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왕에서 신무왕까지는 모두 원성왕의 자손들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며 왕위를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언젠가 이 난장판을 한 번쯤 쭉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일단 가계도를 좀 알아야 합니다.
김경신(원성왕)
김인겸(혜충)
김준옹(소성왕)
김청명(애장왕)
김체명
김언승(헌덕왕)
김제옹(김수종?, 흥덕왕)
김충공
김명(민애왕)
김의영(헌평, 무자식 상팔자?)
김예영(김효진)
김균정
김우징(신무왕)
김헌정
김제륭(희강왕)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는 대체로 불분명하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왕위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성왕 - 소성왕 - 헌덕왕 - 흥덕왕 - 희강왕 - 민애왕 - 신무왕
신무왕 이후로는 신무왕의 아들인 문성왕으로 승계되는데, 이 때부터는 나름 무난하게 왕위가 이어진 것 같습니다. 백성들은 무난하지 않았지만요.
원성왕은 선덕왕이 죽은 뒤 왕위를 잇습니다. 원성왕은 14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아주 무난하게 정사를 봤습니다. 저는 무식해서 원성왕의 치세에 대해서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원성왕에게 불행한 점이 있었다면, 생전에 아들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七年, 春正月, 王太子卒, 謚曰恵忠.(원성왕, 791)
八月, 封王子義英爲大子.(원성왕, 792)
太子義英卒, 謚曰憲平.(원성왕, 794)
十一年, 春正月, 封恵忠太子之子俊邕為太子.(원성왕, 795)
원성왕 가계도가 엿 같은 점은 본기 기록에 가계가 깔끔하게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기록만 보면 원성왕의 아들이 둘(혜충, 의영)이겠구나 싶은데, 희강왕본기를 보면 김균정이 흥덕왕의 사촌이라고 했고, 흥덕왕은 혜충태자의 아들이니 김균정은 혜충태자의 형제의 아들이어야 하고, 그런데 의영태자는 기록상 자식이 없고, 따라서 제 3의 아들이 있게 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예영', 일명 '효진'입니다. 저는 신라사 전공자도 아닐 뿐더러, 경주 김씨 가계도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위의 가계도를 맞는 것으로 간주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여튼, 아들인 김인겸(혜충)은 791년에 죽었고, 다른 아들인 김의영을 태자로 두었더니 794년에 죽습니다. 또 다른 아들인 김예영이 있었으나, 왜인지 태자위가 처음 죽은 김인겸의 아들인 김준옹에게로 갑니다. 원성왕이 14년만에 죽은 뒤, 김준옹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소성왕입니다.
소성왕은 원성왕의 손자입니다. 하지만 소성왕도 불행했습니다. 소성왕은 799년에 왕위에 올라 800년에 죽고 맙니다. 그 나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소성왕 사후 그 아들이 어린 나이로 왕위를 잇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부족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소성왕이 죽고 그 아들인 김청명이 왕위에 오릅니다. 바로 애장왕입니다.
애장왕은 원성왕의 증손자입니다. 13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너무 어려서 '언승'이 섭정했다고 하는데, 언승은 바로 소성왕의 형제이자 애장왕의 삼촌입니다. 애장왕의 불행은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그리고 장성한 삼촌이 눈에 불을 켜고 섭정으로서 정치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애장왕은 10년 동안 통치했고, 23살?에 삼촌'들'의 쿠데타로 잡혀 죽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바로 섭정이었던 김언승과 그 동생인 김제옹입니다. 나중에 흥덕왕본기에는 왕의 휘가 '수종'으로 나오는데, 아마 김제옹과 김수종은 동일 인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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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덕왕은 원성왕의 손자이고, 소성왕의 동생이자 애장왕의 삼촌입니다. 조카를 잡아 죽인 업보를 받는 것인지, 헌덕왕의 치세에는 외부의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일단 기근이 많았습니다. 신라 백성들이 절강까지 가서 레이드를 뛰었답니다. 탁발부에서는 절도사들이 깽판을 칩니다. 권력 공백이 생기자 아마 해좇들도 많이 생겼을 겁니다. 그 와중에 김헌창이 웅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왕의 사촌과 오촌인 김균정, 김우징 부자 등이 잘 진압했긴 하지만, 멍가 뒷통수가 가렵습니다. 헌덕왕은 재위 18년만에 죽었습니다. 왕위는 동생이 이었으니, 바로 흥덕왕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