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북한 학자 이지린과 중국 학자 고힐강 사이의 북경대 박사학위 논문을 두고 벌인 학술 논쟁 학술 논쟁의 주제는
고조선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하던 고힐강은 고사변학파의 대표적 학자
고사변학파는 춘추는 공자가 쓴게 아니라 후세 노나라 사관들이 공자의 이름을 빌어 쓴 것이라 주장할 정도로 중국의 봉건적인 역사 인식을 거부한 학자군들
그에게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받는 북한학자 이지린이 주장하는 고조선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아버지가(환인이) 아들(환웅)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 태백을 굽어보니 인간에게 널리 이익을 줄만하기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보내 그 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고힐강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 삼위태백이 하나의 지명이 아니라 알타이 지역의 삼위산과
태백산 2개의 산을 지칭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지린의 주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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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 우공편에는 지명 삼위산이 나오고
流共工于幽洲, 放驩兜于崇山, 竄三苗于三危, 于羽山. 四罪而天下咸服. ( 상서 순전 )
삼위산에 대해서 춘추좌전 소공 9년조에 대해서 두예는 “ 삼위산은 괴주에 있는데 지금의 돈황이다 라고 말했다. 지금 감숙성 돈황현 남쪽 당하 곁에 삼위산이 있다.
고대의 삼위산은 오늘 중국의 서쪽 맨 끝에 있는 산이라는 것은 확실하나 오늘의 어느 산인가는 불명확하다. 삼위산이 대체로 알타이산과 연결되는 현 중국 서북방의 산인 것은 틀림없다. 이 사실은 고조선족이 알타이 지역에서 이동하여 왔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로 될 수도 있으나 우리는 이 한가지 사실만을 가지고서는 그것을 논단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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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린의 논리 정연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중국학자 고힐강은 이지린에게 “ 민족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자” 라고 하는 혹평을 내렸습니다.
과연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일까요?
최근의 고고학 발굴 자료는 이지린의 주장이 반드시 틀렸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유적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000년 전에 숲과 풀이 우거진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막이 되어버린 타클라마칸 소하묘에서 신비한 8각형의 기둥 유적이 나왔습니다.
발굴 당사자인 중국 학자들은 4000년전의 이 신비한 8각 기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척이나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 유적과 박혁거세의 초기 유적을 연관지어 생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2000년이 지난 후 박혁거세를 제사 지내던 곳으로 알려진 나얼 유적에서는 기원전 2세기에 팔각형 나무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나왔습니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웠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져 있던 시절의 유적이고 삼국사기는 신라 초기 형성 세력으로 고조선의 유민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8각형 나무 기둥을 숭배한 것이 알타이와 경주에서 나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알타이와 한반도 이것이 고조선의 강역이었던 것이 맞을까요?
이지린은 중국학자 고힐강의 말대로 민족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였을까요?
이 모든 내용이 아래의 다큐멘터리에 있습니다
아스달도 재미없어서 안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