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반부, 최명길과 김류가 세찬을 소에 싣고서 잉굴다이를 찾아간 장면)
영화 남한산성은 2017년에 개봉한 영화로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해당 영화는 뛰어난 작품성과 준수한 물질고증, 실제 사건 및 원작소설속 내용에 대한 의미있는 각색등으로 큰 호평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해당 영화는 실제 사건인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나 기본적으로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삼는 데다가 창작물로서 보다 뛰어난 작품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 사건과 물질적 고증에 대해 여러 각색을 시도하였다. 필자는 해당 영화의 여러 각색 중 몇 가지를 글로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지난 편인 [영화 남한산성의 고증 각색 3 : 아군의 목을 가져온 조선군]에 이은 이번 편의 주제는 영화 중반부 최명길과 김류가 세찬 음식과 소를 데리고 청군 진영을 찾아간 장면이 내포하고 있는 각색성이다.
해당 장면은 영화상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청나라의 한1이 직접 친정에 나섰다는 소문이 파다하자 이조판서 최명길이 자신이 직접 세찬을 소에 싣고서 청군 진영을 재차 방문하여 그 소문의 진상을 파악해 보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 예조판서 김상헌은 뜻밖에도 찬성하지만 영의정 겸 도체찰사 김류가 이에 반대하는데 인조는 김류에게 최명길과 함께 나아가 우려하는 상황을 스스로 방지하라고 말한다.
결국 최명길과 김류는 세찬 물자를 소에 싣고서 청군 진영을 방문하여 홍타이지의 친정에 관한 진상을 파악코자 한다. 그러나 정작 진상은 제대로 파악치 못하고2 잉굴다이에게 "음식을 가지고 돌아가서 그대들의 임금을 봉양하라."는 말을 듣고서 돌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최명길은 홍이포와 사다리를 목격하고 청군이 공성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였으며 김류는 청의 통사관 정명수에게 모욕을 당하게 된다.
('다시는 날 조선사람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라고 김류에게 말하는 굴마훈)
이 장면은 12월 29일의 출성전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세찬을 싣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없자 김류가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출성전을 벌여 청군과 싸우겠다고 한 것이었다. 인조가 이를 승인하여 결국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영화상의 위와 같은 장면은 실제 역사상의 병자년 12월 27일3, 조선측이 세찬을 청측에 보내며 그들의 의도를 떠보고 상황을 살피려 한 것을 각색한 것이다.
실제 역사상의 '12월 27일의 세찬 전달 시도'는 영화상과는 꽤 차이가 크다. 우선 조선 조정측은 최명길과 김류를 직접 내보내지 않았으며 명신으로 유명한 이항복의 첩자(妾子) 이기남을 대표로 세웠다. 본래는 급을 맞추어 고관인 이경직을 보내려 했으나 세찬 전달로 고관을 들여보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이견이 나와4 김류와 이홍주(당시 우의정)의 추천을 받아 이기남을 파견사신으로 발탁한 것이었다.
또한 조선측이 보낸 출성인원이 만난 상대도 다른데, 영화상에서는 잉굴다이(청 호부승정)를 만난 반면에 실제로는 마푸타(청 호부승정)5를 만났다. 또, 이 당시 청의 군진에서 홍이포를 목격한 것 역시 사실이 아닌데 홍이포의 경우 얼러훈 버일러 두두에 의해 운송되고 있었으므로 당시 남한산성 인근의 청군 군영에 없었다.
영화상에서 실제와 다르게 각색된 것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이기남이 최명길과 김류로 바뀐 것은 영화의 흐름을 위해서다. 실제 역사처럼 이기남이 등장하면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옴으로서 관객의 머릿속이 번잡해지며 최명길, 김상헌, 김류등에게 맞추어진 포커스가 흐려질 수 있다. 감독은 이 영화의 주인공중 한 명인 최명길과 이 영화상에서 '조선 관료의 부정적 면모'를 상징하는 김류를 함께 출성시키고 그들이 청군 진영에서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영화의 흐름을 유지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마푸타가 잉굴다이로 바뀐 것 역시도 영화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 청측의 포커스는 사실상 홍타이지(한), 잉굴다이(장수), 정명수(조선 입장서의 배신자이자 통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외의 등장인물들은 사실상 엑스트라에 가깝다. 그런데 '장수' 포지션을 몰아서 담당하고 있는 잉굴다이를 제치고 새로운 인물인 '마푸타'가 등장하게 되면 잉굴다이의 포지션이 흔들리게 된다. 그렇기에 마푸타를 출연시키지 않고 잉굴다이를 출연시킨 것이다.
역사와 달리 홍이포가 이 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홍이포가 '청군이 공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정명수와 김류간의 날 선 대화를 부드럽게 끌어내기 위한 장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정명수는 홍이포를 선전하며 '당신들의 임금이 숨은 저 작은 성벽도 이 홍이포 몇 발이면 속절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김류를 자극하고, 김류는 이에 본인의 성정을 억누른 채 '조선인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너무 심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에 정명수는 본인이 조선의 노비출신임을 밝히며 조선에 대한 본인의 증오심을 드러내는데 이는 영화상의 정명수의 캐릭터성을 축약한 것이다. 즉, 정명수의 캐릭터성과 김류의 모독감을 표현하기 위해 홍이포를 장치로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홍이포는 12월 29일날의 출성전6에서도 중요한 장치를 한다. 감독은 홍이포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전에 미리 그 존재를 관객들에게 알려주어 조만간 이 홍이포가 영화상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려는 의도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
아래는 각주
1.홍타이지를 지칭. 영화상에서는 관객들에게 보다 친숙한 표현인 '칸'으로 발음-표기되나 실제로는 만주어로 ''한'으로 칭했다. 물론 홍타이지가 몽골 세력들로부터도 칸으로 인정받았으니 칸으로도 칭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엄연히'한'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첨언하여 홍타이지는 1636년에 황제의 존호를 받는 의식을 거행했다.
2.홍타이지가 나왔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작 확인은 못했다. 실제 역사상에서는 이 당시 홍타이지는 남한산성 인근의 청군진영에 없었다.
3.병자록과 남한일기는 12월 26일을 특정하지만 이는 착오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12월 27일을 특정한다.
4.특히 구류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같다.
5.청에는 당시 각부의 고위 실무자인 승정이 여러명 존재했다. 이 시기 무렵 승정은 각부에 4명이 존재했는데 만주족 2명, 한족 1명, 몽골인 1명으로 구성되었다.
6.영화를 기준으로 한다. 실제 역사상에서는 해당 출성전에도 홍이포는 쓰이지 않았으며 여전히 후발부대에 의해 운송중이었다.
---
새벽반을 위한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