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blog.naver.com/deepflow39/222252326307
기승전결이 있는 5초짜리 루프를 삼분 가량 반복해서 듣는, 붐뱁의 형식미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명료하다.
내가 이 곡을 좋아할지 아닐지가 결정되는 시간은 비트가 시작되고 딱 5초면 충분하다.
붐뱁 (Boom Bap) 은 드럼 킥(Boom), 스네어(Bap)를 표현한 의성어에서 파생됐다.
붐뱁은 어택감 있는 드럼 소스와 패턴, 8-90대의 BPM 템포. 묵직한 베이스, 그 위에 얹은 샘플 루프로 설명된다.
샘플링은 고전 소울과 펑크 등의 음악 중 일정 부분을 소스 삼아 자르고 재조합하는 방식(cut & paste)으로 통념적인 코드 진행을 파괴하며, 주어진 재료를 남보다 얼마나 기발하고 의외성 있게 콜라주 하는가의 미학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붐뱁이 일반적인 (얼터너티브로 분류할 수 있는) 미디엄 템포의 비트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가장 다른 점은 비트가 내뿜는 aggressive 한 기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비트가 나오는 순간 당신의 모가지가 꺾여야 한다.
재밌는 사실은 최근 '네오 붐뱁' 이라는 새로운 경향의 등장이다.
트랩만큼 느린 BPM에, 드럼이 아예 없는, 기존 형식을 벗어난 실험적인 비트들이 고전미와 결합한 특유의 뉘앙스를 풍기며 '붐뱁' 으로서 설득력 있게 만들어지고 있다.
Griselda Records 와 Freddie Gibbs, The Alchemist의 최근작들이 대표적이다. 내가 최근 가장 영향받고 꽂혀있는 작법 스타일이기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과거 한국에도 본토 뺨치는 좋은 붐뱁 넘버들이 많이있다.
오늘은 그중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정통성, 고전미 넘치는 국내 붐뱁트랙 열 곡을 소개하겠다.
황홀한 5초의 미학!
YDG - 선문답 (feat. Sean2slow) (2001년)
프로듀서 Ill Son의 그야말로 미친 비트. (지금은 음악을 관두셨다고 들었다.)
잘게 차핑 되어 피치업된 샘플 소스가 마치 레이저건을 쏘는 듯한 루프.
이미 20년 전 완성된 두 래퍼의 랩 퍼포먼스.
YDG형의 선문답 시리즈는 2까지 나왔다. 2는 이곡과 달리 chill한 무드의 곡이다. 여담으로 2007년 선문답 3가 제작됐었고 그 비트를 내가 만들었었다! 하지만 여러사정으로 세상에 나오진 못했다.
YDG - Lyrics to go (feat. Ill Skillz) (2002년)
이 역시 Ill Son 님의 비트. Isaac Hayes의 곡을 멋지게 차핑해서 샘플링 했다.
나른한 브라스 샘플의 어반한 무드와 둔탁한 붐뱁 드럼의 조화.
피처링으로 참여한 일스킬즈 두 형들의 가사를 아직도 틀리지 않고 외운다.
Ill Skillz - 알아들어 (feat. DJ Soulscape) (2001년)
2000년대 한국 힙합 간지 일등을 꼽으라면 이 곡이다.
길이 남을 훅. 각기 다른 세 래퍼의 톤과 밸런스. 당대의 모든 프로듀서들을 압살할만한 소울스케입 형의 비트.
그야말로 Phat!
가리온 - Undergrond (2000년)
마스터플랜의 첫 컴필 앨범 수록곡. 가리온 1집에는 재녹음되어 실렸다. 나는 첫 번째 버전이 더 좋다.
내가 가장 처음 산 언더그라운드 CD이고 이 버전을 훨씬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익숙해서일지도.
메타형이 조금 더 격양된 목소리로 뱉는다.
이 곡의 음울하고 몽환적인 스트링 루프가 지금까지 내 취향을 결정지만큼 강렬했다.
파운더 앨범 인트로 가사 초반에 이 곡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모든 것이 담긴 JU의 MDP!
가리온 - 이렇게 (2003년)
JU 님의 비트는 월드클래스다. 이하 생략.
Da Crew - 진일보 (feat. 미쓰라진, K.O.D) (2002년)
프로듀서 사탄형의 역대급 필살기. 너무나도 육중한 비트. 당시에 이 Inst에 랩 안 해본 래퍼 지망생 없었음.
그야말로 Phat! 진짜 멋진 듀오 K.O.D 와 지금보다 터프한 스타일의 미쓰라진 형의 피처링.
주석 - 개전 2002 (2002년)
주석형의 두 번째 앨범 자체가 미친 비트투성이다. 그중에서 가장 간지나는 개전 2002의 샘플 컷.
당시 비슷한 시기에 알케미스트가 스눕독에게 준 비트가 같은 샘플을 사용했는데 주석형의 승리.
더콰이엇 - The Rap Game Pt.2 (2004년)
People & Places 컴필 수록곡. 5초짜리 샘플을 절묘하게 루프 시킨, 비장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흡사 미지의 던전으로 빨려 들어가는듯하다. 나지막하지만 간지나게 포부를 뱉는 신인 더큐의 랩.
Loptimist - The Triumph (feat. Simon Dominic) (2007년)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센스의 샘플 차핑. 랍티미스트가 천재라는 것이 증명된 비트.
쌈디의 당시 모든 동년배들을 압살하는 랩 퍼포먼스. 15년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타.
Loptimist - Black Cancer (feat. Dead'P) (2007년)
같은 앨범에서 트라이엄프와 이 곡이 자웅을 겨룬다. 정통파 차핑 작법 붐뱁의 마지막 역사 같은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