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국민감정의 역린을 건드린 듯
[정치] '독립운동가 비하' 윤■■ 글 본 독립운동가 후손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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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히지. 숨이 턱턱 막혀.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다르지 않을 거야. 발언이 어느정도 수준이어야 시시비비도 가리고 상대라도 할 텐데 워낙 얼토당토않으니 그저 말문이 막힌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비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후손 차영조(78)씨가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운동을 비하한 웹툰작가 윤■■씨 글에 대해 보인 반응이다.
본인은 열심히 살았다 생각하겄죠 ㅋ
차리석선생은 찾아보니 이런분이네.. 1908년 도산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며, 안창호와 양기탁이 주도한 신민회 평양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 초대총독인 데라우치총독 암살 모의사건인 신민회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일제로 부터 8년을 언도받고 3년을 복역하였다. 3·1 운동 이후 1919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당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1922년 시사책진회와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참여하였다. 193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1943년 5월 중경에서 열린 '재중 한인대회'에서. 사진 왼 쪽이 우사 김규식.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차리석 1935년 한국독립당의 창당에 참가했다. 193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장에 선출되었다.[1] 1939년 10월 2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출되었다.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비서장에 선출되었고, 1944년 4월 다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겸 비서장에 재선되었다. 1945년 8월 쓰촨성 중경에서 광복 소식을 접하고 환국준비로 인한 과로로 9월 5일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였다. 9월 9일 환국 직전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직전 ”광복이 되었는데 왜 귀국하지 못하고 죽어야 하느냐“며 병상에서 애통해 했다 한다. 생전에 조국땅에 오지 못한분이시니 저 후손분은 더 기가 막힐듯
[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구름여름
본인은 열심히 살았다 생각하겄죠 ㅋ
"숨이 턱턱 막히지. 숨이 턱턱 막혀.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다르지 않을 거야. 발언이 어느정도 수준이어야 시시비비도 가리고 상대라도 할 텐데 워낙 얼토당토않으니 그저 말문이 막힌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비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차리석 선생의 후손 차영조(78)씨가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운동을 비하한 웹툰작가 윤■■씨 글에 대해 보인 반응이다.
새로운아이디ʕ·͡˔·Ɂ
차리석선생은 찾아보니 이런분이네.. 1908년 도산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며, 안창호와 양기탁이 주도한 신민회 평양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 초대총독인 데라우치총독 암살 모의사건인 신민회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일제로 부터 8년을 언도받고 3년을 복역하였다. 3·1 운동 이후 1919년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당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1922년 시사책진회와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참여하였다. 193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1943년 5월 중경에서 열린 '재중 한인대회'에서. 사진 왼 쪽이 우사 김규식.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차리석 1935년 한국독립당의 창당에 참가했다. 193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장에 선출되었다.[1] 1939년 10월 2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출되었다.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비서장에 선출되었고, 1944년 4월 다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겸 비서장에 재선되었다. 1945년 8월 쓰촨성 중경에서 광복 소식을 접하고 환국준비로 인한 과로로 9월 5일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였다. 9월 9일 환국 직전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직전 ”광복이 되었는데 왜 귀국하지 못하고 죽어야 하느냐“며 병상에서 애통해 했다 한다. 생전에 조국땅에 오지 못한분이시니 저 후손분은 더 기가 막힐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