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살인마 한니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강렬하다. 호러 고전의 교과서처럼 모든 장면은 배움의 연속이다. 편집과 음악 그리고 캐릭터라는 조합으로 영화는 관객들에게 가장 잔혹한 시간과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 양들의 침묵은 연쇄 살인마를 쫓는 영화이다. 하지만 피부를 벗겨서 살인하는 살인자를 찾기는 어렵다. 미국 전역을 뒤지면서도 단서조차 찾지도 못한다. 그런 FBI가 선택한 것은 사람을 먹는 살인자 한니발이었다. 그의 심리분석과 지능과 경험은 살인자를 찾는 무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무기를 사용하고자 FBI 지망생 클라리스에게 임무를 맡긴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 영화는 극도의 긴장감은 건넨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과 철장은 기분이 이상해진다. 빨간색 철장에 다가선 클라리스의 모습은 위험을 감지하는 신호처럼 보인다. 모든 것의 공포를 겪은 주인공이 마주한 한니발의 철저한 사생활에 관객은 매우 놀란다. 흉악한 살인자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벽에 붙인 채 반갑게 클라리스를 맞이한다. 지망생이라는 점에 한니발은 그녀를 무시한다. 하지만 점차 그녀의 태도에 한니발은 생각을 바꾼다. 그리고 클라리스의 일생일대의 위험과 공포를 마주하게 만들어준다.
영화 양들의 침묵은 한니발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한다. 특히나 영화는 한니발의 등장과 모습이 강렬하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오히려 클라리스에게 초점을 둔다. 특히나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그녀의 열정과 노력은 90년대식 성장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는 기존의 성장영화와 다르게 악당이었던 인물과 손을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지만 인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정의감에 투철하지만 살인마에 대한 단서가 필요하다. 점차 그녀의 과거를 고백하도록 만들고, 한니발은 살인자의 모습을 그려준다. 그렇게 카니발 한니발은 정의로운 그녀를 성장시킨다. 아이러니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거리낌이 없다. 정의라는 원칙을 지킬 수만 있다면 거짓말도 사용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클라리스라는 인물이 양들의 비명소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을 세운 클라리스에게 의미를 못 박는다.
과연 클라리스 같은 성장이 나쁜 것인가? 누구도 알 수 없다. 선을 위해 악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법칙도 없다. 한니발로부터 배운 지식은 클라리스에게 더 넓은 경험으로 작용했다. 살인마를 잡을 수 있었고 정의를 세웠다. 그러나 한니발이라는 모순덩이리 살인자의 도움이 과연 올바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살인을 경험했고, 그 욕망과 지식이 범죄자를 잡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살인자에 지나지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죽일 것이다. 그렇기에 한니발의 성장을 얻은 클라리스에게서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한니발의 마지막 대사에는 선도 악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과거라는 족쇄에 사로잡힌 클라리스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것은 한니발이 곧 선한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한니발의 역할과 행동에 정의 내리지 못한다. 결국 관객들은 모두 그의 여행을 바라볼 뿐이다.
양들의 침묵 이후에도 악한 존재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영화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클라리스의 정의가 옳았다고 대답하지는 못한다. 한니발이라는 악행을 알면서도 선택한 그녀의 정의가 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의감에 몰두한 그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악에 대한 근본을 알게 되었다. 양들이 비명소리를 지르던 그 날 새벽에 순수한 정의를 위해 선택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다르게 말이다.
성숙해진 정의는 더 이상 과거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만의 정의에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더 많은 악을 찾을 때에도 그녀는 능숙하게 해결할 것이다. 비록 한니발이 만들어준 결과이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이 점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결과로 얻게 된 성장은 미래에 그녀를 기대하게 만든다. 동시에 한니발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한다.
결국 영화 양들의 침묵은 성장영화이자 선과 악이라는 인간이 구분 지을 수 없는 두 극단의 형상을 풀어낸 영화였다. 한니발이 악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의 선택은 존중받을 수 있다. 선이라는 클라리스의 정의는 몰두되어서 악에게서 답습받는다. 결국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하는 것을 멈춘다. 그리고 살인자를 찾는 세계에 서로를 합류시켰다. 끝내 얻게 된 결과에도 악과 선의 모호함이 긴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올라가는 영화 크레디트에 우리는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품고 나선다.
점수 : 4.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