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롱코제 1/350 전함 첸유엔을 개조해 만든 해방함 친엔입니다.
인류 전쟁사를 통틀어 드라마틱한 생애를 보낸 군함은 여러 척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배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배 한 척의 시종을 따라가는 것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라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동아시아의 대규모 세력판도 변화를 관찰할 수 있거든요. 청나라 해군 전함이었던 첸유엔이 일본 해군 소속의 친엔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바로 아시아 최강자였던 청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입니다.
첸유엔(鎭遠)과 자매함인 팅유엔(定遠)은 청나라의 이홍장이 독일에 의뢰해 건조한 전함으로, 당시 세계 최강급의 전함이었습니다. 이홍장은 장차 있을 열강(특히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 해군력을 대폭 확충했고, 독일과 영국으로부터 각종 군함을 구입, 북양수사를 재편했습니다.
이때 구입한 군함들 중에는 일부 중고 함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함선은 새로 건조된 신규 함선으로, 이홍장은 말 그대로 작정하고 한 판 치를 결의로 국운을 북양수사에 건 셈이었습니다.
특별세까지 걷어가며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의 돈을 해군에 투자한 겁니다. 거기에다 외국에서 군함을 사오기만 한 게 아니라 스스로 조선소를 만들어 신형 군함을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당시의 서양제 군함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쓸만한 순양함을 뽑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북양수사의 위세는 일본을 겁먹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북양수사의 위력을 보여준 사건이 1886년의 나가사키 사건입니다.
1886년, 북양수사의 정여창 제독이 첸유엔과 팅유엔을 비롯한 4척의 신형 함선을 이끌고 나가사키를 친선 방문했고, 일본군 참관단 앞에서 함포 시범사격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본 일본 해군은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야, 우리 이런 거 절대 못 이겨!"
그야말로 울산급이나 포항급 쓰는 나라에 이지스함이 방문한 것 같은 상황이었죠.
그리고 방문기간 중 일본이 이 두 전함에 얼마나 쫄았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위에서 말한 나가사키 사건이지요.
나가사키에 상륙한 북양수사 수병들이 술에 취해 일본 경찰과 시비가 붙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수병들은 비무장이고 경찰은 칼을 차고 있어서 경찰쪽이 우세했는데...배에 있던 수병들이 동료들을 돕겠다며 무장을 하고 출동, 결국 경찰들이 열세가 되면서 나가사키 경찰서까지 청나라 군인들에게 털리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잘잘못을 가리는 협상이 두 나라 사이에 진행됐는데...청나라 측에서 일본에 이런 요구를 했습니다.
"니네 나라 경찰들, 앞으로는 칼 차고 다니지 마."
이건 명백하게 적반하장에 내정간섭이었지요. 그리고 일본의 반응은...
"앞으로 전국의 경찰관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칼을 휴대할 것."
그리고 일본 정부가 청나라 수병들에게 위로금을 지불하면서 일단 사건은 마무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일본은 이를 박박 갈며 해군력 증강을 시작했습니다. 모자라는 재정을 탈탈 털어서 영국과 프랑스에 신형 함선을 주문하고 해군 병력을 늘리며 맹훈련을 시켰습니다.
특히 팅유엔과 첸유엔에 대해서는 무지 고민을 했는데...아무리 주판을 굴려봐도 당시의 일본은 300mm주포 4문을 장착한 이 두 척의 전함에 상대될만한 배를 구입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이런 변태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320mm주포 1문씩을 장착한 순양함 3척을 만들고, 그 3척이 같이 몰려다니면서 큰 전함 역할을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배가 프랑스에 의뢰해 건조한 마츠시마, 이츠쿠시마, 하시다테의 3척으로, 일본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 세군데의 이름을 땄다고 해서 흔히 3경함이라고 불렸습니다.
일본이 새로 함대를 건설하면서 특별히 신경쓴 부분은 스피드였습니다. 청나라의 신형 군함들은 대부분 중장갑 중화력 위주로 만들어져 속도가 느렸는데, 그 정도의 중장갑 중화력을 얻을 수 없었던 일본은 청나라 함대의 약점인 스피드를 자신들의 무기로 삼기로 결정, 배의 속력을 올리는 한편 영국으로부터 대량의 신형 속사포를 구입, 함선에 장착했습니다. 적이 큰 거 한발 을 쏘면 이쪽은 속력으로 피한 뒤 작은 거 수십발을 퍼붓고 튄다는 전술을 택한 것이지요.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와신상담하며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을 때, 북양수사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악재가 발생했습니다. 이홍장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청나라의 실권자였던 서태후가 7년 뒤에 있을 자신의 환갑잔치를 위해 1888년부터 별장인 이화원 건설에 착수한 것입니다.
이화원 건설을 위해 해군의 예산은 대폭 삭감됐고, 거기에 관료와 고급군인들의 부정부패까지 얽히면서 함선의 추가 구입이나 개량은 꿈도 못 꾸게 됐습니다. 훈련을 위한 예산도 부족해 북양수사는 그야말로 자리만 지키며 허송세월을 보냈고, 장교와 사병을 가리지 않고 군인들의 숙련도는 바닥을 뚫고 내려갔습니다.
참고로, 1888년부터 이화원 건설에 들어간 예산은 1888년부터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까지 일본이 해군 전력증강에 투자한 전체 비용보다 많았습니다.(어떻게 생각해보면 청나라가 부자는 부자였네요.)
그리고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청나라 북양수사와 일본 해군은 황해해전과 위해해전에서 두 번 격돌했고...두 번 다 일본해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두 번의 해전을 거치면서 북양수사의 함선 대부분은 격침당하거나 자폭하거나 나포당했고, 극소수의 함선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반면 일본군의 주력함선 중 전투불능에 빠진 함선은 몇척 있었지만 격침당한 배는 단 한 척도 없었습니다.
전쟁 발발전에 일본군은 팅유엔과 첸유엔의 대구경 주포를 그렇게 무서워했지만, 청일전쟁 해전의 승패를 가른 건 속사포였습니다. 청나라 군함의 대구경 주포는 일본 군함 몇척에게 큰 타격을 입혔지만 단 한 척도 침몰시키지 못했고, 일본군 3경함의 주포는 그런 것조차도 못했습니다.
사실 팅유엔과 첸유엔의 장갑은 속사포로는 뚫기 힘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역전의 가능성도 있었습니다만...문제는 둘 다 포탄이 몇발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건 당시 북양수사 함선 전체의 문제로, 예산부족 때문에 포탄을 규정만큼 실은 배가 단 한 척도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북양수사에는 세계 해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포탄이 다 떨어져서 전투불능이 된 군함이 속출했습니다.
전황이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북양수사 사령관 정여창제독은 포탄이 다 떨어진 팅유엔을 자침시키고 "일본군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 자결했습니다.
그런데 명령서를 받은 부하가 그 내용을 위조해 후퇴명령을 항복명령을 바꿔버렸습니다. 그렇게 이홍장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북양수사의 역사는 끝이 났습니다. 중국이 팅유엔과 첸유엔을 인도받고 딱 10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청나라는 거액의 배상금을 물고 영토를 일본에 할양했으며, 살아남은 북양수사 군함들은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중에는 자폭에 실패한 첸유엔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본군에게 이 세계 톱클래스의 전함은 귀중한 전리품이었습니다. 10년 동안 건함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 첸유엔은 옛날처럼 최강전함이라고는 부를 수 없게 됐지만 어쨌거나 상당한 전력임은 분명했습니다. 최소한 당시의 다른 일본군 함선에 비하면 말이지요.
일본군은 이 배의 이름은 친엔(鎭遠의 일본식 발음)으로 바꾸고 각종 업그레이드를 실시했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부분이 주로 업그레이드가 된 부분입니다. 함미에는 원래 함수와 동일한 원형 포탑이 있다가 전투중 파손됐는데, 그 자리에 신형 함포를 달고 현측 좌우에도 동일한 포탑을 증설했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속사포를 여러문 장치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일본 해군 소속이 된 친엔은 두번째 전쟁에 참가합니다. 바로 러일전쟁이지요.
건함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덕분에 친엔은 건조된 지 20년만에 구식함이 되어버렸습니다. 러일전쟁 당시의 친엔은 더 이상 전함이 아니었고, 장갑해방함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동해해전 당시 친엔은 다른 구식함들과 함께 보조임무를 맡게 되는데...이때 같이 함대를 편성한 배들이 예전에 첸유엔을 잡기 위해 만들어졌던 3경함들입니다. 이 무슨 아이러니...
그리고 첸유엔은 러시아 함대와의 전투에서 함선 두척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립니다.(북양수사 시절에는 한 척도 격침 못 시켰는데...)
독일에서 건조되고 청나라와 일본에 의해 사용되며 제국주의 시대, 동아시아 세력 판도를 바꾼 두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본 이 전함은 건조된 지 26년 뒤인 1911년 퇴역한 뒤 해체됐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러일전쟁 해전에 대한 글을 읽다가 친엔에 대해 알고 "진짜 팔자 사나운 배로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첸유엔과 팅유엔의 존재 자체는 그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전쟁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몰랐거든요.
엄청난 능력이 있었는데도 상부의 무능 때문에 발휘하지를 못하고, 결국 적에게 끌려가 과거의 적을 위해 봉사해야 했던 불운의 전함. 사실이 픽션보다 더 극적이다는 말이 딱 알맞은 배라고 생각됩니다.(다른 각도로 보면 NTR 조교...? )
키트는 브롱코제로, 자체에 에칭이 포함되어 있어 따로 에칭 구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스트레이트 빌딩이고, 이런 저런 자료를 참고해 일본군이 개수한 부분만 프라판으로 자작했습니다.
몇몇 부분은 개조하기 골치아파서 대충 고증 무시하고 넘어갔습니다.
-추가-
리플을 보고 내용을 추가합니다.
제작 도중 사진 자료를 찾아본 결과, 함수와 함미에 새겨져있는 청나라의 상징-용 문양은 일본군 소속이 된 이후에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남겨놨더군요. 이유가 있어서 남겨놨다기보다는 그냥 갈아내서 지우기 귀찮았던 게 아닐지...
장문의 글 과 모형 잘 봤습니다. 다른 분들 저 욱일기... 만드신거에 반대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건 역사의 재현이고 심지어 지금도 그 후예들이 뻔뻔하게 달고 다니는 것이니... 저걸 보면서 되새겨할 것이 많으니 장문의 글도 집에가서 다시 한번 잘 읽어봐야겠습니다.
모형을 보러 왔다가 역사공부도 하고 가네요 잘봤습니다~!
21세기 어느나라는 토목공사를 위해 해군예산을 깎아 버렸습니다. 응?
해군 예산만 깎았겠습니까.(쓴웃음)
모형을 보러 왔다가 역사공부도 하고 가네요 잘봤습니다~!
조용히 추천 하고 갑니다 ^^
아시아 최강 이였던 전함 이군요 주포 배치등에 전함 발달사 초기의 시행착오를 격던 물건 이기도 해 실전이 암울했죠... 그나저나 원래 키트에 없는 부분이 많은데 전부 자작 하신 건가요?
리뷰 게시판의 물건들과 같이 보니 매우 흥미로운 전함이에요.
아 얘가 러일전쟁 만화책에 나왔던 걔군요 이 만화가 중간에 정발이 안돼서 저 함선이 어떻게 됐나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21세기 어느나라는 토목공사를 위해 해군예산을 깎아 버렸습니다. 응?
해군 예산만 깎았겠습니까.(쓴웃음)
장문의 글 과 모형 잘 봤습니다. 다른 분들 저 욱일기... 만드신거에 반대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저건 역사의 재현이고 심지어 지금도 그 후예들이 뻔뻔하게 달고 다니는 것이니... 저걸 보면서 되새겨할 것이 많으니 장문의 글도 집에가서 다시 한번 잘 읽어봐야겠습니다.
욱일기가아니라 전범기로 수정해주시면 좋겠네요 :D
전범기는 일반명사라..
여기 대첩의 향기가 난다
스말이 냄새를 맡았다!
신해혁명 이전의 고유명사이므로 '첸유엔'은 '진원'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중국역사학 시간에 들었던 진원과 정원이 이거였군
무심코 들어와봤다가 그야말로 영화보다 더한 역사의 한켠을 봤습니다. 대비를 잘 했음에도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때문에 결국 최악의 운명을 겪어야만 했던 전함의 이야기가 안타깝네요.. 정성어리고 꼼꼼한 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잉? 모형은?)
이야..외주 맡기고 싶을 정도네요,.. 혹시 외주 맡으시는지..?
관리자의 뜻대로 되진 않았네요
일단 추천박고 갑니다. 정말 완성도가 높네요!
서태후의 환갑잔치만 아니였으면 역사가 바꼈을수도 있겠네요 서태후는 진짜 민폐네 ;;;
한 일본 수병이 포탄 파편에 맞아 피흘려 죽어가면서 마지막 한 말이 진원(첸유엔)은 침몰했는가 하고 죽었고 남은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라는 이야기가 중요한 프로파겐다였죠. 당시 일본 교과서에도 노래로 만들어 실었죠.
유키카제네요 완전 탄양급..
중국이 워낙 큰나라다 보니 망해간다는 청말엽에도 일단은 돈은 많았죠. 국력 또한 유럽과 비교해 중세사회에나 가까웠지만 압도적인 인구빨과 생산력으로 국체 자체는 서구 유럽 저리 가라였죠. 괜히 나폴레옹이 잠자는 사자에 비유했던건 아니었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선 나라의 국력은 국토와 인구에 좌우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나라가 크고 재력이 풍부하다 해도 역시 망해가는 나라는 경제력이나 군사력따위로만 재단하는게 아닌게 여기서도 드러나네요. 서태후와 부패한 고위장교들.. 망하는 나라는 괜히 망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다른 근대화 후발주자는 함부로 하지도 못할 전함 자체건조 까지 했는데도 말이죠..중국이 일본 처럼 성공적인 근대화의 길을 걸었다면 선이든 악이든 압도적인 강대국으로 대국굴기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희로선 다행인지 불행인지 역사의 뒤안길로 가버렸네요.. 어쨌거나 프라모델 잘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시절 전함 건조 기술이 눈 부시게 발달하기전, 전노급 전함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과도기 시절의 전함을 참 좋아합니다. 포탑이 달렸지만 여전히 남은 과거 범선이나 초기 철갑선 시대의 잔흔이 참 이색적이네요
왕도의 개 읽는 기분이군요
아무리 국력이 강해도, 심지어는 그 국력이 원래 포텐셜보다 훨씬 못해서, 발전능력이 무궁무진한 나라라도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이 부패하면 한방에 ↗망.
역사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일본 군국주의를 숭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 정확하게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분이 고증을 위해 사용하신거라고 보이네요.
관리자 : 큿 실패인가
영전촹님, 여기서 이러시면 않됩니다
애당초 청일전쟁은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이 아니라 이홍장과 일본의 전쟁 이홍장은 자기 기반인 회군의 피해가 걱정되서 육군에겐 싸우지말고 퇴각, 해군에겐 대양에서 싸우지말라고 명령 이러니 이길리가 심지어 남양함대는 북양함대가 깨지는 와중에 중립선언
농담안하고 이거 영화 시나리오로 써도 손색이 없는 소재네요... 배를 주인공으로 중심으로 두고 거기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들.... 적에게 빼앗기게 되기까지하는 비극적인 결말까지..
중국에서 실제로 몇 년 전에 개봉하였습니다, 갑오...무슨 전쟁이란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역시 독일의 기술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일
모형과 자세한 설명까지 잘 보았습니다,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만, 우선 딩유엔 호 방일 당시 일본이 겁을 집어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 자신감에 가득찬 청군이 일본 군부 사람들까지 승선을 허락한 덕분에, 포대의 자세한 위치 등 세부적인 전투력을 알게 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적혀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그냥 나가사키 사건으로 통합하여 적기에는, 이후 실제 황해 해전에서 청군의 패배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부분이라고 알려져 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여 적어보니다. 그리고 일본의 건함 정책을 거포주의로 서술하셨는데, 전공이 그 쪽은 아니라 저도 자세히 찾아본 것은 아니고 예전에 레포트 정도 썼던 기억이 전부라, 질문이라기보다는 어느 자료를 보시고 그렇게 적으셨나 궁금해서 적어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은 당시 돈도 부족하고 기술도 부족해서 그 정도의 전함을 만들 능력이 없었고, 정부도 이를 직시해서 중소형 순양함 또는 어뢰정(용어가 맞나 모르겠네요)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식의 해군 건함 정책을 채택하였습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라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네요.
미사일 살돈 없다면서 빈 배로 다니는 세종대왕함 이나 함재헬기없이 다니는 독도함 보면, 남의일 같지 않네요. 군수뇌부가 돈먹고 부실무기 눈감아주는 것도 그렇고...
역사는 반복된다?...
1800년대 후반에도 저런 대형 전투함이 있었군요.. 1차대전 무렵부터의 전투함에만 관심이 있어, 1800년대 아시아에 저런 함선이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신미양요로부터 십수년 밖에 안되는 시점인데, 저런 신식 철갑함이 청나라에 있었다니.. 일본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국가에서 놀랄 수 밖에 없는 일이었겠네요. 비대칭으로 배치된 원형 주포의 형태의 상당히 특이하네요. 저 동그란 물건들이 포탑인지도 모르고, "도대체 포탑은 어디있는거야, 빈약한 포탑(함미쪽 포탑 3개) 몇개 덜렁있는게 전부야, 형편없네" 했습니다. 저런 형태의 포탑이 당시에 일반적이었던건지.. 여튼, 참 독특합니다.. 역사 공부 잘하고 갑니다. 모르긴해도 저같은 사람들 많지 않을까 하네요.. 아, 글 잘 쓰신 덕분에, 저도 모르게 술술 재밌게 읽어내려가게 되었어요.
잘 보고 잘 읽고 갑니다.
보면 일본의 상대는 참 운이 없어요. 청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고.
러시아는 영,프,미의 집중방해로 보급선이 지구한바퀴 반 돌정도로 길어지는 바람에 참패했지요... 제대로 싸웠으면 일본은 끔살... 해전과 다르게 육전은 떡실신... 러일 전쟁 직후 영,프,미의 중재로 종전협상하는데 러시아에 전쟁배상금 요구했다가 더 싸우자 하는 바람에 데꿀멍하고 조용히 종전합의 했지요..
삭제된 댓글입니다.
소달구지는 청나라도 일본도 끌고 다녔는데... 엘리트의식 수준이 공자왈을 못벗어났죠
그 뒤로 이것저것 해볼려고 했는데 종국인 자립적인 근대화는 물론이고 미래를 결정할 자기 결정권도 없었는데요 뭐
이게 다 정조 사후 100년동안 쌓인 결과입니다. 정조가 죽은 게 1800년인데, 근대화의 물결을 계속 이어갔더라면 청일 전쟁 전까지 상당히 국력을 축적할 수 있었겠지요. 실제로 일본도 개항하여 적극적으로 발전을 꾀한 것이 1800년대 중반이니까요. 어휴...
청나라와 일본이 저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는 동안 조선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항상 의문. 조선이 뒤늦게라도 저러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입지를 다져갔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어차피 국력이 안되니 전쟁준비는 무리고...) 우리네들은 국사를 배울 때 청과 일본의 알력다툼을 한 두줄의 사건으로 마무리해버리지만, 사실 그 사건이 발생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데 말이죠. 그보다 욱일기로 어떻게 대첩 한 번 내보려 한 관리자의 심보가 개념글에 의해 억제 당했다는 느낌이...
위키에서 루리웹 우익논란 작품 차별논란 관련글 보다 왔는데... 좋은거 보고 갑니다. 전함이라고 하면 미군한테 죽도록 깨진 일본군 전함이나, 진주만에서 박살났지만 향후 미군의 함대 세팅에 전화위복이 된 미군 전함같이 2차대전 당시 전함 디자인만 봤더니 1차대전 언저리 시절 전함은 오늘 처음 보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