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게즈호 구출작전 1975년 5월 12일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결국 지고 사이공이 함락된 후 태국 미군 기지로 가고 있던
미국의 기밀 문서들을 가득실은 미국 컨테이너선 미야게즈호가 크메르 르주에게 납치당함
마야게즈호는 피랍 직전 미국에 구조신호를 보냈고 미국은 이를 크메르 루주가 미국에게 던진 도전이라고 생각함
몇년전에 불과 몇 푸에블로호 라는 미국 정찰선이 북한에 피랍사건이 있었기에 감정이입이 특히 심했음
그래서 미국은 미드웨이급 항모, 구축함, 해병대, 전투기와 건쉽들을 이끌고 구출 작전을 시작함
그러던 중 미군은 승조원들을 생포한 크메르 루주 초계함이 코 탕 섬 혹은 본토인 캄퐁 송으로 간다는 보고를 받게되고
그렇다면 코 탕 섬을 점령하여 인질들이 있으면 구출하고 없으면 송환에 사용할 협상 카드로 만들자고 결정함
5월 15일 본격적인 구출 작전이 시작되고 오전 9시 30분 경
마야게즈호는 찾아내어 수색했지만 이미 쿠메르 루즈 병사들이나 승조원 모두 없었음
P3 초계기가 어선을 발견하여 보고 하였고 구축함이 급파되어 확인하니
없어진 승무원들이 전부 이 어선에 있다는 것을 알게됨
결국 모두 무사히 큰 상처없이 구출되었는데 여기까지만 했다면 해피엔딩인데...
미국은 이미 몇년전에 북한한테 정찰선이 나포되어 저자세 코리아 패싱 외교한 것 기억과
빨갱이 약소 군벌 세력인 크메르 루즈주의 납치 행위를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음
그래서 미군은 코 탕 섬 점령 작전을 취소하지 않고 계속 실행하기로 함
미군은 코 탕 섬 자체가 작을 뿐만 아니라 빨갱이 약소 군벌 세력이 이런 외지에
군대를 배치해봐야 얼마나 하겠냐고 콧웃음침
기껏해야 기관총이나 박격포로 무장한 중대급 해안 수비대일 것이라고 판단함
문제는 크메르 루즈와 적대적인 베트남을 견제, 감시하기 위한 요충지로 코 탕 섬을 중요시 여겼고
이 때문에 보급도 빵빵하고 레이더와 해안 방어진지, 대공포도 잘 갖춘 정규군이 주둔 중이었음
구출 당일인 15일 6시 12분에 섬에 도착한 1파인 선발대 CH 53과 HH 53 수송 헬리콥터 총 8대가
동쪽과 서쪽 해안 양 방향으로 어떠한 항공, 해상 지원이나 정찰도 없이 섬 서쪽 해안에 착륙하였음
크메르 루즈군은 헬리콥터의 취약한 때인 착륙할 때를 노려 RPG와 대공포, 기관총을 동원해 집중 사격함
헬기 3대가 추락하고 나머지 4대는 심각하게 파손되어 겨우 귀환 만하였고 작전 수행은 불가능했음
2파로 온 헬리콥터들은 대공화기에 당해 아예 상륙지점인 해변 근처도 못가고 떠나야만 했음
결국 선발대 1파만이 12시간 동안 위치를 사수하며 버텨야했음
결국 미군은 마야게즈호와 승무원을 구출하고 한참을 있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작전을 중지하고
저녁 6시에야 철수를 위해 해변에 남아있는 해병대원들 철수( 구출 ) 작전을 시작함
겨우겨우 수리된 헬리콥터와 구축함의 도움으로 단 3명을 빼고 철수하였고 3명의 구조 무전을 듣지만
이 이상의 전투가 벌어지면 또 다른 전쟁으로 커질까봐 우려한 상부에서 수색 구조 중단을 지시함
기관총 분대인 3명은 운 없게도 크메르 루주 군에게 잡혀 해변가에서 심한 고문을 받다가 처형되어
아무렇게나 버려졌고 이들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찻지 못하고 있음
이로 인해 50여명의 부상자 38명의 사망자와 3명의 실종자, 3대의 헬리콥터를 잃음
미국은 이로 인해 인질 모두 구출에 성공하면서 작전은 싹 다 말아먹은 흑역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