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스: 라이더
- 출전: 사실체계 (Historia)
- 지역: 한반도, 조선 인조 대
- 속성: 질서-중립 / 인(人)
- 성별: 남성
- 신체: 172cm/67kg
- 이미지 컬러: 검푸른색(?)
- 좋아하는 것: 본인의 능력, 실천가능한 정책, 일관성이 있는 사람,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 민생의 안정
- 싫어하는 것: 비현실적인 명분만 늘어놓는 관료들, 무책임하고 모함을 일삼는 놈들, 왕의 한심한 판단력,
- 패러미터 :
근력 E 내구 B 민첩 C 마력 B 행운 D 보구 A
▲ 무고의 괴물[E]
조선조 내내 매국의 대명사, 역적, 국치의 주범이라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말도 안되는 모함과 오욕을 당했던 일화가 구현된 스킬.
그는 오직 조선 조정의 보호와, 전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일념만으로
때로는 목숨을 건 외교전에도 뛰어들며 주화의 입장을 견지했으며,
결과적으로 조선을 전란의 혼란에서 지탱하고 수습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로인해 명분과 의리만을 중요시 여기던 사관들의 비방과 저평가 등으로 깎아내림을 당해
조선조가 완전히 막을 내리기 전까지는 그 공을 한순간도 온전히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가 조선조 대대로 저평가된 기록은 현대에까지도 전해져내려오기에,
이미 그에 대한 재평가가 된 지금까지도 이 스킬이 완전히 삭제되지는 않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수준의 랭크이다.
다만 조선조가 멸망한 현대에는, 외교의 실리와 민생의 안정 모두를 신경쓰고자 했던
그의 현실주의적이면서도 양심적이고 원칙주의적인 면모가 높게 평가됨으로서 그 랭크가 많이 떨어지게 되어,
현재는 있으나 마나한 수준의 랭크인 E랭크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무고의 괴물 스킬인 만큼, 약하게나마 반대자들에게 적대를 받는 효과가 존재한다.
▲ 이단 - 양명학자[A]
성리학을 국시로 삼고 있었던 조선시대에, 그것도 점차 성리학 원리주의가 강화되어만가던 조선 후기에,
이전시대의 명분위주의 논리와 추상적인 송의 성리학에 반발하여
왕양명 등의 명나라 대의 학자들이 당시에 새롭게 주창했었던 유학 내 학파인
양명학을 몰래 독학하기도 했었다던, 조선 내에서는 대단히 드물었던 양명학자이기도 했다.
당대 허다한 관료들에 비해 현실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명학을 공부했던 점도 한 몫 한다고.
다만, 성리학 원리주의가 점점 심해지는 시대 상, 대놓고 표면화할 수는 없었다고 하였다고.
이 스킬에는 조선시대의 국시였던 성리학의 불변성, 경직성들을
그 자신의 업적에 덧대어서 깨뜨릴 수 있는 효과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만큼 본인 자신도 꽤나 크게 타격 입는 스킬이기도 하다.
▲ 충의의 직언[A]
사실상 문제 많은 인성과 함께 무능했던 왕으로 조선 전체에서 손꼽히는 인조조차도 업적이 존재하긴 하는데,
그 인조대의 몇몇 업적들 중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관료가 바로 그였다고 한다.
업적이 존재하는 인조대의 또 다른 관료가 있다면 효종대에 비로소 꽃피웠던 대동법의 아버지, 김육 정도나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이쪽은 아들대인 효종때에나 이뤄질 수 있었다.
그가 그런 현실적인 정책들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순전히 그가 중요 반정공신 중 한명으로서 왕에게 얻은 개인적인 신뢰를 이용해
그의 합리적인 민생 개혁 정책 및 전란의 수습 등의 정책들을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로,
인조 대의 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모사이자 충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물 같은 건 볼 줄 모르는 인조의 편협한 안목과,
속도 좁은데 냉정하기까지 했던 인조 자신의 성격의 문제 등으로 인해서인지,
그는 분명 왕이 개인적으로 신뢰를 했던 신하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도
분명 충의와 종묘사직의 보호 및 민생의 안정 등을 생각하여 한 직언이었겠지만,
가끔씩 겁을 상실한 정도의 직언을 올려 왕의 자존심을 긁은 적도 몇번 있었던지, 삭탈관직조차도 몇번이나 당했었다나.
대표적으로 청과의 화친 주장,
양란 이후, 명과 청 과의 외교관계에서 현실적인 중재를 하다가 고초를 겪었던 횡의 사건
환향녀 박대 반대, 강빈 사사 반대 등이, 많은 반대에 직면했었던 주장이었다고.
게다가 횡의 사건 때는, 그에 대한 유언비어가 담긴 상소가 올라오자,
정작 인조는 그의 진짜 의도는 믿지도 않고 삭탈관직을 해버렸다거나,
그래도 완전히 신임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는지,
뭐...... 정작 그가 죽고나서는 인조가 직접 시호를 내리기도 하고 장례는 후하게 치뤄줬다는지.
▲ 군사의 지휘[B+]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는 온갖 신묘한 계책들을 계획하여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어 광해군을 축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고 하며,
또한 인조 반정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않았을 시점에,
무려 한양을 점거했었던 조선 시대 내내 유일무이한 반란이었던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적에는,
무신도 아니고 문신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과 중신들이 다들 파천하던 와중,
도리어 총독부사의 직책을 얻어 직접 전장에 나가, 장만 등의 무신들과의 협력을 통해
난을 효과적으로 진압했었던 업적등이 구현화된 스킬.
실제로 그는 병법에도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군사 지휘를 할 시 +보정을 받는 스킬이다.
▲ 정사공신(靖社功臣)[A]
인조반정을 주도한 1등 공신 중 한명으로서 받은 공신의 훈호(勳號).
애초부터 인조반정의 명분은 광해군 대에 있었던 인목대비의 폐출, 및 영창대군의 죽음 등의 윤리적인 문제 등과,
실리 중심의 중립 외교 정책과는 다르게 엉망이었던 내치 등에 불만을 가지던
신료들의 성리학적 질서의 명분을 통해 그 정당성을 얻었던 반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오늘날에는 나중에 양란의 원인이 될 것 같았으면
그런 반정은 왜 했냐? 라는 평까지 나오는 반정인 통에, 그 가치가 수직낙하 해버린 반정이기도 하다.
다만, 현실주의자였던 그가 이런 인조반정에 참여하게 된 원인은,
그런 명분 문제였다기보다는
자신의 부친과 스승등이 옥사들에 연류되어 꼬이게 되었던 개인적인 문제들이 원인이 되었던 듯 하다.
그래서 그랬던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청렴해서 그랬던건지,
정작 공신의 훈호와 명예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었던 그였다.
게다가 반정의 공으로 나라에서 받은 재물들은 정작 하나도 쓰지 않았었다고.
결국 역적들에게서 빼앗은 그 재산들도 필시 힘없는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서
축재한 재물들이 대부분이 아니겠느냐며, 반려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째 무고의 괴물의 원인이 된 오욕보다는
이게 더 불명예스러운 오욕으로서 기록되는 듯 하다.
오늘날에는 인조 자체가 광해군보다도,
아니, 심지어 선조보다도 더 낮은 평가를 받는 암군 중의 암군으로 평가되기에,
인조 반정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러는 듯 하다.
* 클래스별 스킬
▲ 대마력[B]
조정의 삽질로 인해 불러들인 전란의 한 가운데에서도
조선이라는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선을 지탱했던 업적이 구현되어
라이더 클래스 치고는 상당한 수준의 대마력을 받게되었다.
또한 본인이 가진 마술에 대한 다소간의 지식때문에도
대마력의 랭크가 꽤 높아진 것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듯 하다.
▲ 기승[C+]
조선의 안정과 실리를 위해서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몸을 아끼지 않고
현실적인 외교를 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일화등이 구현되어 간신히 받은 랭크인 탓에,
환상종 같은 건 사실상 타는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단, 현대적인 기계류는 예외적으로 기승이 가능하다고,
오늘날의 외교전을 위해서는 비행기나 자동차로 이동해서 하지 않는가?
그러하다. 이 사람은 근본적으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모두에게 공리가 되는 일이라면 그러한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결코 꽉 막힌 인물이 아니라서 그렇단다.
▲ 진지작성[B]
라이더 클래스임에도 캐스터 클래스처럼 진지작성 스킬이 존재한다.
본래 영기 자체가 캐스터에 가까운 영기를 가진 탓에 그렇다는 것 같으며,
기본적으로
다만, 다른 허다한 문신들과는 다르게 몇몇 일화로 인해 책사로서의 진지도 존재한다.
아무리 문신이라도 자신은 책상머리형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 보구
▲ 제1보구 : 천자를 바꾼 점괘,
(캐스터 클래스일때만 가져오는 보구. 라이더 클래스로 소환시에는 봉인되어 있다.)
거사를 일으킬 땐 반드시 그 일과 날짜를 정확히 판단해야 성공한다며,
점괘를 쳐서 가장 효과적인 반정 일자를 잡았었다는 일화가 구현된 스킬이다.
그리고, 그의 계책대로 인조반정은 그 낮은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잠깐의 방심을 했던 광해군과 북인들의 해이해진 기강의 틈을 이용해 성공하게 되었다.
희대의 먼치킨적인 천재여서 그런지,
일반 학문 뿐만이 아니라 마술에도 다소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런 거사를 성공시키기까지 했던 수준의 점이었으니 그 실력은 알만하다.
보구의 효과로는 두가지가 존재한다.
▲ 제2보구 : 명예와 목숨을 건 화의의 외교술.
설사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항복하게 될지라도 최대한 얻어낼것을 얻어 낼 수 있도록 뜯어낼 수 있는 전형적인 실속형 보구.
승부에선 질지언정, 일시적인 실속과 평안만큼은 챙겨가,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도록 재정비하는 효과를 가진다.
게다가 혹시라도 승부에서 패배할지라도, 마스터의 목숨과 주변 무고한 시민들의 안전만큼은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보구이기도 하다.
또한, 적에게 잡힌 인질 구출에도 탁월한 보구이기도 하다.
분위기를 최대한 본인쪽으로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도 있을, 사실상 위기대처용으로는 최고의 보구이지만, 이 보구. 문제가 좀 많다.
그 문제라는게... 이 보구는 마스터(자신의 주군)에겐 어느 무엇보다도 분명 효과적일 보구이지만,
정작 영령인 자신의 내구와 행운은 무지막지하게 깎아먹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이 극심하기 때문인데...
그런 부작용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보구의 효과 자체가 본인의 명예나 능력을 깎아먹어감으로서 위기 대처와 이득을 취하는 종류의 보구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스터가 그의 노력을 이해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인격자라면,
그 부작용은 상당수준으로 최소화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이 서번트를 잘 써먹으려면 설사 위선적으로 꾸며진 것일지라도 군신과의 신뢰관계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속여먹지만 말자.
(솔직히 지금 보구 이름 정할 시간까진 없었습니다..ㅠㅠ 한자까지 찾아야하는지라 아주 죽겠어서...ㅠㅠㅠ 미완성으로 내네요.ㅠㅠㅠㅠ)
▲ 마테리얼 1
최명길, 호는 지천, 본관은 전주, 시호는 문충.
그는 조선 유일의 사례였다는, 한 해에 생원시, 진사시, 문과에 모두 급제하며
화려하게 조선 정계에 입문했던 천재였으나, 초기 생애는 상당히 꼬이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의 부친인 최기남은 광해군 대에 영흥부사로 있다가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사실상의 숙청을 당하며,
병사로 부친상을 맞게 되어, 가세가 기울어가는 상황이었으며,
본인 자신도 과거에 합격하여 병조좌랑을 맡고 있었을 시점에,
당시 광해군 대의 대북 실권자였던 이이첨에게 찍혀 모함당해 부당한 파직을 당하여
이후로 10년동안 야인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거기에 스승인 이항복 조차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귀양을 가게되어 그곳에서 죽게된 탓에
그가 광해군에 대해서 별로 좋은 감정이 없었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가 명분론자들만 우글댔던 인조반정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보임에도 가담하게 된 것은 이러한 원인도 한 몫 했었다고.
하지만, 같은 스승을 두고 있었던 이시백의 부친이자, 서인 강경파였던 이귀와 접촉하게 되면서,
인조 반정의 중심에 급부상하게 된다.
▲ 마테리얼 2
여러 반정공신들과 함께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았던 반정을 성공시키고,
인조반정의 1등공신으로서 새롭게 왕위에 올랐던 인조의 신임을 두텁게 받았던 그는,
그로인해 가세가 기울어가던 집안을 단숨에 세우게 되었으며,
인조 초기, 몇몇 공신들의 삽질등과 인조의 지나친 공신 우대 등의 문제등이 꼬여
이괄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는,
본인이 직접 전장에 나가 대책을 강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홍문관 부제학으로 있을 때는 관제개혁을 주장하였고,
병조참판 시절에는 백성들의 부세 및 군량미를 경감시키는 정책을 폈다.
사헌부 대사헌에 있던 중에는 반정으로 추대되어 명분이 떨어졌던 인조를 위해
인조의 생모와 생부의 별묘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으나,
문제는 이것도 다른 사대부들의 비난을 많이 받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병조판서에 재직하던 중, 이괄의 난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반정으로 쫓아낸 광해군에 대비되어 실시했던 도덕외교의 명분으로 인해
어디까지나 국내용 레토릭일지라도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울 수 밖에 없었던 정책의 방향성이
하필 청의 조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면서,
결국 그동안의 외교적 균형이 깨져버리고 정묘호란이 터지게 되어버린다.
▲ 마테리얼 3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같은 인조반정의 공신이자 나름의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던 이귀와 함께,
소장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청나라와의 협상을 주도하며 시간을 끌었으며,
결국 인조를 설득하여 후금의 동생이 되는 선에서 협상을 하고, 강화를 성사시키게 되며
일단 전쟁은 끝내며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는데 큰 기여를 하게된다.
하지만, 이 때부터 그는 대부분의 사대부들에게 집중공격대상이 되어 큰 비난을 받게 되기 시작하였다고,
게다가 정묘호란 이후 후금의 힘이 더 강해지며 스스로를 청나라로 칭하게 된 이후로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조선의 대부분의 대소관료들과 일반 백성들의 감정도
청나라와 한번 대결해보자는 척화론이 더 강한 힘을 얻게 되어버렸으나,
문제는 청나라는 이미 그 때쯤이면, 조선을 한번 손봐주자는 결정을 내린 상태로, 모든 전쟁준비를 끝마쳤다는 사실이었고,
조선은 이괄의 난 이후로 서북지방을 방비하는 병력이 거의 괴멸상태에 이르러 사실상의 전쟁수행능력이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는 인조에게 최후의 통첩으로, 다른 신료들에게 청나라의 간첩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아가면서도,
압록강이 얼면 큰 화가 닥칠것이라는 반박상소를 올리게 되며,
그제서야 지금의 상황이 대단히 엄혹하다는 것을 눈치챈 인조는 급하게 강화를 제안하는 사신을 심양으로 보내나,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고, 결국 병자년에 호란이 또 다시 발발하게 되어버린다.
▲ 마테리얼 4
사실 그의 강화론도 자신들의 목숨까지 내걸어가며 대의명분과 원칙을 지키려 척화론을 주장했었던
김상헌을 위시한 삼학사들과 마찬가지로 진정 애국심에서 온 의견이었다.
다만 그들과는 달리 현실적인 방도와 더 큰 전쟁을 막기위한 방도를 찾다보니 그 방법이 달랐던 것이었을뿐.
청군에 대항해봐야 우리의 힘은 미치지 못하나, 만일 무리해서 싸우게 되면 나라가 절단날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비록 비굴한 모양새를 취하더라도 나라만은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쳐들어오기 직전까지도 그의 충언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병력을 크게 대비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마음을 어느누구도 알아주지 못하고 오해만이 더욱 더 쌓여갈 뿐이었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었던 조선은 그대로 한양도 함락되고, 겨우 몸만 피한 인조와 대소관료들은
그나마도 조언을 듣지 않았던 인조는 결국 피란이 늦어버려 강화도는 커녕 남한산성까지도 피하지 못할 뻔 했었으나,
결국 직접 그가 나서 청나라에 가는 사신을 자청하여 시간을 끌어 협상의 시간을 벌었고,
오직 조선의 종묘사직과 전쟁에서의 실질적인 협상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자존심도 다 버리고 척화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굴욕적인 항복문서를 작성하기도 했으며
결국 삼전도의 굴욕으로 굴욕적인 항복을 하기는 했었지만, 최소한 전 국토가 청나라의 군대에 유린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 마테리얼 5
전쟁 후에는 인질로 잡혀간 왕족들과, 전리품으로 가져간 처녀들을 조선으로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
이후에도 지난한 협상과 복잡한 외교현안들을 처리하며 바쁘게 보냈으나, 문제는 이때에는 환향녀 문제가 걸리게 되었다.
순결을 잃어버린 여자들은 정조를 잃어버렸으므로 결혼한 아녀자라 할지라도
이혼을 시켜야한다는 의견들이 사대부의 대다수 의견이었으나,
오히려 그는 정조를 잃어버린 건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조정의 잘못이 아니겠느냐며
환향녀들의 강제 이혼정책에 강하게 반대했으나, 소수의견에 불과했던지라 결과적으로 묵살되어버렸다.
심지어 노령의 나이에도 최대한 약자의 상황에 있던 조선에서 적을 최대한 만들지 않기 위해
당시엔 아직 망하고 있지 않았던 명나라에도,
황제에게 "조선이 청과 강화를 한 것은 종묘사직을 위하여 보존하기를 도모한 것일 뿐"이라는 내용의 자문을
임경업을 통해 은밀히 보내어 명과도 비공식적인 외교채널만큼은 끊지 않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 자문은 무사히 전달되기는 했으나, 차후에 이것이 문제가 되어 명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청국에 소환이 되어버렸고,
그는 살아돌아올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감 없이 자신의 장례 도구를 지참케 하고 청의 심양으로 가서 심문 후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청나라의 출병요구에 명분과 원칙을 들어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1년 전쯤 먼저 압송되어 심양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그의 최대의 정적이자 라이벌이었던 김상헌과
같은 감옥에서 2년동안 함께 지내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 마테리얼 00
생애 후반부엔
▲ 인연예장 : 심양옥중에서
각각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표이면서 조선 조정에서 극한대립을 하던 최명길과 김상헌,
수십년동안 서로를 기회주의자나 간신으로 오해하고 있었던 둘은,
먼 타국에서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되어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2년동안 감옥에서 같이 지내며 서로의 방법이 달랐을 뿐 나라를 위한 마음만큼은 같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시를 나누며
비로소 그 동안의 깊은 앙금과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인정하며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상헌의 시 -
양대의 우정을 찾고
백 년의 의심을 푼다
최명길의 답시 -
그대 마음 돌 같아서 끝내 돌리기 어렵고
나의 도는 둥근 꼬리 같아 경우에 따라 돈다네.
- 영기재림
1차.
2차.
3차.
4차.
- 상호 작용 대사
이항복 :
스승님으로서는 분명 존경하는 분이지만...
그 뭐냐... 너무 쓸데없는 농담이 많으시다는게 좀 큰 단점.....
이귀 :
김류 :
김상헌 :
인조 :
그렇게 생전에 수준이하의 왕을 모시며 험한 시대를 살아간 재상이었다만,
그가 성배에 바라는 소원은 없긴 없지만,
문제는 그건 순전히 성배라는게 과연 믿을만한 것인지 의심하는 것 때문에 그런 것 뿐이라고.
다만, 개인적인 소원자체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좀 상관들이 합리적인 판단이라면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참여해봐야 별다른 이득도 없고, 무고한 일반인들의 피해만 커지며,
리스크만 클 승률이 0%와 같은 무모하고 쓸데없는 명분의 전쟁같은 건 제발 다들 안했으면 좋겠다고.
근데 그러면서 정작 본인의 제살 깎이는 건 신경도 안쓴다는게 모순.
게다가 생전에 그것때문에 여기저기 공격받고 미움이나 오해도 많이 사서,
좀 꽁해진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능성만 존재한다면 최소한 마스터의 생존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해줄테니,
제발 감정에 휘둘리는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지나 말라며 잔소리할 스타일이다.
몰라요....ㅠㅠ
완전 미완성이예요..ㅠㅠㅠ 으아아아아아아아
시간이 2시간만 더 있었어도 좀더 완성하고 냈을 텐데....
역시 한반도 자작 서번트는 너무 만들기가 힘드...ㅠㅠ
여러분....
역시 진지한 역사적 인물은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이입이 시간내에 완전히 되지는 못해서... 대사도 다 못쓰기도 했고...ㅠㅠ
그래도 나름 노력은 봐주시길 부...탁....ㅠㅠㅠ
일단 내셨으니 심사기간 동안 보충하시면 될 듯 합니당
네. 정말로 감사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