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 '2019'라는 숫자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이 영화였습니다.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눈동자, 잿빛 하늘에 치솟는 불기둥, 그 속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그때 저는 깨달았죠. 때는 무르익었다!
2011년에 후지미에서 내놓았던, 오래 숙성중이던 1/24 스피너를 열어서 만들 때가!!
모형질을 근 10년 가까이 쉬었으므로 손풀기로 1998년식 경찰차를 먼저 만들어본 뒤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게 2월. 근데 이거, 후지미에서 낸 것만으로도 참 고맙긴 한데
제작 편의성이 정말 그지같아요. 대부분 통짜에 몰드 처리라 마스킹 노가다 잔치인데다
독특한 형태의 전륜 펜더를 차체에 묶어버리는 바람에 상하판 접합 후 일괄 작업이..;;
그러나 하필 이 타이밍에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 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LED 작업도 하셔야죠
LED 작업도 하셔야죠
LED 작업도 하셔야죠
LED 작업도 하셔야죠
잠시 이야기가 새는데, 사실 저는 라이트업(점등) 기믹 작업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LED가 아닌 꼬마전구(낚시전구)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매우 번거로운 작업에 비해
완성 뒤 한두 번 켜보고는 다시는 쓸 일이 없었거든요. 단선의 위험도 높고. -,.-
하지만 모 님 말씀대로 블레이드 러너의 스피너라면 어두운 LA의 밤하늘에 조명을 가득 켜고
날아다니는 이미지로 워낙 각인된 물건인지라 왠지 찜찜해서 한동안 다시 묵혀두다가...
다시금 스피너 완성 작례를 가만히 쳐다보니, 매우 미래적으로 디자인된 스피너이지만서도
80년대 디테일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광등에는 그냥 LED를 넣어버려도 될 것도 같은데??
그래서 저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었습니다.
납땜 도구같은건 내다버린게 까마득한 세월인데 이번 한 번을 위해 다시 구비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귀찮은데다 시간도 없다보니 그냥 반제품을 사다 쓰기로 합니다. 뭐 얼마 안해요~
라고 생각했구만 들어가는 갯수가 많다보니 금새 예산 초과? 선택을 잘못 했나..--;;
키트의 경광등은 클리어 부품을 작대기에 꽂는게 전부인 초간단 구조이기에 속을 갈아낸 뒤
그 자리에 3파이 LED를 넣어봅니다. 오호라 폭도 깊이도 딱 맞네요?
그런데 사출색을 믿고 흰색 LED를 넣었더니 너무 밝아 분홍색이 되어버려 색상별로 재구입;;
자 의외로 이게 되겠다 싶으니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네 일이 점점 커지는 거죠~
경광등에만 넣자니 좀 허전하고, 그렇다고 불 들어오는 곳을 전부 재현하자니 너무 많고,
그래서 키트에서 클리어 부품으로 분할한 곳들 중 되겠다 싶은 곳들은 일단 넣어봅시다.
전륜 커버에는 전조등이 하나, 면발광(DRL?)이 둘 있어 LED 하나로 땡치기로 합니다.
먼저 면발광 자리에 빛이 가도록 구멍을 내고, 빛이 새는걸 막을 가림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저 가림판이 차체 결합부와 간섭하는 바람에 나중에 칸막이 포함 다시 제작;;
중앙 전조등은 말 그대로 구멍 뚫어 박아넣기만 하면 끝나니 사진은 생략하고,
LED 소켓이 하나 남아 어쩔까 하다가 실내에도 하나, 계기판에 넣어보기로 합니다.
먼저 뻥 뚫린 부품 하단을 막을 판을 댄 뒤 빛이 통과할 부분만 마스킹하고 차폐용 은칠~
그리고 이 작업의 시작과 끝인 경광등...
LED와 클리어 부품, 그리고 3mm 구멍을 뚫은 얇은 프라판을 가공해서 하나씩 완성합니다.
원래 하나였던 지지봉이 졸지에 둘이 되어버렸는데 저기에 다시 뭘 씌우면 너무 굵어질테니
설정따위 무시하고 저걸(열수축 튜브겠죠?) 그대로 쓰기로 합니다. 와 이래도 되는거냐??
LED의 전극 다리를 그대로 쓰기로 했으므로, 아니 그대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경광등들을 지지하는 받침대에 다리가 들어가게끔 홈을 파고 적당히 구부린 LED를 끼워넣어
순간접착제로 고정합니다. 물론 이 문장처럼 금방 쉽게 되진 않았어요.
그리고 점등 테스트를 해보니 구부리는 과정에서 하나 단선. 뜯고 다시!!
이렇게 작업한 것들을 모두 차체에 적용하고 최종 테스트! 아 전부 들어왔네. ㅠㅠ
영화 속에서 워낙 휘황찬란해서 그런가 LED 열 개를 박아넣은것 치고는 초라해 보이지만
더 넣을 여력도 없으니 이걸로 끝냅니다. 그런데 저 선들 차 안에 어떻게 정리해 넣는담??
애초 계획으로는 스피너의 빵빵한 엉덩이에 배선과 기판을 욱여넣을 생각이었고,
네모난 후방 노즐(?) 중 하나를 뚫어서 미니 USB 입력을 넣을 셈이었으나...
수치상 사이즈가 나오긴 해도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밖에 열 수 없는 틈새로 뭘 한다는게
도무지 쉬울것 같지도 않은데다 차 꽁무니에 전원 케이블이 달린 것도 좀 웃길것 같아
예정에 없던 베이스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미 첫 계획부터는 우주 식민지만큼 멀어졌으니 뭐.
적당한 사이즈의 평베이스와 8 밀리미터 직경의 플라스틱 파이프를 준비해다
파이프를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베이스에는 그게 들어갈 8 밀리미터의 구멍을 뚫습니다.
굵은 사이즈의 드릴이 없어 작은 구멍을 곡줄로 갈아 넓혔더니 손가락이 너덜너덜;;;
에 사실 여기에서 투명 파이프와 솜으로 연기를 만들어 이 장면을 재현하는 것도 좋을텐데
그러자면 LED도 네 개 더 필요하거니와... 작업할 시간은 이미... 아... 머리 아파.
일단 지금은 그냥 이대로 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차체에 LED 부품들을 넣은 뒤 파이프를 통해 빼낸 선들을 정리하고 연결합니다.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이리저리 엉키는 선들에 성질나서 몇 번은 집어던질 뻔. -_-+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을 다 써버려서 나머지 부분은 디테일업이나 손보는거 없이
스트레이트로 달려 완성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올 2월에 완성되었어야 했는데 되도않는 LED 작업이 끼어드는 바람에
한동안 보류, 그래도 11월 전에는 만들겠거니 했지만 아니나다를까 11월이 되고 나서야
결국 시간에 쫓겨 갖가지 삽질 끝에 간신히 끝냈네요.
각본과 연출은 물론 촬영과 미술, 음악에 이르기까지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은 지대하지만
시드 미드가 디자인한, 할리우드 SF 영화에 왕왕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조상님
되시는 이 스피너 역시 지금 보아도 전혀 손색없는 아주 세련된 모습을 자랑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후지미의 키트 자체가 제작 편의성은 개나 줘버린 데다가
제작자의 미숙한 실력에 무모에 가까운 LED 공정, 오래된 재료가 일으킨 사고들이 합쳐져
별별 우여곡절이 다 있었죠. 어떻게든 완성했다는데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ㅁ-
인테리어에 회색만 넷인가 다섯인가를 썼는데 거의 티가 안나네. ㅠㅠ
그래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고, 이 후지미의 1/24 키트가 형태 재현은 좋네요.
그 외 딱 하나 더 마음에 드는 거라면 'SPINNER' 엠블렘을 에칭으로 넣어줬다는 정도?
제작 도중의 온갖 사고들 중 가장 큰 거라면 오래된 마감제에 데칼이 갈라지고 일어나면서
손쓸 방도가 없었던 거였는데, 유광을 포기하고 반광을 덧씌운게 그럭저럭 가려준것 같네요.
처음 유광과 반광 중 고민하던 때에 반광을 선택했더라면 고생도 안하고 결과도 좋았을텐데.
결과적인 얘기지만, 안그래도 오래된 도료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모서리가 허옇게 드러난
상황에서 반광 마감과 러프한(...) 붓질이 합쳐져 의외로 빈티지(...)한 분위기가 되었다는게
재미있습니다. 신기하게 80년대의 맛이 조금은 난달까나? 뒷걸음질치다 뭐 잡은게 이런거??
괜시리 마음에 들어서 명판도 파줬습니다. 와 이넘에게 들어간 부품값이 대체 얼마여???
물론 가까이 들여다보면 곰보가 된 표면에 여기저기 엉망진창이지만 말이죠. ^^;;;;
배선과 연출을 위해 지상 모드는 포기하고 비행 모드로 고정되었는데 훗날 손볼지 모른다는
생각에 구멍을 내지 않고 전선들을 빼다보니 아래에서 보면 좀 뭣하긴 합니다.
...그리고 다시 손볼 날은 안올 것 같죠 아마.
그날이 오든 말든, 이 오만 삽질의 근원! 베이스 뒤의 미니 USB 포트에 전원을 연결하면~~
초심자가 쌩으로 고생하며 박아넣은 10개의 LED가 점등됩니다. ㅠㅠ
대부분 LED 자체가 노출되다시피 한거라 매우 밝네요. CG 아님!!??
LED도 작업 뒤 단선되어 갈아넣고 어쩌고 한다고 애를 먹였지만 불 켜니 이쁘긴 하군요. *ㅁ*
다들 이 맛에 중독되어 LED 작업을 하시는 겐가?
LED 때문에 차체 상부 경광등 부위가 영화의 모습과 조금 달라졌지만 뭐 그러려니;;;
보이는 각도가 협소하긴 하지만 계기판에도 확실히 불이 들어왔습니다. 후아~~
LED 장인 분들 존경합니다.
서양의 덕있는 분들은 광섬유 박아넣어 전부 점등이다 풀 인테리어다 별별 걸 다 하시던데
저에게는 손쉬운 부분에만 LED 몇 개 넣고 스트레이트 도색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네요.
하긴 이것도 블레이드 러너쯤 되니까 팬심으로 했지 여느 거였다면 어림 반푼도!!
많이 늦었지만 아폴로 11호에 이어 2019년의 모형 약속 두 번째를 지키게 되어 기쁩니다.
영원히 자유로울 로이 베티, 룻거 하우어의 안식을 빌며.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투명 파이프와 솜으로 연기 만든 업그레이드 버전 기대합니다. ^^
여기가 오른쪽 가면 디오라마 추가제작 하신다는 맛집 맞나요?^^ (이영화 자체도 좋았는데, 나중에 한고은 과자광고인가에도 쓰였던 one more kiss dear 그 노래가 그렇게 좋았더랬는데..앗..아재탄로!?)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투명 파이프와 솜으로 연기 만든 업그레이드 버전 기대합니다. ^^
아니 그러니까 생각은 있었지만 실행되진 않을것 같다고 말씀을..ㅠㅠ
여기가 오른쪽 가면 디오라마 추가제작 하신다는 맛집 맞나요?^^ (이영화 자체도 좋았는데, 나중에 한고은 과자광고인가에도 쓰였던 one more kiss dear 그 노래가 그렇게 좋았더랬는데..앗..아재탄로!?)
아닙니다! 여기 맛집 아니라구요!! 어젯밤에 완성해놓고 영화 블루레이를 다시 한번 돌려봤는데, 반젤리스의 음악이 새삼 대단하더라구요. 그의 음악이 영화에 왕왕 쓰였지만 가장 잘 어울렸던게 블레이드 러너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삭제된 댓글입니다.
SugarBoy😴
디오라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이 있었다면 연기와 함께 간단한 길바닥은 표현했을지도 모를텐데, 시간이 없었기에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해외 작례들 찾아보니 정말 존경스럽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작은 램프류와 콘솔 스위치들까지 전부 발광 및 점멸, 생략된 계기류와 디테일까지 전부 재현, 인물들까지 만들어 태우고 베이스로 시가지 배경까지;;;
https://www.youtube.com/watch?v=qgz6jFxMpyk
감독판이 나오기 이전, 블레이드러너 사운드트랙 발매를 반젤리스가 허락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 반젤리스의 영화 테마 컴필 앨범에서 이 곡을 듣고 우와 했던~
여기가 소문난 맛집이라 들었습니다. 디오라마 코스요리 추천해주신다고 하시던데...
그집 폐업하고 이전했습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한사코)
글라스문님 블로그에서 글 잘보고 있음다. 저도 블레이드러너에 대해서 음갤에 포슷하나 했지요ㅎ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117/read/30612817?search_type=member_srl&search_key=1882410
으악~ 이 무슨 상상도 못한 전개랍니까?? 저와 다른 장소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계셨군요. 큭큭~
크읔 ㅠㅠ 환경오염이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되서 블레이드 러너 세상이 아직 안왔군요!!! 아니.. 어떤의미로는 저런 암울하면서 멋진 세계는 매체속에서만 구경할수있으니까 로망으로 남을수 있는거겠지요. 멋진 퀄리티에 추천드립니다.
넥서스 6 안드로이드가 예정보다 일찍 2014년 개발되어 블레이드 러너가 암약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타이렐의 현실 세계 이름은 구ㄱ... 읍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