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통일한 이후, 외부로는 큰 전쟁 없이 무난하게 멸망까지 이어졌습니다. 적어도 삼국사기에 나와있는 대로면 그렇습니다. 통일 이후에도 간혹 전쟁 기록이 확인되긴 합니다. 성덕왕 때인 731년에 왜놈들이 공격해 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성덕왕 때인 733년에 발해를 공격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들은 단발적으로 그쳤고, 그 전과 등도 불분명합니다. 현종 이후로 다시 신라와 가깝게 지낸 동맹인 탁발부는 907년에 망할 때까지 중국의 지배 세력으로 존속했습니다. 발해 역시 926년에 망할 때까지 신라와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한편 왜놈들도 신라와 크게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왜놈들은 백제 멸망 시기 한반도의 전란에 말려 들어 크게 데였던 적이 있었는데, 통일 당시에는 신라나 탁발부의 침입을 두려워했고, 상황이 안정된 이후에도 발해와 함께 신라를 공격할 계획도 있었던 것 같으나 실제로 전면전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신라는 자체적으로 황해도를 점령하고, 평안도로도 북진해 갔다는 정황 증거가 있긴 하나, 그것이 다른 나라들과의 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외부적인 사정이 이처럼 안정된 것도 운이라면 운이겠습니다.
하지만 내부는 외부처럼 아주 평화롭지는 않았습니다. 내부에서는 지속적으로 반란이 터졌거든요. 탁발부에서는 주로 국경 지역을 방어하라고 보낸 절도사들이 문제를 일으켰죠? 이에 비해 신라에서는 왕족 또는 귀좇들이 수도에서 반란을 지속적으로 일으켰습니다.
예를 들어 통일 직후인 신문왕 시기에도 큰 반란이 두 번이나 터집니다. 하나는 김흠돌의 난(681)입니다. 김흠돌의 난이 신문왕의 기획인지, 아님 진짜 반란이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어쨌거나 신문왕은 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무열왕, 문무왕 때의 공신들을 어느 정도 박살내고 치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보덕국의 고구려 잔당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대문의 난(684) 또는 복실의 난이라고 합니다. 신문왕은 이 반란도 쉽게 진압해 버립니다.
신문왕 시기 이 두 반란은 그래도 기록에 몇 줄 이상 남았습니다. 규모가 컸거나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것이죠. 반대로 기록에 한 줄도 남지 못한 반란도 수두룩합니다. 효소왕 때는 이찬이었던 경영이란 놈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700) 하지만 이 반란은 전후 사정도, 뭣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반란들을 700년부터 삼국사기에 보이는 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영의 난(700, 효소왕, 이찬)
영종의 난(740, 효성왕, 파진찬) - 딸의 대우에 대한 불만
대공, 대렴의 난(768, 혜공왕, 각간) - 96각간의 난, 전국적인 내전?
김융의 난(770, 혜공왕, 대아찬)
김은거의 난(775, 혜공왕, 이찬)
염상과 정문의 난(775, 혜공왕, 이찬, 시중)
김지정의 난(780, 혜공왕, 이찬) - 반란 중 혜공왕, 와이프 시해
제공의 난(791, 원성왕, 이찬)
언승, 제옹의 난(809, 애장왕, 왕의 숙부) - 조카 잡아 죽이고 헌덕왕 즉위
서부 민란(815, 헌덕왕) - 기근 때문에 서부에서 민란
초적 봉기(819, 헌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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