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욕장 만화방
협재 해수욕장
지금은 국내에서 가장 청결하고 맑은 바닷물로 유명한 해수욕장이지만 내가 처음 찾은 1974년 협재리 해수욕장은 조그만 시골 바닷가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60이 다돼가는 내가 나이 21살 때 이곳을 찾은 것은 한 가지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사법고시.
바로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함인데.
육지에서도 멀리 떨어진 제주도 서북쪽에 위치한 협재리까지 오게 된 것은 나에게 호기심을 안겨준 어느 여고생을 만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었다.
바로 2년 전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못해 괴로움에 홀로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를 하고 있었다.
비틀비틀 걸어서 장안동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의 집은 양평이었지만 임시 서울에 있는 동안 친누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막 답십리를 지나는데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낀 나는 길가에 주저앉았다.
괴로움에 마신 술이라 과음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신이 가물가물 해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큼한 향기가 내 코끝을 자극했다.
천근이나 되는 눈꺼풀을 겨우 열고 내 코끝을 자극하는 그 상큼한 향기의 주인공을 처다 봤다.
“쯧......... 쯧..........”
짧은 단발머리에 검고 큰 눈을 갖은 귀여운 소녀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혀를 연속으로 찼다.
“왜?”
난 혀가 꼬부라진 음성으로 겨우 물었다.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이므로 말 한마디 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기지도 못할 술은 왜 마셔 가지고. 쯧......... 돈지갑이 떨어진 것도 모르고. 쯧.........”
소녀 손에는 내 지갑이 들려 있었다. 돈은 많지 않지만 당장 쓸 돈이 들어있었다.
“영. 해서 돈 잃고 집이나 제대로 가겠수까?”
소녀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회색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는 고등학생 같았다.
가물가물해지는 내 눈 속으로 문득 들어 온 것은 그녀 치마 속으로 보이는 붉은 팬티였다.
아니 하얀 팬티에 붉게 핏자국이 묻은 팬티였다.
왠지 상큼한 향기는 그 곳에서 나는 것 같았다.
“영. 정신을 못 차리니 그냥 갈 수도 없고......... 삼춘! 정신 좀 차려 봐요!”
그 소녀는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내 정신을 깨우고 있었다.
희미한 정신 속에서 본능적으로 그 소녀 팬티에 묻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각인되며 다시 천근이나 되는 눈꺼풀을 열었다.
“삼춘! 집이 어디? 어서 완?”
그 소녀의 작은 손가락이 내 눈꺼풀을 강제로 열고 나에게 물었다.
그 소녀 입김이 내 입에 상큼한 향기를 담고 전해졌다.
음....... 이 소녀의 모든 것이 다 상큼한 향기가 되어 내게 전해지는 구나.
난 속으로 그렇게 느꼈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감자기 힘이 생기며 정신이 멀쩡해졌다.
“어디 좀 쉴 곳 없을까?”
난 비틀 거리며 일어서서 소녀에게 물었다.
“아무 곳이라도 좋아요?”
소녀가 내 두 눈을 바라보고 하얀 치아를 보이며 미소와 함께 물었다.
“응! 응!”
“그럼 제가 부축할게요. 따라 오세요.”
키가 무척이나 작은 그 소녀가 날 부축한다고 내 팔을 어깨에 걸치는데 내 팔은 그 소녀 머리 위에 걸쳐 있었다.
마치 내 팔을 머리에 이고 걷는 모습이 되어버린 소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 소녀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조금 걸어서 도착을 한 곳은 만화방이다.
평소에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만화방이기에 내겐 무척 낯 설은 풍경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관심이 집중된 나와 소녀 때문인가. 몇 명 남녀가 물끄러미 나와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 여기 소파 좀!”
소녀는 주인아주머니를 부르며 날 만화방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다.
나이 갓 30이 넘은 젊은 아주머니는 소녀 목소리를 듣고 이미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학생들을 옆으로 이동 시키며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삼춘! 여기 누워서 좀 쉬어요.”
소녀는 날 소파로 안내하고 먼저 자리에 앉았다.
탁탁.
내가 소파에 앉아 뒤로 누우려하자 소녀 손가락이 내 눈꺼풀을 강제로 열며 한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탁탁 쳤다.
“거길 베고 자라고?”
“앙!”
소녀는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소녀 두 손은 내 머리를 감싸 잡고 당기며 자신의 무릎을 베게 했다.
“으.......... 영해야 되겠네.”
소녀는 다시 내 머리를 한 손으로 들고 짧은 치마를 잡아당겨 하얀 허벅지를 덮었다. 아마도 내 머리카락이 하얀 허벅지를 따갑게 했던 모양이다.
편안한 자리에 누어있으니 금방 잠이 들을 것 같았는데.
점점 정신이 멀쩡해져 갔다.
내 눈앞에 자꾸만 그 소녀의 피 묻은 하얀 팬티가 아른거렸다.
난 잠이 든 척 하면서 몸을 옆으로 누었다.
내 얼굴이 그 소녀 아랫배 쪽으로 바싹 붙었다.
소녀는 내가 잠이 든 것으로 알았을까 별 관심 없이 만화책에 푹 빠져 있었다.
다시 상큼한 향기가 내 콧속으로 들어왔다.
술기운은 어느덧 사라지고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그 총각은 누구야?”
만화방 아주머니가 소녀에게 묻는 말에 난 얼른 정신을 수습했다.
“삼춘이에요.”
소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삼촌? 그렇다면 정말 이 소녀가 내 조카인가? 누구 딸이지? 형님 딸은 아니고. 누님 딸도 아닌데? 누구지?
두 눈을 감고 코는 소녀 아랫배에 묻은 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넌 무조건 이모고 삼촌이잖아? 정말 아는 사람이야?”
만화방 주인아주머니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이번엔 소녀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마도 만화책에 푹 빠져 아주머니와의 대화조차 잃어버린 모양이다.
“삼촌은 무슨.........! 나이가 많아야 한두 살 정도로 보이는데.”
주인아주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을 하면서 어디론가 가버리는 것 같았다. 주인아주머니 말소리가 점점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래! 내겐 이런 조카는 없는 것으로 안다. 그냥 처음 만난 소녀일 뿐이야. 헌데? 왜 이 소녀는 날 삼촌이라 하며 이렇게 친절을 베풀까? 혹시 날 좋아하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을 내리며 난 엉큼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잠꼬대처럼 머리를 움직이며 소녀 치마를 조금씩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끝을 드러낸 치마 속으로 다시 소녀 팬티가 보였다.
형광등 그림자 때문에 그냥 검게 보일 뿐이지만 내 심장은 다시 콩콩 뛰기 시작했다.
“으..........”
소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엎드렸다.
물컹하고 소녀의 배가 내 머리를 감싸 눌렀다.
소녀 아랫배에 코가 눌려버린 난 숨이 콱 막혔다.
다행히 곧 다시 자세를 바로잡은 소녀는 내 머리를 한 손으로 들고 치마를 끌어 내리더니 무릎위에 방석을 덮고 내 머리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아마도 내 머리카락이 소녀 허벅지를 따갑게 했기 때문이리라.
으으.........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사람들이 깔고 앉았던 방석이라 더럽고 냄새도 많이 났다.
젠장! 그냥 치마 위에 얌전히 누워있을걸. 후회가 됐다. 그렇다고 금방 방석을 치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내가 잠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 탄로가 날 테니까.
퀴퀴한 냄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소녀가 내 마음을 알았을까. 내 머리를 무릎에서 내려놓고 일어섰다.
살짝 실눈을 뜨고 올려다보니 내 얼굴위에 소녀 치마가 있다.
치마 속으로 뭔가 보일 것 같은데.
소녀는 원하는 책을 금방 골랐는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소녀는 내 머리를 다시 들어 무릎에 올려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행히 방석은 소녀가 일어난 사이 내가 의자 밑으로 밀어버려 소녀 눈에는 띄지 않았는지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상큼한 소녀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갑자기 밀려오는 나른함. 난 내 코를 소녀 아랫배에 묻고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다.
뭔가 강제로 내 눈을 열어 날 깨우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난 잠에서 깼다.
내 눈에 처음 보이는 것은 하얀 치아를 보이며 상큼한 미소를 짓는 그 소녀의 검고 큰 두 눈이었다.
“삼춘 이제 일어나야죠? 저도 집에 갈 시간이에요.”
“응! 그래! 고맙다.”
난 일어나면서 우선 그 소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이거.”
소녀는 내 눈앞에 두 손으로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바로 내 지갑이었다.
“술에 취해서 지갑을 흘리시고 다녀서 제가 잠시 보관했어요.”
“이거 잃어 버릴까봐? 날 도와준 거야?”
“네!”
소녀는 내가 지갑을 받자 얼른 돌아서서 만화방을 나가며 대답을 했다.
내가 그 소녀를 만난 것은 그뿐이었다.
온전한 정신도 아닌 술이 취해서 그 소녀에 취해서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나 싶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꾸만 생각이 나는 그 소녀 모습에 난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세상 어느 향기보다도 그 소녀의 향기가 좋았고. 자꾸만 맡고 싶은 소녀 향기에 난 만화방을 찾았다.
하루 이틀.........
자꾸만 찾아가도 그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기억나시죠? 저보고 삼촌이라 하던 그 소녀. 왜? 아주머니께 이모라 하던 그 소녀요?”
“아! 그 술 취해서 소파에서 잠들었던 그 총각? 맞죠?”
“네! 맞아요. 그 소녀는 요즘 왜 안보이죠?”
난 하는 수 없이 만화방 주인아주머니께 그 소녀에 대해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 소녀는 이곳 병원에 무슨 병 때문에 치료를 받으러 잠시 왔다가 간 소녀인데 집이 제주도라 했지 아마.........!”
“제주도요?”
“네! 제주도 무슨 해변이라 했는데.......... 음......... 음.........”
아주머니는 기억을 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하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혹시 기억나시면 제게 연락을 해주시겠어요?”
난 내 전화번호를 남겨놓고 돌아왔다.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그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총각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협재라 했어요. 해수욕장이 있는 마을이라던데.”
“감사합니다!”
난 무척 기뻤다.
더욱 더 그 소녀의 상큼한 향기가 그리워졌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도 먼 거리였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장거리 여행이었다.
후두둑........
장맛비가 힘차게 내리던 7월 23일.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달랑 가방하나 들고 내 몸은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라있었다.
내일부터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겠습니다.
방송에서 장마가 끝난다는 뉴스를 내보내고 있던 그 마지막 장맛비를 맞으며 난 제주 공항에 내렸다.
마치 새로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들뜬 내 마음은 이미 그 소녀를 만나고 있었지만 달랑 협재에 산다는 것 하나만 갖고 이름도 모르는 그 소녀를 찾을 수가 있을까.
이미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낸 나는 부동산 업자를 통해 협재리 해안가에 빈 가계를 하나 월세로 계약을 했다.
부동산 업자 말에 따르면 바로 바닷가에 위치해서 파도가 치면 바닷물이 가계까지 튄다고 했다.
청계천 헌 책방을 뒤져 쓸 만한 만화책도 이미 구해서 화물로 보냈다.
만화방을 하려는 것이다.
그 소녀가 만화책을 좋아하므로 만화방을 하면 언젠가는 한번쯤 찾아오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다.
해수욕장의 만화방.
그렇게 첫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