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리오는 여름에 접어들려 하고 있었고, 당연히 일몰의 시간도 멀어져갔다. 벨 일행이 지상으로 귀한하기에 알맞은 시간이었지만 하늘은 이미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무사히 [크리스탈 맨티스]의 무리를 전멸시킨 뒤, 벨과 하루히메는 타프네와 카산드라에게 고개를 숙이고 몰드일행에게 속죄의 의미로 [마석]이나 [드롭 아이템]의 일부를 내주었다.
[동업자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 [패스 퍼레이드]같은 것은 흔히 있는 일이야~]라며 레나만은 천진난만하게 웃었지만, 살의가 넘치고 있는 몰드일행의 앞에서 아무래도 역시 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려웠다.
모험가업 이라는 것은 어렵구나, 라고 조용히 말하는 벨의 모습이 하루히메 에게는 인상적이었다.
중앙광장에서 다프네와 카산드라와 헤어진 후, 길드본부의 앞 정원 에서는 레나와 헤어졌다. [드롭 아이템]과 교환하고 보수를 받아온 그녀는 [나머지는 둘이서 즐기라고~]라고 웃으면서 10만 바리스를 건네주었다.
사라져가는 아마조네스의 소녀에게 시부일종 휘둘려진 기분이 들면서 하루히메와 벨은 웃고는 도시동부로 발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두 사람만의 목적지로 가기위해서.
야이샤와 다른 분들이 잘하신 건지 도시에는 더 이상 소동의 기색은 없었다. 벨과 하루히메는 저녁노을에 물들어 가는 메인 스트리트를 따라 걸었고 그곳에 도착했다.
[여기가 [노움의 대도서관].....]
[우와.....저도 처음 와봤어요.]
올려다볼 정도의 건물은 4층 건물이었고 마치 장엄한 교회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입구까지 가자 은행원 같은 고가의 제복을 입은 노움이 폐관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달려와 입관을 하고 싶다고 뜻을 전하자 키가 작은 하위정령은 벨과 하루히메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자 [부고부고]하며 수염을 흔들거리며 들어가게 해주었다.
[우와.......!]
입구를 지나간 순간, 하루히메는 감동의 숨을 내쉬었다.
-그곳은 거대한 [책과 책장의 세계]였다.
통풍이 잘되는 구조에 의해서 공간은 열려있었고 1층, 2층, 3층, 그리고 4층까지 책장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책장자체의 높이는 높았고 사다리가 없으면 손이 닿지 않는 곳에도 책이 늘어서 있었다.
많은 책선반이 중후한 흑갈색으로 채워져 있었고 낡은 종이의 냄새가 하루히메의 코를 자극했다.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면 신들과 정령, 영웅에 얽힌 여러 개의 천장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정령이 쌓아올린 장엄한 공간은 그것자체가 [이야기]의 세계처럼 환상적이기도 했다.
[이렇게나 많은 책이........]
[괴, 굉장해......도대체 몇 권이나 있는 걸까.....]
하루히메도, 벨도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뺨을 상기 시켰다. 오늘 제일의 놀라움을 나타내는 두 사람은 웃음을 숨지기 않고 곧바로 안으로 나아갔다.
폐간 시간이라는 것도 있어서 노움의 사서 이외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벨과 하루히메가 전부 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금은 미안하다고 느꼈지만 아무래도 흥분 쪽이 이기고 말았다. 중앙에 늘어선 몇 개의 열람용 테이블들을 지나, 큰 기둥에 걸려있는 관내표를 확인한 다음 목적의 서적이 있는 구획으로 향했다.
하루히메와 벨이 향한 곳은 계단을 올라간 최상층--역시 영웅담이 늘어선 책장이었다.
[[미궁신성담]은 물론 [수호자 베리아스]에 [가라드의 모험], [방황하는 디랄드], [나의 노에의 노래],.......아하, [이상향담(알카디아)]까지 있어!]
[[일천동자]도 있습니다! 극동의 이야기까지 이렇게!]
과연 [영웅]이 태어난 미궁도시의 도서관 이라고 말해야할까, 영웅담의 숫자는 엄청났다. 벽을 따라 세워진 4층 전체가 영웅 혹은 신화에 기초한 이야기가 놓여있는 것 같았고 벨과 하루히메에게 있어서는 틀림없는 보물의 산이었다.
마치 손을 붙잡고 있는 어린아이가 탐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둘이서 책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
[하루히메씨?]
거기서, 하루히메는 눈에 들어온 1권의 책제목에 발을 멈추었다.
그곳은 폐기된 책들의 책장 이었다. 겉표지가 망가졌다 등으로 처분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작은 책의 무덤.
벨이 돌아서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하루히메는 그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책의 제목은 ------[길가메스의 모험].
[이 영웅담은......]
[예, 오래된 영웅님의 서사시입니다. 여러 모험을 하시는 중에서......한명의 대창부와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창부는 파멸의 상징]이라고 하루히메에게 심게 만든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이후의 영웅담에서도 창부는 비극적이거나, 아니면 구해질 수 없는 말로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조언을 주거나, 힘을 빌려주어 같이 싸우는 창부가 있기는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로 영웅과 이어져, 그 옆에 서는 자는 “없었다.”
책은 이미 너덜너덜했다. 바깥의 표면은 흠집이 나있었고 펼쳐보니 각 페이지도 해져서 읽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잘못하면 한순간에 페이지가 빠져서 흩어질 것 같았다.
[어렸을 적에 제가 무서워하던 이야기입니다. 어째서 영웅님은 이렇게 심한 짓을 하는가하고.]
[.......]
[그리고 지금에 와서 공감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탐욕에 빠져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창부(그녀)는.....만나게 된 빛나는 영웅님의 앞에서 비참해져......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끌려 진 것이 아닌가하고.]
입 다물고 있는 벨에게 조용히 말하면서 군데군데 읽을 수 없는 페이지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써내려갔다.
[알고 있다. 음탕한 바비론!.
네 녀석이 저지른 악행의 숫자를!
도대체 몇 명의 남자를 유혹해서는 곤경에 빠트려, 비참한 말로에 이르게 한 것이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요부(妖婦)여!]
[그것이 어쨌다는 거야, 영걸(英傑)길가메스.
나는 남자가 가지고 싶어.
사랑을 가지고 싶어.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나의 텅 빈 구멍을 채우려면, 이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부족해!
하지만, 단지, 당신만이, 나의 공허를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너를 베지 않으면 안 된다!
해저에 가라앉은 진주처럼 아름답다 하더라도, 죄를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더라도!
진실로 그 몸에 괴물을 키우고 있다면 말이다!
오오, 신들이시여 보시오소서! 저의 검이 음탕한 여왕에게 철퇴를 내리는 그 순간을!]
[그럼 죽어! 죽어버려!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남자 같은 것은 필요 없어!
설사 그 살육의 검으로, 이 몸을 자른다 하더라도!
너와 얽혀있는 자들의 모든 파멸을, 명부의 심연에서 영구히 기도해 주겠어!]
영웅은 용서 없이 검을 들어 올렸고, 창부는 원망과 한탄에 차있었다. 거기서 이야기는 끊겨있었고 글자는 흐릿해서 나머지는 좀처럼 읽을 수 없었다.
-마치 베어버리는 영웅과 파멸을 맞이한 창부의 말로를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 이야기가 있는 한, 저는 창부(그녀)를 동정해서..... 창부(그녀)와 같았던 자신을, 언젠가, 어디선가, 몇 번이라도 멸시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되돌아보았다.
-정말로 즐거웠다.
-실패와 감싸지기만 하고 자신을 비하하는 하루히메를, 벨은 어떤 때는 웃으며, 어떤 때는 손을 잡아 이끌어 주었다.
-더 이상 옛날의 하루히메가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오늘 가끔씩 자신을 비하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및 바닥에 이영웅담이 있기 때문이었다.
-창부가 된 그날부터, 이 [파멸의 이야기]와 자신은 끊을 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전 창부인 자신은, 구해져야할 존재가 아닐지도 몰랐다.
---지금의 자신과, 이야기의 창부는 같을지도 몰랐다.
---하나같이 자신은 소년을 불행으로 이끄는 재앙이며 [괴물]이었다.
-모든 것은 오늘 하루히메가 품고 말았던 생각이었다.
-벨에게 구해졌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등에 매달려있는 [창부]의 잔재였다.
-하루히메가 구해졌음에도 결코 구해질 수 없는 여자의 저주였다.
지금 막, 한때 읽었던 [파멸의 이야기]와 재회 하고나서 이 마음의 응어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하루히메는 구해지길 원했던 것이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책속의 또 한명의 창부(자신)를.
-그것은 어린아이의 제멋대로에, 이룰 수 없는 환상이었다.
-사실인 이야기 속에서 결별하고 있는 영웅과 창부를, 어떻게 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히메의 비취색의 양 눈동자가 조용히 아래로 향했다.
[.....]
애달프게 책을 들고 서있는 하루히메의 옆모습을 벨은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쳐다보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하루히메의 마음의 응어리에 손을 뻗으려는 듯이.
-스스로도 느낀 적이 있는 아픔을 알아차린 듯이.
잠시 후...... 벨은 손을 뻗어 책을 집었다. 아, 하고 말하는 하루히메에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미소 짓고 일단 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책장의 숲 안쪽에 있는 노움의 사서를 발견하자 무엇인가 교섭을 하는 것 같았다. 말을 할 수 없는 정령에게 악전고투하면서 무엇인가 [허가]를 얻은 것 같았고, 너덜너덜한 책, 그리고 빌린 2개의 붉은색 깃털 펜을 가지고 돌아왔다.
[벨님.......?]
[이 책, 넘겨받았어요. 버릴 거니까, 가져도 된다고.]
그렇게 말한 벨은 책을 열고는--이럴수가 깃털 펜으로 무엇인가 써내려갔다. 이야기의 폭거라고 할 수 있는 행동에 하루히메가 말을 잃자 벨은 책을 내밀었다.
- 펼쳐져있는 페이지를 보자 거기에는,
[미안해 바비론(창부), 다시 한번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나는 진짜 너를 듣고 싶어.]
이어지는 내용과 틀린, 다른 대사가 적혀있었다.
[--------]
-눈이 떠졌고 움직임이 멈췄다.
흐릿한 문자위에,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변색된 페이지 위에 새로운 이야기가 지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자 벨은 눈썹을 내리고 상냥하게 웃고 있었고, 또 하나의 깃털 펜을 넘겨주었다.
하루히메는 다시 한번 펼쳐진 책을 내려다보면서 떨리는 손으로 종이위에 펜을 움직였다.
[길가메스(영웅), 사실 나는 죽이고 싶지 않았어. 나는, 파멸의 상징이 되어있는 것에 지쳐있었어.]
몹시 고심한 뒤, 그 한 문장을 썼다.
[창부(나)는, 창부들(우리들)은, 파멸의 상징 같은 게 아니야.]
되돌려준 책을 본 벨은 눈이 가늘어지며 웃었다. 그 한 문장을 비난하지도, 하루히메 에게 어떤 것도 말하지 않은 체, 단지 책안에 그 다음의 대사를 썼다.
[아아, 그렇고말고 바비론(창부), 지금도 손을 떨면서 사랑이 더해져가는 당신들이, 파멸을 가져다줄 리가 없어.]
그것을 본 비취색의 눈동자에 조용히 눈물이 매쳤다.
가슴에 오는 여러 가지 감정들, 하지만 하루히메는 울지 않았다. 그 대신 벨에게 만면의 미소를 보이고는 다시 책을 받았다.
[아아, 길가메스(영웅), 한눈에 반했었어, 계속 당신 앞에서 솔직해지고 싶었어! 더럽혀진 나를 받아줄길 바랬어!]
[더럽혀지지 않았어, 설사 더럽혀졌다 해도, 그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오해하지 않아! 우리들은 이제 해방되었으니까!]
책을 건네고, 다시 받으며 몇 번이고 영웅과 창부는 말을 주고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벨과 하루히메는 책을 가지고 바닥에 앉아, 어깨를 맞대며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변색된 페이지 위에서, 백지의 이야기 위에서 2개의 펜이 춤추었다.
웃는 얼굴로, 뺨을 붉히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열중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접한 두 사람의 손이, 희곡처럼 영웅과 창부의 대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하루히메와 벨이 본적이 없는 이야기.
-그녀들이 바라고 있던 영웅담.
진짜 이야기와 틀렸다.
-창부는 사욕을 위해 행동했고 남자를 파멸시키려 했으며, 영웅은 격앙되어 그런 그녀를 베어냈다.
-하지만, 그런 비극은 새로 쓰여 졌다.
다른 자들이 본다면 보잘것없는 이상이라고 말할까. 하찮은 망상이라고 비웃을까.
-하지만, 사실로 기록되지 않은 [생각]은, 어쩌면 [진짜]일지도 몰랐다.
-영웅은 베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창부를 용서해주길 바랬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꿈꾸며 [어쩌면]이라고 써낼 수 있는 것은, 미래를 살아가는 자의 특권이었다.
-[파멸]이라는 말을 부정하고, 그녀들을 [미소]짓게 만들 수 있는 것은, 희망을 바라고, 괴로움을 뛰어넘어, 포기하지 않고 [지금]을 손에 넣은 두 사람만이,
-벨과 하루히메 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써낸다. 써낸다. 써낸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둘만의 [진짜]를.
-영웅과 창부를.
[나는 당신의 진짜를 알았어. 그럼 당신이 얼마나 절망한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미소 짓게 만들겠어.
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미소 짓게 만들어줘. 슬퍼할 틈도, 낙심할 틈도 없을 정도로.
나는 당신과 계속 웃고 싶어.]
-소년이, 영웅이 알리는 말에.
-소녀는, 창부는 눈을 감았다.
[[아아, 녹아들 것 같아--]]
-하루히메의 말과, 창부의 대사가 하나가 되었다.
고개를 들고, 눈 끝에 눈물을 맺히며, 하루히메는 미소 지었고, 벨은 부끄럽다는 듯이 미소로 대답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이야기를 잇는 것에 몰두했다. 돌아가면 여신과 단원들에게 심한 꾸중을 듣겠지만, 그래도 창부들의 이야기를 마지막 까지 써내려가고 싶었다.
책장 뒤에서 얼굴을 내민 노움들은 두 사람을 쳐다본 후, 한동안 내버려두기고 했다.
-[지식] 그리고 [생각]을 재산으로 여기는 그들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를 환영했다.
펜이 소리를 냈고,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린아이처럼 키득키득 하는 속삭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실과 책의 세계.
-두개의 세계에서 영웅과 창부는 서로를 맞대며, 확실히 구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걸로 2기 블루레이 특전소설을 전부 올렸습니다. 전부 160페이지 나 되는데 언제 다 올리나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다 올렸내요.
외전12권을 읽었을 때 정말로 작가분의 필력에 감탄 했는데, 이번 특전소설 마지막 을 읽으면서 작가분의 압도적인 필력에 다시한번 전율 했습니다.
마지막을 이렇게 감동 시킬줄이야.....
이래도, 이래도 하루히메가 진히로인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까 작가니임!!!! 지금 이 순간 앞으로 던만추가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진히로인은 하루히메로 제 맘속에서 정했네요. 번역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