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섣달 꽃 본 듯이
어떤 예수전
새벽 다섯시 신사역
행려병자 하나가 자꾸 날 보고 히쭉거린다
비럼벅수 생각
오일장터 일성옥에서 밥 빌어먹으며
히쭉해죽 일없어도 잘 웃던 당신
이쁜이 이모 종수발 좋아해서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히쭉해쭉”
포주들 밤 놀잇감이 되곤 하던
밤 깊도록 찰랑찰랑 대나무 평상도 따라 웃고
어이구, 동네 몽둥이가 여기 있었네
아랫도리 벗기던 포주들
“동지섣달 ↗ 본 듯이 움찔 꿈질” 합창을 하고, 낄낄낄낄
우린 당신의 그것을 작대로 땅에 그렸는데
고무신짝을 대보고 그보다 작으면
다시 문어만하게 그리고
“동지섣달 떡 본 듯이 움찔 끔질”
그땐 웃으면 왜 배가 덜 고팠는지
일 없는 대낮이면 작대기로
개 잡듯 당신을 몰고 다니며
우린 시궁창 미나리들처럼 금세 자랐다
공동변소 벼람박에 또 몇번의
공시 벽보가 붙었다 떨어지는 동안
어느새 중학모를 쓰고 의젓해진 우릴 쫓아
당신은 가끔 학교 앞 담장 밑에
쪼그려앉아 있곤 했다
일성옥에서 쫓겨나서도
오일장터를 떠나지 못하던 당신
하수도관에 멍석을 깔고 자던 당신
새벽이면 실려갈 장짐 새에 끼여 자던 당신
비 오는 날이면 기대놓은 평상 사이 비집고서 떨다
아침이면 뒷방천에 올라 볕바라기를 하던 당신
수쿠리집 닭 한 마리가 없어져도
그릇집 독 하나가 깨져도
모두가 당신 탓, 어느 해 겨울엔
밤도둑들에게 꾀여 아이들만 자는
기름집 뒤창을 뜯고 들어갔다
우는 아이들 달래다 붙잡혔던 당신
덕석 말려 부지깽이로 맞던 당신
역전으로 쫓겨났다 야산으로 쫓겨났다
시름시름 영영 보이지 않던 당신
그렇게 좋아하던 이쁜이 이모
재 너머 젊은 군인 사모하다 농약 먹고 가기도 전에
화따메 나 가심이 다 벌렁벌렁해분다던 여서댁
아주까리 신사 따라갔다 반실성해
시장통 다시 돌아오기도 훨씬 전에
훌쩍 가버렸던 비럼벅수
이젠 공동변소 벼람박도 허물리고
찬바람만 스산하게 지킨다는 시장통의 밤 뒷길
왜 사람들은 당신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첫 전철을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겨울 신사역 새벽 다섯시
그때 그 비럼벅수가 나라는 듯
자꾸 미소 짓는 행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히쭉해쭉
그때 작대기 들고 나를 몰던
네 동무들은 다 어데로 갔냐고, 히쭉해쭉
오일장터 똥방 골목 그 좋던 벗님들은
지금도 모두 다 잘 계시냐고
이쁜이 이모 제사는 누가 지내주느냐고
방천둑 너머 갈대밭은 지금도 싸리비처럼 잘 너울거리
느냐고
남양만 깊은 물줄기는 지금도 그리 퍼렇냐고
너는 이제 이곳에서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느냐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히쭉해쭉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시선 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