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치의 묘한 표정에
피셔는
어색하게 웃었다.
케네스 번의 풋사랑이
짧고 굵었다면
피셔는
인생 대부분을
한 여자만 바라보고
그녀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왔다.
자그마치 30년을 말이다.
“ 무슨 역적모의를 속닥이는 거지?”
잠든 모녀만 쳐다보던
캐롤라인이 돌아오자
로건과 피셔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신이치는
그녀의 손에 쥔 병나발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 대낮부터 병나발은 심하잖아.
캐롤.”
“ 맨정신으론 버티기 힘들어.”
아들을 죽인 며느리를 용서했다.
‘ 말이 쉽지.’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엄마의 마음이 어떨지
신이치는 짐작할 수 없었다.
감히 이해한다고 위로하는 건
지독한 위선이다.
아들놈이
얼마나 악마 같은 인간인지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보드카를 힘차게 들이켠
캐롤라인은
멀어지는 피셔의 등을 일별하곤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 나 바보 같지?”
“ 어.”
“ 너무 빠르잖아?”
“ 그야 바보니까.
바보할망구.”
신이치와
캐롤라인의 나이차는
거의 50년에 가깝지만
둘은 의외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현세의 삶 이상으로
오랜 세월을
지옥보다 더 엄청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전 세계의 힘있는 자들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로서
그들이 원하는 시뮬레이션만 하면서
센터에서 보낸 신이치는
도리어
헥터 가르시아나 그녀처럼
나이 많은 세대가 편했다.
“ 피셔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줘.”
“ 내가 왜?
내가 무슨 사랑의 큐피드야?”
“ 앙탈부리지 말고.”
“ 하하.”
감히 자신에게 앙탈부린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아들을 떠나보내고 달관해버린
캐롤라인은
그토록 두려워했던
신이치 (올림푸스) 가
오늘은
왠지 더없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신이치의 말이 맞다.
자신은 이제 늙었다.
“ 고마워.”
두서없는 감사인사지만
신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한 사고력을 되찾은 캐롤라인은
신이치가
왜 굳이 일행을 미국에서 멀리 떨어뜨리는지
금방 파악했다.
“ 모르간이 변한 걸까?”
“ 어느 조직이나
수장이 바뀌면 변하기 마련이지.”
“ 그래도
지나치게 급진적이야.”
“ 성추행범은 XX를 잘라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
당신이 할 말은 아닐 텐데?”
“ 그땐 어렸어.”
“ 오십대가 어리다고?
그게 말이야 방귀야.”
어처구니없어하는 신이치의 반응에
캐롤라인은 화제를 돌렸다.
말없이
보드카를 내려놓은 캐롤라인은
진지한 얼굴과 눈동자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 안전가옥이 필요해.”
“ 안가?
그쯤은 너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
“ 나라도
백 퍼센트 안전은 장담 못 해.”
“ 한나 때문에?”
“ 어.
누구도 내 손녀를 위협할 수 없는
완벽한 안전을 원해.”
신이치는
턱을 쓰다듬다 씩 웃었다.
“ 마침 좋은 곳이 있는데...”
“ 있는데?”
상대가 말끝을 흐리자
캐롤라인은
상체를 앞으로 당겼다.
“ 가입조건이 꽤 까다롭거든.”
“ 시크릿넘버?”
“ 노노!
그 서비스는 이제 접을라고.”
신이치는
VVIP의 개인의뢰도
더는 받지 않을 계획이다.
원래는
한 10년 연장할 생각이었는데
새로운 재무관리인이 된 대니얼이
하도 앓는 소리를 해대니
돈 나올 구석은
다 찔러봐야 했다.
“ 대신.”
그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에메랄드 멤버십이라고,
아주 좋은 서비스가 새로 나왔어.
그것도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콜로서스와 아틀라스도 공동으로 하는
진짜 좋은 서비스지.”
어떤 낯짝 두꺼운 보험팔이와 폰팔이도
첫 만남에
아주 대놓고 가입을 권유하진 않았지만,
신이치가 누군가?
사하라 사막의 모래도
종교쟁이들에게 팔아먹은 그였다.
“ 어때? 관심 있어?”
이번 부분도 대박입니다!!!!
최고의 극찬 감사드려요.
신이치의 계략이 무섭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부분은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이제부터 후루야 레이 vs 쿠도 신이치의 최종 대결이 시작되니까 말입니다. 일본 전체를 걸고 싸우는 최강의 대결!!!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