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게에 쓴 원제 : 1차 곽주 전투 묘사에 대한 비판
16화 이후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작품 전체의 평가 역시도 요동치고 있다. 최근에는 아주 조금이나마 평가가 반등하는데에는 성공했다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전성기 시절에 비해 부족한 면이 보이며, 중요한 부분의 생략과 그런 와중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곁가지 스토리 문제, 지나칠 정도로 어그러진 각색 역시도 여전히 부각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 번 스토리가 어그러지니, 작품 전체의 구조와 평가 역시도 회복이 힘든 상황이라고 보인다.
이렇다 보니 이전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문제들도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한창 서사와 연출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여러 흠집들이 보이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바로 1차 곽주 전투의 문제이다.
실제 역사상에서 1차 곽주 전투는 1010년 11월(음력) 통주 대전에서 도통사 강조(康兆)가 이끄는 고려의 주력군을 붕괴시킨 후 계속해서 진격한 거란군이 12월 곽주를 공격하면서 발생한 전투이다.
비록 통주 전투에 앞서서 존재했던 육돈, 탕정, 서성 전투에서 통군사 최사위가 이끄는 고려군이 거란군에게 누차 패하여 결국 퇴각했다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통주 인근에 전개된 고려의 주력군의 규모는 통주 대전 이전까지 그 규모가 상당했고, 전열 역시도 튼튼했다. 그렇기에 거란군의 연속적인 공격도 잘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승전으로 고려군의 기강이 해이해진 상황에서 이루어진 야율분노(耶律盆奴) 휘하 거란군의 맹공은 강조가 있던 주진을 붕괴시켰고, 도통사 강조, 도통부사 이현운(李鉉雲), 도통판관 노전(盧戩)등은 모두 생포되었다.1
통주에서 고려군이 대패하면서, 곽주의 고려군의 입장 역시 바뀌었다. 지리상 거란군이 통주 이남으로 남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곽주를 거쳐야 했다. 또한 아직까지 후방 거점을 확보치 못한 거란으로서 곽주는 재정비와 후위 안정을 위하여 확실히 손에 넣어야 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반대로 고려의 입장에서 곽주는 주력이 무너진 상황에서 거란군의 남하를 막는 제일선의 보루였다. 그렇기에 곽주의 고려군은 통주의 고려 주력군의 후위와 보급을 뒷받침하고 유사시를 대비하는 입장에서, 고려의 주력이 붕괴, 후퇴, 해산된 상황에서 계속해서 진군해 오는 거란군을 막는 입장으로 전환되었다.
완항령 전투에서 김훈등이 거란군의 패잔병 추격을 일시적으로 격퇴하기도 했으나, 거란군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12월 6일, 거란이 곽주 영내로 진입했다.
곽주 방어사 조성유는 거란군의 위압에 겁을 먹고, 야음을 틈타 임무를 버리고 도주했다.2 방어사가 도주한 만큼 곽주의 민심은 흉흉했을 것이다. 실제로 얼마 뒤 영주 안북도호부 역시도 도호부사 박섬(朴暹)이 도주한 이후 민심이 이반되어 백성들이 흩어졌으므로3, 영주보다도 최전선이었던 곽주 역시도 민심이 흔들리기에 충분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곽주가 쉽사리 거란에게 항복치 않고 저항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곽주에 남아 있던 우습유 승이인(乘里仁)과 대장군 대회덕(大懷德), 신영한(申寧漢), 공부낭중 이용지(李用之), 예부낭중 간영언(簡英彥)등이 끝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어사가 도망쳤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고자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대회덕등은 이미 1005년 한 차례 보강된 성채와, 거란군에 비할 바는 안될지라도 상당한 규모로 추정되는 방어병력에 의지하여 거란군과 교전했다.4그러나 이미 흔들린 사기, 병력 열세등의 조건을 극복할 수 없었고, 곽주는 전투 끝에 함락되었다. 승이인, 대회덕, 신영한, 이용지, 간영언등은 모두 전사했고5, 지휘부가 전멸한 상황에서 곽주의 남은 군민은 거란에게 항복했다.6 거란군은 곽주에 6천의 병력을 주둔시킴으로서 후방거점화를 실행했고, 이후 영주로 남하했다.
비록 방어사 조성유가 도주했을 지언정, 곽주에 남겨진 여타 지휘부와 병사들은 거란에 대한 저항 의지가 분명했다. 진주한 고려군은 영주와는 다르게 이산되지 않고 두 명의 대장군과 다른 관료들 아래에서 거란군을 상대로 확실히 저항했다. 최전선에서 거란군의 남하를 막으며 어떻게든 방어선을 유지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은 비록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졌으나, 그들의 저항은 통주의 고려 주력군이 붕괴된 뒤에도 고려군의 방어선 유지 시도가 여전히 맹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고려거란전쟁>에서는 어떠한가. 거란에 항복한 이현운이 곽주의 약점등을 거란군에게 말해 주고, 거란군은 그를 통해 방어사가 도주한 곽주성의 고려군의 저항을 빠르게 함락해 버린다. 그리고 장면은 곽주와 영주가 함락되었다는 전령과 이후의 승지 양협의 보고로 넘어가 버린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 2분에 지나지 않는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1차 곽주 전투. 전투 장면은 고작 15초에 지나지 않는다.
대회덕을 비롯한 곽주의 고려군 지휘부의 이름은 단 한 명도 언급되지 않는다.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곽주의 고려군은 통주 대전 이후의 암울한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이현운의 배신에 거란군에 도륙당하는 역할로만 나왔다. 이현운의 악역으로서의 역할 강화, 절망적 상황의 서사 전달의 희생양으로 고작 수십여초의 분량만을 배정 받고서 허무하게 소비된 것이다.
단 몇 분 정도의 시간만 추가로 할애했을 지라도, 그들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활용될 수 있었다. 대회덕과 신영한등의 지휘부가 암울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곽주를 지켜내고자 결의하는 모습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분전하며 곽주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습, 그러나 결국 성의 약점을 공략 당해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의 뇌리에 그들의 분전과 최후가 각인될 수 있었다. 그리 한다면 이현운의 악역으로서의 서사 강화와 고려의 절망적 상황의 묘사는 더욱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덜해지지 않았을 것이며, 동시에 드라마의 모토에 맞는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이들의 역할의 재인식' 역시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러지 않았다. 충분히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이들은 그저 엑스트라로 소비되었다. 실제 역사적 인물도 아닌 창작인물까지도 등장시키며 드라마를 만들어 가고 있는 제작진들은, 정작 실제의 인물들은 무시해 버렸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인물은 대회덕이다. 그는 드라마에서 그 최후를 각색하여 줄기차게 활용한 대도수와 마찬가지로 발해의 후손으로 인식된다.7이런 매력적인 조형 이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은 커녕 이름조차도 입에 담기지 않았다. 실제로는 탁사정의 도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거란에 항복한 대도수는, 드라마 속에서 이현운을 죽이고 장렬히 최후를 맞이함으로서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실제로 최후까지 항전하다 전사한 대회덕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이들이 장렬히 전멸했을 지언정 패했으니 드라마에서 언급하기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가? 마치 최사위의 패전이 생략된 것처럼 '승리의 전쟁', '통쾌한 전쟁'을 위해서 이들의 분전을 이리도 축약하고 이들의 이름 석자 조차도 언급치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무엇이었는가? '단지 기분 좋은 역사를 되새김질하기 위함이 아니'라던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16화 이전에는 이들의 이름 조차 언급되지 않은 것을 '촉박한 분량의 문제'로 아쉬워하는 정도였다면, 16화 이후에 드라마가 큰 줄기가 아닌 곁가지에 집중하고, 역사왜곡으로 까지 비춰질 수 있는 각색으로 분량을 낭비한 모습은 필자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
1.『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1월 24일. 『요사』 본기 성종본기 6권 11월 을유일.
2.『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6일. 防禦使戶部員外郞趙成裕夜遁.
3.『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8일. 安北都護府使工部侍郞朴暹棄城遁, 州民皆潰.
4. 『고려사』 권82, 지 권제 36, 병 2 성보. 『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6일. 곽주의 고려군은 대장군급이 2명 배치된 점, 곽주의 중요성, 곽주성의 규모와 민간인 수효등을 생각해 보건대 규모가 적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강조 역시도 자신의 후위를 받쳐줄 곽주에 다수의 병력을 남겨 두었을 것이다.
5.『고려사절요』 권3, 현종 1년 12월 6일, 右拾遺乘里仁, 大將軍大懷德·申寧漢, 工部郞中李用之, 禮部郞中簡英彥皆死.
6. 『요사』 본기 성종본기 6권 11월 을유일. 단, 항복의 표현이라는 것은 요사의 성종의 치적을 강화하기 위한 윤색이며 실제적으로는 고려군이 전투 끝에 모두 전멸한 뒤 완전 무력화 형태로 함락 되었을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7.박순우, 『10~14세기 ‘渤海人’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7, 284쪽.
---
어제 비추받고 베글 못가서 오늘 다시 올림.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예산이 딸렸어도 장포스 나레이션으로 대회덕, 신영한, 승이인, 이용지, 간영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분전했으나 결국 거란군을 막지 못했다"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이름 석자 조차 언급 안되는게 빡치는 거거등요.
킹직히 '아 그냥 예산이 쪼들려서 저랬구나. 아쉽지만 뭐...' 이렇게 익스큐즈(?) 될 여지도 충분했는데 17화 이후의 전개들 때문에 그 여지를 스스로 걷어차버린 것도 제작진의 역량 부족이라면 역량 부족일듯.
이것도 처음 안 사실이네 ㄷㄷㄷ
잊혀진 영웅들을 조명하겠다는 기획의도와는 영 맞지 않는... 그들의 이름, 고려궐안전쟁이 대신한다아아아으아아
이것도 처음 안 사실이네 ㄷㄷㄷ
킹직히 '아 그냥 예산이 쪼들려서 저랬구나. 아쉽지만 뭐...' 이렇게 익스큐즈(?) 될 여지도 충분했는데 17화 이후의 전개들 때문에 그 여지를 스스로 걷어차버린 것도 제작진의 역량 부족이라면 역량 부족일듯.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예산이 딸렸어도 장포스 나레이션으로 대회덕, 신영한, 승이인, 이용지, 간영언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분전했으나 결국 거란군을 막지 못했다"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이름 석자 조차 언급 안되는게 빡치는 거거등요.
미하엘 세턴
잊혀진 영웅들을 조명하겠다는 기획의도와는 영 맞지 않는... 그들의 이름, 고려궐안전쟁이 대신한다아아아으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