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통의 소환장
늦은 밤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우편물 한묶음을 내놓는다
종로경찰서 영등포경찰서 서초경찰서 남대문경찰서 서
울중앙지법
골고루 다양한 곳에서 여섯통의 소환장이
한날한시에 와 있다 기네스협회에라도 보낼까
한장은 기륭전자 비정규직과 함께 을지로입구 사거리에
서 붙었던 날
한장은 쌍용차 해고자들과 함께 대법원 앞 횡단보도에서
붙었던 날
한장은 LGU+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벗들과 함께 국
회 앞에서 한판 하던 날
한장은 명동 중앙우체국 앞 광고탑 고공농성 선동 혐의
또 한장은 그 모든 이들과 함께 청와대 앞
마지막 한장은 세월호 추모집회 관련 재판 소환
우리 기준으로는,
신고가 필요하지 않은 기자회견에 추모제이거나
문화제이거나 측은지심이거나
차마 돌아서지 못한 양심이거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이겠지만
저들 기준으로는,
미신고 집회 주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해산 불응 구호 제창 피케팅 기준 소음 초과 건조물 침입
폭력행위 등 처버레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빨리 간이 졸아들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아이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쇠고기 장조림을 만들려고
메추리알을 잔뜩 사온 날이었다
이제 한시라도 빨리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이들은
대한민국 경찰과 검사들뿐
근래엔 애창곡을 이선희의 「인연」으로 바꿨다
얼마 전 2011년 희망버스 주동으로
1심에서 실형 2년을 선고받고
간신히 보석을 살아나온 날이었다
가사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인연(2년)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그다음 구절이 더 좋았다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그다음 구절은 또 어떠한가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걸”
그런다고
요 근래 내게서 멀어진
아이 마음이 돌아설까마는
짭짭하니 좋다
무엇이?
장조림이?
내 인생이?
송경동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