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멀쩡한 정신으로 사무실에 앉으니 이제서야 어수선한 거실과 어머니의 행방이 신경쓰인다. 회사로 돌아오니 내가 할 일이 한참 줄어들어 있다. 다른 동료들이 내가 병원에 있을 동안 내 할 일을 미리 처리해놓은거 같다.
혹시나해서 상관에게 찾아가 내가 며칠이나 나오지 않았냐 물어봤다.
“왜? 병원에서 안 알려줬나?”
“예… 안 알려줬다기 보단…”
부장은 한숨을 푹 쉬며 상에 회전식 캘린더를 툭 쳐서 내 쪽으로 보이게 돌렸다.
“또 의사들 말은 안듣고 무턱대고 뛰쳐나왔구만. 회사에서 쓰러져서 입원하는 비용은 회사에서 나올텐데 왜 그렇게 서둘러 나왔나?”
캘린더에는 내가 쓰러진 날이 표시되어있다. 물론 옆에는 다른 직원들의 휴가, 회사의 자잘한 사건들도 모조리 메모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랫 줄, 그러니까 7일 뒤의 칸에 오늘이라고 적혀있다. 내가 집에서 2일을 쉬었으니까 너다섯일정도를 병원에서 밍기적 거린건가? 어머니에게 한 변명이 통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더 안좋아졌다. 나는 자리에 앉아 오늘 배정받은 파일들을 정리하고 남은 시간을 때웠다. 밀려있는 일들이 없어지자 창 밖을 둘러볼 시간도 생겼다.
비가 오는지라 낮인데도 밤처럼 어둡다 인공적으로 만든 비구름은 자연스러운 비구름보다 더 짙고 두껍다. 아까 억지로 먹은 점심밥이 소화가 되니 머리가 맑아진다. 나는 옷을 입고 부장에게 걸어갔다.
“어, 오늘은 퇴근하려고? 웬일이야. 나도 집에 일찍가겠네.”
“예, 집에 일이있어서요.”
부장은 나가서 밥이나 한 끼하자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는지 입을 중간에 꾹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7시 정각이 되면 컴퓨터 화면이 바뀌고 작업 중인 직원들의 파일은 자동으로 저장되어 업로드된다. 이어 10분 후에 컴퓨터는 자동으로 꺼지고 미리 근무연장을 신청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다시 켜지지 않는다.
컴퓨터가 꺼진 걸 확인한 나는 사무실의 다른 사원들보다 한 박자 늦게 일어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옆으로 보니 내가 남아있을 걸 예상한 박 과장이 앉아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바로 회사를 빠져나왔다.
비가 와 거리는 축축하고 패인 거리에 물이 찰랑인다. 거리에는 간만의 장대비에 나온 사람들의 소리로 시끄럽다. 이런 이른시간에 회사에서 퇴근하는게 얼마만의 일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회사에서 나오는 휴일과 월,연차는 병원에 실려가거나 약국에 가는 날로 전부 날리던 날들… 거리에 사람들도 붐비고 공기도 깨끗했지만 나는 그렇게 기분이 흥겹지 않았다.
이런저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올리며 길을 걷고있자니 가방에 들어가있는 휴대폰이 지잉 지잉하고 소리를 낸다.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보니 회사에서 개인용 노트북으로 농떙이를 피우던 박 과장의 전화다.
잠시 휴대폰을 꺼내려 가방을 열자 넓은 우산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얼굴에 찬 느낌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든다. 주택가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히 후두둑 하는 빗소리만 들린다. 멍하니 가방을 잡고 우산은 어깨에 낀채로 사색에 빠졌다. 전화는 부재중으로 돌아가고 2통정도가 무시됐을 때 정신이 들어 나는 전화를 후다닥 받았다.
“여보세요?”
“뭐해?”
박 과장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평소의 까불대는 톤의 목소리가 아니야 마치 다른 사람처럼.
“누구세요?”
“지금 뭐하냐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뚝 전화는 차갑게 끊긴다. 박 과장이 아니다. 분명 다른 사람임에 분명하다. 박 과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니야 밤에 회사에 아무도… 그래 박과장이 내가 간걸 보지못했다면 회사에는 정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나와 박과장 그리고 우리 부서 부장님만 남아있었으니까.
나는 우산을 접고 집으로 향해 달렸다. 휴대폰은 이미 지역 경찰서 번호에 연결되고 있다.
연결되지 않는다. 왜지?
“씨발!! 경찰서가 전화를 안받아?”
그 사이에 집에 도착했다. 접힌 우산에선 담겨있는 물이 현관에 쏟아진다 몸은 질척질척 무겁다. 나는 옷을 급하게 벗어서 거실에 던져놓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방의 전화기로 회사에 전화를 건다.
휴대폰은 여전히 경찰서에 연결 중이다.
-찰각
“여보세요?”
부장님이다. 왜 이 시간까지 남아있지?
“부장님?”
“누구십니까?”
나는 한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며 다시 연결이 끊긴 것을 보며 이를 악 물었다.
“현장정비 관리부에 이 대리입니다.”
“아아, 이 대리. 무슨 일이지?. 금방 집에 들어간거 같은데?”
경찰서에 3번째 전화를 연결한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분명히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꺼야.
“박 과장한테 퇴근하는걸 말해주지 못해서요. 혹시 박과장이 아직까지 남아있나요?”
“어어 잠깐만 아까 본거 같기도한데. 먼저 갔다고 투덜거리더만. 잠시만 기다려보게.”
“여보세요? C-27 경찰서입니다.”
나는 집전화를 대기상태로 내버려두고 휴대폰을 귀에다 가져다 댄다.
“여보세요? 저희 가족이 실종되서 신고를 하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본 장소는요?”
묘하게 굼뜬 경찰관의 말투에 불필요하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출신, 성격이 어떻든 지금은 기대야 하는 사람이다. 화를 씹어 삼키고 조곤조곤 말했다. 머리가 어지럽다. 내가 병원에서 며칠을 있었더라? 집에서 얼마나 누워있었지? 부장의 캘린더가 떠오른다 아 감사합니다 부장님.
“집에서 봤는데요 그… 거실에 유리창이 꺠져있고 조금 어질러져 있었습니다. 컵이나 그릇 위치도 조금 어색하게…”
“언제 쯤이죠?”
첫 날이었나? 아니 둘 째 날이었나? 머리가 개운해진게 두번째 날이고… 어 그 떄는 이미 없었던 상태니까.
“어… 2-3일 전이요. 제가 몸이 안좋아서 확실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잠시 외출이나 외박을 나가신건 아닙니까?”
“아니 저희 어머니는 밖에 잘 안나가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지금 3일인가 4일 째 연락도 없단 말입니다.”
“에~”
옆에 전화기에서 벨이 울린다. 경찰관은 뜸만 들이고 빨리 빨리 대답해주지 않았다. 목덜미에 열이 차오르는거 같다. 온 몸이 젖어 찬 상태인데 얼굴만 시뻘겋게 달아올라있다.
“여보세요?”
“예예. 지금은 담당 부서의 경찰관이 없어서 접수가…”
나는 회사에서 온 전화를 끊고 휴대폰에 소리를 질렀다.
“일단 접수만 해 놓으라고!!! 지금 3일인지 4일인지 사람이 들어오질 않는다니까!!”
“예. 그 흥분하지마시구요.”
“닥치고 빨리 남는 경찰관 누구든 좋으니까 우리집으로 보내라고. 주소는…”
경찰관은 사람을 약올리듯 다시 빙 돌려 대화를 처음으로 되돌리며 말했다.
“어머니에게도 GPS칩이 달려있을 것 아닙니까? 추적은 해 보셨나요?”
“이런 씨발… 지금 뭐 나랑 장난치자는 겁니까?”
손에 힘이들어가고 눈에는 머리에 묻어있던 빗물이 떨어져 눈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침대의 커버는 젖어 앉아있는 곳 주변까지 축축해졌다.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거 같다.
“아무튼 오늘은 일이 있어서 전화로 접수는 어려울 것 같고… 내일 직접 서로 나오시겠습니까?”
“후……”
나는 경찰관의 얘기를 전부 듣지 않고 중간에 끊었다.
그 시간의 경찰서엔 많은 경찰관들이 바닥에 쓰러져있다. 카운터의 앞에는 정장을 입은 괴한들이 광탄식 권총을 들고 이리저리 시체를 옮기고 있다. 경찰관은 전화를 끊고 조용히 그들을 올려다본다. 앉아있는 쪽 오른 손에는 작은 구형 권총을 쥐고있다.
“내가 그냥 끊게하라고 했지. 목소리만 확인하라고.”
경찰관은 엄지를 이용해 조용히 권총에다가 탄환을 밀어 넣는다. 딸깍 하는 느낌에 그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둔다. 쓰러져있는 동료들은 이미 모두 서너발의 플라즘 탄에 몸이 관통되고 속이 뒤집혀 죽은 상태. 정장을 입은 사내는 총을 거두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잡종새끼들은 언제나 일을 크게 벌리는 구만.”
“그렇지 감당도 못하는 주제에 하하하.”
옆에 정장을 입은 동료가 서류를 뒤지며 씨익 웃어보인다. 경찰관은 자신에게 총을 겨눈 괴한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틈에 오른 손을 올려 그에게 총을 들었다.
-타악!!! 쿵!!
경찰관은 총을 발사하지 못하고 그대로 총을 떨어트렸다.
“여보세요??”
“어. 나야.”
나는 젖은 옷을 전부 벗고 속옷 차림으로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다행이도 부장과 박 과장은 아직 회사에 있는 상태였다.
“어 우리 이 씨 무슨 일이야?”
“아까 네 전화번호로 나한테 전화가 왔어.”
잠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끊겼다. 자신의 사무실로 위치를 옮기는듯 수화기를 내려놓고 찰칵이는 소리까지 들렸다. 우리 부서의 사무실에 와서 전화를 한건가? 곧 수화기를 들고 연결음이 짧게 들린다.
“뭐라고? 내 번호로 전화가 왔다고?”
“응.”
“너 핸드폰에서 내 번호를 지우고 다른 데서 온 전화를 착각하거나…”
“아니야. 분명히 네 이름이 떴고, 내가 아는 목소리가 아니었어.”
박 과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자신의 서랍에 둔 휴대폰을 찾는거 같다.
“난 너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어.”
박 과장과 전화를 하는 이 대리의 안색이 좋지 않다. 밖은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이제 빗방울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는 어둡다. 저 멀리 유흥가는 간판의 불빛으로 밝지만 회사의 바로 앞은 단조로운 가로등 뿐이다. 박 과장은 친구가 걱정이 되는지 다시 전화로 묻는다.
“무슨 일 이야. 요즘 번호 같은 건, 프로그램으로 바꿀 수 있는거 너도 알잖아? 쉬는 동안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지?”
“번호를 바꾸는데 내가 아는사람. 그것도 내가 전화를 곧잘 받을 사람인, 네 번호로 번호를 바꾼다고?”
이 대리에게는 친구가 없다. 전화가 울리면 엄마나 박 과장, 아니면 부장이나 회사 사무실을 같이 쓰는 사원들이 전부.
“뭐 컴퓨터나 그런 걸 쓰다가 불법광고회사에 개인정보가… 돌아갔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
“내가 너랑만 통화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런 장난을 쳤을까?”
박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옆의 사무실에서 부장이 건너와 문 너머에 서 있었다.
“곧 다시 전화할께.”
자동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박과장은 이 대리에게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입니까 박 과장? 퇴근해야죠.”
“아닙니다. 이 대리가 저에게 할 말이 있었나봐요.”
부장은 자신 때문에 과장이 전화를 끊은게 신경이 쓰이는지 뒷걸음질 쳤다.
“이 대리가 실수를 해서 자네가 그렇게 다쳤는데도 여전히 둘은 친하구만. 보기좋아.”
박 과장은 오른쪽 기계팔의 손등과 손바닥을 천천히 돌려보며 한 숨을 쉬었다.
“제가 정리하고 나갈 테니 부장님 먼저 퇴근하시죠.”
박 과장의 목소리는 낮고 명확했다. 그의 팔뚝과 뒤통수에 철심이 박힌 사건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와 친구의 어두운 과거이다.
유리문이 닫히고 부장은 굽소리를 내며 복도를 나섰다.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 맨날 뒤에서 씹히지. 망할 깡통새끼”
박 과장은 다시 휴대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어.”
박과장은 옷을 챙겨입고 우산통에서 투명색 우산을 꺼냈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고 불은 최소한의 밝기로 겨우 바닥을 밝히고 있다.
“그래. 아까 하려던 말이 뭐였지?”
“우리, 엄마가 사라졌어. 납치된 것 같아.”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목소리가 떨리지도 흥분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경찰에 신고는 했어?”
“응. 아. 아니. 경찰관이 접수를 안해줬어. 지금, 이런 정보로는 접수가 불가능 하다고…”
박과장은 엘리베이터에서 1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의 불도 약해서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옆의 제어화면에 탑승인원 1명, 120kg라고 표시가 뜬다.
“뭐라고? 경찰이 그렇게 전화를 무시했다고? 그게 무슨 개 같은…”
5층 4층 3층 아무도 없는 건물에 비어있는 층을 지나치고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향했다.
-띠잉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점등된 1층버튼은 곧 검게 꺼지고 절전모드로 켜진 전등이 갑자게 밝게 들어온다.
“아무튼 내일 경찰서로 찾아가봐야겠어. 직접 와서 현장에서 접수하라고 했거든.”
휴대폰의 너머로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와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곳에 없는 이 대리는 소름이 끼쳤다. 이 늦은 시간에 남아있는 다른 부서 사람이 있다고?
“이봐!! 야! 여보세요?”
“전화는 잠시 끊지.”
아까 집 앞에서 들은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리고 곧, 박 과장과의 통화가 종료됐다. 이 대리는 핸드폰을 벽에 강하게 던지고 방에서 나와 거실을 내려다보았다. 재수가 없게도 맞바람이 부는지 깨진 유리창 사이로 빗물이 조금씩 들어온다. 화가 나고 억울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는 거실에서 어머니가 사용하던 식칼 중 가장 긴 칼을 집어 들었다. 이제 그는 해가뜨고 비가 멈출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