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명 : 성선임 [成膳任]
☆ 생 일 : 1983년 3월 10일
☆ 출 신 : 코우치현(高知縣)
☆ 국 적 : 대한민국 [재일교포 3세]
어린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성선임>은 재일교포 3세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한국 국적을 가졌죠.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녀에게는 일본 이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단지 <선임>의 일본식 발음 <소닌>으로 불리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오빠와 함께, 아버지의 교육방침에 따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연예계 데뷔 전까지는 조선학교를 다니며,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일본의 전설적 4인조 걸그룹「SPEED」의 콘서트를 보게되고, 그것을 계기로 가수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의 인기 걸그룹「모닝구 무스메」의 3기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고, 그녀는 오디션에 <성선임>본명으로, <재일교포>임을 당당히 밝히며 참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디션 최종 문턱까지 오르고도, 단지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탈락을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당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걸 그룹에 재일교포가 뽑히는 것은 곤란하지 않나>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디션 당시의 선임☆
하지만 당시「모닝구 무스메」의 매니져를 담당하고 있었던「와다 카오루」는 그녀에게 흥미를 갖게 됩니다. <일본인에게는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라고 생각한 그는, 탈락한 그녀에게 연락해 연예계 데뷔의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1년여의 연습생 생활을 거쳐,「모닝구 무스메」의 3기로 뽑히며 에이스로 활동하고 있던「고토마키」의 친 남동생「고토 유우키」와「켄」이라는 남자 연습생과 함께 <좋잖아>라는 뜻을 지닌 <이이쟝 [いいじゃん]>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한「EE JUMP」라는 팀명으로, 혼성 그룹 데뷔 준비를 시작합니다.
정식 데뷔 전 부터 방송 백댄서로 고정 프로를 담당하거나 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켄」이 갑자기 <축구를 하고싶다, 일반인이 되고싶다>라고 하며 탈퇴해 버립니다. 이에「와다 카오루」는 새로운 맴버의 보충없이, 2인조 혼성 아이돌 유닛이라는 드문 형태로 정식 데뷔를 결정합니다.
☆「EE JUMP」데뷔 싱글「Love is Energy!」☆
2인조 혼성 아이돌유닛「EE JUMP」는, 2000년 10월 18일 싱글「Love is Energy!」를 발매하며 정식 데뷔 합니다. 그리고 활동 직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기 시작하게 되는데, 첫번째는 인기 걸그룹「모닝구 무스메」의 3기로 뽑히며 에이스로 활동하고 있던「고토마키」의 친 남동생「고토 유우키」의 존재 때문이었고, 또 한가지는 <일본 연예계 최초>로 <재일교포>임을 당당히 밝히며 데뷔한 <성선임>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일교포>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성선임>을 진심으로 반기는 대중들은 드물었습니다. 모든 활동에서 집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것은 오직「고토마키」의 친 남동생「고토 유우키」였습니다.
☆고토 유우키, 그리고 고토마키. 일명 고토 남매로 불리며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첫번째 싱글「Love is Energy!」와 두번째 싱글「Hello! 新しい私 [Hello! 새로운 나]」는 각각 5만장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중들의 관심해 비해서는 뚜렷한 판매량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룹의 컨셉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태여서, 메인보컬을 담당하는 선임과 달리, 유우키의 파트는 명확하게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이었죠.
이에 유우키를 랩 포지션으로 고정하고,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 만든 독특한 새번째 싱글「おっととっと夏だぜ![아차차차 여름이다!]」를 발매합니다. 이 독특한 여름음악은 큰 인기를 모아 오리콘챠트 5위에 랭크되며 18만장을 팔아치웠고,「EE JUMP」는 단숨에 인기 아이돌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EE JUMP」세번째 싱글「おっととっと夏だぜ!/ 아차차차 여름이다!」☆
여세를 모아 네번째 싱글「イキナリズム [이키나리즘]」은 전작을 잇는 개성적인 곡과, 한국인+일본인 조합의 유닛이라는 점을 착안해,「2002 한일월드컵」을 의식한 마케팅을 적절히 믹스해서 활동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화제가 되었던 포스터. PV에서도 선임이 한국 유니폼을 입고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싱글 발매 쇼케이스 전날 유우키가 갑자기 잠적하면서 활동이 엉켜버립니다. 당시「EE JUMP」가 쇼케이스 장소 근처에있는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일본 남성 아이돌 기획사「쟈니즈」연습생 친구들과 놀기위해 탈출하던 유우키가 매니저에게 발각이 되어버린거죠. 유우키는 매니져와 다툼끝에「그만 둬 주겠어!」라고 소리치며 잠적해 버린 것. 미리 녹화되었던 방송은 모두 중단되었고, 캔슬이 어려웠던 활동은 선임이 모두 홀로나와 활동해야 했습니다. 얼마 뒤 유우키는 다시 회사로 복귀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소속사는 유우키에게 일단 근신 처분을 내렸고,「선임의 솔로 싱글 프로젝트」를 조심스럽게 시도합니다.
☆「EE JUMP Featuring Sonim~ WINTER~寒い季節の物語~ / WINTER~추운 계절의 이야기~」☆
그런데 이 싱글이 네번째 싱글 활동을 홀로 고군분투했던 선임에 대한 동정표로 의외의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에 소속사가 이미 이미지가 실추된 유우키를 다시 복귀시킬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 결정권은 선임에게 주어졌고, 직접 유우키와의 면담을 통해 선임은 다시 유우키와 함께 활동하기로 마음을 잡습니다. 이에 극적으로 유우키의「EE JUMP」복귀가 결정됩니다.
하지만 이미지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와다 카오루」씨는 한가지 방송을 기획합니다. 그것은 캄보디아로 날라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방송을 찍자는 것. 인기 음악 버라이어티「우타방」을 통해 방송된 이 특집은, 유우키의 무단이탈에 대한 시청자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하게 만들었고, 복귀타이밍이 되었다고 판단한「와다 카오루」는「EE JUMP」의 새로운 싱글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캄보디아 봉사활동 방송으로 유우키는 어느정도 이미지를 회복한다☆
유우키의 복귀와 함께 발매된 여섯번째 싱글「 青春のSUNRISE [청춘의 SUNRISE]」는 나쁘지않은 성적을 보여주었고, 이에 소속사는 중국「상하이」로 날아가 쟈켓촬영을 하는등, 의욕적으로 정규 준비에 1집 박차게 됩니다. 그러나 앨범의 레코딩을 마치고, 공장에서 바쁘게 앨범을 찍어내기 시작한 어느날, 다시한번 사건이 터져버립니다. 유우키가 이번에는 중학생 신분으로 한국으로 치자면 룸싸롱에 해당하는「캬바쿠라」에 드나드는 장면이 파파라치 주간지「프라이데이」에 찍혀버린거죠.
☆파파라치에 룸사롱 드나드는게 떡하니 찍힌, '아이돌이기 이전에 중학생 신분'의 유우키 […]☆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이 기사 직후 유우키는 회사와의 면담을 거친뒤,「더 이상 회사와 선임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다」며 연예계 은퇴를 선언합니다. 음반 레이블이었던「토이즈 팩토리」는 공장에서 찍어냈던「EE JUMP」관련 음반 전량을 패기처분 해 버립니다. 설상가상「토이즈 팩토리」는「와다 카오루」에게 더이상 같이 일하기 어렵겠다고 통보합니다. 유우키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선임도 연예계 은퇴의 기로에 놓여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선임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사장이자, 매니져였던「와다 카오루」는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와다 카오루」는 친분이 있는「우타방」PD와 진지하게 선임을 위한 한가지 기획을 준비합니다. 그것은 선임의 일본의 고향「코우치현」에서부터, 한국의 고향「경남 거창」까지 570km의 마라톤을 완수하는것. 절때 쉬운 기획이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에게 더이상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또한 이 기획은「한국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을 대중들에게 공감 얻게 할 수 있는 방송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선임은 그 기획을 받아들입니다.
☆「코우치현」에서부터, 한국의 고향「경남 거창」까지 570km의 마라톤 Part 1☆
☆「코우치현」에서부터, 한국의 고향「경남 거창」까지 570km의 마라톤 Part 2☆
마라톤은 큰 화제를 모았고, 그녀는 어렵게 솔로 데뷔의 준비를 해갑니다. 여기에「와다 카오루」는 선임을 대중들에게 주목시키기 위해서 또 한번 승부수를 띄우게 됩니다. 그것은 상의를 모두 탈의하고 단지 앞치마만을 두른 파격적인 컨셉의 쟈켓 사진으로 주목을 끌자는것. 선임의 글래머한 모습에서 착안한 이 쟈켓 기획은, 두번째 싱글「津輕海峽の女 [츠가루 해협의 여자]」에서도 활용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솔로 첫번째 싱글「カレ ーライスの女 [카레라이스의 여자]」☆
한편 두번째 싱글을 발매하던 당시에도「와다 카오루」는 선임을 위한 혹독한 특집들을 연이어 기획, 방송합니다. 그 중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것이「5만6천 개의 도미노 혼자 쌓기」방송.「570km 마라톤」의 연장선상으로 이어진 이 기획을 완수하면서, 선임은 노래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었고,「근성 아이돌」「흙탕물 아이돌」등의 별명을 얻으며, 솔로 활동을 위한 인지도도 확보하게됩니다. 이후 선임은 가수 활동과 함께 드라마에도 출연하며 연기자로써도 연예계 활동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두번째 기획「5만6천 개의 도미노 혼자 쌓기」이 방송으로 일본 도미노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한편으로는「EE JUMP」1집에 레코딩되었던 미발표 음원들을 선임 솔로 싱글의 커플링곡으로 채택해, 선임 솔로버전으로 재 레코딩해 순차적으로 공개합니다. 이어,「EE JUMP」시절의 미발표 곡을 마지막으로 수록한 4번째 싱글을 발매한 직후, 드디어 2003년 5월 14일 성선임 정규 1집「華 [하나]」를 발매 합니다. 이것은 독음이 한국어로「1」을 의미하는「하나」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지어진 타이틀로, 이 앨범 발매 직후 라이브 투어도 개최합니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선임에게 들려옵니다.「EE JUMP」시절의 미발표 곡을 모두 솔로곡으로 재 발표한 시점에서,「토이즈 팩토리」가 성선임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입니다. 일본 연예계의 특성상, 메이져 레이블과 음반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인디 음반으로 앨범을 내거나, 아니면 가수로서의 활동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합니다. 그녀에게는 또 한번의 가수로써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물론 선임은 연기자로써, 그리고 예능인으로써 입지를 다져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의지에 따라서는 가수 활동을 중단해도 연예계 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임은 계속 노래하고 싶어했습니다. 이 결정을 어렵게 받아들인「와다 카오루」는 이번에도「우타방」을 통해 기획을 준비합니다. 그것은「전국 100개소 게릴라 라이브」를 펼치는 방송. 장소와 시간에 구애되지않고, 전국을 돌며 기타 하나만 들고 노래를 하는 기획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신곡을 홍보함과 동시에, 가수로서 정체성을 찾게해줄……힘들지만, 해내야만 하는 기획이었습니다.
☆「전국 100개소 게릴라 라이브」☆
선임은 이 방송을 통해서 좌절하고, 힘겨워 하면서도 가수로써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방송은 또다시 대중들에게 반향을 일으켰고, 이례적으로 선임은 인디 음반으로 음반 발매를 결정합니다. 메이져에서 인디즈로 내려간다는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선임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고, 단지 노래하기 위해 이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초까지 선임은 인디 음반으로 세장의 싱글을 발표하며 가수로써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한편 이러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동안에도, 그녀의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과 한국 사랑은 한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솔로 첫번째 싱글「카레라이스의 여자」활동 당시에는「카레와 김치를 같이 먹어야 맛있다!」라고 방송에서 말하고 다니거나, 언제나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며 활동했습니다. 특히나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서, 한류열풍과 함께 여러 한류스타 행사에 리포터등으로 활약하거나, 통역을 돕거나 하며 활동했습니다.
☆「우타방」의「한국에 문화 로케」☆
☆2006년 월드컵 당시, 집에서 한국을 응원하며 찍은 인증샷☆
☆데뷔부터 쭉 사용하고있는 한글로 된 싸인☆
☆한국팬들에게 답글달기 위해 키보드에 한글자판을 펜으로 적어놨다.☆
또 최홍만이 K1대회에서 승리하자 우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많은 사랑을 여전히 표현했고, 2006년 1월 SBS의 드라마「천국의 나무」에「미카」역으로 출연하게 됩니다. 그녀는 크랭크업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 해 9월 한국의「CJ 뮤직」을 통해서 솔로 첫번째 싱글「カレ ーライスの女 [카레라이스의 여자]」를「후애 [後愛]」라는 타이틀로 한국어 개사해서 부르고 디지털 싱글로 공개해보자는, 작지만 기념이 될만한 한국 가수 활동을 제의받습니다. 이에 선임은「m-net」의「M 카운트다운」에도 한 회 출연하게 되고, 며칠간 인터뷰 일정을 소화하며, 드디어 한국에서 자신을 알리고 노래 할 수 있는, 짧지만 의미있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한국 첫번째 디지털 싱글「후애 [後愛]」☆
선임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을 알리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제는 더 이상 활발한 가수 활동은 못하고 있지만, 예능과 드라마를 거쳐, 현재는 뮤지컬 배우로써 입지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원빈의 열혈 팬이며, 언제나 한결같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그녀는 재일교포 3세의「가수 성선임」입니다.
춫천~ 자랑스럽네요. ^^
ㅠㅠ 좋은 내용이네요 ㄳㄳ!
성선임만세!!!!좋은 글 잘 봤습니다^^
ㅠ_-)b
정말 감동이네요. 선임~! 응원합니다.
디지털 싱글 후애... 아직도 듣고 있는 노래죠.. 한국에서 활동 잘 되길 바랬었는데...
정말 고생 많이 했죠!! 몇년전에 마라톤 영상을 본후 그녀의 영상이란 영상을 다 뒤져서 보고 팬이된 1인!! 정말 잘 되길 바랬는데...........역시 재일동포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듯.......정말 와다사장 음.........고생 많이시키더니...쩝 한류붐이 불때쯤만 데뷔했어도 ..........아쉬워요 노래 정말 잘하는데.....영어 일어 한국어 3개국어 구사할 정도로 언어능력도 좋고 인간성도 좋은 친구인데........ 정말 아쉽당.....
재일교포들은 참...힘들어요... 오죽하면 다카 출신 아란케이 라고 유명하신 분이신데... 주연을 15년만엔가 맡으셧다고... 자기도 인터뷰때 그런 벽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었나 싶다고 할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