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맘때면 가끔 엉뚱한 꿈을 꾼다. 우리도 철새들처럼 철 따라 이동하며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나라들이 동맹을 맺어 서로 철 따라 세 들어 사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할 일이 아니라면 가족끼리 해보면 어떨까 싶다. 여름에는 어느 호주 가족이 우리 집에 와 살고 겨울에는 우리가 그 집에 가서 함께 사는 것이다. ..."
"... 요사이 기름값이 하도 올라 이번 겨울에는 아예 비닐하우스를 닫거나 배를 띄우지 않기로 작정한 농어촌 사람들의 겨울 삶이 동면과 무에 그리 다를까 싶다. 우리도 스스로 신진대사를 낮출 줄 아는 동물이었다면 그냥 이 슬프도록 긴 겨울을 잠이나 자며 보내련만. ..."
한국일보 2000년 11월 21일판에 올라왔던,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의 글 "우리도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011210042539293)"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이 글이 이렇게 슬프게 다가왔던 적이 있었는가 싶습니다. 물론 첫 번째 단락은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아예 닫혀버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 단락 (본문에서는 마지막 단락입니다)이 심장을 찌릅니다.
생각 같아서는 "나중에 뮤즈든 아쿠아든 니지동이든 세인트 스노우든, 아니면 이번에 출범한 새 그룹이든 누구라도 내한공연 예매하라고 공지 뜨면 그 때 깨워줘."라고 말하고 페노바비탈 주사를 맞고 계속 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몇 주가 되든 몇 년이 되든..... 사람도 신진대사율을 스스로 낮출 줄 안다면 그냥 이 해를, 차라리 잠이나 자면서 보내겠습니다만.ㅠ 어차피 코로나19로 직업을 잃은 사람들도 신진대사를 낮춰서 겨울잠을 자는 채로 몇 년을 보낸다면, 코로나19가 어떻게 극복되고 다시 직업을 구할 수 있게 되는 날까지 굶어죽을 걱정도, 가족들 걱정도, 그리고 자신이 걸릴까봐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리고 유동인구도 왕창 줄어들 테니 사람들 간의 접촉이 줄어들어서 빠르게 끝나 버릴 테니까요. 그리고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나 걸렸다 나은 사람들도, 이미 받은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어도 추가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하루에 몇십 명 정도가 신규 진단되는 것에는 이제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다른 수천 명씩 늘어나는 나라들에다가 가족들이 사는 대구에서 수백 명씩 늘어나던 눈 뜬 채로 꾸던 악몽으로 인해 감각이 둔해졌으니 말입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