기금 모금 운동을 펴기로 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민족의 자존심을 곧추세워 정신대 양말 사주기 운동에 대대적으로 참여해 달라"
1997.05.29. 경향신문
'정신대 할머니' 돕기 해산식
목표액은 30억의 6분의 1 수준인 5억 5천 11만원
일본 정부 어용단체에서 제시한 1인당 1천 5백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
“수요 집회 학생들 보면 가장 마음 아파…단체는 애들 푼돈까지 받아”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입니다. 이용수가 정신대냐 위안부냐? 당당히 위안부로 나와서 싸움하면서, 왜 정신대에 속해 있느냐. 이런 얘기 누차 듣습니다. 그런데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또한 서울에도 그랬습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 정신대 협의회입니다. 위안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서 제가 그렇게 미국으로 일본으로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해도, 이 정신대 시민모임에는 내가 혼자 못가잖아요. 사람 데리고 가야하는데, 제가 어떻게든 구해서 데리고 다녔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5년 일본정부가 공식적인 배상이 아닌 민관협력 기금인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문제를 봉합하려고 시도하였을 때도 전 국민 기금모금 운동을 진행하여, 국내외 거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156명에게 정부지원과 시민모금을 합쳐 각 4,412만 5,000원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2015년 한일 정부 간 일본군‘위안부’합의(소위 2015 한일합의)가 발표된 이후 위로금 10억엔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때에도 끝까지 일본정부의 위로금 수령을 반대하며 싸워주셨던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 8명에게 2017년 하반기 백만시민모금을 진행해 조성된 기금으로 개인 당 1억 원을 여성인권상금으로 전달 드린 바 있습니다.
2.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인식 제고, 국제연대 등을 통한 역사적 진실과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에 사용되었습니다. 1992년 황금주 할머니의 유엔인권소위원회 최초 일본군‘위안부’피해사실 증언을 시작으로, 1993년 김복동 할머니의 비엔나 인권대회 증언, 2007년 미국 의회 결의안 121호 채택을 위한 이용수 할머니 등의 증언활동, 2019년 이용수 할머니께서 참석하셨던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활동 등을 지원했습니다. 1992년부터 피해국과 가해국 여성들이 피해자들과 함께 매년 진행한 아시아연대회의, 일본의 전쟁범죄와 ‘위안부’ 문제의 가해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2000년여성국제법정 개최 등 당사자들의 힘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하는데도 사용해 왔습니다.
3. 1992년 1월 8일 시작되어 올해로 29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수요시위, 일본정부의 범죄사실 인정과 법적배상 이행을 위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지원 활동,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대응 및 콘텐츠 제작·홍보사업, 2011년 1,000차 수요시위 기념 평화비 건립을 시작으로 해외 평화비 건립을 포함한 각종 기림사업,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연대하기 위한 나비기금사업, 기억과 기록을 위한 증언집 및 관련 출판사업,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및 장학사업을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역사적 사실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가 용기있게 증언하고 싸워왔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삶과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2012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을 통해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비롯한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국내외 인식 제고 활동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상에 말씀드린 모금 사용 내역에 대해서는 정기적인 회계감사를 통해 검증받고 공시절차를 통해 공개되고 있습니다.
- 2015한일합의로 지급된 일본정부 위로금 10억 엔을 거부한 할머니들께 2017년 하반기 100만시민모금 진행 후 여성인권상 상금으로 이용수 할머니께 드린 1억원 계좌 이체증
- 1992년 7월에 정대협에서 생활비 지원으로 이용수 할머니께 100만원을 지급과 관련한 정대협 지급증과 이용수 할머니 영수증
- 1992년 부터 진행한 정신대할머니생활기금모금 국민운동본부 모금관련 이용수 할머니가 직접 수령하시고 지장찍은 영수증(93년 7월)
“내 생일 축하금까지 거둬 가고, 잘못된 증언 실린 책 팔아”
“제가 무척 서러웠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누구는 떼돈을 받아먹고…. 제가 호텔에서 생일을 했는데, 그때 모인 축하금을 정신대와 함께 하는 할머니 시민 모임의 역사관 관장, 사무국장, 대표라는 사람이 동티모르에 천만 원 갖다 준답니다. 할머니한테 써야지요! 내가 해서 거둔 돈인데. 내 생일에 모인 돈인데 왜 자기들 마음대로 한답니까? 그래도 가만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당하지 않을 겁니다. 당할 기력도 없습니다.
https://news.v.daum.net/v/g7YwAKf2s8?f=p
2018. 11. 9.
이 단체에서 보도자료를 따로 냄
http://www.1945815.or.kr/bbs/board.php?bo_table=goji&wr_id=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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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증언집' 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됨
정의연의 해명
"'한국정신대연구회'(이후 한국정신대연구소) 연구원들이 참여해 증언 채록을 진행했고, 정대협과 한국정신대연구소 공동저작물로 증언집을 출간했다"
"당시 증언집은 피해자의 존재를 알리고, '증거 문서 부재'를 이유로 불법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자료였다"
.당시 증언집 출간에는 정대협 초대대표를 맡은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정진성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려는 일본 우익과 역사부정주의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받았던 분이 바로 이용수 할머니였다.
그래서 오늘 기자회견이 특히 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가해자에 맞서며 피해자의 증언 일부가 변화하기도 했지만,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피해의 본질적 내용은 결코 변한 적이 없었다"
http://www.upinews.kr/newsView/upi202005260041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전문을 보고 구글을 통해 사실확인을 해봤음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바람
〈이용수 할머니 2차 기자회견 전문〉
이걸 전부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겠어.(관계자 : 저희가 파일로 돌리면 됩니다) 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굴 원망하고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제가 처음 기자회견할 떄 했고 한데, 많이 생각지 못하는 것이 나왔어.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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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검찰 조사중
그렇지만 정신대 대책 협의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야. 그런데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 정신대가 할 수 있어.
하지만 공장 갔다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달라. 공장 갔다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달라.
잠깐 제가 간 데를 말씀드릴게.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이야. 저는 양력으로 돼가 있어. 그때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줬어.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 라고 갈았어.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야. 제가 3,4학년까지 다녔어. 가타카나를 알았어. 끌려가서도 대만 xx 카미카제 특공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어. 이 군인이 하는 이야기도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했어. 그러면 제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히가이샤. 라고 적은 걸 배웠어.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어.
야스하라 도시코 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코 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히가이샤라는 것을 적어줬. 히가이샤가 뭔고. 몰랐어. 그 후에 겪으면서 제가 생ㄱ가할 떄 끌려가서 당한 건 말로는 못해. 제가 쭉 30년 동안 해오면서 미국 떠돌아다니면서 증언을 했어.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바른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어. 그런데 제가 92년도 6월 25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였어. 간사한테 했어.
25일날 했는데 29일날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어. 어느 교횝디다. 교회에 갔었는데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고 돈을 천엔인가? 줬다고 하면서 백만원씩 나눠줬어.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어.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저는 봤어.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어.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어. 기다렸는데 기대를 가지고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지 몰랐어. 그런가보다 했는데도 좀 부끄러웠어. 저렇게 하면서 애를 쓰고 이기려고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서 그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받아서 나왔어. 좀 늦었어. 늦게인데.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거 사두고. 하니까 돈 없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보다 생각했어.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거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해가지고 나왔어.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 대책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갖다온 할머니들로 해야하는데 말하자면 빵으로 말하자면 공장 갖다온 할머니들 밀가루로 반죽해서 빚어놓고 속으로는 맛있고 귀하고.
그러면 그 속은 위안부야. 그걸 해도 쭉 30년을 해와도 저는 그걸 몰랐어. 그저께 그그저께도 몰랐어. 어저께 저녁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은 왜. 뭣땜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꼐하는 시민 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놓고 간 위안부를 왜 즈그가 정신대 할머니랑 합해가지고 쭉 이용해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가지고 얘기하는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지. 섞어가지고 사죄안해도 된다는거 아닙니까.
이걸 30년동안 하면서 사죄배상 요구하고 학생들까지 그 고생을 시켰어.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 털어 나오는 돈도 받아 챙겼어. 이래서 저 어제 한숨도 못잤어. 왜 뭣떔으로 정신대대책협의회만 정신대 문제만 하지 왜 즈그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사용했어.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어. 왜 내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왜 여태까지 말도 못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저희가 사죄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걸 30년을 이용해나왔어.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되겠다. 이분이. 그 사람들이 바봅니까. 뭣하러 정신ㄴ대 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에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하러 그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나. 안한 이유를 저는 알았어. 이것 또한 무엇인가. 사진 한장만 목에 걸고 했는데 이것은 할머니들로 위안부 할머니들로 팔아먹었어. 팔았습니다. 내가 왜 팔려야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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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과 성착취 다른데도 혼용한 문제를 들여다 보면
1992. 11. 4. 한겨레
윤미향 간사와 여대협 이경주 사무국장
"최근 일본 정부가 원호기금을 창설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원호기금을 창설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생활기금을 마련하려는 것을 보고 수치심과 분노가 일어 정신대 진상규명 기금 및
정신대 생존자 생활기금 모금 운동을 펴기로 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민족의 자존심을 곧추세워 정신대 양말 사주기 운동에 대대적으로 참여해 달라"
1997.05.29. 경향신문
'정신대 할머니' 돕기 해산식
목표액은 30억의 6분의 1 수준인 5억 5천 11만원
일본 정부 어용단체에서 제시한 1인당 1천 5백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 부모님들은 불면 날아날까. 엄마가 감춰서. 이리 온나. 해서 멕이고 했어. 이건 남의 집의 귀한 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카미카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가서 전기고문과 칼 가지고 몸을 그어서 죽여놨어.
그런데 군인이 보니까 급하게 들어가라고. 군인이 앉아있는데 안들어간다니까 오는데. 머리를 질질질 끌고 가서 광 아래 자물쇠. 문을 확 열더만 밀었어. 또 일으켜서 발로. 돌덩이보다 위험한 군화발이었어.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배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프고. 저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근데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고 했어. 그런데 앉혀가지고 두 팔을 놓고.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를 한번 크게 불렀는데.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은 어린 날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나.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어. 그런데 정신대대책협의회라고 하면 이걸 밝혀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할머니 어디갔다왔습니까. 해서 밝혀줬는데 한번도 할머니 앉혀가지고 증언 한번 받아본적이 없어. 밥먹는데도 어디갔다왔습니까. 하면 그걸 가지고 책을 냈어. 93년도부터 ㅡ에 집이 있었어.
책을 놓고 그 책을 6천500원에 파는 걸 봤어. 그래도 그걸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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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을 한번 받아본 적이 없는데도 책을 냈다는 주장인데
이건 생각보다 심각한 내용임
아마 이 증언을 토대로 일본에서 위안부의 증언이 허위였다라며 공격할 경우에는 매우 골치아플 수 있음
이용수 할머니는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증언집' 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됨
1993. 3.1. 동아일보
1993. 3.7. 한겨레
정의연의 해명
2.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채록 및 관리
<증언 채록과 증언집 발간의 배경>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학순 할머니 공개 기자회견 이후 정대협은 같은 해 9월 피해자 신고전화를 개설하고 피해자 신고를 받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께서도 정대협의 신고전화를 통해 피해신고를 합니다.
한국정부는 1992년 2월 외무부 산하에 피해신고 전화를 개설하게 되면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신고는 정대협과 정부, 아시아태평양 전쟁 유족회 등에서 진행되게 됩니다. 정대협 운동의 결과, 1993년 피해자 지원법(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원법 (약칭: 위안부피해자법 ) [법률 제4565호, 1993. 6. 11. 제정. 즉일 시행]이 만들어 지면서 정부차원의 피해자 등록이 시작됩니다.
<증언 채록의 경과와 증언집 발간 상황>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증언집 1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정대협보다 몇 개월 먼저 만들어진 《한국정신대연구회》(이후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참여하여 증언의 채록이 이루어지고, 《정대협》과 《한국정신대연구소》 공동저작물로 증언집이 출간되기 시작합니다(당시에는 윤정옥 교수, 정진성 교수 등 정대협 구성원과 연구소 구성원이 겹침). 1993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증언집에는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현재의 생활〉 〈한.일 정부에 바라는 점〉등이 담기게 됩니다. 피해자 증언집은 『강제로 끌려간 군위안부들』 1~6권까지 출간됩니다.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증언집 발간을 통해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역사적 진실을 정확히 알리고 가해자의 범죄인정과 그에 따른 책임 이행을 이루게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시 증언집은 피해자의 존재를 알리며, ‘증거 문서부재’를 이유로 불법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자료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기자회견이 특히 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일본우익과 역사부정주의자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며,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악용되고 공격받았던 분이 바로 이용수 할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사회적 맥락이 반영됩니다. 가해자들은 최초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후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기에 급급했고 피해자들의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가해자들의 태도에 분노하는 한편 자신들의 피해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군‘위안부’동원의 강제성과 불법성,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가해자에 맞서기 위해 피해자들의 증언 중 일부가 변화되는 과정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피해의 본질적인 내용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할머니께서 세세하게 피해사실을 말씀하신 것으로 압니다. 가해자들이 하루 빨리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법적책임을 이행하여 더 이상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정의연은 더욱 더 최선을 다해 활동하겠습니다.
2020년 5월 25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http://womenandwar.net/kr/notice/?uid=946&mod=document&pageid=1
그런 책이 있는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갑다 하고 다니면서도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을 짓는데 서대문형무소에서 짓는다고 했어.
그때에 박ㅡ씨하고 큰조카내외하고 저하고 가서 ㅡ를 받고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증언을 했어. 그 박물관 대표가 어데 있어. 대표란 소리 하지 마라. 창피하다. 고 했어.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끝까지 3월 30일날 제가 전화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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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womenandwarmuseum.net/contents/general/general.asp?page_str_menu=0103
전쟁과 박물관 홈페이지에 보면 이용수 할머니가 후원했다고 나옴
미향씨. 이러면 안되지 않나. 한번 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자회견할란다. 했는데 아주 큰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 기자회견 한 거야. 이런 등등을 하나하나 말씀을 못드리겠어. 빨리 생각이 안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날이야. 여기 와가 있을 거야.
소위 국회의원으로 나올적에 ㅡ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돼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구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들어와 있는데 문을 열어돌라고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씨가 싹 들어오는 거에요. 놀래서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를 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뭘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든가말든가하지요. 용서? 뭐를? 보니까 엄청나더구나. 그걸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테니 그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카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했어.
뻔뻔시리 차에 내려서 휠체어 타려하니까 뭣이 어떻고. 도대체 뻔뻔시럽기 짝이 없어.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ㅡ했다고 해. 해서 윤미향이에게 내가 기자회견 할텡게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어데 있더라고. 있는데 거기에서 무슨 원수졌는 것도 아니고30년을 지내왔어. 했는데 한번 안아달라고 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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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차 수요집회 모습 (2020년 1월 8일)
http://womenandwar.net/kr/1421차-정의기억연대-수요시위-28주년/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0050864297
불과 약 4개월전 모습
30년 동안 함께 했고 수요집회에서도 서로 안아주는 사이였음
윤미향 씨도 인간적으로 안아달라고 할 수 있었다고 보임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 원수도 아니고.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기침)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거는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다 책임이 돌아가는 일입니다. 제가 이거를 명백하게 하려고 했는데. 생각은 있었어. 어떻게 이걸 그만둬라. 하지마라 할 수가 없었어. 해서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싶으면 하고 팽개치는데 어떻게 30년 같이 해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맘대로 팽개쳤어.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랬어. 이래놓고 자기가 사리사욕 챙겨서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어.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거니까 제가 무엇을 용서를 구합니까.
용서? 그분도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하든지 말든지 하는건데. 물어볼 필요도 없잖아. 뭣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 그거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가지를 제가 말씀을 다 못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ㅡ 30년동안 재주했어. 그 돈은 받아먹었어. 무슨 용서를 바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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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씨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내팽개치고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나갔다고 생각하심
이것 때문에 이용수 할머니는 자기가 30년 동안 재주만 부렸다고 생각하시는듯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좀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이거를. 하기 위해서 제가 이거를 바꾼다고 했어. 그러면 먼저도 이 이야기를 했어.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야. 이 학생들이 결국은 그 나라 주인 아닌가. 하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사죄 배상. 뭣때문에 사죄배상을 한다는 걸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한국이 거짓말 한다. 그 학생들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거 아닌가.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한국이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거야.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것이 시간이 오래 갈 거야. 시간이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이 왜 일본한테 배상하고 사죄하라고 하나. 뭣때문에. 이런걸 얘기하면 그러면 일본은 왜 하지 않노.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고 거짓말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그 말 들었다.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그렇게 해놨지 않나.
그럼 이걸 학생들한테 가르쳐서 서로 왕래하면서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워야 해. 배워야 알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생각이지만 저로선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어. 제가 대구에 역사관이 있어.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었어. 이걸 누가 했나. 대구 최ㅡ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걸 했어.
지금 윤미향을 밀고 있어. 윤을 밀고 있으면서 어느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ㅡ일본에 돈 많이 내고 하니까. 그럼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거 김복동할머니 돈입니까. 어느날 미국 가기로 했는데 모금하기로 했어. 모금을 6백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왔어. 이것 또한 말이 됩니까? 모금하라 했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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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복동 할머니는 2012년, 함께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나비기금’을 조성해
전 세계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우셨음
여기에 정대협이 함께 함
https://newstapa.org/article/aEFil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774
전문으로 추측건데 여러 모금활동에 이용수 할머니와 상의가 없었던 것에 화가 많이 나신듯함
그런데도 저는 30년 그것만 이야기했는데 줄줄줄 나오는게 엄청나게 나옵니다. 말도못하게 나옵디다. 할머니 팔아서 햇으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즈그가 했습니까.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이것도 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무슨 사죕니까.
김복동 할머니요?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눈 실명이야. 저보다 두살 윕니다. 실명이고 한쪽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댕겼지요.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있을 때 잘하고 할머니 있을때 해야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래놓고도 뻔뻔스럽게 여주에 가가지고 눈물을 흘려요? 그거는 가짜 눈물입니다.
병주고 약주고 하는 이런. 그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해서 한 것은 도저히 용서못합니다. 이것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해서 저는 끝까지 나이가 들다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한데, 우리 학생들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 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를 해서 위안부 문제 사회 배상. 이건 천년 만년이 지나도 반드시 일본이 해야 해.
이런걸 알게 하기 위해서 양국이 친하게 지내면서 역사를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명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해결해줄 사람은. 우리 학생들이라고 생각해. 왜 내가 증언을 다 해야하고. 늦게까지 살아 이게 죕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거를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하고 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럼이 없어.
이렇게 위안부야. 위안부. 위안부가. 여자야. 이것이 저는 세계 여성분들께 피해 끼칠 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세계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만 여성이라는 그 두글자가 너무 미안하고 해서 어떡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기회로 모든 여성분들께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위안부를 여자다.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 들으실겁니다. 해서, 제가 한사람한사람에게 어떻게 다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 여성분들에게 확실하게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글자 손상 입혔다는게 참 죄송합니다. 하는 걸 말씀드립니다.
제가 어떻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제가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가지고 이 역사를 아셔가지고 이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어.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옙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합니까. 미국 들으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팔아서 뭘 했습니까.
저 안성이라는 것도 나오는데 쉼터 화려하게 지어놨습니다. 그래서 윤미향. 그 위대한 대표. 그 아버님이 사셨다고 하더라고요. 이런거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청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 소리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대로 가고 공은 ㅡ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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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 공식해명
[5월 17일 경기도 안성 힐링센터 매입 등 관련 정의연 설명자료]
1. 왜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안성에 힐링센터를 매입했나
- 정대협은 건물매입을 위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인근의 주택을 알아보았으나, 10억 예산(2012.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지 주택 매입가 15억)으로 구입할 수 없었고, 박물관 인근의 건물주 역시 건물 매도에 대한 의사가 없었음을 확인했습니다.
- 해당 상황은 정대협 긴급 실행이사회(2013. 4. 26.)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보고되었습니다. 모금회는 사업이 서울지역에만 국한하지 않으며 계속 진행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이에 실행이사회에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해후유증을 치유하고 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외로움과 고립감을 서로 나눔으로써 극복, 피해자들과 젊은세대, 국내외 활동가들의 만남/연대의 장을 제공하여 세대를 넘나드는 네트워크 형성 등의 사용목적을 갖고) 다음과 같이 의결하였습니다.
<부지선정 기준>
1)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지대금이 10억으로 책정되어 있는 관계로 부지 내 건물은 수리를 하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는 만큼의 허가받은 지 얼마 안 되는 건물 중심으로 서울 외 지역 포함 진행
2) 대지는 300평 이상으로, 건축물은 40평이상
3) 단체 20 여명 정도가 숙박할 수 있는 건물
- 이후 정대협은 이 기준에 따라 부지선정을 위해 강화도 8곳, 경기도 용인 4곳, 경기도 안성 5곳을 부동산 관계자들과 답사를 진행했고, 2013. 6. 11. 다시 실행 이사회를 개최하여 답사한 부지 중 최종 선정된 3곳(강화도 1곳,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1곳,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1곳)에 대해 보고하였고, 최종적으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주택>을 후보지로 선정했습니다.
- 이에 대해 정대협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기부처인 현대중공업에 이와 관련한 내용을 송부했습니다.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주택 선정이유
① 접근성 : 힐링센터 후보지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이면서도 버스정류장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용이함
② 공간성 : 대지면적 242평, 건축연면적 80평으로 여타 지역의 주택보다는 큰 평수로써 20여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임
③ 효율성(에너지절감) : 2011년 사용승인을 받은 후보지는 스틸하우스로 건축되어 자연친화적이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공법을 사용한 관계로 냉.난방비를 절감할 수 있음
④ 친환경성 : 친환경적 소재를 사용하여 시공함
⑤ 공간활용성 : 사용허가는 받았으나 실제 거주하지 않고 있어 힐링센터에 맞게 내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용이함
2. 현지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했나
힐링센터 세부정보
· 대지면적 : 800㎡(242평) + 도로점용부분 약 40평
· 건물규모 : 지상2층, 외부창고
· 건축물 대상 건축연면적 : 195.98㎡(59.3평)
· 실건축 연면적 : 본동 264.25㎡(80평) + 외부창고 23.14㎡(7평)
면적(㎡/평)
공간 구조
1층
185.08㎡/56.08평
현관입구2개, 거실, 방 3개,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 3개,
보일러실, 창고
2층
79.17㎡/23.68평
방3개, 화장실1개
· 건폐율 : 19.97% / 용적율 : 24.5%
· 건축구조 : 스틸스터드 프레임 하우스
· 외부마감 : 치장벽돌(수퍼샤론스톤)
· 지붕마감 : 금속기와
· 지붕재 : OSB 합판지붕
· 시공 : 금호스틸하우스
· 허가일자 2010. 8. 27, 착공일자 2010. 9. 3, 사용승인일자 2011. 7. 22
· 원 건물주 제공 자료 “건축비 3.3㎡(1평당) 600만원”
최종적으로 매매가 7억 5천만원으로 매입함.
※ 최종 3곳의 후보지 답사를 통해 유사한 조건의 건축물의 매매시세가 7~9억임을 확인하여 실행 이사회에 보고함.
3. 압류 상황 관련
· 2013. 6. 11. 등기부등본상 압류에 대한 사항이 없음을 확인함
· 2013. 9. 12. 1차 계약 체결
· 2013. 10. 16. 계약완료 및 소유권이전등기 완료
제기되고 있는 압류관련 사항(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압류)은 계약체결 이전과 계약체결 당시 확인한 등기부등본상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압류등기 시점은 최종계약 완료 3일 전인 2013. 10. 8. 이었고 3일 뒤인 2013. 10. 11. 해제되었습니다.
4. 지인건물 매입 관련
원 건물주는 보도와 같이 안성신문 운영위원은 맞으며, 힐링센터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윤 前 대표 남편의 지인인 안성신문 사장에게 소개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1.의 설명과 같이 안성은 힐링센터 예정지 여러 곳 중 한 곳이었으며, 원 건물주는 2013. 6. 예정지 답사 과정 중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5. 힐링센터 구입 후 1억 상당의 인테리어 공사 관련
위 건물을 매수한 뒤 피해자의 쉼과 치유 등 목적에 따른 사업 진행을 위하여 추가 인테리어 공사와 물품 등을 구입하였으며, 건물 매입에 소요된 총 비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공사비(가스연결,CCTV설치,전기증설,관리목적컨테이너설치,벽난로설치) :
34,7550,00원
2) 물품구입비(냉난방기,청소기,빔프로젝트 등) : 14,361,700원
3) 소모품비(침구,주방기기,블라인드,싱크대,식기 등) : 29,377,500원
4) 주택매입비 : 750,000,000원
5) 매입세금 : 35,655,570원
6) 초기 운영비(난방비,개소식진행비 등) : 3,291,800원
http://womenandwar.net/kr/notice/?uid=867&mod=document&pageid=1
[5월 18일 경기도 안성 힐링센터 부지 3곳 정의연 설명자료]
어제 5.17 경기도 안성 힐링센터 매입 등 관련 정의연 설명자료에 나온 최종 선정부지 3곳(강화도 1곳,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1곳,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1곳)에 대한 부지정보에 대한 문의가 많아 부지정보를 공개합니다. 해당 정보는 2013년 6월 정대협 긴급 실행이사회에 보고된 자료이며, 공인중개사를 통해 제공받은 자료임을 알립니다.
언론요청에 성실히 응하기 위해 제공되는 자료입니다. 사유지임을 감안하여 해당 부지 소유자에 대한 추가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추가 설명 자료는 금일 5시경 배포될 예정입니다.
<당시 제공받은 3곳의 정보>
1. 강화도
-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404
- 면적
대지면적 1,010㎡(305.525평)/ 연면적 189.85㎡(57.4평)
- 건축물 현황 : 면적 149.01㎡(45.10평) - 목조건물
지상1층 - 145.13㎡(43.9평) / 지상2층 - 44.72㎡(13.5평)
- 지역 : 관리지역
- 매매가 : 7억 (공시지가 105,000원)
- 허가일자 09년8월 28일 / 착공일자 09년 10월 10일 / 사용승인일자 08년 11월 21일
- 교통상황 : 박물관에서 1시간 20분 소요, 강화도 초지대교에서 10분 거리
- 부지 정보 : 동네 주택가, 마당조경이 잘 꾸며져 있어, 부지는 넓으나 조경이 되어 있어, 이외 다른 건물의 증축은 어려워 보임. 내부인테리어는 최고급을 사용하였으나 1층 방이 1개이며, 2층은 작은 방이 3개 있으나 많이 협소함.
2.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 주소 :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송천리 133-12외 8필지
- 면적 : 총 4,535㎡(1,371평)
주택(714평) : 대지 1,727㎡(522평) 133-12번지 / 임야 633㎡(191평) 133-13번지
토지(508.5평) : 임야 1,541㎡(466평), 140㎡(42평)
도로(149.4평) : 도로 8㎡(2.4평), 100㎡(30평), 102㎡(30.8평), 115㎡(34.7평), 169㎡(51.1평)
- 건축물 현황 : 면적 209.11㎡(평) - 목조건물
지상1층 - 170.51㎡(51평) / 부속건물(보일러실) - 33.6㎡(10평)
- 지역 : 자연녹지지역
- 매매가 : 9억 (원 금액 10억, 부동산 조정)
공시지가 58,500원(대지), 12,300원(임야), 29,700원(도로)
- 허가일자 06년8월 25일 / 착공일자 09년 9월 3일 / 사용승인일자 12년 8월 07일
- 교통상황 : 박물관에서 1시간 30분 소요, 일죽IC에서 5분 거리
- 부지 정보 : 주택이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 끝지점에 있음. 뒤편에는 작은 야산이 있으며, 야산 절반까지가 주택의 소유임. 주택이 1층이며, 각 방별로 붙박이장이 있음. 주택 아래 밭은 건축이 가능한 대지가 있음.
3.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 주소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441-3
- 면적
대지면적 800㎡(242평)/ 연면적 195.98㎡(59.3평)
- 건축물 현황 : 면적 159.78㎡(48평) - 스틸 하우스 구조,
지상1층 - 156.03㎡(47.03평) / 지상2층 - 39.95㎡(12평)
- 지역 : 보전관리지역
- 매매가 : 7억5천 (공시지가 55,600원)
- 허가일자 10년8월 27일 / 착공일자 10년 09월 03일 / 사용승인일자 11년 07월 22일
- 교통상황 : 박물관에서 2시간 소요
- 부지 정보 : 부지 내 냇가가 있으며, 이는 토지에는 포함되지 않는 국유지임. 외부 경치는 3곳 중에 가장 나음. 안성시내 스틸하우스 제작업자가 자가주택으로 건축하였으나, 사업상의 어려움으로 매매함. 매매를 목적으로 현재까지 내부 바닥공사 및 화장실 공사, 보일러 등은 진행하지 않았고 매매자의 맞춤으로 진행이 가능함. 도보 5분 거리에 안성까지 운행하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등산객들을 위한 편의점이 있음.
2020년 5월 18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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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죄를 물어서 죄를 살려야 해. 살린다고 죄가. 마음이 풀리는 건 아니지만 고쳐야지. 이 후에 두번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제가 또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이걸 밝히기 위해서 하는데 너무 여러분들이 오셧는데 좌석이 너무 좁습디다. 그래서 제가 장소를 바꿨습니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 주셨으면 두번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오늘 장소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아파 할 것이고 해서 제가 요즘 이야기를 했어. 여러분들이 그래 아시고. 저 요즘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또 코로나가 퍼졋다고 하는데 저는 걱정이 됏어요. 좁은데서 하면 안되겟다는 생각에. 그래서 여러분을 큰 데 모셧어. 그 점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김현정 뉴스쇼 인터뷰 전문을 보고 구글을 통해 사실확인을 해봤음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바람
◆ 이용수>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일단 2차 기자회견에서 하고 싶으신 말씀은 다 하셨어요?
◆ 이용수>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사람이 다 하고 하겠습니까? 그래도 못한 게 많죠.
◇ 김현정> 한 시간가량 물 한 모금 안 드시고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기자회견을 하셨는데 그걸 두고도 끝난 후에 여러 가지 말들이 많습니다. 우선 ‘할머니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정치적인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할머니를 지금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 뭔가 정보를 주고 있는 거 아니냐’ 이른바 배후설,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용수> 저는 백 번, 천 번 얘기해도 저 혼자밖에 없습니다. 제가 바보입니까? 제가 치매입니까? 그러면 저를 치매라고 했는데 치매된 할머니를 끌고 당길 때 그걸 모르고 다녔어요? 그렇게 치매된 할머니를 끌고 다니면서 이용한 거. 분명히 나는 치매가 아니에요. 분명합니다. 누구도 거드는 사람이 없었어요.
◇ 김현정> 그런데 조금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이제 ‘할머니의 말투가 아니다. 그래서 이거를 누가 한 7~8명이 옆에서 같이 협업이라고 하죠? 같이 도와가면서 쓴 건 아니냐?’ 이런 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 이용수> 7~8명도 아니고 한 명이 같이, 나는 혼자 못 자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있잖아요. 딸 같은 사람이 있었어요. 수양딸인데 그 사람한테 이걸 내가 썼는데 글을 똑바로, 이대로 써라고 한 거, (내가) 이거를 쓰려고 하니까 좀 꾸불꾸불하게 썼어요. 그러니까 (원문은) 내가 써서 (수양딸에게) 이걸 보고 그대로 좀 써달라고 한 것뿐이에요. 나는 누구한테 한 게 아니에요. 내가 생각하고 내가 한 거라서 떳떳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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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측근인 A씨에 따르면 이 할머니는 대구 기자회견 전날인 24일 저녁 서울로 올라와 종로구 S호텔에 투숙하고
스님과 회견문 작성 전문가, 이 할머니의 일대기를 찍는 다큐멘터리 작가, 수양딸 곽모씨 등
7~8명도 서울로 올라와 해당 호텔에 묵고
그 자리에서 '다음 날 대구에서 예정된 기자회견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
https://news.v.daum.net/v/20200526182823827
2020.05.26.
수양딸 인터뷰
"어머니가 말하고 내가 쓰고 다시 읽어보고 수차례 고치길 반복했다. 소위 말하는 ‘컨펌’을 여러 번 받았다. 그런데 배후설이라니. 말도 안 된다. "
https://news.joins.com/article/23786173
수양딸로 추정되는 곽 모 씨가 SNS에 쓴 글
실제 수양딸인지 가짜 수양딸인지는 불확실
http://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92287
◇ 김현정> 할머님이 지금 꼬불꼬불 쓰셨다고 했는데 그 꼬불꼬불 쓰신 초안도 그럼 혹시 가지고 계세요?
◆ 이용수> 있어요. 그걸 부쳐달라 하든지 하면 부쳐줄 거예요. 그거를 제가 혼자 쓰면서 머리를 써가면서 그래서 참 죽고싶은 심정이었어요. 그렇게 한 거지 누구도 원망하고 누구도 의논한 거 없어요. 내가 왜 이렇게, 내가 혼자 해야지 왜 누구를 갖다가 하는 건 이건 아니다. 이거는 내 일인데 내가 해야 되지. 누구한테 물을 필요도 없는 거고 또 거들어달라고 하는 것도 없어요. 저는 제가 했어요, 전부.
◇ 김현정> 그런데 지난 첫 기자회견 때는 옆에 가자인권평화당의 최용상 대표가 계셨어요. 그렇다 보니까 ‘최용상 대표께서 지금 할머님께 이모저모로 영향을 주고 계시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는.
◆ 이용수> 아니에요, 전혀 아니에요. 그 사람은 기자를 데리고 좀 오고 하는 거뿐이에요. 그걸 꼬투리 잡을 게 없어서 그걸 꼬투리를 잡더라고. 윤미향 욕했다고. 제가 아무리 못 배워도 책잡힐 말은 하지 않아야 된다는 걸 분명히 저는 생각하고 행동을 합니다.
◇ 김현정> 최용상 대표에게 첫 기자회견에서 도움을 받은 거라고는 ‘기자를 모아달라’ 이것밖에 없다는 말씀이세요?
◆ 이용수> 기자들을 제가 해 달라고 하니까, 기자들을 어떻게 모으겠나 하는 생각으로 (최용상 대표가) 기자를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옳은 기자를 데리고 최용상이가 오고 한 것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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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더불어민주당이 하는 행태는 일본 아베 신조 총리보다도 더 나쁜 짓" 가자인권평화당
최용상 대표 "강제징용 실컷 써먹고 문밖으로 쫒아내"
https://mn.kbs.co.kr/news/view.do?ncd=4408121
http://news.tf.co.kr/read/ptoday/1786603.htm
가자인권평화당의 최용상 대표는 더불어 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탈락이 되었었는데
가자인권평화당은 상당한 반발을 했었음
2020.03.23
◇ 김현정> 2차 기자회견을 들으셨던 분들 중에 조금 의아했던 부분이 뭐냐면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정대협에서는 정신대 이야기만 하지 왜 위안부를 끌어들었느냐. 그런 말씀. 우리를 이용했다’ 그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데 정대협 출범 당시만 해도 정신대와 위안부라는 용어가 혼용돼서 쓰였기 때문에 그래서 정대협이라는 이름을 유지했던 것뿐이지 사실은 30년 동안 위안부를 위한 활동들을 계속 해 왔던 것인데 할머님이 그거를 모르실 리가 없는데 왜 갑자기 그 부분을 기자회견에서 서운하다고 하셨을까 잘 이해가 안 간다 이런 얘기들이 나옵니다.
◆ 이용수> 그러면 신고를 했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데리고 앉아서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이러고 증언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는 증언이 제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가르쳐가면서 설명을 해 줘야 되는데 덮어놓고 신고하고 나서. 그러면 교회 같은 데 가서, 넓은 데 가서 앉아서, 뭡니까? ‘그저 어디 갔다 왔나, 할머니입니다’ 하는 거 그거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뭐가 뭔지도 몰라요. 한참 그렇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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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의 해명
2.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증언 채록 및 관리
<증언 채록과 증언집 발간의 배경>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김학순 할머니 공개 기자회견 이후 정대협은 같은 해 9월 피해자 신고전화를 개설하고 피해자 신고를 받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께서도 정대협의 신고전화를 통해 피해신고를 합니다.
한국정부는 1992년 2월 외무부 산하에 피해신고 전화를 개설하게 되면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신고는 정대협과 정부, 아시아태평양 전쟁 유족회 등에서 진행되게 됩니다. 정대협 운동의 결과, 1993년 피해자 지원법(일제하일본군위안부에대한생활안정지원법 (약칭: 위안부피해자법 ) [법률 제4565호, 1993. 6. 11. 제정. 즉일 시행]이 만들어 지면서 정부차원의 피해자 등록이 시작됩니다.
<증언 채록의 경과와 증언집 발간 상황>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증언집 1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정대협보다 몇 개월 먼저 만들어진 《한국정신대연구회》(이후 한국정신대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참여하여 증언의 채록이 이루어지고, 《정대협》과 《한국정신대연구소》 공동저작물로 증언집이 출간되기 시작합니다(당시에는 윤정옥 교수, 정진성 교수 등 정대협 구성원과 연구소 구성원이 겹침). 1993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증언집에는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현재의 생활〉 〈한.일 정부에 바라는 점〉등이 담기게 됩니다. 피해자 증언집은 『강제로 끌려간 군위안부들』 1~6권까지 출간됩니다.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증언집 발간을 통해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역사적 진실을 정확히 알리고 가해자의 범죄인정과 그에 따른 책임 이행을 이루게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시 증언집은 피해자의 존재를 알리며, ‘증거 문서부재’를 이유로 불법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자료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기자회견이 특히 더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일본우익과 역사부정주의자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며,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훼손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있어 가장 많이 악용되고 공격받았던 분이 바로 이용수 할머니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사회적 맥락이 반영됩니다. 가해자들은 최초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후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기에 급급했고 피해자들의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가해자들의 태도에 분노하는 한편 자신들의 피해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군‘위안부’동원의 강제성과 불법성,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가해자에 맞서기 위해 피해자들의 증언 중 일부가 변화되는 과정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피해의 본질적인 내용은 결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할머니께서 세세하게 피해사실을 말씀하신 것으로 압니다. 가해자들이 하루 빨리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법적책임을 이행하여 더 이상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정의연은 더욱 더 최선을 다해 활동하겠습니다.
2020년 5월 25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http://womenandwar.net/kr/notice/?uid=946&mod=document&pageid=1
대구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있습니다. 이것을 누가 했냐면 대구에 최봉태 변호사가 정신대 문제에 관해서 이거를 했을 적에 제가 생각하기에 이렇습니다. ‘도대체 최 변호사는 어디 대표예요? 정신대 대표, 정신대 대표로 가 있지 왜 여기에 와 있느냐’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이 얘기하는 게 맞는 줄 알고 그저 따랐습니다. 어디를 가자고 가면 가고 어디 가서 가는데 제가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도 분한 게 많습니다. 왜 정신대 할머니들로만 하는 게 아니고 거기에다가 위안부 피해자를 섞어서. 그 정신대 할머니만 하는 게 부족하거든요. 그러니까 위안부 할머니를 거기에다가 넣어서 근 30년이나 해도 저는 그래야 되는가 보다 하고 따른 것뿐이었습니다.
더군다가 김복동 할머니가 저보다 두 살 위입니다. 한쪽 눈은 실명이고 한쪽 눈 보이는 눈만 가지고 가자 하니까 어디로 끌고 가니까 그저 그 사람들 말만 들은 것뿐입니다.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재주로 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받아먹는 거, 이거 너무 분합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재주부리고 돈은 정신대대책협의회에 윤미향이가 대표잖아요. 그래도 돈에 대한 것은 저는 한 번도 말 안 했습니다. 이거 신고하는 것도 왜 30년이나 같이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 안 하고 자기 욕심대로 또 국회의원 하고 싶다고 그냥 하루아침에 30년 한 것을 배신했습니다. 제가 그 배신당한 그 분함, 그걸로 했지 다른 거는 몰랐습니다.
◇ 김현정> 할머님께서 이렇게 많이 분노하시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있겠습니다마는 회계에 대한, 돈에 관해서는 지금 불거진 의혹들 할머님도 사실은 잘 모르셨다, 놀랐다 그러셨잖아요.
◆ 이용수> 전혀 몰랐습니다. 잘 몰랐다가 아니고 전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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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도 어떠한 회계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셨음
◇ 김현정> 그럼 회계에 대한 부분이 이 기자회견의 동기는 아니었을 것 같고. 윤미향 대표가 국회로 가는 부분, 그 부분이 가장 결정적으로 화가 나신 부분일까요?
◆ 이용수> 그것(국회의원 출마)도 한다고 (얘기)하고 했습니까? 자기 마음입니다. 이것도 30년이나 했는데 하루아침에 아주 배신하고 저만 배신당한 게 아닙니다. 저를 배신하고 국민을 배신하고 세계 사람을 배신하고 속이는 거 이런 이 엄청난 것을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자기 가고 싶다고 사리사욕을 챙겨서 했는 거, 이거는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믿은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니까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러지 못합니다. 전심전력을 다해서 해 줬는데도 그 공을 모르고 또다시 날 괴롭히는 거, 당토 않는 행동을 한 거, 이것을 볼 때 참 사람은 믿을 게 못되는구나,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그런 행동을 할 적에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누구를 어찌하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참 내 자신이 불쌍하고 참 가엾더라고요.
◇ 김현정> ‘배신’이라고 지금 표현을 하셨어요
◆ 이용수> 네, 배신. 하루아침에 배신.
◇ 김현정> ‘국회에 나가서 이 일을 뭔가 입법적으로 뭔가를 해 보겠습니다’ 이런 의도였을 수도 있는데 배신이라고 느끼신 건 어떤 부분일까요?
◆ 이용수> 아니, 30년이나 한 걸 이거를 하루아침에 그렇게 배신하고 자기가 또 하고 싶다고 사리사욕을 차려서 국회에 가는 게 이런 게 단순히 이거는. (위안부 문제 해결은) 자기의 책임이 있으니까 이거를 완수해야죠. 만약에 사람이 옳게 생각한다면, 누가 그거를(국회의원 출마를) 하라고 그랬다. ‘아닙니다. 이거는 제가 해야 됩니다. 제가 책임 있으니까. 여기 위안부 문제는 해결해야 됩니다’(라고 윤 전 대표가 거절했어야 하는데)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를 이용했으니까 이거만 하더라도 큰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죠. 그냥 막 팽개치고 자기 마음대로 한 거예요.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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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대표가 국회의원에 당선이 된 것을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시는듯
◇ 김현정> 이용수 할머님도 2012년에 비례대표에 도전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때 윤미향 대표가 할머니의 출마를 말렸다’라는 이런 보도가 났습니다. 이거는 사실인가요?
◆ 이용수> 그때 어떤 교수님도 할머니가 (국회의원) 해야 된다, 해야 된다 한 그 말씀이 있었는데 아이고 저는 못 합니다, 안 됩니다. 그런 소리를 했어요. 제가 뭐 어떻게 신청하고 하는 걸 모르고 했는데, 우리 곽병원 원장님이 300만원 공탁금을 댔다 하고, 기왕 해 놨으니까 그러면 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고 강력하게 내가 투쟁할 것이다 이런 얘기까지 한 것 같아요.
◇ 김현정> 그때 그래서 기자회견, 그러니까 출마 선언을 하셨어요. 물론 비례 공천이 안 되긴 했습니다마는 어쨌든 출마선언, 출마 기자회견을 하셨어요.
◆ 이용수> (공탁금 내고 신청)해 놨다 그러니까 이제 (출마선언) 했죠. 끝에 가서 그랬다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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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말씀을 보면 2012년 국회의원 출마 생각도 없으셨고 허락도 없었는데
곽병원 원장이 300백만원을 공탁하고 출마시킴
하지만 배신당했다고는 생각 안하시는듯
2012. 3. 8. 녹취록
이용수: 다른 할머니들이 뭐 한다고 기분 나빠해. 그건 당신들 말이지 그런 거 할 필요 없어. 나는 그런 거 때문에 내가 할 거 안 하고, 내가 뭐 지금 젊어가는 것도 아니잖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해결하고 죽어야 돼. 그리고 좋은 일도 하고 죽어야 돼. 그런 사람 못 도와주니 얼마나 안타깝노.
윤미향: 근데 그건 할머니 (국회의원) 안 해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이용수: 만약에 국회의원 되면, 내가 된다카면 나는 그대로 지금 생활비 받고 월급 그거는 좋은 일할 거야.
너는 그런 것까지 걱정할 필요 없고, 걱정한다고 하면 '할머니 건강이 걱정됩니다' 그거만 얘기해주면 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87295
◇ 김현정> ‘출마하지 말라’고 윤미향 당선인이 그랬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어요?
◆ 이용수> 네. 안 된다. 할머니가 하면 안 된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 김현정> 그때 ‘안 된다’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요?
◆ 이용수> 모르죠. 나이도 많고 하니까 안 된다고 그랬겠죠.
◇ 김현정> 그랬던 윤미향 당선인이 본인은 이제 국회의원이 이번에 됐으니까 또 그 부분도.
◆ 이용수> 이번에 국회의원 한 것도 사람이 책임을 졌으면 책임을 완수를 해야죠. (책임 완수) 해 놓고 뭐를 하든지 이거는 저는 그거는 모릅니다. 대통령을 한다고 해도 저는 그 윤미향이가 필요 없습니다. 모릅니다. 오로지 30년 동안에 위안부 문제 해결하려고 한 이 윤미향이를 잡고 얘기했지 다른 건 모릅니다. 분명히 백 번, 천 번 얘기해도 저는 모릅니다. 제가 했습니다, 저 혼자 했습니다. 아무도 여기에 가담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라도. 그 코로나 때문에 들어앉아 있었고 또 그전에 제가 혼자 죽을 생각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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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대표가 다른거 하지말고 정의연에서만 활동하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인듯
◇ 김현정> 지금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말씀은 이거는 좀 듣는 순간 제가 좀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데. 할머님, 지금 마음 좀 단단히 먹으셨으면 좋겠어요. 안 좋은 생각은 하시면 안 될 것 같고요.
◆ 이용수> 저는 지금까지 이렇게 자꾸 당하는 거는 먼저 간 할머니한테 제가 가서 할 말이 없습니다. 할머니, 이렇게라도 제가 해결하고 왔습니다 하기 위해서는 제가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끝까지.
◇ 김현정>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이미 기자회견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고요. 윤미향 당선인 이제 내일 모레면 국회의원이 되는데 윤미향 당선인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따로.
◆ 이용수> 없습니다, 없습니다. 다만 왜 30년 동안에 위안부 문제 해결한다고 해 놓고 30년 동안에 팔아먹었습니다. 몰랐습니다. (회계문제) 보니까 엄청나더군요. 이거는 검찰에서 밝혀질 것이고. 내가 내일 모레 기자회견한다. 그러니까 오너라 했습니다. 안 왔습니다. 기자회견 하라 했습니다, 또. 책임도 없이. 또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이 죄를 물어야 되지 지금 어디서 감히 나서서 입을 뻥긋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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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도 어떠한 회계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모르시고
검찰 조사만 바라심
◇ 김현정> 이대로 그냥 국회의원이 된다면 할머님 또 어떤 다른 3차 기자회견이라든지 다른 방식의 뭔가 문제제기, 투쟁을 하실 생각이세요?
◆ 이용수> 아니요. 죄를 받아야죠. 이런 사람을 국회의원을 어떻게 시킵니까? 30년을 팔아먹고 이렇게 해서 이런 사람을 국회의원 시켜요? 이 나라는 법도 없습니까?
◇ 김현정> 알겠습니다.
◆ 이용수> 더 이상 말 안 하겠습니다.
◇ 김현정> 할머니, 건강, 무엇보다 챙기시고요. 고맙습니다.
◆ 이용수> 네.
◇ 김현정> 이용수 할머님의 2차 회견 후의 입장을 오늘 한번 들으셨습니다. 2차 회견 후에도 이런 저런 의혹들이 나와서요. 한 번쯤 또 입장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저희가 오늘 연결을 했습니다. 윤미향 당선인은 지난 인터뷰 후로 인터뷰를 하고 있지 않죠. 윤미향 당선인의 다른 입장이 나온다면 저희는 언제라도 인터뷰를 준비하겠습니다.
정의연이 정말 열심히 일해왔다는게 느껴지는데 이런걸 다 무의미해지게 만드려는 상황이 슬프군
세상에 일본의 위한부 만행을 알리고, 일본으로 부터 사과와 적절한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저 많은 정의연의 노력들을..., "재주는 곰이넘고, 돈은 땟놈이 챙긴다..."라는 식으로 표현해 버린다는건... 결국..., 내 관점에서는, 자신이 받은 돈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부족했고, 자신이 받아야 하는 부와 명예를 정의연과 윤미향 대표가 30년간 가로챘다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밖에는 해석이 안되는데..., 아... 이 이용수씨는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들 만을 위한 사조식(사기업-위안부 피해자들을 매게로 부와 명예?를 창출하는 집단) 처럼 인식을 했구만..., 지가 대장(오너)이고...
정신대하고 위안부를 엄밀히 구분짓지 않았던 시기 만들어진 단체가 이름이 정신대만 들어갔다고 왜 위안부 관련 일 하냐고 따지는 게 참 ㅋㅋ 위안부 관련 활동은 위안부를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대 단 하 다 !
길어도 정독했음 근데 이렇게 열심히 체크해도 볼 사람만 본다는게 눈물겹네 ㅠㅠ
상전이 따로 없네
당사자가 부정해버리면 물거품이네..
정리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상전이 따로 없네
정의연이 정말 열심히 일해왔다는게 느껴지는데 이런걸 다 무의미해지게 만드려는 상황이 슬프군
즈다넴 달버
당사자가 부정해버리면 물거품이네..
길어도 정독했음 근데 이렇게 열심히 체크해도 볼 사람만 본다는게 눈물겹네 ㅠㅠ
정신대하고 위안부를 엄밀히 구분짓지 않았던 시기 만들어진 단체가 이름이 정신대만 들어갔다고 왜 위안부 관련 일 하냐고 따지는 게 참 ㅋㅋ 위안부 관련 활동은 위안부를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대 단 하 다 !
세상에 일본의 위한부 만행을 알리고, 일본으로 부터 사과와 적절한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저 많은 정의연의 노력들을..., "재주는 곰이넘고, 돈은 땟놈이 챙긴다..."라는 식으로 표현해 버린다는건... 결국..., 내 관점에서는, 자신이 받은 돈이 본인이 생각하기에 부족했고, 자신이 받아야 하는 부와 명예를 정의연과 윤미향 대표가 30년간 가로챘다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밖에는 해석이 안되는데..., 아... 이 이용수씨는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들 만을 위한 사조식(사기업-위안부 피해자들을 매게로 부와 명예?를 창출하는 집단) 처럼 인식을 했구만..., 지가 대장(오너)이고...
그레이트한 시발놈이었네.
파파괴네... 찢재명이랑 결이 비슷해.
정리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정리 고맙...
위안부 차출해갈 때 너 위안부라고 안하고 정신대간다고 사기쳐서 데려갔는데 구분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토왜랑 놀아나는 노욕에 물든 노친네 내 머릿속에선 중립기어뺌
수양딸도 곽씨라고 하지 않았어? 드문 성씨가 뭐 이리 자주 나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