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리고(試悟理顧)! 홍소(虹咲)학당 학당 우상 모임에 들어온 걸 진심으로 환영해!"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동안 못난 모습을 보여서 정말 죄송하고,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학당 우상 모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시오리고(試悟理顧)는 혜성처럼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 홍소(虹咲)학당 학당 우상 모임을 없애겠다 선언한 자이다. 이때 세추나(勢趨娜)는 이미 시오리고(試悟理顧)의 쿠데타에 의해 학당회장 자리를 빼앗긴 상태였다.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우리가 저항하자, 시오리고(試悟理顧)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을 요구하며 그걸 지키지 못할시 바로 없애겠다 협박하였다. 학당 모임을 지키기 위해 무주(舞姝), 아구아(衙求兒)의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한 우리는 다행히도 무사히 요구사항을 처리해낼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시오리고(試悟理顧)는 학당 우상 모임을 곱게 보지 않았으나,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져서 자꾸 우리와 엮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시오리고(試悟理顧)의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이 점점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 날들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시오리고(試悟理顧)는 홍소(虹咲)학당 학당 우상 모임의 단체곡인 '토기매기 주자 (討嗜邁祺 走者)'를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 시오리고(試悟理顧)는 홍소(虹咲)학당 학당 우상 모임에 들어와 학당 우상을 해보겠다는 뜻을 밝혔고, 우리는 크게 기뻐하며 환영해주었다.
오늘 이 자리는 시오리고(試悟理顧)가 홍소(虹咲)학당 학당 우상 모임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조촐한 잔치이다. 학당에서 요리를 주로 배우는 가나타(可懶朶)가 솜씨 좋게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줬고, 우리들도 각자 저잣거리에 나가 맛있는 음식들을 사와서 한 상 가득 올려두었다. 그것들을 신나게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정말 너무나도 즐거웠다.
재밌는 이야기들이 끊임 없이 나와서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그때, 수정과를 한 잔 들이킨 세추나(勢趨娜)가 돌연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자기 발밑에 계속 놔두고 있던 종이 상자를 위로 들어 올려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저기, 오늘 같은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가 개이구(豈怡俱)를 만들어 왔어요!"
"뭐어, 개이구(豈怡俱)? 그거 만들기 힘들다던데, 요리 솜씨가 좋구나. 세추나(勢趨娜)!"
"와아! 개이구(豈怡俱)! 얼른 먹어 봐요!"
"...'
세추나(勢趨娜)가 서역 음식 중 하나인 개이구(豈怡俱)를 만들어 왔다고 하자, 모두 다 기뻐했다. 아니, 사실 모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유무(娥柳霧)와 가나타(可懶朶)는 삽시간에 얼굴이 굳어 버린 것이다. 왜 저러는지 궁금해진 나는 아유무(娥柳霧)에게 슬쩍 귓속말을 했다.
"아유무(娥柳霧),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도망쳐야 돼..."
"응? 왜?"
"세추나(勢趨娜)의 요리는..."
아유무(娥柳霧)의 속삭임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세추나(勢趨娜)는 상자에서 개이구(豈怡俱) 열 조각을 꺼내 접시에 담고는 하나씩 우리 앞에 놔주었다. 나는 잔뜩 기대하며 내 앞에 놓인 접시를 봤다.
"어, 어라... 이게 개이구(豈怡俱)...?"
검부타(檢腑他)에서 본 개이구(豈怡俱)는 새하얗거나 조금 까맣거나 노르스름한 것이었는데, 접시 위에 있는 저것의 색은 자연적으로 절대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요상한 보라색이었다. 그나마 자연에서 저 색깔을 띄는 것을 찾아 보자면 독버섯의 갓 정도일까. 게다가 장식으로 올려 놓은 무지개색 사탕들은 개이구(豈怡俱)를 더 이상하게 보이게 할 뿐이었다.
"저기, 세추나(勢趨娜). 개이구(豈怡俱)에 올라가는 구림(口淋) 중에 보라색 구림(口淋)도 있어?"
"아, 서역 음식 재료 가게에서 파는 하얀색 구림(口淋)에 이것저것 섞어 봤더니 저런 색이 나왔어요! 이쁘지 않나요, 가린(佳潾)씨?"
"어, 음, 어... 그렇다고 해야 될까, 정말 독특...하다고 해야 할까... 아하하"
세추나(勢趨娜)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린(佳潾)이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력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각자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나타(可懶朶)와 아유무(娥柳霧)는 접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폭탄이라도 보는 눈빛으로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시주구(是珠具)와 가수미(嘉秀美), 시오리고(試悟理顧)는 자기들이 예전에 먹어 봤던 개이구(豈怡俱)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리나(璃奈), 아이(我而), 에마(恚麻)는 이미 포구(捕具)를 손에 쥔 채로 신이 나 있었다.
"그럼 다 같이 한 입 먹어 봐요!"
"..."
"세추나(勢趨娜),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세추나(勢趨娜)씨!"
감사 인사를 하고나서 세추나(勢趨娜)와 우리들은 다 함께 개이구(豈怡俱)를 포구(捕具)로 한 입 크게 집어서 입 안으로 넣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5초 후, 온몸을 강타하는 커다란 충격이 느껴졌다.
잠깐 눈을 감았던 걸까. 눈을 힘겹게 떠보자, 저 멀리 흐릿하게 무언가가 보였다. 좀 더 집중해서 쳐다보니 저 멀리 있는게 유원지 같은 곳의 입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여러가지 색들로 칠해진 입구 앞에는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세 명의 소녀들이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아주나난도(兒走拏亂島)에~♪"
소녀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 내용은 아주나난도(兒走拏亂島)라는 곳에 오라는 거였다. 아주나난도(兒走拏亂島)라니, 저게 바로 아주나난도(兒走拏亂島)라는 덴가. 근데 왜 나는 여기 있는 거지. 아주나난도(兒走拏亂島), 좋지... 나도 좋아해... 그런데... 나는 분명히 학당 우상 모임 방에 있었는데... 세추나(勢趨娜)의 개이구(豈怡俱)를 먹고... 나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윗몸을 일으켰다. 얼떨떨한 정신을 억지로 똑바로 차려 보려고 애쓰면서 주변을 둘러보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홉 명이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가 싶어 일단 애들이 숨은 쉬고 있는 건지 확인해보려고 움직였는데, 그 순간 입안에서 쓰고 맵고 달고 짠맛이 괴상하게 섞인 인간의 언어로 차마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맛이 확 느껴져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누가... 좀... 도와... 줘..."
힘이 다 빠진 두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 비틀비틀 걸으면서 나는 절규했다.
학당 우상 모임 방을 힘겹게 빠져나와 지나가던 동무들에게 살려 달라고 말하자, 동무들은 질겁을 하며 얼른 양호 선생님을 불러다 주었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들은 모두 다 무사했다. 세추나(勢趨娜)의 개이구(豈怡俱)는 정말 끔찍하게 맛이 없었을 뿐이지, 몸에 안 좋은 건 아니였기에 건강에 이상이 생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정신적 충격은 컸지만...
그 뒤로 이 사건은 '세추나(勢趨娜)의 난' 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추나(勢趨娜)는 저 날 이후로 요리하는 것을 금지 당했다. 세추나(勢趨娜)가 정말 슬퍼했지만, 모두의 목숨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 END -
또 재밌는 소재가 떠오르면 다시 쓸지도 모르지만, 일단 홍소(虹咲)학당 이야기는 여기서 끝!
내주비안 모임을 조성하는 아구아의 리고와 무주의 고도리, 홍소의 아유무까지. 금안 세자매는 어떠신가요?